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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왜 교토축제 같은 게 없을까?
[교토대생의 교토이야기] 고도의 도읍지 시대별 교토 마츠리
 
김태범(교토대학 2학년
보름 전에 한국에서 친구가 찾아왔다. 고등학교 시절 3년 내내 기숙사에서 부대끼고 지내며 가족처럼 지낸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와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하며 평소에도 잘 빠지던 수업을 또 빼먹고 열심히 놀러 다녔다.

교토에서 유학중인 학생들이 유학 1,2년 차를 넘어가면서 공통적으로 습득하는 능력은 다름아닌 교토 가이드 능력이다. 가족, 친구, 친척들이 찾아오면 “그래도 교토까지 왔는데 금각사, 은각사는 보고 가야지” 하면서 몇 번 갔던 금각사에 또 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자연스레 금각사 가는 길도 익숙해지고 어깨 너머로 들은 설명이 몇 마디 기억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남들은 ‘교토에 살면 마음 내킬 때 은각사에 산책도 갈 수 있고 좋겠네’ 할 지도 모르지만, 손님들과 함께 어차피 몇 번이고 가야 하기에 일부러 ‘관광 명소’에 가는 일은 좀처럼 없다. 그렇지만 마지못해 길을 나서는 건 아니다. 누구든 찾아오면 그 날 만큼은 나도 관광객이 되어서 신나게 돌아다니고 즐기려고 한다.

친구가 도착한 날 저녁, 간단히 맥주를 한 잔씩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친구가 마츠리에 가 보고 싶다고 했다.

일본은 일 년 365일 전국 어디에선가 마츠리가 열리고 있대. 집에 가서 잘 찾아보면 교토가 아니더라도 가까운 곳에서 마츠리가 열릴 지 몰라.”

볼만한 마츠리가 딱히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에 “마츠리가 열릴 지 몰라 하지만 없으면 말고”하는 식으로 대충 대답했다. 집에 돌아와서 혹시나 하고 교토의 연간 행사를 찾아보았더니, 이게 웬걸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친구가 도착한 다음 날인 10월 22일은, 마츠리가 무려 두 개 그것도 교토 3대 마츠리 중 하나인 지다이 마츠리(時代祭り)와 교토의 3대 기제(奇祭)로 꼽히는 불 축제, 쿠라마 히 마츠리(鞍馬火祭り)가 열리는 날이었다. 친구에게 '너 날도 참 잘 골라서 왔다' 하며 두 마츠리에 대해 잠시 설명을 해 주면서는 내가 더 신나서 떠들고 있었다.

기온 마츠리(祇園祭), 아오이 마츠리(葵祭)와 함께 교토의 3대 마츠리로 꼽히는 지다이 마츠리는 1895년에 처음 시작되어 100년 남짓한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기온 마츠리와 아오이 마츠리는 둘 다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기에, 두 마츠리에 비교하면 아직 꼬마 축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토 3대 마츠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지다이 마츠리가 갖는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지다이 마츠리는 헤이안 진구(平安神宮)의 축제인데, 우선 헤이안 진구의 이야기부터 하는 편이 좋겠다.

1867년, 모든 권력이 에도 막부에서 메이지 천황에게 넘겨간 뒤, 1868년 에도는 도쿄 (東京)로 개칭되어 새로운 도읍으로 정해진다. 그런데 도쿄라는 이름이 재미있다. 도쿄는 동쪽에 있는 서 울이라는 뜻이니 이는 교토를 기준으로 하여 만들어 진 이름이 아닌가. 또한 794년, 교토에 헤이안쿄 (平安京)를 건립한 이후 약 천 년 간 일본의 도읍이었던 교토 사람들로서는 천 년 도읍이 하루아침에 일개 지방 도시로 전락하게 되었으니 자존심에 상처도 컸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교토에서는 1895년 천도 1100주년을 기념하여 천도 당시의 궁궐을 일부 복원 하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궁궐이 실제로 위치했던 곳은 이미 도심지로 변해, 결국은 당시 교토의 외곽이었던 오카자키(岡崎)에 실제 크기의 5/8 크기로 복원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교토 사람들은 궁궐을 짓는 것 만으로 분을 삭히지 못했는지, 궁궐에 교토 천도의 장본인인 간무천황 을 모시고 신사를 세운다. 이것이 헤이안 진구의 시작이다. 1940년에는 교토에서 생을 보낸 마지 막 천황인 고메이 천황을 합사하여, 헤이안 진구에는 도읍의 시작과 끝, 흥망성쇠를 모두 담게 되었다.

