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칼럼을 통해서 올해 남북 관계에 대해
"대화에 의한 긴장완화 무드가 조성될 것"이라 전망한 바 있다. 예상대로 남북 고위급 군사 회담을 위한 실무 회담이 애초 11일에서 3일 앞당겨진 8일에 열린다. 한국 측이 몸 달은 북한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형태다.
북한은 원래 군사 회담 자체를 2월 초순에 열기를 희망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무 회담이 1월 하순까지는 열렸어야 한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어쨌든 최대한 빨리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
북한이
"만나보면 안다"고 밝힌 것으로 미뤄보면, 이번 회담을 통해 한국이 원하는 '선물(천안함 침몰사건이나 연평도 포격사태의 책임 있는 조치)'을 주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한국과 만났다는 사실을 미국에 내세우기 위한 '알리바이 만들기'인지,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누구도 양국의 대결을 원하지 않는다. 대결로는 무엇도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화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국이 제시한 '2월 11일'은 늦은 감도 없지 않지만, 북한의 '1월 21일' 회담과 10일 이내의 예비회담 제안은 너무 성급했다.
북한은 왜 이렇게 서두르는 것일까? 당연히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노동 신문은 1일자로
"대화와 협상만이 민족 운명 개척의 출구가 된다는 사실은,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 통일과 평화 번영의 길을 걸어온 6.15통일 시대(김대중 정권 시대)의 귀중한 경험이며, 대결의 악순환 속에서 파탄과 위기를 거듭해온 과거 3년간 남북 관계가 증명하고 있다"는 기사를 실어 한국에 대화를 요청한 이유를 설명했다.
북한이 아무리 '우리 민족끼리'의 단결과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해도, 2개월 전 연평도를 포격 당해 희생자를 낸 한국 처지에서 보면 '사탕발림', '입바른 소리'에 불과하다. 한국이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어떤 의미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남북 대화가 북미 간 연결 창구인 6자 회담의 필수 조건이 된 이상, 당국자 회담이든, 군사 회담이든, 실무 회담이든지 간에 남북 대화가 시작되지 않으면, 북한이 요구하는 북미 교섭과 6자 회담, 유엔의 제재 완화도 불가능하다. 그것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북한 스스로 통감하고 있을 것이다.
워싱턴에서 열린 1월 19일 미중 정상회담 이후, 중국과 북한 간에는 의사소통의 장소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그런 만큼 설날 연휴 이후 양국 고관의 상호 방문이 점쳐지고 있다.
생각해 보면, 작년 2월 8일에도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대회 연락부장이 북한을 방문했고, 10일에는 김계관 외무성 제1차관(당시)이 중국을 방문한 바 있다. 북한은 미국에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중국 고관이 북한을 방문할 때까지 남북 간 실무자 협의를 끝내고 싶어하는 것일 수도 있다.
북한의 본심은 남북 실무자 회담을 거쳐 한국과의 관계를 완화한 후 미국과 교섭에 들어가 6자 회담을 열고 싶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달에는 10일 북한의 핵보유 선언일(6주년), 19일 남북 기본 합의서 발효일(19주년) 등 한미 양국을 상대로 자신들의 입장을 주지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있다.
혹은, 북한 내 식량 수급 사정이 나빠지고 있는 것이 남북 회담을 서두르는 원인일 수도 있다.
국제식량기구(fao)나 세계식량계획(wfp)의 발표에 따르면, 북한의 식량 부족은 심각한 상황이다. 게다가 이번 달 16일은 김정일 총서기의 69세 생일이다. 김정일 정권은 자국민이 굶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생일을 맞이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올해 김 총서기의 생일을 후계자로 임명된 둘째 아들 정은이 지휘한다는 정보도 있다. 두 명의 형을 제치고 후계자로 지명된 정은으로서는 국민에게 식량을 배급해 부친의 생일을 성대하게 축하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사용의 비축미까지 사용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외신에 따르면, 북한은 이미 뉴욕의 유엔 채널을 통해 미국에 식량 지원을 타진한 것 같다. 부시 정권이 2008년 시작한 50만톤 규모의 식량 지원 중 33만 톤이 2009년 9월 부로 멈춰 있어 재개해 주기를 원하는 것 같다. 자기들 입장만을 견지하면서도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건 어떻게 봐도 좋게 보이지 않는다.
최근의 튀니지, 이집트 사태를 예로 들 것도 없이, 장기 독재 정권에 제일 무서운 것은 민심의 동향이다. 북한의 '적자 조업'도 언젠가는 한계에 다다를 것이며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며, 역사의 교훈이다.
변진일(코리아리포트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