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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로열패밀리는 백제 왕족!"
일본인을 통해 본 일본사회(3) -한일고대사 연구자 오다 노부오 씨
 
김현근 기자
8월 15일을 앞두고 일본은 천황제 수호를 외치는 우익차량의 가두선전 활동으로 거리가 시끄러워진다. 그들은 확성기로 구일본군가를 틀어대며, 러시아에 빼앗긴 북방영토를 되찾아와야한다고 역설한다. 야스쿠니신사를 총리가 참배해야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재일교포 등 외국인을 추방하라는 이야기도 서슴치 않는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이 만세일계(万世一系)를 주장하는 천황제를 위한 것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아키히토 현 덴노(天皇)는 2001년 12월 67세 생일을 맞이해 가진 기자회견에서 “간무천황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 자손이라는 기록이 있고, 한국과의 연고를 느낀다”고 발언했다. 
 
자신들의 본류가 한반도에서 왔다는 아키히토의 덴노의 이 같은 발언은 만세일계(万世一系)를 주장하는 일본 우익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들이 존립 근거로 삼는 천황제 및 황국사관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발언이었다. 
 
당시, 이 발언은 일본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지만, 천황제를 터부시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일본언론은 이 사실을 조용히 묻어버렸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도 천황가의 만세일계란 거짓이며 엄연히 백제계 후손임을 인정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대사 연구자 우다 노부오(58) 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우다 노부오 씨는 "고대 일본의 로열패밀리는 오로지 백제왕족이어야만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지난 97년  '일본이 백제의 꽃밭이었다'는 내용을 담은 '백제화원(百済花苑)'이란 책을 한일양국에 출간해 화제를 모은 그는 현 천황가가 백제의 후손일 뿐 아니라, 천황가내의 제사의식조차도 한반도에서 왔다고 거리낌 없이 말한다.

 
기후에서 태어나 나라공과대학을 졸업, 소니에서 엔지니어로서 3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도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한일고대사를 소설로 유쾌하게 풀어낸 그는 지금도 한일간의 고대사를 추적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오는 9월 대백제전이 열리는 공주・부여에 일본사람들을 이끌고 찬란한 백제문화 탐방에 나설 예정이다.
 
제이피뉴스는 대백제전을 앞두고 우다 노부오 씨를 만나 고대 일본과 백제와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 우다 노부오     ©jpnews
- 소니에서 퇴직한 뒤 얼마나 됐나. 요즘 생활은?

"4-5년 됐다. 현재, 대학에서 사무일을 보면서 연구 및 집필, 강연을 하고 있다."

- 한국에서도 출간된 백제화원은 소설이긴 하지만 일본 천황과 왕족들이 백제인임을 분명히 하고, 일본 내 고구려, 백제, 신라의 말이 어떻게 달랐는지 파헤치는 등 따분한 역사서와 달리 당시의 사회상과 분위기를 실감나게 보여줬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백제화원'을 쓴 계기는 무엇인가?
"내 부모도 옛날 교육을 받아 황국사관을 가지고 있었고, 원래 한국에 대해서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별다른 근거 없이 부모가 늘 조선인이 어쩌고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라(奈良)에서 대학교를 다닐 때 한국인 친구를 만났다. 
 
같은 클래스였는데 처음에는 전혀 이야기를 나누지 않다가 친해졌다. 그런데, 그 친구가 아주 멋있는 녀석이라는 것이다. 그 동안 생각해왔던 '한국'이라는 것이 부모가 이야기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부모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역사에 의문을 가지고 일본서기를 펼쳐보니, 이건 '조선서기'가 아닌가? 그것이 계기다." 

- 일본서기는 일반인들도 쉽게 보나?
"일본서기, 고서기를 연구하는 사람은 꽤 있지만, 보통사람은 관심이 없다. 일본서기에 일본에 관한 내용이 적혀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일본서기의 내용 삼분의 일은 고구려,백제,신라에 대해서 적혀있다. 이 이야기를 일반인들에게 하면 놀랄 것이다." 

- 이공계 출신이면서 일본서기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특이한 경우 같은데...
"나라에 대학을 다닐 때는 역사에 전혀 흥미가 없었다. 계기는 글을 쓰면서부터다."
 