헤이안 진구는 그 시작부터 교토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기에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만들어 진 것이 없다. 성과 속의 영역을 분리하며 참배의 시작을 알려주는 도리(鳥居)는 무려 높이 24m에 달해, 올려다 보는 사람들을 압도한다. 헤이안 진구 주변을 감싸는 약 10,000평에 달하는 일본 정원인 헤이안진구신엔(平安神宮神苑) 역시, 당대 최고의 정원 설계사였던 오가와 지헤(小川治兵 衛)에 의해 20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조성되었다.

헤이안 진구의 정문인 응천문(應天門).

거기에 성대한 오프닝 이벤트가 빠질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창건 기념으로 마츠리가 계획되었는데, 헤이안쿄로 천도한 시대부터 동경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 까지의 시대행렬이 제안되었다. 지다이 마츠리(時代祭), 즉 말 그대로 시대 축제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지다이 마츠리는 약 1000년의 시간을 8개의 시대로 구분하여, 참가 인원 약 2000여명이 2km에 달하는 행렬을 만들어 3시간에 걸쳐 행진한다. 행렬은 천황의 거처였던 교토고쇼(京都御所)에서  출발해 교토시청 앞을 지나 헤이안 진구가 종착지다. ‘간무천황과 고메이천황의 거처였던 고쇼에 서부터 출발해 번화한 교토의 모습을 보며 행렬과 함께 신궁으로 향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하니, 교토 사람들의 자부심이란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다.

▲ 정오에 고쇼(御所)를 출발한 행렬은 카라스마 오이케(烏丸御池), 교토 시청을 지나 산죠(三条) 길을 따라 헤이안 진구에 들어온다.
 
친구와 함께 향한 곳은 역시 행렬의 도착지인 헤이안 진구였다. 행렬 선두의 도착 예정 시각이었던 2시 30분보다 한 시간 남짓 일찍 도착해서, 여유 있게 자리를 잡을 줄 알았는데 이미 헤이안 진구의 정문에서 큰 도로에 이르는 넓은 길의 양 측면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직 행렬이 도착하기 전인 헤이안 진구의 진입로 진구미치(神宮道)의 모습. 이미 사람들로 가득하다.

시대 행렬에 투입되는 2000여 명에 달하는 인원은 교토시의 각 지역이 맡아 분담한다. 미나미구(南区)는 에도 시대, 나카교구(中京区)는 메이지 시대, 하는 식으로 나뉘는데, 서울로 말하면 종로구는 조선 전기, 영등포구는 조선 후기 하는 식이다. 그 안에서도 부녀회나 초등학교 등에서 각각 적당한 배역을 맡게 된다. 게다가 헤이안 진구 주변엔 “xx부녀회”와 같은 단체의 지정석도 함께 마련되어 있어 교토 시민들이 다 함께 준비하고 한바탕 즐기는 마당이 만들어진다. 그러고보니  행렬을 기다리던 아주머니들께서는 어김없이 한바탕 수다를 펼쳐놓고 계셨다.

