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보기
일본6대일간지 ㅣ 정치 ㅣ 경제 ㅣ 사회 ㅣ 문화 ㅣ 연예 ㅣ 그라비아 ㅣ 스포츠 ㅣ 역사 ㅣ 인물 ㅣ 국제 ㅣ 뉴스포토 ㅣ 뉴스포토2 ㅣ 동영상 ㅣ 동영상2 ㅣ 독자 게시판
섹션이미지
일본6대일간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연예
그라비아
스포츠
역사
인물
국제
뉴스포토
뉴스포토2
동영상
동영상2
독자 게시판
회사소개
회원약관
개인정보취급방침
광고/제휴 안내
사업제휴 안내
소액투자
기사제보
HOME > 뉴스 > 문화
글자 크게 글자 작게


日 월트디즈니 '지브리'의 빛과 그늘(상)
<특집> '아리에티' 순항으로 후계자 발굴 성공했나?
 
김현근 기자
 
▲ 마루 밑 아리에티     ©지브리

 "14살 소인 아리에티는 교외의 낡은 집 마루 아래에서 인간들의 생필품을 조금씩 빌려서 부모와 함께 조용하게 살고 있다.소인들은 인간에게 모습을 들켜서는 안된다는 룰이 있었으나, 어느 날 그 집으로 요양차 온 소년 쇼에게 아리에티는 모습을 들키고 마는데..."  
 

소인 아리에티와 소년 쇼의 이야기를 다룬 지브리의 신작 '마루 밑 아리에티'가 개봉 6주차 관객 동원 611만명, 흥행수입 73억엔을 돌파해, 지브리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 아리에티는 해외개봉 1호로 한국이 결정됐으며, 9월9일부터 한국의 300여 스크린에서 상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 요네바야시 감독     ©jpnews
지브리의 미야자키 하야오가 깜짝 발탁한 젊은 피 요네바야시(37) 감독의 데뷔작 치고는 성공적이다. 요네바야시 씨가 연출을 해본 경험이 없고, 감독의 자리에 앉은 것이 처음인 것을 감안하며 더욱 그렇다. 
 
이런 호성적에도 불구하고, '야후재팬 영화코너'의 평가는 7.3점. 그리 높지 않다. 재미있다, 만족한다는 평도 많지만, 일각의 팬으로부터는 이런 반응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브리 작품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흥행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아리에티가 있었고, 아리에티가 떠났다. 그래서?" 
"작품 수준은 '고양이의 보은'과 '게드전기' 중간 정도다."


일부 관객은 지브리가 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보러 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지브리가 내놓은 작품 중에 가장 혹평에 시달렸던 '게드전기'에 비하면 이번 영화는 그리 심하지는 않지만 지브리의 팬 입장에서 만족할 수 없다는 의견도 많다. 
 

■ '지브리 스튜디오'와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없어도 '토토로',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런 작품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낸 이가 미야자키 하야오(69). 지브리는 곧 미야자키 감독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학습원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도에이동화(현 도에이 애니메이션)에 입사. tv판으로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 미래소년 코난 등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았고, 79년 '루팡3세 카리오스의 성'에서 장편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 후 내놓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84년), '천공의 성 라퓨타(86년), '이웃집 토토로(88년)'는 지금도 명작으로 불리지만 당시는 일부의 열혈팬이 있었을 뿐 흥행성적이 아주 좋았던  것은 아니다. 

 
이런 미야자키 감독에게 전기가 찾아온 것은 88년. 6-70년대 풍경을 그린 '이웃집 토토로'가 비디오로 발매되면서 대히트를 친 것이다. 이듬해 89년 4월 '토토로'는 tv방영이 되면서 시청률을 21.4% 기록, 그의 과거 작품이 재평가받기 시작한다.
 
미야자키 감독은 그후 '마녀 우편배달부 키키'와 '붉은 돼지'를 내놓으면서 일본의 국민작가로 올라섰고, 97년 원령공주를 내놓으면서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한때 이 작품을 끝으로 은퇴한다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로 그는 과거 자신의 만들었던 애니메이션의 모든 요소를 원령공주에 집약했다. 숲과 자연, 동물들 속에서 자란 소녀, 생명, 집단 신 등.
원령공주는 개봉후 관객동원수 1,420만명을 기록, 애니메이션이면서도 당시 일본영화 흥행수입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 원령공주    

원령공주가 천만 관객 시대를 열어젖힌 후 미야자키가 내놓는 작품은 그 전 작품과 획을 그을 정도로 메가히트를 기록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2,350만명(01년),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1,500만명 (04년), 벼랑 위의 포뇨(08년)가 1,200만명을 기록하면서 미야자키 하야오 곧 지브리의 작품은 천만명 이상의 관객 동원력을 과시했다.

