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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과 함께 느낀 해상왕 장보고의 힘!
[교토대생의 교토이야기(9)] 자코 아저씨와 함께한 천일수행
 
김태범(교토대학 2학년
독실한 종교 신자들만 성지순례를 하는 것은 아니다.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의 골수 팬들이 작품의 무대가 된 장소를 방문해 다시 한 번 감동에 젖는 성지순례도 있다. 후자도 충분히 거룩하고도 거룩할지니, 속되다고 무시하지 말 지어다.
 
한 달 전, 자코에서 성지순례를 떠났다. 여느 날처럼 자코에서 한국 드라마로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내가 “교토 히에이산(比叡山)의 엔랴쿠지(延暦寺)에 장보고 기념비가 있다고 하더라” 하는 말을 꺼낸 것이 발단이었다.
 
엔랴쿠지라 하면 절과 신사가 넘치도록 많은 교토에서도 유서 깊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절이다. 엔랴쿠지는 788년에 창건된 일본 천태종의 총본산이며 키요미즈데라 등과 함께 고도 교토의 문화재로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해발 848미터인 히에이산을 경내 전체로 하고 있어 엔랴쿠지라는 사찰 이름보다 히에이잔(比叡山), 에이잔(叡山)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엔랴쿠지에 장보고 기념비가 있는 이유는 엔랴쿠지의 승려인 자각대사 엔닌(円仁, 794~896)과의 인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열 네 살의 나이로 출가하여 엔랴쿠지에 들어간 엔닌은 838년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다. 그로부터 9년간의 당나라 유학경험을 적은 책이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다.
 
당시 당의 수도 장안은 인구 100만 이상의 국제도시이자 무역도시였는데, 그 안에서도 실세를 쥐고 있던 외국인은 단연 신라인들이었다. 중국-한국-일본으로 이어지는 바다를 장악한 신라인들은 중국의 바다와 운하 연안의 선박들을 대부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일본에서 파견된 견당사(遣唐使)조차도 신라인 통역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었다.
 
일본 사절단이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신라인들이 바다를 꽉 쥐고 있는데, 일본 유학승이 혼자 힘으로 당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 때 구원의 손길이 다가온다. 해상왕 장보고였다.
 
엔닌의 당 유학은 장보고 선단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발부터 엔닌은 일본 사절에 끼어 장보고 선단을 이용해 당에 들어갔다. 산동에 도착 해서도 장보고 휘하의 상인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지냈고, 일본에 돌아오는 배 편 역시 신라 선단에 올라 큐슈에 도착하게 된다. 엔닌이 후에 장보고에게 보낸 편지엔 유학시절 받은 도움에 대해 절절히 감사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고 한다.
 
장보고와 엔닌의 인연에 대해서는 자코 아저씨, 아주머니도 역시 알고 계셨다. 그 출발은 역시 드라마 해신(2004)이었다. 일본 tv를 통해 드라마를 전부 보시고 지난 회에도 소개된 것처럼 한국 사극 잡지 등을 통해 복습까지 마치셔서 장보고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신데다가, 엔닌 역시 일본에서 워낙 유명한 승려이기에 알고 계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히에이산 역시 가깝고 등산하기에도 좋아 아저씨, 아주머니도 꽤나 오르셨지만 “장보고 기념비”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하셨다.
 
“장보고 기념비가 있다고 하더라”는 나의 제보에 올 봄부터 “언제 한 번 히에이산 올라가볼까?” 하시며 순례를 제안하시던 자코 아저씨와 아주머니께서는, 한 여름의 사납던 더위가 한 풀 꺾이자 계획을 착착 진행시키셨다. “언제 한 번~”이나 “나중에~”라는 말은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고 말로만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아저씨, 아주머니가 이렇게 의욕적으로 나오시다니. 역시 장보고 파워는 세다.
 
히에이산 등반은 덥지도 춥지도 않아 나들이 가기 좋은 11월로 정해졌다. 그쯤이면 단풍도 울긋불긋 해져 있을 테니 단풍구경도 할 겸 올라가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었다. 처음엔 서너 명 정도 모아 올라가기로 했던 것이 자코 사람들 모두 단풍놀이를 원했던 것인지, 여럿이 합류하게 되었다. 가족단위의 멤버들을 포함해 열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였다.
 