- 글을 쓰면서부터란?
"소니에서 컴퓨터 메모리쪽 엔지니어 일을 했다. 방송국에 쓰이는 천만엔짜리 비디오 카메라 도면을 컴퓨터로 그린다거나 했는데,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스트레스 해소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피곤한 일이 있던 날이면 다른 사람은 술을 마시거나 했지만 나는 글을 썼다. 예를 들어 싫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악역으로 설정하고 소설속에서 분풀이를 한다거나."

- 백제화원도 그런 가운데서 나온 것인가?
"그렇다. 물론 준비기간은 꽤 걸렸다. 나는 이공계였지만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아날로그인 문장으로 스트레스 해소를 한 것도 있고, 논리로 추구하는 것은 이공계가 더 잘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왜 대규모 병력을 보낸 백촌강 전투에서 패배했는데도 일본 내 정권은 쓰러지지 않았던 것일까, 이런 부분에 대해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꿰어맞춰봐야 하니까. 역사소설이란 이공계가 아니면 쓸 수 없는 부분도 꽤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 고대 일본 조정이 모두 백제인이었으며 백제어를 썼다고 하는데.
"맞다. 당시 궁정은 모두 백제말을 썼다. 여기서 궁정이란 천황 및 황족 패밀리 등 로얄 패밀리를 뜻한다. 소설 안에서도 백제말을 못 알아들으면 놀란다거나 하는 내용이 있다. 지배층의 핵심 언어는 백제말이었다."
 
- 백제어를 썼다는 보다 구체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지금의 나라현, 그 당시 궁전이 있던 '아스카무라(飛鳥村)'는 백제대사라고 불리는 절이 있었고 백제관음도 있었다, 강도 백제강이라 불렀다. 궁극적으로 수도에 백제궁전이 있었다. 이런 이름은 지배층과 관계없이 붙일 수가 없다. 즉, 백제인이 한반도에서 건너 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인간만 오고 언어가 따라오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전례가 있다. 중세, 프랑스의 노르만인이 영국을 정복했을때 왕궁에서 상류층은 모두 프랑스어를 썼다. 영어의 school 등의 단어에 프랑스어가 들어가 있는 게 그 예다. 한반도에서 일본에 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지배층은 말을 바꾸지 않고, 무덤을 바꾸지 않는다." 
 
- 또 다른 근거는?
"일본서기가 백제를 칭찬하고 있고, 신라는 깎아내리고 있다는 점도 들 수 있겠다. 고구려에 대해서는 중립적이다. 또한 상당 기간 사절이 와도 통역한 흔적이 없었다. 그러나 660년 백제가 망하고, 한반도가 신라로 통일된 후로 교류가 끊어진다. 그 후 일본에서는 직접 중국으로 사절단을 파견하게 됐다. 그때 조난율도 많았다는 것도 증거. 예전처럼 한반도의 해안선을 따라서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근거는 663년 일본에서 4만명을 구원병으로 보냈다는 점이다. 현재 일본인구로 치면 100만명 정도라 할 수 있다. 당시 일본은 그렇게 풍요로운 나라가 아니었음에도 수많은 배를 건조했다. 게다가 아스카에 있는 조정(몇천명)이 2개월에 걸쳐 전부 규슈로 이동, 참모본부를 두었다. 보통 막부시대의 쇼군(将軍)이라면 이해가 가나, 국가 자체가 궁전을 짓고 싸운다는 것? 백제와 관계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신라나 고구려가 어려울 때도 있었는데 그때는 모른척 했다."  
 
- 백제 멸망 당시 일본 조정이 왜 구원병을 보냈다고 생각하나?
"자신들이 일본국민을 지배하는 근거가 백제의 왕계라는 것이었다. 그 본거지가 사라진다는 것, 그 근간이 사라진다는 것은 큰일이었다. 그러나 결국 4만명이 거의 전멸했다. 당나라는 4-50척이라고 해도 세계적인 함대였고 일본이 파견한 배는 400-500척라고 해도 급조된 것으로 상대가 안됐다. 보통 이렇게 병력을 파견하고 나서 철저하게 패배해버린 왕조는 무너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나카노오에 왕자가 백제계였기때문에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구원병을 보내지 않고 그냥 놔뒀다면 그게 더 여론이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모국이 멸망하고 있는데 나카노오에 왕자가 아무것도 안한다? 그게 더 문제였다는 말이다. 즉 조국을 구제해야된다는 것 자체가 아무런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는 것, 결국 대실패로 끝났지만 여론이 납득했기 때문에 정권이 쓰러지는 일은 없었다.
 