미야자키의 작품에 이렇게 관객이 몰리는 이유는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만 갖고 있는 화려한 '공중신'과 일상과 환타지를 오가는 상상력때문이다. 그가 일일이 수작업으로 그려내는 캐릭터와 비행체의  화려한 움직임, 캐릭터들이 발빠른 움직임과 액션신은 대형 스크린에서 봐야 제 맛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미국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등장하는 공중신도 대부분 미야자키 하야오가 '나우시카' '라퓨타' 등에서 보여준 구름 속 전투신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한 것이 많았다. 디즈니에서 내놓은 'up(일본명:칼 할아버지의 하늘을 나는 집)'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향력은 실사영화로 확장된다. 자칭 미야자키의 팬이라고 하는 제임스 카메론이 내놓은 3d 빅히트작 아바타는 '천공의 성 라퓨타' 및 '나우시카'의 표절 논란이 일었다. 그 만큼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 세계 애니・영화업계에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했다. 
  
미야자키 감독이 내놓는 작품마다 빅히트를 기록하다 보니,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이슈가 되기도 했다. 최근 그는 아이패드를 만지고 행위는 '자위행위'와 같다라는 발언으로 젊은 세대의 반발과 함께 화제를 불러왔다.

"당신이 지금 손으로 만지고 있는 그 게임기 같이 생긴 것과 묘한 손놀림으로 문지르는 모습은 역겨울 뿐으로 내게는 아무런  느낌도 감동도 없습니다. 혐오감이라면 있습니다. 조만간 전철 안에서 그 묘한 손놀림으로 자위행위와 같이 문지르고 있는 사람이 늘어나겠죠. 전철 안이 만화를 읽는 사람으로 가득했을 때도, 휴대전화를 만지는 사람이 가득했을 때도 질려왔습니다."


'지금 일본의 자라나는 세대가 너무 버추얼에 파묻혀 있다'며 직접 손으로 흙을 만져보는 등 현실 세계에 직접적인 관심을 호소했던 그로서는 당연한 의견으로 보인다. 이런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해 '마지막 국민작가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저서를 펴낸 평론가 사카이 씨는 이렇게 분석한다.
 
"일본은 버블이 붕괴되는 시기와 맞물려 엔고 디플레이션으로 물건이 넘치고, 일이 단순노동화됐다. 살아가는 풍경이 균일화되면서 사회전체가 100엔 샵 가게처럼 변해버린  것이다. 이른바 "물건, 일, 풍경" 등 3개의 균일화 시대다. 그 가운데 미야자키 하아오 감독은 가까에 있는 물건에 집착해 도구를 아주 세심하게 그리고, 일이나 풍경도 똑같은 방식으로 꼼꼼하게 그린다. 그는 그렇게 균질화되는 사회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보충함으로써 팬의 요구의 답해왔던 것이다."
 
 
■ '미야자키 하야오'와 후계자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차기작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가 1순위 미야자키 하야오. 영광이 컸던 만큼 그늘도 깊었다. 
 
스스로 애니메이션의 노예라 칭해온 미야자키 감독에 대해 한 전문가는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은 수백명의 분업으로 이루어지지만 그는  전 공정을 세세하게 총괄해 작화도 스스로 철저하게 수정해서 마무리 한다. 막대한 노동량을 동반한 중앙집권적 연출이다. 이러한 작법으로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10개나 감독한 것은 기적"이라고 말한다.
 
많은 스태프를 거느리면서도 중요한 부분은 자신이 하지 않고서는 못배기는 성질 때문이다. 지브리의 '스즈키 도시오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장편 애니메이션의 경우 보통 사람들을 끌어모아서 하는 것이지만,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은 다르다. 그는 시간과 체력과 기력이 허용하는 한 혼자서 끝까지 해버리는 사람이다. 그의 작품은  곧 개인이 제작하는 것을 여러사람이 도와주는 것이다."
 
