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니치 신문>이 '신닛폰론(新ニッポン論)'의 정기기획 연재를 통해 보수계 월간지 "제군!"(문예춘추사)의 휴간을 심층적으로 다루면서, 일본 논단에서 일어난 핵무장 논의에 관한 역사를 실어 눈길을 끌었다. 신문은 전후 최초의 핵무장 논의 계기가 된 사건을 1964년 10월 중국의 핵실험으로 꼽았다. <중앙공론> 64년 12월호에 현실주의 논객으로 유명한 코사카 마사타카가 칼럼 "국제정치의 다원화와 일본"에서 "일본의 안전보장은 핵병기나 군비의 확장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보장되어 있다"고 말한 데 이어, 진보적 성향으로 유명한 월간지 <세계> (64년 12월호) 역시 "중국에 대한 항의안에 일본은 핵무장을 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표현해야 이 항의가 가치가 있다"고 기술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일본의 핵무장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논단의 대세였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80년부터 깨지기 시작한다.
▲도쿄 이치가야에 있는 일본 방위성 ©jpnews | | <마이니치>는 "<제군!> 80년 7월호에 실린 시미즈 이쿠타로의 '핵의 선택'은 만약 핵무장이 용인된다면 최초의 피폭국이라는 특권을 가지는 일본이야말로 가장 먼저 핵병기를 제조, 보유해야할 필요성이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미즈 이쿠타로(향년81세)는 전후 평화운동에 크게 기여한 사회학자이자 평론가였지만, 반미안보투쟁이 실패한 이후 운동진영이 보여온 움직임에 이견을 제시하며 민족적 입장을 개진하기도 했는데, 위의 <제군!> 칼럼은 시미즈의 이런 성향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이런 <제군!>의 핵무장론 찬성의 입장에 맞서 <중앙공론>은 이노키 마사이치의 시미즈를 겨냥한 "공상적 평화주의에서 공상적 군국주의로"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일본이 핵무장하는 순간 일미상호협력, 안전보장체제는 무너지며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마이니치>에 의하면 "이후 98년 인도, 파키스탄의 핵실험을 통해 서서히 핵무장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더니만 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으로 본격적인 핵무장론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신문은 그 대표적인 것으로 <문예춘추> 06년 12월호에 실린 "좌담회 - 제2차 조선전쟁이냐, 일본의 핵무장이냐"를 꼽았다. 좌담회는 "정부논의가 아닌 이처럼 민간여론을 통해 핵보유 의논을 심층적으로 해 나간다면, 결국 중국과 미국을 움직일 수 있게 되고, 이들이 북핵을 보다 진지하게 생각할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와 더이상 일본의 핵무장론이 터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6월 22일, 마이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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