일례로 제1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의 공격을 받고 영국 상선이 가라앉았다. 영국이 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자, 그때까지 팔짱을 끼고 있던 미국은 참전을 결정한다. 1차대전때 50만명을 배로 보냈다. 만약 미국이 독일이민으로 만들어진 나라였다면 달랐을 것이다. 그때 피로 연결된 동족의식의 스위치가 켜진 것이다."

- 그런 뿌리를 가진 일본은 140년전 메이지유신 후 아시아를 떠나 유럽으로 가자는 '탈아입구'를 주창했다.
"맞다. 서구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었고 아시아를 멸시하는 것으로 해결한 것이다."

▲ 우다 노부오     ©jpnews
 
- 백제는 일본에서 '구다라'라고 부른다. '큰 나라'라는 한국어가 '구다라'로 변했다고 하는데.
"나는 '큰나라' 보다는 '그대의 나라'가 변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기미가요(君が代)에서 말하는 君 '기미' 즉 왕을 뜻하는 '그대'가 변한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즉, '구다라'는 '그대의 나라'가 변한 말이라는 것이다."
 
- '그대의 나라'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 가설로는 당시 기록하는 서기관이 백제지배층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붙였던 것이라고 본다. 일례로 신라는 시라기(신라), 고구려는 고쿠리(고구려)라고 불렀다. 그런데 백제만은 백제라 부르지 않았다. 왜 그럴까 '나의 나라'가 아닌 '그대의 나라'가 더 높은 의미를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던 것으로 추정한다. 일본어로도 '큰나라' 보다 '그대의 나라'가 더 가깝지 않는가."
 
- 백제화원을 쓸 때 누군가의 조언을 받았나?
"조언은 전혀 없었다. 혼자서 썼다. 다만, 그 책을 내기 위해 관련 서적을 1,000권 정도 읽었다. 자료는 사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빌리기도 하고. 물론 전부 일본쪽 자료를 바탕으로 썼다."

- 일본서기를 독해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일본서기는 원문이 아니라 해설서를 참조했다. 원문은 전부 만요가나와 한자로 되어 있어 어렵다. 물론 해설서도 읽기는 쉽지 않고, 무엇보다 재미가 없다. 정부의 기록이니까. 90프로가 따분하다."
 
- 쓰면서 고생한 부분은 없었나?
"당시 여자들 복장 그게 좀 어려웠다. 상상력을 동원해야했으니까. 그렇게 뒤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당나라 시대의 복장을 참고해서 썼다."
 
- '백제화원'은 어느 정도 논픽션인가?
"물론 이야기는 픽션이지만, 스토리상 일어난 일과 사건은 모두 일본서기에 적힌 순서대로 썼다."

- 일본내 반응은?
"일본쪽 반응은 좋았다. 3쇄까지 갔다. 독자로부터 편지도 꽤 왔다. 종래의 황국사관이 많이 달랐다는 내용과 재미있었다는 반응이었다. 러브스토리가 주를 이루다 보니 여성 독자로부터의 반응도 좋았다."
 
- 이 책이 우익들로부터 반론받거나 했나?
"없었다.  재미난 점은 우익들은 책 안 읽는다는 점이다. 특히 황국사관에 젖어있는 사람들일수록 책을 읽지않는다. 오히려 이걸 바탕으로 연구하는 대학 교수를 2-3명 만난 적이 있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 고사기(古事記)는 참조하지 않았나?
"고사기는 일본서기보다 더 오래된 자료지만, 민간전승에 가깝다. 일본서기는 정부의 공식적인 기록이므로 일본서기를 바탕으로 썼다. 물론 고사기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양쪽을 비교해서 읽다보면 두 책에서 똑같이 나오는 이야기가 있으니까." 
 
- 그래도, 일본에서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대부분 전국시대나 메이지유신 전후 시기에 관심이 많은데 일본서기는 조금 뜬금 없지 않나?
"가장 큰 이유는 전국시대나 에도시대 등은 막대한 자료가 있다. 즉 상상력을 발휘해서 놀 수가 없다. 사실(事実)을 따라가도 힘들다. 그러나 일본서기는 단 한 권이므로 여러가지 놀이가 가능하다. 1년에 세 가지 사건만 적혀있기도 하고,  많아 봤자 한 해 10가지 정도의 사건 밖에 적혀있지 않다. 게다가 그 내용도 단순하게 몇 월에 무엇을 했다. 몇 월에 무엇을 했다라고 적혀 있는 정도다. 그 행간을 상상력으로 채우는 것이다.
 
