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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와 참패로 오키나와 주민들 낙담에
후텐마기지 이전문제 오자와 전 간사장에게 기대걸어
 
유재순기자
14일, 민주당 당대회에서 간 나오토 수상이 재선되자 오키나와 주민들이 크게 낙담하고 있다. 이유는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문제 때문. 

▲ 오키나와현 기노완시 후텐마 기지     ©기노완시 구청


후텐마 미군기지 오키나와현 밖 이전은 과거 자민당 시절부터 오키나와 주민들의 숙원사업이었다. 미군에 의한 폭행, 강간, 강도 등 더 이상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오키나와 주민들은 한 목소리로 후텐마기지 이전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과거 자민당 정권은 친미정책을 펴고 있었기 때문에 기지이전은 아예 꿈을 꾸지 못했고, 오키나와 시민단체들의 목소리만이 메아리로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러던 것이 자민당정권에서 민주당 연립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상황은 돌변했다. 자민당과는 달리 민주당이 후텐마기지 이전문제를 당의 정책으로 결정한 것. 때문에 오키나와 주민들은 민주당이 정권을 잡기만 하면 후텐마기지는 곧바로 오키나와현 외로 이전이 되는 줄 알았다. 

때문에 하토야마가 수상이 되자마자 오키나와 주민들은 환호했다. 매일 머리위로 비행기 소음이 난무하는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에 오키나와 주민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만큼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문제는 오키나와 전 주민들의 숙원사업이었다.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있어 후텐마 기지를 포함, 오키나와 현내 미군기지는 애증의 산물이었다. 1945년, 일본이 과감하게 진주만 공격을 실행하자, 미국은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이어서 일본 전 국토에 걸쳐 연합군은 무차별 폭격을 퍼부었다. 그때 일본의 전국토 3분의2가 폐허가 되었다. 그리고 히로히토 일왕의 항복선언과 함께 종전을 맞이했다.

하지만 오키나와 주민에게 있어서는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1972년 일본에 반환되기 전까지 종전 이후에도 미군영토로서 준식민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원래 오키나와는 일본령이 아니었다. '류큐'라는 독립국가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당시 조선에도 침략한 적이 있는 시마즈 요시히로 등 일본 본토의 지방무사들이 수시로 류큐를 침공해와 괴롭혔다. 그렇게 정복하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메이지 유신 이후 1879년에 일본령으로 편입된 것이다. 이때부터 '류큐'란 나라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래서일까. 오키나와, 아니 과거에 하나의 독립국가였던 '류큐' 주민들의 '일본'에 대한 감정적 정서는 일반 일본국민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실례로 히로히토 국왕이 1989년 1월 7일에 사망했을 때, 당시 일본 전국의 관공서에서는 조기를 내걸었다. 그리고 장례기간동안 휴무제를 실시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조기'도 '휴무'도 하지 않은 일본땅이 있었다. 바로 오키나와였다. 오키나와 관공서에서는 조기를 내걸지도, 그리고 휴무를 하지도 않았다. 그냥 평상시대로 정상출근을 함으로써, 살아 있는 자 오키나와 주민들이 죽은 자 히로히토 국왕에 대한 무언의 항거를 했다.

일본정부는 45년 패전을 하면서 오키나와를 버렸다. 뿐만 아니라 전쟁 중에도 직간접적으로 오키나와 주민들을 총알받이, 또는 민간인 대학살을 감행했다. 미군에게 협조했다하여 전 주민을 굴속에 가둬놓고 불을 피워, 연기 때문에 굴밖으로 뛰쳐 나오는 주민들을 무차별 잔인하게 쏘아 죽였다. 이러저런 형태로 아무 죄도 없이 죽임을 당한 오키나와 주민들이 수십만명에 달했다.

그래서 오키나와 주민들의 일본정부에 대한 반감은 그래서 유독 강하다. 특히 72년, 미국으로부터 일본에 반환한 뒤에는 '조선인'과 함께 차별의 대상이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오키나와인 일지라도 일본 본토에서는 취직이 되지 않았다. 나중에는 이 차별이 일본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그 와중에 차별에 대한 항의표시로 나가다초 국회의사당 앞에서 한 오키나와인이 자살했다. 물론 현재는 이같은 차별의식이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무방하다.

문제는 일본 면적의 0.6%밖에 되지 않는 오키나와에 일본내 미군기지 75%가 몰려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미일간의 안보조약에 따른 정책이지만 오키나와 주민들 입장에서는 미군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최악의 환경인 것이다.

물론 45년 종전 이후에는 폐허속에서 오키나와 주민들이 미군에 의한 각종 제도, 시행 때문에 먹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미군들과 공존이라는 형태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그 폐해도 엄청났다. 공군기지가 많아 때도 시도 없이 머리 위로 이착륙하는 비행기 소음은 삶의 질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또한 무절제한 미군들의 사생활, 특히 어린 소녀들을 강간하고 폭행하는 문제는 잊을만 하면 수시로 터지는 뇌관이었다.
     