이미 좋은 자리를 잡기는 글렀다고 생각되어 사진이나 몇 장 찍어두자고 대열에서 벗어났다. 몇 발자국 더 벗어나니 어느새 시대행렬이 지나갈 큰 도로까지 나가서 안전요원에게 몇 마디 얘기를 들을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아마 내가 안전요원은 신경도 안 쓰고 너무 당당하게 사진을 찍고 있어서 그랬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옳거니! 그럼 사진이나 열심히 찍어서 독자들에게 보여줘야겠다고 내심 작정하고, 재빠르게 사진기자 옆에 뛰어가서 냉큼 자리를 잡았다. 덕분에 친구는 졸지에 나에게 버림받은 꼴이 되어버렸다.
 
▲ 드디어 행렬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 행렬의 선두는 명예행렬이다. 왼쪽에 교토시장, 오른쪽에 교토부지사가 탄 마차가 지나간다.
▲ 지다이 마츠리의 시작을 알리는 깃발이 들어온다.
▲깃발을 든 세 사람은 특이한 걸음으로 흥을 돋운다.
시대 마츠리는 그저 비슷비슷한 행렬이 몇 시간 지나가고 마는 지루한 행렬이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중간중간 이렇게 특이한 동작이나 가무를 섞어 인상적인 무대매너를 선보이는 분들도 계시다. 위 사진 가운데 계신 분도 인사를 하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사실은 긴 행렬로 인해 지쳐서 구경꾼들에게 힘들다고 호소하시는 중이다.
 
▲ 본격적인 시대행렬의 시작은 메이지유신 시대부터. 행렬의 전체 흐름은 메이지유신 시대부터 헤이안 시대까지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형식이다.
 
▲ 교토 북부지방에서 집결된 농병대, 야마구니타이()를 모델로 한 행진. 피리와 북으로 연주되는 행진곡에 맞추어 발걸음을 맞춘다.
▲ 다음 행렬은 유신지사(維新志士)들로 이어졌는데, 화제의 인물 등장이다. 최근 일본에서 드라마로 또다시 붐이 불고 있는 사카모토 료마(坂本竜馬)가 나타났다. 긴 행렬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팬 서비스를 하시느라 그런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 에도 시대의 선두. 각 시대의 선두에는 시대이름을 적은 깃발이 행렬을 이끈다.
 
▲얏코후리(奴振り, 무가에서 유래한 민속무예로 우산, 깃털을 단 창 등을 가지고 기예를 보임)의 행렬이 이어졌다. 장정들이 메고 있는 상자는 하사미바코(鋏箱)인데 옛날, 외출할 때 갈아입을 의복 등을 넣어 하인에게 지우던 함이라고 한다.

▲  하사미바코와 케야리(毛槍, 깃털을 단 창)를 든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 창을 주고받는 묘기가 펼쳐진다.

▲ 카즈노미야(和宮)내친왕.
▲  가부키의 창시자라고 알려진 이즈모노오쿠니(出雲阿国).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시대인 아즈치모모야마(安土桃山)시대로 들어간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처음 조정에 등장하는 입궐행렬(1590년).

▲ 아이들이 행렬에 등장하면 이곳 저곳에서 아주머님들의 탄성이 터져나온다.

“아이고 조그만 애가 여기까지 잘 왔네, 힘들었겠어~”

약간 지친 모습이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꼬마가 역사책의 사진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느낌이 든다.

▲ 나뭇잎 지붕과 화려한 문양 등 이 우차는 당대 최고의 양식을 자랑한다고 한다.

▲ 꼭 경직된 분위기에서만 행렬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행렬에 참가한 사람도 구경하는 사람도 웃고 즐기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xx부녀회’와 같은 자리에서는 “저사람 고타로 아빠 아니야? 저기 계셨네!”라며 행렬에 열심히 인사를 건네는 분들도 많이 계셔서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 오다 노부나가가 교토에 입성하는 행렬(1570)이 이어진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

▲  무로마치 시대의 시작. 재미있는 것은 무로마치 행렬이 2007년이 되어서야 생겼다는 것이다. 천황과 반목하며 무가에 의한 단독정권을 수립한 무로마치 막부를 교토 사람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봤던 탓일까?
▲ 무로마치 시대의 시작.