하지만 자코 아저씨, 아주머니를 빼고 장보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장보고 얘기를 꺼낸다면 일반인들에겐 되려 “장보고가 누구에요?” 하고 되물음이 돌아올 것을 아실 자코 아저씨도 단풍놀이와 나들이라고만 이야기 하셨을 테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지만 나만 순조롭지 않았다. 산에 오르기로 한 날이 과제 제출을 며칠 앞둔 지옥의 일주일에 끼어 있었다. 건축과에서 과제가 하나 끝날 때 마다 수명이 줄어드는 것이 느껴진다는 농담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하지만 성지순례 발족 멤버인 내가 안 갈순 없었다. 그래서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산에 오르기 전날, 밤샘의 피로가 남은 상태로 자코에 들렀다. 아저씨, 아주머니께서 지도까지 꺼내서 보여주시며 어떤 길로 오르는지, 볼만한 곳 등을 알려주셔서 어느새 나도 소풍 전 날 들뜬 마음이 되었다. 하지만 피곤한 눈으로 멍하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모습은 가릴 수 없었는지 ‘산에 오르려면 아침을 잘 먹어야 한다’하시며 샌드위치까지 싸 주셨다. 그 샌드위치는 다시 제도실로 향해 과제를 계속 하다가 결국 그날 밤참으로 다 먹어버렸지만.
 
다음날, 잠시 눈을 붙이고 집합 장소에 갔다. 자코 아저씨가 나를 보자마자 인사 대신 던지신 말은, “태범이 얼굴 색 장난이 아니네! (웃음)”였다. 주변 사람들도 “도중에 쓰러지는 거 아니야?” 하시며 인사를 건네셨다. 덕분에 오르는 내내 ‘몸 괜찮으시냐며 거의 환자 취급을 당해야 했다.
 
집합한 장소인 세키잔선원(赤山禅院)에서 히에이산 정상까지 오른 길은 키라라자카(きらら坂)라는 이름이 붙은 오래된 길이다. 이 길은 히에이산의 천일회봉행(千日回峰行)의 수행자의 길도 알려져 있다
 
히에이산의 수행은 아주 엄격하다. 그 중 천일회봉으로도 불리는 이 수행이야말로 고행의 최고봉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말 그대로 히에이산의 여러 봉우리를 천일간 순례하는 천일회봉행은 일단 수행을 시작하면 도중에 포기할 수 없다. 병이 나든 날씨가 험하든 무조건 수행을 계속해야 하고 혹시 걸을 수 없게 된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수행을 마쳐야 하기에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임하는 수행이다. 그 때문에 수행자는 항상 허리춤에 할복용 단도를 차고 다닌다.
 
천일회봉행은 7년에 걸쳐 행해진다. 첫 3년간은 하루 30킬로미터씩 매년 100일간을 걷고, 그 후 2년간은 하루 30킬로미터씩 매년 200일간을 걷는다. 이렇게 700일을 채우면 9일간 먹지도 마시지도, 자지도 앉지도 않고 선 채로 불경을 외우는 수행에 들어간다. 6년째엔 지금까지의 행로에 더해 세키잔선원까지 왕복까지 하루 약 60킬로미터씩 100일을 또 걷는다. 7년째엔 교토 시내를 일주하고 다시 히에이산까지 돌아 올라오는 200일을 거쳐 수행이 마무리된다.
 
이렇게 7년간 걷는 거리는 약 40,000킬로미터에 달해 지구를 한 바퀴 돌 만큼의 거리라고 한다. 요즘 시대에 이런 수행을 아직 할까? 하는 의문을 품는 분들도 있을 텐데, 가장 최근인 2009년 9월, 천일회봉행을 마친 스님께서 여러 매체에 소개되기도 했다.
 
등산로에 들어서서 처음 몇 십분 간은 정말 정신없이 걸어 올라갔다. 오죽하면 내가 아저씨께 “저 천일수행 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잠 안자고 걷고 있으니.” 하는 말을 했을까. 게다가 희끄무리한 구름으로 가득한 하늘 탓에 등산로도 어딘가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굽어진 곳 하나 없이 일자로 쭉쭉 뻗은 나무들이 가득한 숲은 더욱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단풍은 색이 곱게 잘 들었지만 날씨 탓에 햇살을 잘 받지 못해 칙칙한 인상마저 풍겼다.
 