지브리는 상업적으로 대히트를 쳤지만, 여전히 그림콘티를 그리는 작업부터 마무리까지 미야자키 이외에는 없었다. 명색이 '스튜디오'인데 지브리에는 왜 다른 인재가 없는가라는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이쯤에서 스튜디오 지브리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스튜디오 '지브리'는 나우시카가 제작된 것을 계기로 85년에 설립됐다. 젋은시절 도에이에 입사해, 애니메이터의 낮은 처우에 반발했던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지브리'를 처음부터 정사원제 목표로 설립했다.
이 정사원제는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건담을 만들어낸 스튜디오 '선라이즈' , 드래곤볼, 원피스를 만들어낸 '도에이'도 주요 핵심 멤버를 제외하고 필요할 때마다 컷당 얼마씩 주고 프리랜서 개념으로 애니메이터를 고용해서 쓰기 때문이다. 지브리는 '마녀 배달부 키키'(89년) 후부터는 애니메이터 전원을 정사원으로 채용했다. 문제는 이런 안정적인 환경에서도 차세대가 자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스튜디오 지브리가 키우려고 했던 사람들도 있었으나 "(이곳에 있으면) 공부가 되고, 자극도 되지만 더 높은 레벨은 결국 미야자키 본인이 할 수 밖에 없다"라고 말하고 그만두는 사람도 많았다. 미야자키 감독의 뛰어난 실력은 오히려 지브리 내에 차세대 주자가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된 것이다. 

 
일본의 한 전문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가르치고 있는 애니메이터는 "지브리에 들어가는 순간, 미야자키 하야오의 손발이 될 뿐이다"라며 재능이 꽃피기 어렵다는 부분을 지적했다.  
 
물론, 미야자키 감독이라고 해서 애당초 후계자를 키우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미야자키 감독 자신도 스스로 "왜 젊은 내가 없는가"라고 초조함을 드러냈을 정도로 그 누구보다 더 후계자를 키우고 싶어했다.   

▲ 아리에티 무대 인사     ©jpnews/山本宏樹

■ 지브리의 젊은 피 실험

지브리의 후계자 실험은 그 동안 몇 번 있었다. 93년 tv에서 방영된 '바다가 들린다'는 그 첫번째 시도. 당시 '붉은 돼지'를 끝낸뒤 미야자키 감독이 차기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스즈키 프로듀서는 젊은 스태프에게 새로운 작품을 만들게 하자고 제안했다. 이때 '바다가 들린다'의 애니메이션화를 바라고 있던 모치즈키 도모미가 기용된다.
 
'바다가 들린다'는 지브리 작품 중 지브리를 대표하는 두 감독 '다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손을 거치지 않은 첫 작품. 감독으로 기용된 모치즈키는 그전부터 사춘기 남녀의 연애감정을 신선하게 묘사해, 미야자키 감독으로 그 수완을 높이 평가받았다. 이 작품은 오후 4시에 방영되었음에도 이례의 시청률인 17.4%를 기록했고, 젊은이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다.그러나 모치즈키 감독은 이 작품 이후로 지브리에서 발표한 작품이 없다.  
 
▲ 곤도 요시후미  
두번째 시도는 미야자키 감독의 10년 후배이기도 한 곤도 요시후미.
 
곤도는 1970년대 이후부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을 작화면에서 뒷받침해오면서 지브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재였다. 곤도는 다카하타가 '반딧불의 묘'를 미야자키가 '이웃집 토토로'를 만들 때 두 감독이 그를 두고 쟁탈전을 벌일 정도였다. 다카하타는 "다른  사람은 다 필요 없지만 곤도만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고, 미야자키도 '곤도를 쓸 수 없다면 작품을 안 만들겠다"라고 했다. 결국 스즈키 프로듀서가 중재에 나서 미야자키 감독은 그림을 그리는 재주가 있다는 이유로 곤도는 다카하타 감독의 '반딧불의 묘' 제작에 참여시킨다.
 
이런 곤도 씨가 감독으로 데뷔한 작품이 바로 95년 개봉된 '귀를 기울이면'.  청춘물이면서도 환상적인 색채를 가미한 이 작품은 지브리의 차세대 스타 감독 탄생을 예고했다.
 
그러나, 이때 아직까지 50대로 왕성한 창작욕을 가지고 있던 미야자키 햐아오는 곤도 요시후미에게 감독의 자리를 맡겼음에도 불구하고, 연출의 세세한 부분까지 간섭했고, 이것이 충돌의 원인이 됐다. 작품은 완성됐지만 가뜩이나 몸이 약하던 곤도 씨는 '귀를 귀울이면'이 나온지 2년 후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의 지브리 첫 감독작이 유작이 되고 만 것이다. 
  
미야자키 감독의 그 다음 시도는 호소다 마모루에게 향한다. 2000년 당시 업계에서 어느정도 주목을 받고 있었던
호소다 마모루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섬머 워즈'로 현재 일본에서 가장 각광받는 차세대 감독이다. 미야자키 감독은 그런 그의 재능을 높이 사서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감독으로 발탁한다.
 
