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신용 등급 기관인 스탠다드 앤 푸어스(s&p)가 27일,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하향조정했다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됐다. s&p는, 일본 내에서 중기적으로 대규모적 재정 재건책이 실시되지 않는 한 2020년이 되기 전에 기초적 재정수지의 균형을 달성할 수 없다고 예측했으며, 일본 정부가 작년에 결정해 재정운영 전략으로 내놓은 '2020년까지의 흑자화한다'는 계획은 달성할 수 없다고 자체 판단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사실을 보도하며 분석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일부 한국 언론들이 정치적 목적 때문에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 일, 복지 포퓰리즘이 추락 불렀다 [동아] 한국도 재정적자 증가세… ‘일본의 굴욕’ 강건너 불 아니다
[조선] 재정위기로 '不信任'받은 일본 정치, 우리는 어떤가
[중앙] 나랏빚 1000조엔 시대 … “일본은 폭발 기다리는 시한폭탄”...신용평가사들이 일본과 대만의 재정 악화를 이유로 신용등급을 강등한 것은 국내 정치권의 복지 논쟁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도한 복지 확대는 재정부담을 가중시켜 신용등급 평가에 악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빚더미에 앉은 건 장기 불황의 여파지만, 자민당의 재정 관리 실패에다 지지난해 집권한 민주당 정권의 ‘퍼주기 복지’까지 가세한 탓도 크다는 분석이다. [중앙일보]
특히, 상기 언론 보도들은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일본 국가신용등급 하락은 갑자기 튀어나온 이야기가 아니라, 잃어버린 10년의 연속선상에 위치한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동안 경제를 부활시키기 위해 다양한 경기부양정책을 실행했지만, 그 주류가 쓸모없는 건설공사였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일본 정부는 1992년부터 2000년사이 '경기부양 정책'의 명목으로 9차례에 걸쳐 124조엔을 공공사업에 투입했다.
▲ 도표1 ©삼성경제연구소 '재정적자 팽창과 일본경제의 미래' - 2008.9.23 | |
지방에 각종 공항과 도로, 다리 등을 건설하는 프로젝트가 기획됐고, 경기부양을 위해 타당성이 결여돼도 허가가 떨어졌다. 그 뒤에는 일본 건설족들의 영향력이 한몫하고 있었다. 1960~70년대를 거쳐 뿌리내린 일본 건설족들은 80년대 부동산 붕괴 이후 일감이 사라진 상황에서 토목건설공사 발주를 위해 열심히 로비했던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008년 내놓은 보고서 ‘재정적자 팽창과 일본경제의 미래’를 보면
“일본경제의 조락에는 고령화라는 인구사회학적 요인 외에도 재정정책 실패라는 정책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버블 붕괴 이후 장기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일본정부는 경기부양 목적의 공공사업에 124조엔을 투입하였고, 소득세/법인세 등에 대해 44조엔에 달하는 감세도 실시하였다. 여기에 고령화로 인한 사회보장 지출은 1990년 이후 15년간 2배 가량 증가하였다. 이러한 지출확대와 감세는 곧 재정악화와 국가채무 누적으로 연결되었다”라고 적고 있다.
경기부양을 위해 쓸데없는 건설공사를 벌이고 기업에게 법인세, 사업세를 감면해주다가 망했다는 얘기다. 8년동안 경기부양에 124조엔을 쓰고, 감세 정책에 44조엔을 썼다. 사회보장비 지출은 14조에서 30조엔으로 늘어났지만, 이는 복지에 퍼줘서 증가한 게 아니라, 이전과 유사하게 지급해도 60세 이상 인구가 늘어났기 때문에 전체액수는 증가했다.
그런데 지금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한국 보수언론은 144조엔짜리 공공사업정책 실패라는 주된 요인을 삭제하고, 1/10 수준에 불과한 16조엔 복지비 증가를 일본이 망한 이유로 보도하고 있다. 왜 이런 보도를 할까? 상기 언론들이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적인 부동산 버블, 그리고 버블이 멈추자 국가가 경기진흥을 위해 필요하다고 발주한 쓸모없는 대규모 토목건설공사… 우리가 지난 7년동안 실행해온 정책이다. 그런데 4대강 공사를 지지하고 부동산 경기 부양을 지지하는 언론사들로서는, 이 정책이
'나라를 망친다'고 사실 그대로 밝힐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뻔뻔하게도 국민들에게 준
'복지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거짓말은 간단한 그래프 한 장으로 탄로난다.
▲ 도표2 ©삼성경제연구소 '재정적자 팽창과 일본경제의 미래' - 2008.9.23 | |
일본은 민주당이 집권한지 1년 반 정도 됐다. 그래프들을 보면, 일본의 재정적자는 20년 전부터 이미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걱정해야 될 것은 이런 일부 언론의 거짓말 속에서 우리가 일본의 엉터리 정책을 따라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거품 붕괴, 그리고 경제가 가라앉자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대규모 건설공사 발주. 감세정책... 어디서 많이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시행 중인 4대강 공사. 동남권 신공항 건설, 경기북부 경전철 공사, 강원도에 동계 올림픽 시설 건설, 법인세 감면, 고소득자 소득세 감면 정책… 등 우리가 바로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건설족과 유착하여 이뤄지는 엉터리 공사, 대기업, 부자를 위한 감세정책을 중지하고, 그 돈으로 다가올 위험에 대처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급격한 노령화 사회에 접어들고 있으며, 15년 후에는 베이비 붐 세대 은퇴가 시작된다. 현 상태로 10년만 가면 일본이 인구고령화로 몰락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 간다는 얘기다.
