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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대 전설이 된 돌담카페 아시나요?
교토대생의 교토이야기(4) 과연 교토대스러움이란 무엇인가
 
김태범(교토대학 2학년
11월은 첫 날부터 쌀쌀한 가을비로 시작할 것이라는 예보였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지만, 그리 평탄하지는 않은 하루였다. 

점심을 거르고 준비한 설계과제의 중간 체크는 6시가 넘어서 끝났고, 제도실에 돌아와 조교와 중간 체크에 대해 몇 마디 더 나누고 보니 시계 바늘은 7시를 향해 갔다. 중간체크 내내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주기적으로 울려 퍼졌지만, 교수님의 목소리에 묻힌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자코엔 일주일에 몇 번씩 가지만 어쨌든, 이런 날에는 우선 자코에 가자.

돼지고기 토마토 소스와 빵을 주문하고 자코 아저씨께 내가 먼저 운을 뗐다.

“지난주에 올린 글은 이야기가 완전 뒤죽박죽이었어요. 자코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학생운동에 서부강당 이야기도 나오고, 게다가 지난주엔 제가 교토대 입학한 이야기랑 오리타 선생 동상 등 두서없이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도망치듯 글을 끝냈어요.”

그러자 아저씨께서는 털털하게 웃으시면서 대답하셨다.

“그렇지 뭐. 읽는 분들이 한 1년 정도 쭉 읽으시고 나면 아~ 대충 이런 얘기군 하시겠지 뭐.”

소심한 나는 나름대로 위안을 얻고 다시 힘을 내서 이 얘기 저 얘기 교토에 대해 1년 정도 느긋하게 쓰다 보면 독자 분들도 교토 이야기를 알아주시리라고 믿기로 했다.

그리하여, 이번 주의 테마는 지난 회에 이어서 교토대 이야기의 후속편. 지난주에 ‘자유로운 학풍’에 대해 소개를 한 것은, 그것이 교토대의 ‘교토대스러움’을 만드는 주춧돌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학교의 학생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교토대 학생들은 특히 ‘교토대스럽다(京大らしい)’는 말을 많이 쓴다. 심지어 수업 중에 교수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럼 교토대스럽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교토대학 후문의 햐쿠만벤 교차로. 그 한 모퉁이를 대학구내의 외곽을 이루는 돌담이 차지하고 있다. 교차로에서 시작된 돌담은 동아리 활동 홍보, 정치적 주장 등을 담은 간판들로 채워져 긴 행렬을 이룬다.
 
2004년 10월, 학교 측에서는 도보정비를 이유로 이 돌담을 철거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학생자치회와 동아리에서는 “본부 구내 개선계획을 생각하는 모임”을 결성해 대학 측의 발표에 반발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수정안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학교측은 대화의 자리도 마련하지 않은 채 예비공사에 착수했다. 보다 못한 일부 뜻있는 학생들이 “우선 위에 올라가서 지내자” 고 하면서 가설 구조물을 짓고 노숙에 들어갔다.

주변을 지나던 사람들과 술 한 잔을 기울이던 중, 근처 카페의 점원이 “카페 해 보면 어때?” 하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어, 지상 5미터의 돌담 위에 커피 한 잔에 50엔, 24시간 영업의 ‘돌담 카페(石垣カフェ)’를 열게 되었다.

돌담 카페를 실제로 운영하기도 한 교토대학 문학부 철학연구과 석사과정 대학원생의 논문, ‘돌담 카페 - 유희적 실천의 공간(*)'에 실린 돌담 카페의 일기를 잠깐 들여다 보자.

