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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협을 넘나드는 가희 '감동의 반생'
[인터뷰] 해협의 아리아, 재일동포 소프라노 전월선 씨
 
안민정 기자
▲ 도쿄 신주쿠의 자택연습실에서, 전월선 소프라노     ©jpnews/이승열

서울, 평양, 도쿄 세 도시를 연결하는 유일한 오페라 가수라면 떠오르는 이름이 있으신지.
 
1985년 평양에서 김일성 전 국방위원장 앞에서 공연하고, 1994년에는 서울 정도(定都) 600주년 기념 예술의 전당 '오페라 카르멘'에서 재일동포 최초 주연을 따낸 인물.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초대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 앞에서 한국 노래를 부른 가수. 그녀의 이름은 바로 전월선이다.
 
1959년 일본 도쿄에서 출생한 전월선 씨는 부모님이 경상도 출신인 재일동포 2세다. 어려운 생활이었지만 음악적인 감각이 탁월했던 아버지와 시적인 감성이 풍부했던 어머니의 교육을 받으며 자란 전월선 씨는 어렸을 적부터 예술가가 되리라 마음먹었다고 한다.
 
또한, 전월선 씨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무렵에 모양새를 갖춰가던 조선학교의 교육은 세계에서 활약하는 예술가로서, 재일동포 오페라 가수로서 자주성을 확립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뿌리를 알아야 한다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조선학교에 입학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웠고, 자연스럽게 민족무용을 몸에 익히고 무대에 서면서 표현력을 기를 수 있었다. 
 
이렇게 천부적인 재능과 후천적인 교육의 영향으로 세계 무대를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하던 전월선 씨에게 인생 최대의 시련이 찾아온 것은 대학 입시를 앞둔 고 3때의 일이었다.
 
"예술가에게는 국제적인 감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조선학교보다 일반 사립 예술대에 가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당시 일본 대학교 대부분 조선학교를 학력으로 인정해주지 않았고 원서를 낼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때 충격은 말로 못하죠.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에게 일본대학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니요"
 
이전까지도 재일코리안으로서 크고 작은 차별을 받아왔지만 "그래도 난 틀리지 않았어. 차별하는 사람들이 잘못된거야"라며 꿋꿋이 견뎌온 전월선 씨였지만, 이 때만큼은 큰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전월선 씨의 탁월한 예술적 재능을 높게 사고 있던 선생님과 주변분들의 추천으로, 도호가쿠엔 대학 예술학부에서 "재능이 있다면 수험하게 해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전월선 씨는 죽을 힘을 다해 모자란 부분을 공부하고 한번에 합격통지를 받았다.
 
"당시만 해도 예술학부에 유학생은 커녕 재일동포도 없었기 때문에 '전월선'이라는 이름을 듣고 다들 제가 누구인가 궁금해했다고 해요. 근데 막상 얼굴을 보니 일본 사람과 다르지 않고 똑같이 일본어를 하잖아요. 그래서 다들 신기해했죠. 당시만 해도 한국,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았어요. 관심조차 가지지 않으려 했죠"
 
때로는 고독감, 이질감을 느꼈지만 예술은 국경을 넘어 철저히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세계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스킬을 갈고 닦았다. 그러는 사이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역시 다른 무언가가 있구나"라고 인정받게 되었다.
 
전월선 씨가 재일동포 사이에서는 특히 드문 오페라 가수를 지망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어렵게 대학에 들어갈 자격을 얻었는데 마침 그 때 부모님 사업이 망했어요. 부모님과도 떨어져 살아야했고, 집도 잃고, 그렇게 좋아하던 피아노도 뺏겼어요. 저는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수험준비를 해야 했죠. 그 때 생각한 것이 내 몸 하나로 승부하여 관객을 압도할 수 있는 오페라 가수, 오페라 무대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지요"
 
몸 안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와 표현력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오페라 가수가 되리라 마음먹은 그녀는 대학 내에서도 두드러진 존재가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조선학교에서 배운 민속무용으로 무용의 기본기를 가지고 있었던 전월선 씨는, 당시에는 드물게 춤과 노래 양쪽이 가능한 엔터테이너였다.
 
졸업후에도 재즈댄스, 탭댄스, 플라멩고 등을 배우는 등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일본은 물론 세계에서 인정받는 오페라 가수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그러나 당시는 연예인도 재일동포임을 숨기지 않으면 매스컴 앞에 서기가 힘들었던 차별사회, 많은 예술가들이 일본식 이름을 예명으로 쓰고 신분을 감추고 활동했었다.
 
"물론 한 때는 일본인 예명을 쓰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주변 분들의 충고도 있었어요. 그런데, 제 이름은 어머니가 꾸신 태몽을 그대로 옮겨주신 것이거든요. 동그랗고 큰 만월이 호수에 비쳐 수선화를 빛내고 있었대요. 그래서 달 월(月)자에 신선 선(仙)자를 써서 월선이 되었죠. 부모님의 사랑이 담긴 이름을 가지고, 제 이름 그대로 실력으로 승부하고 싶었어요"
 
재일동포임을 숨기지 않고 놀라운 활약을 펼친 그녀에게 1985년 북한에서 공연요청이 들어왔다. 김일성 주석 앞에서 노래를 불러달라는 것이었다. 그 때까지 남북한 어느 쪽에도 가보지 못한 그녀에게는 첫 고국 방문이 되었다. 게다가 피치못할 사정으로 북으로 보내진 친오빠를 만날 수 있는 이산가족 상봉의 기회도 되었다.
 