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날씨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내 피곤한 몸 상태도 회복되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몸은 조금씩 땀으로 젖어갔지만 반대로 머리는 더욱 맑아졌다. 또한 경치가 좋은 산등성이에서 교토를 내려다보며 잠시 쉬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교토는 건물 높이 제한이 엄격해 다들 고만고만한 건물들만 있어서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은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 히에이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교토 시내의 모습. 머리 위로는 케이블카의 로프가 내려간다.     ©김태범

오르는 동안에도 자코 아저씨께서는 다른 분들에게 장보고 이야기를 꺼내시는 것을 잊지 않으셨다. “한국 사극으로도 다뤄졌던 장보고 라는 사람이 있는데~” 하시며 엔닌부터 장보고 기념비까지 간략하게 설명을 하셨다. 그러자 다른 분들은 장보고 이야기보다 장보고 기념비를 찾아 히에이산을 오르는 자코 아저씨에 더 흥미가 있는 듯 했다.
 
그렇게 걷고 쉬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올라 엔랴쿠지 경내까지 닿았다. 금강산도, 장보고 기념비도 식후경이니 우선 도시락이 펼쳐졌다. 모두들 싸온 반찬을 조금씩 나눠주시기도 하고 과자도 펼쳐놓아 꽤 거나한 한 상이 차려졌다. 사람들이 이제 슬슬 내려가도 되겠다며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든든하게 먹고 나서 본격적으로 엔랴쿠지를 돌아 보았다.

▲ 엔랴쿠지의 경내에 도착해서. 하늘도 보란 듯이 맑게 개어있었고 덕분에 단풍도 한층 화사함을 더했다.     ©김태범
 
엔랴쿠지는 토도(東塔), 사이토(西塔), 요카와(横川)의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구역 별로 수 킬로미터씩 떨어져 엔랴쿠지의 전체 영역을 이룬다. 문제는 장보고 기념비가 어디에 세워져 있는지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았고 나도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했던 것이다. 다른 분들이야 전부 엔랴쿠지에 올라와 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기 때문에 우선 천천히 돌면서 기념비를 찾기로 했다.
 
우선 엔랴쿠지를 대표하는 건물인 곤폰츄도(根本中堂)를 둘러보았다. 꽤나 한기가 느껴지는 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신발을 벗고 맨발로 긴 회랑을 통과해 본당에 닿는 구조였다. 안마당에도 본당 안에도 수많은 신자들만 있을 뿐 장보고 기념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곤폰츄도의 맞은편으로 무서울 정도로 높은 경사의 돌계단이 놓여있는데, 그 단을 올라가면 엔랴쿠지의 산문(山門)으로 쓰였던 몬주로(文殊楼)가 있다. 곤폰츄도의 거대하고 가파른 지붕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을 만큼 높은 단 위에 있어 곤폰츄도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몬주로의 건너편, 굵은 나무들 사이로 커다란 비석이 하나 서 있었다. 거북이 모양의 기단이 으리으리한 비석이었다.
 
자코 아저씨가 “오, 저기다!” 하시면서 사람들을 이끄셨다. 생각했던 것 보다 큰 규모의 비석에 가장 많이 놀라워하시며 비석 근처에 쓰인 안내문을 열심히 읽기 시작하셨다. 다른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안내문을 따라 읽으며 아저씨께 설명을 듣기도 했다.
 
높이 4미터에 달하는 이 비석은 엔닌 탄생 1200주년을 맞아 엔랴쿠지의 요청을 받은 완도군이 기증했다. 앞면은 청해진대사 장보고 비(淸海鎭大使 張保皐 碑)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엔 한글로 장보고와 엔닌의 관계가 적혀있었다. 아저씨는 완도군이라고 써있는 한글 설명도 한 눈에 알아차리시고 다른 분들께 장보고가 한국에서 활약했던 지역이라고 설명까지 곁들이셨다.
 
▲ 웅장한 장보고 기념비의 모습. 이 비는 전남 영암군 도갑사의 도선국사수미왕사비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     ©김태범

그렇게 마침내 장보고 기념비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비석을 마주한 나는 사실 별 감흥이 없었다. 장보고도, 1200년의 시간도 내게는 실감이 나지 않는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더 마음에 와 닿은 것은 자코 아저씨, 아주머니의 열정이었다. 나도 나이가 들어서 저렇게 한 가지 일에 푹 빠져서 지낼 수 있을까? 보는 사람들마저 기운이 나게 하는 그런 마음을 오랫동안 가질 수 있을까?
 