“x월 x일

오늘은 눈이 오고있다. 코타츠(일본의 실내 난방 장치의 하나. 나무 판 밑에 전기화로를 설치하고 그 위에 이불같은 천을 씌워 열을 저장하는 것) 덕분에 발은 따뜻하지만, 바깥 공기는 영하로 내려갔기에 몇 겹을 입어도 춥기만 하다. 물을 끓이는 동안 교차로의 설경을 바라본다.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이상한 눈으로 위를 올려다보며 걷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근처의 꼬치튀김 가게의 아주머니가 먹을 것을 가져다 주셨다. 감사하며 손님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돌담 카페는 말이 카페일 뿐, 돌담 위에 쇠파이프와 베니어 합판으로 얼기설기 지은 오두막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반향은 예상외로 대단했다. 당시 오리타 선생 동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던 교토대학에, 또 하나의 화제거리가 된 돌담 카페는 순식간에 인터넷 상으로 퍼져 나갔고, 일본 방송국의 취재 등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자 공사 연기가 불가피해진 대학 측은 학생들과 교섭에 들어갔다. 3번째 교섭에서 학생들은 일명 '숲 속의 작은 길' 안을 제안했다. 그 안은 석벽의 일부만을 허물고 보행자용 도로를 만들어 캠퍼스 안으로 연결한다는 구상이었다. 학교 측에서도 보행자가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는 점 등에 좋은 평가를 내려 그날 밤 바로 합의를 할 수가 있었다. 결국 공사는 학생들이 제안한 안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2005년 1월부터 약 7개월 간 이어진 돌담 카페는, 학교 측과의 합의가 이루어짐으로써 그 임무를 다했고, 영업은 8월 16일을 기해 종료함과 동시에 학생들도 자진 해산했다.

돌담 카페 폐업은 2005년 8월 5일자 교토신문에 보도되었다. 신문에는 이번 합의에 학생들은 "정말 필요한 공사만 진행하며 대화로 해결한다는 교토대의 전통이 지켜졌다" 고 평가했으며, 학교 측은 "긴 시간이 걸렸지만 대화로 해결되어 매우 기쁘다"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이렇듯 학생들의 재기 발랄한 반항의 상징이었던 돌담 카페는, 끝까지 대화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이어져 마침내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돌담 카페는 사실 거창한 구호를 외치거나 철거공사의 부당성을 설파하려는 공간은 아니었다. ‘일단 지내보자’고 올라간 돌담에서 근처 카페 점원이 우연히 한 말로 인해 시작한 영업은 카페라기 보다 가벼운 놀이에 가까웠다.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이, 자신들의 놀이터에서 카페라는 놀이를 벌인, 어찌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을지 모른다.

아무튼 카페를 한번 해보라는 말을 건넨 근처 카페 점원이, 혹시 자코 아저씨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조심스레 해 보았지만, 예상은 아쉽게 빗나갔다. 하지만 아저씨께서는 당시 학생들의 즐거웠던 에피소드를 들려주셨다.

“내가 학생운동 하던 시절엔 과격한 시위나 폭력이 많았던걸 생각하면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 주변 사람들도 돌담 카페 지나가면서 ‘교토대 애들이 또 재미있는 것 하네’ 하고 생각했을 거야. 한 2년 전까지 자코 2층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학생 중에 돌담 카페 영업을 한 아이가 있긴 한데, 지금은 이사가고 연락이 닿지 않아서 아쉽네. 예전엔 꽤 자주 들르는 단골이었어. 직접 만나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을텐데.”

그리고 돌담 카페에 숨겨진 비화를 들려주셨다.

“돌담 카페 하던 애들이 자코에 자주 와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 사실 그들이 ‘문화적 유산’이나 대단한 이유를 가지고 돌담을 지키려고 한 것은 아니었어. 그 중엔 ‘돌담 같은 거 뭐 부숴도 괜찮잖아’ 하는 아이도 있었지. 하지만 돌담에 간판을 세울 수 없게 되는 것을 시작으로, 점점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의 소리가 있어 돌담 카페를 시작한거야.”

매스컴에 비춰진 모습과는 달리 대단하지 않은 내막을 들으니 아쉬움도 느껴졌다. 계속해서 아저씨의 말씀이 이어졌다.