반대로, 토요토미 히데요시 시대로 오면 방대한 자료로 인해 자칫하면 몇월 몇일 이건 틀렸지 않느냐고 추궁당할 수도 있다. 학자들은 자료를 잘 활용하기 때문에 반론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 같은 재야연구자는 자료가 많은 시대와 맞서기 어렵다. 역사적 자료가 많은 측이 이기지만, 결론적으로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 한국 현지 취재는?
"현지 취재는 없었다. 쓰고  나서 한국에 갔다."
 
- 현지에 가니까 어땠나?
"부여에서 감동했다. 너무 아스카와 닮아서. 한국은 한 10 번 간 것 같다."
 
- 부여와 아스카가 어떤 점이 닮았나?
"부여의 산이 전부 아스카지역의 산의 형태였다. 아마 백제인이 아스카에 왔을 때 역시 자신들이 살았던 곳과 닮은 곳에 수도를 세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 백제화원 이후 비극적인 황후 소가 야마토 히메의 생애를  다룬 신라화원도 펴냈다

- 요즘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고대사 강연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까치에 대한 이야기로 고대사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를 듣고 싶다.
"까치는 일본에서 거의 볼 수 없는 새다. 그런데, 일본서기에 '까치가 둥지를 만들고 알을 낳았다'라고 적힌 부분이 있다. 공식적인 역사서에 일부러 한 항목을 두고 그런 것을 적어두있다는 것은 기록하는 사람이 까치에 대한 특별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 고향의 새가 이곳까지 날아와서 알을 낳았구나'라는 내용을 어떻게서든 기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즉, 한반도에서 살던 사람이 일본으로 이주해왔다는 증거다."
 
- 한반도에서 꼭 백제계만 넘어온 것은 아니다.
"맞다. 고대 한반도에서는 백제계와 신라계가 동시에 왔다. 그러나, 먼저 아스카에 먼저 자리를 잡은 지배자는 백제인이었다. 당시 서일본은 따듯하고 비옥했으며 교통편이 좋았다. 그러나 동쪽은 산이 험해 개발하기도 힘들었고, 추웠다. 거의 원야였으니까. 내 추측이지만 지배계급인 백제인은 한반도에서 사람들이 건너오면 백제출신은 여기에 있어라하고, 신라인은 추방은 아니지만 동쪽으로 가라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신라계는 고생하면서 일본의 동쪽을 개발하게 됐다고 본다."

- 즉,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서일본은 백제계, 도쿄를 중심으로 한 동일본은 신라계가 자리를 잡았다는 말인가?
"그렇다. 내 생각이지만, 일본의 역사는 백제인과 신라인간의 싸움이라고 본다. 오늘날 일본은 동일본(도쿄를 중심으로 한 간토권)과 서일본(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권)을 크게 갈리는 것도 그것이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한국도 전라도와 경상도 양쪽이 말이 다르지 않나? 지금도 다르지만 옛날에는 더욱 달랐을 것이다. 지금 일본에서도 서일본과 동일본의 일본어 악센트가 정반대다. 그 이유에 대해 어떤 학자도 모른다. 내 가설로는 서일본에는 백제계가 많았고, 동일본은 신라계가 많아서 그게 각각 발전한 것으로 본다.

 
일본인은 두 지역 언어 차이를 못느끼지만, 유럽사람에게 물어보면 악센트가 스페인어와 포루투칼어보다도 다르다고 한다. 만약 유럽이었다면 간사이어, 간토어 등 두가지 언어가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다르다는 것은 말이 아니라 악센트가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오사카에 가서 간토식 억양으로 비가  온다고 하자, 사탕? 안 떨어지는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일본어로 비를 뜻하는 아메'あめ'는 '사탕'이라는 뜻도 있다) 대부분 악센트가 서로 정반대다. 양쪽이 그 만큼 달랐다."
 
- 당시 일본은 그만큼 한반도와 밀접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한국의 삼국 역사를 보면, 중국 삼국지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백제의 힘이 커졌다가, 그 다음에는 고구려의 힘이 세지고, 마지막은 신라가 강해지고. 그것을 고스란히 일본서기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 고대 일본의 지배층과 지금 덴노(天皇)와의 관계는 어떤가.
"하나 예를 들겠다. 1989년 지금의 헤이세이 천황 즉위식때 제단 위로 올라가서 30분 정도 자신이 천황이 되었다고 신에게 보고하는 시간이 있다. 그런데 유독 그곳에만 카메라가 들어갈 수 없었다. 왜냐 조선어로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은,-는 등의 말이 들어간 문구를 읊었을 것이다."  
 
