십수년 전 한국의 한 인기 아이돌그룹의 멤버가 방송에서 퀴즈를 풀면서 '장미'를 영어로 'lose'라고 써서 비웃음거리가 되었는데, 이 여자 연예인은 지금도 가끔씩 '장미', 'lose' 같은 단어만 등장하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놀림 대상이 되곤 한다. 그런데 아마 일본에서 똑같은 실수를 했다면 바보 캐릭터로 크게 인기를 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일본에서는 연예인을 하나의 캐릭터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런 연예인의 캐릭터 속성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것 중 하나가 '보케 캐릭터(ボケキャラ)'다. 본래 만담용어에서 유래한 말인데, 우리말로 굳이 번역을 하자면 분위기 파악 못하고 엉뚱한 소리만 하는 '나사 빠진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보케 캐릭터와는 정 반대의 타입을 흔히 '싯카리코(しっかり子)'라고 하는데, 뭐든지 제대로 하는 스타일의 똑똑한 캐릭터다. 그런데 이런 타입보다는 보케 캐릭터 쪽이 인기가 높은 것이 일반적이다.
아이돌 그룹 같은 경우 인원이 많은 만큼 수많은 캐릭터들이 혼재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그룹이 인기있는 멤버는 얼굴이 귀여운 보케 캐릭터 타입인 경우가 많다. 똑똑한 여자보다는 오히려 멍청한 여자가 인기가 있고, 똑똑한 남자보다는 멍청한 남자가 더 인기가 많다.
2008년에는 인기 퀴즈 프로그램 '헥사곤2'에서 바보 같은 오답을 남발하던 출연자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그중 여성 3명을 모아 '바보'라는 그룹을 만들고, 남성 3명을 모아 '수치심'이라는 그룹을 만들기도 했다. 수치심은 그해 오리콘 연간 랭킹에서도 10위 안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하면서 비록 그룹은 해체했지만 수치심의 멤버들은 지금까지도 톱 탤런트로서 활약하고 있다.
그런데 바보같다고 하는데 그 바보같은 수준은 상당히 심각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퀴즈에서 '삼계탕'을 내놓고 어느나라 요리인지 맞추라고 하는데 '프랑스 요리'라고 자신있게 대답을 한다던가, 공항에서 비행기의 이착륙을 관리하는 곳을 세 글자로 대답하라고 하니 '면세점'이라고 대답을 하는 식이다.
그래놓고 왜 틀렸는지도 몰라서 사회자에게 강하게 항의를 하기도 한다. 성인이 되어서 구구단도 못 외우는 것을 방송 소재로 삼아서 아예 특집을 만들기도 한다. 아마 한국이었다면 그 다음 날부터 방송 출연이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다.
한국에서는 서울대를 나왔다던가, 미국의 유명 대학을 졸업했다는 것이 연예인으로서 활동하는데 큰 이익을 준다. 한국인 사회에서 공부를 못한다는 것은 곧 큰 죄를 짓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반대로 공부를 잘했다는 것은 그의 인격과 하는 일에 관계 없이 큰 우대를 받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서울대를 졸업한 배우 k양이라던가, 미국의 명문대 졸업을 두고 큰 사회적 논란이 일기도 했던 t군처럼 말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연예활동을 하는데 이렇다할 도움을 받지는 못한다. 사람들도 '도쿄대 출신 배우'라고 해서 특별히 호감을 가지거나 하진 않는다. 적어도 일본에서는 공부를 잘한 것과 연예인으로서 대중에게 얻는 호감도는 비례하지 않는다.
오히려 도쿄대 공대를 졸업한 배우 '키쿠가와 레이'가 기획사의 전면 백업에도 불구하고 잘 안 팔리자 언제부터인가 캐릭터를 보케 캐릭터로 전환해 방송에서 온갖 바보짓을 선보이고 있을 지경이다.
결국 일본에서는 집단 내에서 한 명밖에 없는 1등, 혹은 몇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1위 그룹을 캐릭터로 하는 것보다는 대다수가 소속되어 있는 1등이 되지 못하는 그룹의 캐릭터를 갖는 것이 더 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 같다.
akb48이 잘 팔리는 이유도 사실은 그런데 있다. 반에서 10번째 정도로 예쁜 애들만 모아 놓은 집단이라는 것이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의 설명이니 말이다.
글 | 김상하(프리 라이터)
▲ 바보 캐릭터로 인기가 높은 수잔느 ©jpnews/코우다 타쿠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