"어휴, 그 때의 긴장은 말로 다 표현 못하죠. 공연 후에 오빠를 만날 수 있었고, 북한에서 한차례 공연을 하고 나니, 부모님 고향인 한국에서도 꼭 공연을 하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조선국적을 가지고 북한에서 공연을 한 재일동포 그녀에게 한국은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간절한 마음으로 지내기를 9년, 1994년 드디어 한국에서 그녀를 초청한다는 연락이 왔다. 그것이 바로 서울 정도 600주년 기념 예술의 전당 '오페라 카르멘' 공연이었다. 게다가 그녀에게 재일동포 최초로 '카르멘' 주연이 맡겨졌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언제나 고국이라고 생각하는 곳에서 오페라 무대에 서게 되고, 주연까지 맡겨주시니 저로서는 꿈이 이루어진 것 같았어요. 가슴이 벅차 오르는 감동이었죠. 처음으로 한국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공연을 하던 그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후 전월선 씨는 2001년, 서울 세종문화회관, 도쿄문화회관 양국의 예술무대 최고봉에서 춘향전 '춘향' 역을 맡아 열연하고,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요청으로 초대된 김대중 대통령 앞에서 한국 가곡을 부르는 등 한일양국을 잇는 문화인으로서 활약을 펼쳤다.
 
한편, 고국을 그리워하며 이산가족의 아픔을 통감하며 전월선 씨가 어렸을 때부터 춘향전 등 한국 고전문학을 읽어주시고 가르쳐주시던 부모님은, 딸의 성장에 크게 기뻐하고 감동을 했다고 한다.
 
전월선 씨는 일본에서도 큰 주목을 받아 2004년에는 공영방송 nhk에서 90분 특집으로 '해협을 넘나드는 가희 재일한국인 성악가의 20년' 다큐멘터리를 방송하여 큰 화제가 되었고, 감동한 시청자들의 요청으로 다시 한번 전파를 타기도 했다.
 
2005년에는 모친상을 겪은 전월선 씨가 부모님과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해협의 아리아'를 출간하여 제 13회 쇼가쿠칸(小學館) 논픽션 대상을 수상해 한일 양국에 화제가 되었다. 한일 양국에 한국 부모님을 두고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동포의 존재를 알리는 데도 큰 영향력을 미쳤다.
 
이 때부터 전월선 씨는 매년 일본에서 '해협의 아리아'라는 타이틀로 공연을 해오고 있다. 소프라노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는 이태리 가곡은 물론이고 한국 가곡, 민요까지 넣어 전월선 씨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감동의 콘서트다.
 
오는 12일, 시부야구 하쿠주 홀에서는 해협의 아리아 시리즈 제 3편 콘서트가 예정되어 있다. 이번 공연에는 홍난파의 '봉선화', 민요 '한오백년'과 함께 일본작곡가 아사오카 마키코의 '두 사람의 바다', 아르비노니 '아다지오' 등 8곡이 선곡되어 있다.
 
"고마운 팬들은 공연마다 신칸센을 타고 지방에서부터 와주시는 분들이죠. 관객분들의 격려는 언제나 제게 큰 힘이 되고 있구요, 욕심을 내자면 젊은이들도 관심을 가지고 많이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요즘 일본 내에서 불고 있는 케이팝 붐으로 더욱 힘이 나고 즐거워졌다는 전월선 씨. 예전에 일본인들이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관심이 없었던 것과 비교하자면 지금은 거리감이 사라졌다며 '세월이 이렇게 변했구나'라는 것을 실감한다고 한다.
 
평생을 오페라와 함께 살아온 전월선 씨의 다음 목표는 유럽에서 더 활발한 공연을 하고, 한일 양국 교류를 돕고, 남북한 관계를 좁힐 수 있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 자그마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노래소리만큼이나 꿈과 목표도 원대했다.
 
"제가 평생 오페라를 할 수 있던 원동력이요? 부모님 세대의 고통, 제 눈으로 지켜본 희생당한 많은 사람들, 그 분들의 생각을 노래에 넣어서 많은 분들에게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노래는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음악은 국경이 없고 누구에게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요. 제 노래를 듣고 마음으로부터 박수쳐주시는 관객들을 보면 '아 이게 내 사명이구나' 싶어요" 이렇게 말하는 전월선 씨의 얼굴에는 어느새 부드러운 미소가 번져나오고 있었다.
 
▲ 전월선 씨 자택 연습실에서     ©jpnews/이승열
▲ 나이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젊고 활기있는 모습이었다   ©jpnews/이승열
▲ 연습실 곳곳에 상패가 가득했다     ©jpnews/이승열
▲ 이제까지 각종 공연에서 모습을 담은 액자들, 도쿄 신주쿠 전월선 씨 자택 연습실     ©jpnews/이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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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11/10 [11:04]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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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전 국방위원장.... 피바다 10/11/10 [14:54]
국방위원장의 지위는 김정일이 유일함. 김일성 주석이라고 해야함. 대충 글 쓰지마시오. 수정 삭제
수정했습니다 편집부 10/11/10 [19:23]
말씀하신 대로 '국방위원장'이 아니라 '주석'이 맞습니다. 올바른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 삭제
눈물이 납니다~ 진짜....! 박혜연 13/08/22 [12:36]
전월선씨의 아픈가족사를 본 순간 눈물이 나네요?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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