그러나, 호소다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제작으로 시간과 인력에 쫓기고 있던 '지브리'로부터 인력 지원도 받지 못한 채 혼자 고군분투하다가 제작이 중지되면서 지브리와 안좋은 관계로 끝나고 말았다. 호소다는 자신이 끌어모은 애니메이터에게 급여도 지불하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면서 '나의 애니메이션  인생이 끝났다'라고 이야기했을 정도다. 그가 콘티까지 짜서 제작중이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결국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이 감독을 맡아 전혀 다른 모양의 성으로 변경, 2004년에 개봉하게 된다. 

 
▲ 호소다 마모루가 제작하던 하울의 움직이는 성    
▲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지브리의 후계자 문제는 2006년 7월에 개봉한 게드전기에서 피크에 달한다. 이때 감독을 한 인물은 다름 아닌 미야자키 감독의 아들이자 당시 지브리 미술관장이었던 미야자키 고로. 그러나 미야자키 고로는 애니메이터로서의 경험이 부족해 '게드전기'의 원작자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는 수준의 작품을 만들면서, 개봉 후 혹독한 평가에 시달렸다. 아버지인 미야자키 하야오조차도 시사회에서 '30분 앉아있었는데, 3시간 있었던 것 같다"고 했을 정도니까.  

이때부터 지브리에서 후계자가 나오는 것은 불가능한 게 아닌가 하는 견해가 업계에 떠돌았다. 즉, 지브리에 남은 것은 디즈니처럼 과거의 영광을 바탕으로 캐릭터 판권사업이나 지브리 미술관 등으로 얻는 수입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것 밖에 남지 않았다는 의견이 팽배했었다. 

- '日 월트 디즈니 '지브리'의 빛과 그늘 (하)'로 이어짐 

 

 