그래서 지각있는 오키나와 주민들이 시민단체를 결성, 일본정부에게 끈질기게 미군기지 이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 역사만 해도 어언 40년 가까이 된다.              

또한 이같은 요구에 부응한 정당이 바로 민주당과 사민당이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이 두 정당을 철석같이 믿었다. 아니 만년 야당이긴 했지만 오키나와 주민들의 처지를 헤아려주는 듯한 두 정당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이 두 정당을 열렬하게 지지하고 후원했다.

그리고 마침내 정권이 바뀌었다. 하지만 하토야마가 수상이 된 후에도 약속한 후텐마기지 이전은 지켜지지 않았다. 미국의 강한 압력을 받은 하토야마 내각이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보류'를 결정하고 만 것이다.  결국 하토야마 수상은 후텐마기지 문제를 계기로 수상직에서 낙마했다.
 
뒤이어 취임한 간 나오토 내각도 그 밥에 그나물이었다. 하토야마 전 수상이 결정한 '보류'에서 '이전'으로 바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간수상의 야당시절, 미국의 압력에 맞서 과감하게 후텐마기지를 이전해 준다는 공약의 큰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줄기 빛을 보인 것이 오자와 전 간사장이었다. 오자와 전 간사장은 후텐마기지 이전을 이번 선거에서 공약으로 내걸었다. 뿐만 아니라 오키나와 주민들 앞에서도 기어코 후텐마기지를 이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오키나와 주민들은 오자와 전 간사장에게 희망을 걸었다. 오자와가 민주당 대표로 당선만 되면 이전 문제는 다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오자와는 그럴 결단력과 뚝심이 있다고 오키나와 주민들은 생각했다.

그러나 14일 선거 결과는 오키나와 주민들의 기대와는 정 반대로 간 수상의 압승.

15일자 마이니치신문은 오키나와 주민들의 표정을 이렇게 전했다.

'미군 후텐마기지 이전 문제를 떠안은 오키나와에서는, 나고시 헤노코에의 이전을 결정한 미·일합의를 답습하는 칸 나오토 수상의 재선에, 낙담하는 소리가 일제히 퍼졌다.
나고시에서는 12일, 시의원 선거에서 이전반대를 내건 이나미네 스스무 시장파가 압승했던 바로 직후, 14일 민주당 대표선거에서도 후텐마 문제 해결을 선결로 내세운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의 승리를 기대하는 소리가 높았다.

헤노코에서 연좌 농성을 계속하는 헬기 기지 반대협의 대표는, "오키나와를 이해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 수상을 계속하게 돼 슬프다. 다음 내각도 어떤 기대를 할 수 없다"라고 실망한 모습으로 이야기했다.

전국의 당원·서포터 투표에서는, 간수상이 300포인트 중 249포인트를 획득했지만, 그러나 오키나와에서만큼은 오자와씨에게 전 투표수의 약 7할이 모였다. 오키나와와 본토의 여론이 전혀 동떨어진 결과를 보인 것이다.'

이렇듯 오자와 전 간사장에 대한 기대, 그에 따른 참패에 대한 오키나와 주민들의 실망과 낙담은,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과 맞물려 그래서 더욱 충격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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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9/15 [12:20]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음.. LIMG 10/09/15 [22:51]
미국에 사는 친구놈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에와서 JSA에서 미군들과 생활하는데 이 한국에 오는 미군 애들이 병사는 대부분 범죄자나 속칭 찌질이가 많다더군요. 이런 류의 인간들이 오니 한국에서의 대접은 백인들을 우월한다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요, 한국에 오는 강사들도 특히 서울을 벗어날수록 고졸에 그냥 아무생각없이 영어강사하러 오는 애들도 수두룩 하답니다. 백인 우월주의 사상을 빨리 없애야 이런현상이 없어지지 않을까 싶네요 수정 삭제
기사 잘 봤습니다. 좋은 기사군요 10/09/16 [04:29]
몇 개월전 누리망에서 '추적! 재일미군' http://www.rimpeace.or.jp/index.shtml 이란 곳을 우연히 알게되었습니다. 이 곳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미군이 주둔한 지역의 시의회 의원들입니다. 이 기사를 보니 다시 보게 되네요. 수정 삭제
축하합니다. 5555 10/09/16 [21:29]
오키나와는 미국의 식민지가 되는게 이상적일 겁니다.
일본이 한국의 식민지화가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떠들어 대는데
그럼 경제력, 군사력이 강한 미국이 일본을 식민지화하는 것도 당연히 이치입니다.
오키나와의 지식인들은 미국 식민지화를 지지해야 할 것이다.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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