우리 언론의 일본 경제에 대한 거짓말은 하루 이틀 된 것이 아니다.
2006년 3월,
'일본 국가 부채 800조엔' 이라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같은 해 우리나라 인터넷에서는
'800조엔 부채때문에 일본이 망할 것이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언론은 당시에 이 기사에 지면을 작게 활용했다. 또
'일본 전후 최장 경기 호조세 지속'이라는 기사를 커버기사로 내보냈다.
'일본이 58개월째 경기 호황기 (리스트라 경기)를 겪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내면서,
'노무현 정부는 일본을 배우라'는 사설까지 내보냈다.
조선일보는
"공공부문을 민영화하고 비정규직을 생산하는 고이즈미 정부의 개혁이 일본을 사회를 살리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또
'기업에게는 천사, 국민에게는 혹독한 사령탑'으로 불린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蔵) 당시 경제장관이 일본을 살렸다고 보도했다.
[조선] 일본인 1명당 빚 637만엔, 사상 최대 (2006년 3월) [조선] 부활한 일본 “최장 호경기” 곧 선언 (2006년 11월) [매경] 日 전후 최장 '호경기' 기록 눈앞그러나 당시의 경기 호조는 피상적인 거짓에 불과했다. 국가부채 800조엔을 쌓아놓고도 최장기 경기호황이라는 보도자료를 자민당 정부가 내보낸 것이다.
당시 일본 정부의 재정구조는 이미 망가져 있었다. 2005년 일본 중앙정부 세입은 48조엔, 세출은 82조엔이다.
돈이 모자라니까 국채를 34조엔 발행해 앞뒤를 맞췄다. 그렇게 낸 빚은 어디에 썼을까? 빚을 내서 빚을 갚는 돌려막기에 썼다. 세출의 1/4이 국채 이자를 갚는 것이었다.
2005년 일본 중앙정부 세입 내역
총 규모-------------82조 1829억엔(100.0%)
국채발행 수입----34조 3900억엔(41.8%)
소득세 수입-------13조 1640억엔(16.0%)
법인세 수입-------11조 5130억엔(14.0%)
소비세 수입-------10조 1640억엔(12.4%)
기타조세 수입----12조 9519억엔(15.8%)
2005년 일본 중앙정부 세출 내역
총 규모-------------82조 1829억엔(100.0%)
국채비--------------18조 4422억엔(22.4%)
사회보장비--------20조 3808억엔(24.8%)
지방교부금--------14조 5709억엔(17.7%)
공공사업비---------7조 5310억엔(9.2%)
공공교육비---------5조 7235억엔(7.0%)
방위비---------------4조 8564억엔(5.9%)
기타-----------------10조 6781억엔(13.0%)
국가 세입의 70~80%에 해당하는 돈을 매년 국채로 추가 발행해 이자 갚는 데 쓰고, 나머지는 신규 사업 벌이는 데 썼다. 원금 상환은 엄두도 못냈다. 국가재정구조가 이미 망가져 있었기 때문이다. 2011년 일본정부는 세입 40조엔, 국채를 44조엔 발행하여 예산을 짰다. 100%를 넘어 이미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에 이르렀다.
아래의 오른쪽 그래프를 보면, 1993년을 전후해 공채의존도가 크게 뛰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일본 경제가 빚에 의존하며 망가지기 시작한 지점이다.
▲ 도표3 ©삼성경제연구소 '재정적자 팽창과 일본경제의 미래' - 2008.9.23 | |
게다가 일본은 재정적자 문제를 잘못된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다.
2000년대 집권한 고이즈미 정부는, 일본 우정성을 분할 매각해 국채의 일부를 갚으려고 했고, 현 민주당 정부도 공항, 철도, 항만 등을 민간에 넘기는 것으로 빚을 갚으려 하고 있다.국가 기간시설의 운영권을 민간에 팔아 그 돈으로 빚을 갚겠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위험한 정책이다. 철도나 항만, 공항 등을 민영화하면, 당연히 민간 사업자는 수익률 확보를 위해 지금보다 이용요금을 올릴 것이고, 그러면 사람과 물류의 소통이 위축되고, 이는 경제활동의 위축으로 이어진다.
인구고령화로 경제활기가 줄어들고 있는 일본에서, 경제활동을 더 위축시키는 것은 자충수가 될 것이다. 당장의 카드 돌려막기를 위해 기간시설을 팔아치우는 행위는 앞으로 다가올 몰락을 더 심화시킬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악수마저도 우리 정부는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4대강 사업을 벌이면서, 인천공항 민영화를 추진하고, 상수도 사업권마저 민영화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팔고 싶다면 돈되는 인천공항 대신, 양양, 원주, 여수, 목포, 포항, 울산, 청주 등 우리나라 15개 공항 중 10개나 존재하는 부실 공항들을 팔아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대한민국 언론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언론이 썩었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특정 업자들이나 정당과 유착해 거짓을 퍼트리지 말고, 사실대로 보도해야 한다. 일본 경제의 몰락은 경기부양을 위해 실시한 대규모 공공 건설사업 실패 때문이다. 복지정책 실패 탓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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