▲  아시카가 쇼군.

▲   16세기 무로마치 시대 후반, 경제력을 축적한 교토에서는 다양한 문화가 발전했다. 사진은 민중들에 의해 성행한 춤을 재현한 것이다. 커다란 우산의 안과 밖에서 추는 두 가지 유형의 춤이 있는데, 이 춤이 전국 각지로 퍼져나가 다양한 예능의 원형이 되었다고 한다.

 
▲  3시간에 달하는 긴 행렬을 잘 마친 꼬마아이.

▲ 중세 시대 부인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오오하라메(大原女). 교토 북부의 오오하라(大原)지방의 부인들은 지역 특유의 의상을 걸치고 머리에는 숯이나 장작을 이고 장으로 팔러 나갔다.

▲ 카츠라메(桂女). 교토의 서쪽 카츠라에서는 흰 천으로 머리카락을 모두 가리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카츠라의 부인들 역시 거리에 나가 농산물을 팔았다고 한다.    

열심히 사진 찍기에 몰두하다 보니 친구는 어느새 인파에서 떨어져서 흥미를 잃은 듯 쉬고 있었다. 이거 손님대접이 원 시원치 않은 듯 하여, 아쉽지만 시대 축제는 이쯤에서 마무리 하고 다른 관광 코스를 안내하기로 했다.

 

요즘 한국에서도 이곳 저곳에서 많은 축제가 열리고 있다. 서울에서 열리는 디자인 서울 같은 축제도 좋지만 우리나라만 할 수 있는 우리 축제는 없을까?

 

교토의 시대 마츠리를 베껴서 서울의 시대 축제를 상상해 보았다. 경복궁에서 출발한 행렬은 목적지인 종묘를 향해, 이순신 장군의 늠름한 행진이 있고, 세종대왕이 탄 가마가 성대한 행렬을 이루고 빌딩 숲 사이를 헤쳐가는 모습. 허준이나 장금이 같은 친근한 인물들이 구경하는 사람들과 한데 어우러져 자동차로 가득했던 널찍한 도로에서 한바탕 신명 나게 놀아 제끼는 날이 하루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 그렇다면 분명 교토 사람들보다 더 신나고 흥겹게 놀 수 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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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11/13 [11:49]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한국의 카피문화가지고........ 카피 10/11/14 [11:33]
나라나 교토같은 고대한국의 복사문화가지고 자부심갖는 왜놈들의 노예근성이 뭐가 부럽다고 입벌리고 있나?.....더러운 왜놈똥치들!..... 수정 삭제
날조가 전문인 일본이 무슨.. 5555 10/11/14 [11:55]
중요한 것은 2차대전이후 대대적으로 마츠리가 생겼다라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일본에서 각 지역별로 행해지고 있는 마츠리의 대부분은 의상, 노래,춤
이 근대시대때 만들어 진것으로 홍보용 효과를 노린 행사일 뿐이지 역사 사실을
근거로 행해지는 마츠리는 거의 없는 수준이다. 수정 삭제
그냥 좋은거 보면 그게 좋구나 하면 되는거지... 그냥 10/11/14 [13:37]
교토의 마츠리가 좋으면
아 좋은거 하는 구나 하면 되지
왜 꼭 한국에서는 이런거 안하나 이런걸 따지냐...