ⓒ 일본이 보인다! 일본전문뉴스 JPNews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기사입력: 2010/08/26 [12:24]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게드 전기는 정말 한숨만 나왔다 에휴 10/08/26 [15:51]
아리에타도 별로인가 수정 삭제
관객 동원력이 대단하네요. 우와 10/08/26 [18:52]
여기저기서 많이들 들려와서 유명하구나..라고는 생각했는데
관객동원력이 엄청나군요..'' 수정 삭제
김현근기자님 미야자끼빠인건 알거든요 역시나 10/08/26 [21:12]
물론 이런저런 근거를 기준해서 글을 쓴다는건 알겠는데... 본인이 애니메이터출신이시고 미야자끼하야오를 굉장히 좋아한다는 이유로 뭐든지 지브리를 흉내냈다는 식으로 적으시면 곤란해요. UP과 아바타가 지브리를 배겼다는 등의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보고 그런 말을 하는지.. 예전엔 그런글도 쓰셨죠? 아바타에서 활을 쏘니 모노노케히메를 배꼈다... 미야자키를 좋아하는 건 알겠지만... 심적근거말고 물적근거를 대놓고 글을 썼으면 하네요. 비행기 날라가다고 다 지브리 배낀것을 아닙니다. 수정 삭제
'고양이의 보은'과 '게드전기' 중간... 이게 정답이네요. 보고온이 10/08/26 [23:43]
끝나고 엔딩곡 나오는데 이 황당함.... =.= 심지어 음악도 똑같은 분위기 돌림노래 나오는 거 같고... 저번 게드전기 감독건도 그렇고 이번 음악 선정도 그렇고.. 스즈키 프로듀서의 감각이 좀 녹슨 게 아닌가 싶더라구요 --;
그래도 적어도 게드전기처럼 그림이 촌스럽지는 않으니...ㅋㅋ 수정 삭제
역시나님 미야자끼 까인건 알거든요. 역시나님 10/08/27 [08:00]
역시나님 수준으로 글을 달아드립니다. 역시나님 미야자끼 까인건 알거든요~~~ 억지로 있는 사실까지 없다고 하는건 곤란해요~~~ 심적근거 뿐아니라 물적근거도 그 작품들을 보면 누구나 알수있는 수준입니다. 또한 감독 본인도 영감을 얻었다고 말할정도니 말입니다. 베꼈다라는 표현보단 모방했다. 영감을 얻었다 이정도가 옳은 표현이라고 봅니다~~~!! 모방이없다면......이미 이세계의 발전도 없었을테니말입니다. 모방이 나쁜거라는 표현을 기자는 한적이없습니다. 님혼자 열폭하고 있을뿐이지요~~~위 작품들처럼 건전한 모방은 둘 모두에게 자극이되고 발전의 원동력이 됩니다. 수정 삭제
역시나님 글을 제대로 이해하고 쓰세요^^ 역시나 10/08/27 [10:33]
김현근기자님의 블로그라도 가서 한번보고 글을 쓰시는지^^ 그리고 무슨근거로 제가 미야자끼까라고 하는지도 근거를 함 대보시죠.. 기자는 모방이 나쁘다고한적없죠.. 저도 나쁘다고 한적 없다는 거죠... 다만. 김현근기자님의 평소글을 보면 미야자끼를 절대적 기준으로 놓고 조금이라도 미야자끼작품과 비슷한 설정이 나오기만 하면 모든것을 미야자끼의 영향이라고 하죠.. 그 점을 말하는 겁니다. 텍스트를 제대로 읽고 반론하세요^^ 수정 삭제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름값으로 버티고 있는거라 봅니다. gg 10/08/31 [00:19]
이미 새로운 신선함은 바닥났죠. 다만, 일본인들은 "지브리"에 대한 자부심을 지키고 싶어하죠. 작품의 재미, 완성도와는 관계없이 미야자키가 만든 "지브리"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신작이 나오면 꾸준히 봐주고 있다는 것. 그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요. 기사에서 말대로,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개인 역량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만큼 그가 더이상 애니를 만들수 없게 되는 날이 "지브리"의 사망일이 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농후합니다. 수정 삭제
그래도 미야자키 하야오 님... 라면 10/09/11 [23:36]
미래소년 코난... 참 상상력을 많이 자극했던 만화영화였습니다.
지브리가 영원하지 못하더라도, 그의 작품 들이 내 마음에 불어 넣어 주었던
상상의 날개는 추억으로 간직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소중하게 반추하고 싶네요.. 수정 삭제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관련기사목록
[일본 애니] 日 만화계 현실 다룬 애니 내달 방영! 김현근 기자 2010/09/16/
[일본 애니] 日 월트디즈니 지브리의 빛과 그늘(하) 김현근 기자 2010/09/10/
[일본 애니] 日 월트디즈니 '지브리'의 빛과 그늘(상) 김현근 기자 2010/08/26/
[일본 애니] "미야자키 감독의 '포뇨'를 뛰어 넘겠다!" 김현근 기자 2010/07/17/
[일본 애니] 에반게리온 실물 모형, 후지큐에 공개! 야마모토 히로키 2010/07/15/
[일본 애니] 지브리 신작 예매율, '포뇨' 3배 넘어 온라인 뉴스팀 2010/06/19/
[일본 애니] 도쿄 국제 애니메이션 페어 부스걸 야마모토 히로키 2010/03/27/
[일본 애니] 日 국제 애니페어, 아바타 영향으로 3D 대세? 야마모토 히로키 2010/03/26/
[일본 애니] 메이저로 진입한 애니송 인기이유? 온라인 뉴스팀 2010/01/08/
[일본 애니] 日 겨울, 그들이 코스프레에 빠진 까닭 김현근 기자 2010/01/02/
[일본 애니] 겨울 코미케,"애니 캐릭터가 된 저,어때요?" 김현근 기자 2009/12/30/
[일본 애니] 지브리 차기작은 "더부살이 아리에티" 김현근 기자 2009/12/17/
[일본 애니] 원피스 10번째 극장판 애니메이션, 폭발적 인기 온라인 뉴스팀 2009/12/14/
[일본 애니] 日 감독, 스타워즈 애니 시리즈 참여 이유? 김현근 기자 2009/12/01/
[일본 애니] 고베 실물 '철인28호' 특별 주민등록표 교부! 김현근 기자 2009/11/30/
[일본 애니] "시간을 달리는 소녀" 12년만에 실사화 김현근 기자 2009/11/12/
[일본 애니] 오타쿠들의 잔치? 피규어 쇼에 가다 안민정 기자 2009/11/04/
[일본 애니] 日서 겨울연가 애니메이션 방송가능할까? 안민정 기자 2009/10/16/
[일본 애니] 실물 철인 28호로 활기 띠는 고베 상점가 야마모토 히로키 2009/10/05/
[일본 애니] 실물 철인 28호, 드디어 베일 벗다! 야마모토 히로키 2009/10/04/
최근 인기기사
일본관련정보 A to Z
  회사소개회원약관개인정보취급방침 ㅣ 광고/제휴 안내사업제휴 안내소액투자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한국> 주식회사 올제팬 서울 송파구 오금로 87 잠실 리시온 오피스텔 1424호 Tel: 070-8829-9907 Fax: 02-735-9905
<일본> (株) ジャポン 〒169-0073 東京都新宿区百人町 2-8-13 FISS 605号
Tel: 81-3-6278-9905 Fax: 81-3-5272-0311 Mobile: 070-5519-9904
Copyright ⓒ JPNews. All rights reserved. Contact info@jpnews.k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