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내 칼럼의 의견으로서 어느분인가 '정당성이 있는 것은 대한민국이다'라고 써주셨다.
한국인이라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고, 또 북한사람에게 물어보면 '우리쪽이야말로 정당성이 있다'라고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옆나라인 우리들 일본인은 '명칭문제'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전화번호부다. 전화번호부는 개인명의 검색은 물론이고, 각업종의 안내도 있다.
그 중에는 각종음식점도 있고, 분류로서 '한국음식점'과 '조선요리점'은 명확하게 구분되어서 존재한다. 비록 보통 고기집이라고 하더라도, 가게주인이 어느 쪽의 표기를 고를지는 존중받아야하는 것이다.
일본으로서는 어느쪽에 대해서도 공평, 중립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공적인 곳에서는 엄격히 그것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한반도 전역을 한마디로 표현할때는 정말로 고민된다.
최근 한류 이후, 일본에서는 완연하게 '한국'의 존재감이 커졌다. 한류에 의해 급작스럽게 한국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주로 한국에 관심이 집중돼, 북한에 대한 의식은 옅다. 북한에 대한 보도라고 하면 '핵무기','후계자문제','탈북자나 납치' 등 친숙해질 정보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어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넓은 시야로 조선반도 전체를 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한국'이나 '북조선'뿐 아니라, 일부러 '조선'이라고 하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대한민국 건국은 1948년이니까 '한국' 역사는 51년정도다. 현재 한국 문화도 분석이전, 조선왕조 500년간 숙성된 문화가 이어져온 것일 것이다. 그것을 '한국문화'라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뭔가 빠진 느낌이 있어서, 그것 역시 '조선문화'라고 하는 편이 어울린다고 느낀다.
예를 들면 '조선의 그릇' '조선의 미' '조선민족의 정신성' 처럼, 조선왕조로부터 면면히 이어진 문물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도 '조선'이라는 표현을 일부러 쓰고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2009 한국문화원 개원 기념 전통문화 공연 중 ©jpnews | |
며칠 전에도 어떤 프로그램에서 조선반도 문제 전문 평론가분과 같이한 자리에서 '일본인은 좀더 '조선'이라는 말을 써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다.정말로 동감하고, 내 자신은 경우에 따라서 '조선'이라는 말을 일부러 쓴 적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일반적인 일본인에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극히 일반적인 일본인은 '조선'이라고 말에 알레르기가 있다. 일본식민지시대, 일본인은 조선인을 '조센징'이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당시 일본에서 그것은 민족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모멸어'였다.
물론 '조센징'이라고 하는 말로 계속 모멸당한 당사자인 한국, 조선의 사람들이 갖는 '일본인 알레르기' 등에 비하면 비교가 안되고,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커다란 '마음의 상처'이다.
또 현재에도 재일교포 차별이 일본속에는 뿌리깊게 남아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결코 과거 문제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일본인의 마음 속에는 '조센'이라고 하는 말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는 것이다.그저 하나의 문화나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오래된 모멸어의 편린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조센'이라고 하는 말에는 적지 않은 저항감이 있고, '쓰기 어렵다'고 느낀다.
또, 좀 된 한국여행 가이드북에는 매너로서 '한국에서는 식민지시대를 생각하게 하는 '조센'이라고 하는 말은 삼가도록' 일부러 주의를 주고 있었다.
좀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일본인이 한국인을 가리켜 '한국인(일본어발음:캉코쿠징,韓国人)'이라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된 것도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 전까지는 '한국 분' '한국사람'이라는 표현이 많이 쓰였다.
직접 '캉코쿠징'이라고 말하는 방법은 어딘가 '조선인' 즉 '조센징'이라고 불러버리는 것과 같다는 죄악감이 일본인 마음속에 있어서, 그것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키는 의미로 이러한 표현이 많이 쓰였다.
이것은 일본인이 '위험한 것'을 대할 때 갖는 '지나친 조심스러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전에 '저 사람은 캉코쿠징이래'라는 대사는, 일단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이듯 나누던 대화였다. 마치 한국인이라는 것이 '죄'라도 된다는 듯이.
그러나 요즘은, 뉴커머에 대해서도, 자이니치(재일교포)에 대해서도 거리낌없이 '저 사람은 캉코쿠징이래'라는 회화를 주고받게 되었다. 그런 장면을 보면 나는 묘하게 마음이 놓인다. 그런 사람들이 쓰는 '캉코쿠징'이라는 말이 결코 모멸어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겨우 한국이 하나의 외국으로서 자연스럽게 인지되게 되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번역 김현근)
韓国か朝鮮か? 朝鮮か「チョーセン」か?