그리고 지자체 마다 이런 역사 재현 행사는 하고 있거든
니가 그걸 안 찾아봐서 그렇지... 수정 삭제
카피씨 단세포 10/11/14 [13:41]
주변 국가의 문화에 영향받는다는 것에 대해 반드시 열등감을 가져야 한다는건 아니에요. 그대로 모방만 한게 아니라 나름 다듬은 흔적도 보이고. 그리고 고대사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왜가 사실이 아닌 부분도 꽤 되고. 왜구놈들이 나쁜건 알지만. 수정 삭제
또 기사내용 제대로 이해 못한 인간들이 jjee 10/11/14 [16:29]
한국에도 축제가 있어! 하면서 있는거 없는거 다 끌어다 죽 나열할걸. ㅎㅎ 일본 축제 한번 안가본 인간들이 말이다. 장담컨데 우리나라에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남녀노소 참여하는 축제란건 없어. 그저 지자체에서 돈주고 시켜서 행사하는거지.그건 그냥 행사야. 수정 삭제
일본이 한다고 우리도 일본터럼 해야되나 한국 10/11/14 [21:16]
지겨운 교토축제 구경거리아닌가요 전주난쟁이도 잇는데
교토보다 더멋진축제 시대도 변하면
모든것이 변하면서 발전하는것 아니냐
함평나비축제 교토축제보다 100배 경이로운함평나비축제다
함평나비축제와 비교해봐 교토축제 보잘것없는 지겨운 구경거리죠
한국에는 각지방마다 특색잇는 축제가 얼마나 많은데
엣날거 볼것없는 일본축제 부럽지않읍니다
함평나비축제보고나면 교토축제가 얼마나 허접한지 알거야 수정 삭제
우리도 있었죠.. 사랑사랑 10/11/14 [21:33]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전통축제가 있었지만 일제시대에 일본이 모두 없애버려서
이제 그 맥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수정 삭제
지금 축제가 많다는분들 보세요;; ;; 10/11/15 [09:59]
솔직히 축제라고 해도 축제의 본질도 알수없게 만드는 특색없는 공연들을 하는곳도 대부분이고 (에어로빅과 사물놀이와 트로트가수의 알수없는 조합의 공연이라던가) 가봐도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는 없고 자치단체에서 어거지로 사람 동원해서 말그대로 인원수만 채우는 축제가 대부분입니다.

솔직히 외국인에게 축제라고 소개할수 있는 축제라고 해봐야 10개 꼽을까말까입니다.