“어떻게 보면 교토대의 자유로움도 점점 없어져가고 있는 셈이지. 70년대의 과격한 분위기의 활동이랑 비교해보면 교토대스러움도 옅어졌어. 예를 들어 서부강당의 심야 공연만 해도 그래. 예전엔 자정이 넘도록 락 공연이 이어져서 주변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를 했거든. 그러면 경찰관이 와서 동아리 관계자를 서부강당 밖으로 조용히 불러내서 ‘저, 주변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하는데 공연 좀 일찍 끝내주실 수 없겠습니까?’ 라고 부탁하는 거야. 그러면 한 30분 더 시끄러운 공연을 하고 끝내곤 했어. 지금이야 밤 9시 이후의 공연은 전면 금지로 정해졌지만.”

나도 동의할 수 밖에 없는 말이었다. 지난주 글을 준비하면서 친구들과 서부강당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내 또래의 친구들은 ‘서부 강당은 이름만 유명하다’던가, ‘서부강당에 들어가 본 적도 없다’는 식의 반응이 전부였다.

“교토대학은 그래도 다른 학교와 비교해 보면 자유로움이 남아있기는 해. 리츠메이칸(立命館,)대학 같은 곳에서는 동아리 간판도 학생들 마음대로 세울 수 없고, 교내에서 임의로 전단지를 나누어 주는 것도 금지되어 있으니까. 그래도 근 10년간 특히 학교 분위기가 없어지는 건 어쩔 수 없네. 돌담 카페를 했던 애들도 사실은 극히 일부였고,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는 것도 70년대를 체험했던 교수들이 교토대에 남아있는 덕분이야. 하지만 그 교수들이 교토대를 떠나고 나면 교토대다운 학풍은 거의 잊혀질 것 같아.”

서부강당의 전설 같은 이야기, 매년 이어지는 오리타 선생 동상, 그리고 돌담 카페까지. 매일매일이 축제 같았던 그 시절의 추억을 들으며 나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상상을, 무모한 망상을 한다. 나는 왜 이렇게 교토대의 지난 시간에 대해 매력을 느끼는 걸까.

어두운 지하의 재즈카페를 꽉 채운 담배연기와 격렬한 시위대의 외침.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추억을 이야기해주시는 아저씨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 속에서 나는 사람들에게서 점점 잊혀가는 아련한 추억들을 열심히 받아 적는다. 그 추억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한 고리타분한 옛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는 낡은 앨범의 한 페이지를 들춰보며 '이런 일이 있었구나' '그 땐 이런 날을 살았구나'하고 기억해 주었으면 싶다. 그리고 교토대 한 구석에서 일탈을 꿈꾸는 몽상가가 있었음을, 오늘과 또 다른 내일을 기약하는 발랄한 교토대스러움이 언제까지나 살아 숨쉴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교토대의 전설, 돌담카페(2005년 3월)     © 위키피디아

* 石垣カフェ-遊戯的実践空間-, 笠木丈, 京都大学文学部哲学研究室紀要 : prospectus, no.9: 59-68, 京都大学大学院文学研究科哲学研究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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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11/07 [09:14]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잘읽었습니다 미나 10/11/07 [12:41]
일요일마다 빠짐없이 읽고있어요~
다음주도 기대할께요^^~
수정 삭제
요즘 이 뉴스 들어오는 이유가 되엇네요 몰라 10/11/08 [08:01]
언제나 재밋게 읽고 있어요^^ 수정 삭제
매주오고있어요~ 우왕 10/11/10 [00:22]
솔직담백한이야기가 좋아용 ㅋㅋ 감기조심하세요~ 수정 삭제
ㅇㅅㅇ 10/11/15 [13:46]
그 돌담에 그런 많은 얘기가 있었군요ㅋ 수정 삭제
겨울엔 정말 추웠겠네요 양민오 12/08/27 [17:55]
태범님 재밌게 읽었습니다. 유투브세대가 전해주는 아날로그 에세이란 느낌을 받네요. 지금은 기사 형식으로 쓰고있는데, 좋와하는 문학작가있나요? 좋와하는 작가가 있으셨으면 더 재밌을거 같습니다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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