돌아와서 이 글을 쓰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 “작지만 확실한 행복(小さいけれど確かな幸せ)”이 떠올랐다. 대단한 것을 바라지는 않지만, 주변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시작한다면 언제나 호기심 왕성한 소년, 소녀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역시 오늘도 자코에서 또 한 가지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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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12/18 [16:21]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긍금해요? 미나 10/12/19 [11:27]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코아저씨가 너무 긍금해요,
한번 만나뵙고 싶어요~ 수정 삭제
우와. 마이어 10/12/20 [02:35]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왔네요.
기사 잘 읽고있습니다. ^^
과제뒤에...장보고기념비도 보고오시고 대단!!
자코아저씨는 더 대단하신것같아요.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
수정 삭제
기사 자체로의 내용 보다는... 좋은기사인가? 10/12/20 [03:14]
그냥 이런사람도 있다라는 식의 기사인가요?
"교토대생의 교토이야기" 카테고리에 전혀 맞지 않는거 같습니다.
그냥 자코라는 사람의 개인 취재 라고 보는게...
왜 이런식의 기사를 수정 삭제
소소한 일상에서 재밌는 일을 소개하는. 좋은기사인듯! 10/12/20 [12:58]
이런 글이 왠지 정감가고 좋네요~
작은 일이라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자기가 만족할 수 있는 정도는 다른 거니깐요ㅋ

설계마감에 등산까지 힘들었겠어요 태범군. 수고하셨습니다~ 수정 삭제
유학생활을 하면서 겪는 여러 이야기를 재미있게 쓰셨네요. 좋은기사네요! 10/12/22 [12:30]
"교토대생의 교토이야기"란 제목에 어느정도 잘 맞아떨어지는 글이 많은데요. 만약 전문 기자의 시각에서 쓴 심도있는 기사를 기대했다면 실망스러우실 수도 있겠죠. 유학간지 얼마 안된 학생의 시각으로, 주변에서 알게된 일본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낯설기만 했던 일본 시각에 익숙해지고, 더욱 적극적이 되어가는 모습이 글에 잘 드러나있어서 좋습니다. 교토대 까페 이야기나 일본 대학생들의 히치하이킹 스토리, 까페 자코 등등, 일반 신문이나 잡지에서 취재하는 일본 경제나 흔히 일본사람은 이렇다, 저렇다 하고 늘어놓는 단편적 정보보다 더 입체적이고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네요. 김태범 씨, 멋진 학교 생활하세요. 저도 미국에서 유학생활 할 때, 외국인이라서 더 힘들었던 점이 많았는데, 어떻게든 해내고 나니 참 뿌듯하고, 나중에 다 도움이 되더라구요. 혹시 기회 되시면, 일본 젊은이들은 취업이나, 경제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일본 젊은이들은 어떤 삶을 꿈꾸는지, 어떤 식으로 졸업 후를 대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글을 써주시겠어요? 태범 씨 글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팬이에요~^^ 수정 삭제
교토 가보고 싶어요.. 가보고싶어요 10/12/27 [06:28]
글 뒤에 등장하게될 장보고 기념비를 보여주는 글의 과정이 좋아요.
완도군이 기증했다는것도 새롭게 알게되었고..일본의 남다른 전통보전 노력도 왠지 모르게 느껴집니다..
쿄토 유학생활중의 주변경험을 잘쓰시는것 같아여..사람과 사람이 부딪끼는것 그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생각해요.. 주제범위 카테고리니 이상한소리는 신경쓰지마세요 (간혹 저런 댓글보면 저런분들 무섭습니다;;) 유학생활 잘하시고 다음글도 기대합니다~ 수정 삭제
거기를 가서.. 멍청이같으니 11/01/24 [02:59]
장보고를 뒤로 한체 일하는 사람들과의 여흥만 남았음? ㅄ 이네 ㅄ ㅄ ㅄ 쯧쯧쯧 비행기 기름값이 아깝다...ㅉㅉㅉ 수정 삭제
글을 쓴다는건 마음과의 싸움이죠 양민오 12/08/28 [14:05]
응원을 받으면 힘이나지만, 지적을 받으면 쓰기가 싫어지죠. 안해도 되는걸갖고 왜 욕을 먹어야하지. 유학생활도 힘든데, 안식처로 생각되던 곳이 가시방석으로 변해버리면 모두 뒤로하고 싶어집니다. 공감합니다. 잠시 자리를 떠나세요. 시간이 지나면 다시 회귀하는게 사람의 마음이더군요. 그리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성숙해지는 과정이죠. 글 재밌게 보았습니다. 일본엔 교회가 왜 적나요? 한국은 노래방만큼 많은데 말이죠 수정 삭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건지 진도 17/10/20 [04:53]
글이 뭐랄까 조루같네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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