지자체마다 역사 재현 행사를 한다고 하지만 솔직히 매년 행사 내용도 상이하게 달라서 주제도 알수없는 축제들이 한두군데가 아닌걸요;; 수정 삭제
글쓴이 힘내세요 ;; 10/11/15 [13:49]
좋은 의도로 한말인 것 같은데 다들 너무 하네요..
힘내셔용!! 수정 삭제
쯧쯧 10/11/15 [15:59]
우리문화가 좋은줄 알면 남의 문화 존중할줄도 알아야죠 일본문화라고해서 함부로 헐뜯는건 보기 좋지 않네요...글쓴사람에 대한 예의라도 지키면 그나마 낫지..댓글 수준이 좀 그렇네요 수정 삭제
아직도 이조시대인줄 알고 우리것만 좋다고 우기는 무식한넘들... ahffk 10/11/15 [20:57]
지금 일본 마츠리 생각 나는것만해도 당장 두개 생각난다... (실제로 일본 마쯔리 가보면 일본 사람 뿐만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다몰려 옴...) 근데 우리나라는.... 뭐삼?? 그리고 제발 꼭 식민지 시대때 열등감가지고 무조건 왜놈왜놈 거리지 맙시다. (이조 시때때 저런 넘들때문에 나라 통째로 식민지 꼴을 면치 못했죠...) 수정 삭제
이조시대라니... 213215 10/11/16 [21:07]
생각좀 하고 용어를 써라...
이조시대라는 용어를 일본애들이 어떤뜻으로 사용했는지를... 수정 삭제
이번주 연재글은 댓글 폭발인데요??ㅋㅋ 와우.. 10/11/18 [23:39]
다들 좋게 좋게 생각하세용ㅎ_ㅎ 수정 삭제
잘보았습니다~ jinto 10/11/21 [04:22]
재미있어요~ ^^ 수정 삭제
무식한거 티내냐 we 10/11/28 [05:45]
일본놈들이 우리나라 강탈하고 민족성 말살정책으로 우리것 우리문화는 뭐든지 천하게 인식시키고 금지시켜서 사라진 우리고유 민중축제가 한두개가아닌데 그나마 여러학자와 전통문화,기술 계승자들때문에 조금이나마 지켜진것이지 이런무식한 등신색히는 왜우리나라에는 도쿄축제같은게 없나요? 같은소리나 하고있으니 왜이리 주변에 이런모질란색히들은 하나같이 일본동경하는놈들 뿐인지 ㅠ ㅠ 수정 삭제
참나... 오랑우탄 10/12/05 [10:40]
일빠넘들...우리나라 축제 몇군데 둘러보고 우리나라 축제가 구리다고 하냐? 우리나라 축제중에 알려진것도 좋은것 많지만 알려지지않은 알짜베기 멋진 축제가 많다. 마쯔리가 몇개 더 알고 멋지다는 넘들...과연 한국축제 몇개를 보고 구리다는 논리를 펼치는지??? 이조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무식한 넘도 있지않나...쯧쯧... 수정 삭제
축제란... 야무 10/12/12 [21:40]
축제란 집단과 그 집단 구성원들간의 믿음없이는 자연발화 탄생할 수가 없는 것.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매우 어려움. 수정 삭제
축제란... 아아아 10/12/12 [23:44]
윗분 말대로 집단 구성원간의 믿음도 중요하고 일단 먹고 살만 한 상태에서 탄생하죠.초근 목피로 연명 하던 조선 시대에 축제가 나올수가 없죠.
우리 지자체도 요즘 먹고 살만해지니 슬슬 이상한 이름 붙여 축제 만들 쟎아요. 수정 삭제
한국에 전통 축제가 없는 까닭은 바로 이것 ek 12/02/05 [22:13]
예전에 우리나라도 많은 지방 마다의 전통 행사가 있었답니다. 민속적인 행사가 많았었죠. 그런데 국사 공부를 안하셨는가보네요. 일본은 조선을 합병한 후 먼저 전국의 관아나 청사건물을 다 부셨지요. 한양 성벽은 철저히 깨어부서지고 궁궐은 유린당하고 왠만한 건물은 모두 부수고 다음에 행한 것이 민족정신 말살 정책이었지요. 전통 놀이 모두 못하게 하고 전통 행사 못하게 막고 .....말로 하기 숨가쁘죠. 그래서 전통 건물도 별로 남은게 없고 전통 무예도 전통이란 전통은 모두 사라지게 된거랍니다. 역사 공부 좀 하심이 좋을듯..반면, 일본은 침략을 당하지 않아 전통이 남아있는 거구요. 수정 삭제
전통행사가 진행중이죠. 문제는 예산유치이고요. 양민오 12/08/27 [18:13]
가령 수원에 가면 정조대왕능행차를 볼수있어요. 안성무슨축제처럼 키워서, 관광객들 유치시키려고 음식점,민박집도 늘리고요. 문제는 성공사례가 아직 적다보니 급물살을 못타고있죠. 수원사람이 우리시에는 홍대거리, 인사동같은 곳이 없을까?라고 시청게시판에 글올린게 생각나 적어봅니다. 없는이유는 성공사례와 예산때문이더라는.. 만들려면 뭐라도 성공시켜 계속 예산을 늘려야 정착이 되는것 같네요
시행착오격다보면 발전되갈겁니다. 수정 삭제
고등학교때 세금 아깝다 12/08/30 [01:38]
국사공부 안 하고 수학 영어만 겁나 해서 일본 가셨습니까? 글이 어이가 없네. 수정 삭제
왜 한국엔 없냐면요. 축제 관련업체 근무자 13/02/11 [19:37]
그런거 만들 능력이 없어서 입니다.돈도 없구요. 수정 삭제
너 바보 아냐? 바보 14/03/18 [07:46]
일본놈들이 한궁의 혼을 다 말살해버려으니 그렇지.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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