先日、私のコラムへのご意見として、どなたかが「正当性があるのは大韓民国だ」と書いていらした。韓国人にいわせればそれは当然のことだろうし、また北朝鮮の人に尋ねれば同じように「我が方にこそ理がある」と言うことだろう。だからこそ隣国である私たち日本人は「名称問題」に神経質にならざるを得ないのだ。
例えば電話帳だ。
電話帳は個人名の検索はもとより、各業種の案内もある。その中には各種飲食店もあり、分類として「韓国料理店」と「朝鮮料理店」は明確に区分されて存在している。
たとえ普通の焼き肉屋であったとしても、店主がどちらの表記を選ぶかが尊重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だ。
日本の立場としては、どちらに対しても公平、中立でなければならない。特に公的なところでは厳格にそれが求められている。
だからこそ、韓半島全域を一言で表現するときは、誠に悩ましいのだ。
最近の韓流以降、日本ではすっかり「韓国」の存在感が大きくなった。韓流によってにわかに韓国に関心を持った人達は主に韓国に意識が集中していて、北朝鮮に対しての意識は薄い。
北朝鮮に対する報道といえば「核兵器や後継者問題、脱北者や拉致」など、親しめるような情報がないのだからやむを得ないことだろう。
しかし、もう少し広い視野で朝鮮半島全体を見ようという人達にとっては、「韓国」や「北朝鮮」だけではなく、あえて「朝鮮」という言葉を用いたい場合がある。
大韓民国の建国は1948年だから「韓国」の歴史は51年ほどだ。
現在の韓国の文化も分断以前、朝鮮王朝500年の間に熟成された文化が受け継がれてきたものの筈である。
それを「韓国文化」と言ったのでは、どうも片手落ちな感じがあって、そこはやっぱり「朝鮮文化」と言うほうがふさわしいと感じる。
たとえば「朝鮮の器」、「朝鮮の美」、「朝鮮民族の精神性」のように、朝鮮王朝から脈々と続く文物に敬意を表する意味でも「朝鮮」という表現を敢えて使いたいと思うのだ。
先日もある番組で朝鮮半島問題専門の評論家の方とご一緒したおり、「日本人はもっと『朝鮮』という言葉をつかうべきだと思う」とおっしゃった。
誠に同感であり、私自身は場合によって「朝鮮」という言葉を敢えて使うことがある。
しかし実際、一般の日本人にとって、これは容易なことではない。
ごく一般の日本人は「朝鮮」という言葉にアレルギーがある。
日本植民地時代、日本人は朝鮮人を「チョーセンジン」と呼んできた。
しかし当時の日本にあってそれは民族を指す言葉ではなく、「侮蔑語」であった。
勿論、「チョーセンジン」と言う言葉をもって侮蔑され続けた当の韓国・朝鮮の人達にとっては「日本人のアレルギー」など比べものにならない、忘れようにも忘れられない大きな「心の傷」である。
また、現在でも在日差別が日本のなかに根強くあることを考えると、これは決して過去の問題ではない。
だからこそ日本人の心の中には「朝鮮」という言葉に対するアレルギーがあるのだ。
単に一つの文化や地域を指すのではなく、どこかにいにしえの侮蔑語の片鱗を感じる人達には、「朝鮮」という言葉には少なからず抵抗感があり、「使いにくい」と感じる。
また、一昔前の韓国のガイドブックには、マナーとして「韓国では植民地時代を思わせる『朝鮮』という言葉は慎むように」とわざわざ注意してあった。
もっと極端なことを言えば日本人が韓国人を指して「韓国人」と平気で言えるようになったのも、ごく最近のことだ。
それまでは、「韓国の方」「韓国の人」というような表現が多く使われた。
直截に「韓国人」という言い方は、どこか「朝鮮人」つまり「チョーセンジン」と呼び捨てているのと同じだ、といった罪悪感が日本人の心のなかにあって、それを少しでも和らげる意味でこのような言い方が多用されてきた。
これは日本人の「危ないもの」に触れるときの「慇懃さ」だと言える。
以前は「あの人は韓国人なんだって」という台詞は、一段声をひそめて、コソコソと交わされる会話であった。
まるで韓国人であることが「罪」ででもあるかのように。
しかしこの頃は、ニューカマーに対しても、在日に対しても屈託なく「あの人は韓国人なんだって」と言った会話が交わされるようになった。
そんな場面を見ると、私は妙にホッとする。
その人達の使う「韓国人」という言葉が決して侮蔑語でないとわかるからだ。
そして、やっと韓国が一つの外国として、普通に認知されるようになったと感じられるから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