- 보다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 
"있다. 전후 기마민족이동설로 일본역사계에 화두를 던진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 선생이 쇼와 천황(히로히토)을 만나러 간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죄송합니다. 폐하에 대해 반도에서 왔다는 등 이상한 이야기를 했습니다'라고 말하자 쇼와 천황은 '아니야, 우리들도 조선출신이야'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에가미 선생은 그것이 일생에 가장 충격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 그 이야기를 에가미 나미오 씨로부터 직접 들은  것인가?
"에가미 나미오 선생이 한국의 김용운 교수에게 직접 이야기했고, 김 교수로부터는 내가 직접 들었기 때문에 틀림 없다. 천황가가 한반도에서 왔다는 근거가 또 있다.
 
첫번째 '어머니'를 일본어로 오카아상이라고 하는데, 황실에서는 '오모'라고 말한다. '오모'는 어머니가 아닌가.
두번째, 천황계에서 젓가락을 잘 쓰지 않고 숫가락을 쓴다. 마지막으로 일본인들의 기본적으로 앉는 자세인 정좌(正座)를 하지 않는다. 즉 무릎을 꿇지 않고 양반다리를 한다는 점이다." 
 
- 일본과 고대 한반도와의 관계를 밝혀줄 고분은 현재도 발굴하지 못하게 하는데. 
"그렇다. 황실업무를 주관하는 궁내청이 고분발굴을 못하게 하고 있다. 예전(쇼와시대)에는 한반도와 관련된 유물이 마구 나오니까 그게 싫어서 그랬는데 지금은 그게 본질적인 이유가 아니다."
 
- 지금은 어떤 이유로 막고 있다고 생각하나?
"진짜 이유는 유전자 분석 기술이 향상되어서, 현재 황태자의 타액만 가지고도 126대 위로 거슬러올라가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y염색체란 아버지로부터 남자아이로밖에 이어지지 않으니까. 과거 천황 묘의 뼈와 비교하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그런데, 이게 다르면 만세일계가 부정되니까. 즉,  한반도로부터 건너온 유물 이전에 과학적으로 규명될까봐 궁내청이 절대 반대하고 있다."
 
- 우노 선생은 만세일계는 현실성이 있다고 보는가?
"사실 그런 검증절차가 없더라도 천황의 만세일계는 단절되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일본 우익이 만세일계를 정말로 주장하고 싶다면, 여성천황 밖에 없다. 어머니로부터 여자아이가 태어나는 경우의 수는 오로지 하나니까."
 
- 만세일계가  무너지면 일본에서 큰일나는가?
"아마도...한국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일본 내에서는 만세일계에 기대는 사람이 꽤 있다. 우익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물론 생물학적으로 믿지 않겠지만, 만세일계가 갖는 긍정성이라는 게 있지 않는가. 그런데 실제로 그것이 아니라고 부정되면 빅뉴스가 될 것이다. 물론 나도 고분 발굴은 찬성이다. 남계가 어디서 확실하게 단절되었는지 분명히 했으면 좋겠다."  
 
- 덴노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일본에서는 터부인 것 같다.
"천황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문제다. 황실 자체의 이름에 걸맞는 것이라면 찬성한다. 일본역사에서 메이지유신 이후 가장 큰 실수는 천황이 대원수(大元帥)가 된 것이다. 대원수란 천황보다 상당히 낮은 신분이다. 무장(武将)의 대표라는 뜻이니까. 그게 대실패의 원인이었다. 그것이 제2차 세계대전때 황실을 사라지게 할 정도까지 만들었다. 결국 자기가 자기 목을 조른 것이다.
  

- 전쟁도 끝났고, 황국사관도 이미 대중적으로 소멸됐는데, 일본정부와 일본사회는 왜 그렇게 감추려 하나?
"황실, 황제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천황가가 만세일계니까 존엄하고 존중받아야한다고 궁내청은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 왕실도 200년 밖에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왕실이 해야할 일은 그런 것이 아니다. 국민에게 새로운 이미지나 놀라운 이벤트를 일으키는 일이다. 서민은 그날 그날의 생활이 힘들다. 서민들은 경쟁사회에서 살아가니까, 그런 경쟁사회와 전혀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왕실의 일이다. 10년에 한 번 정도라도 된다." 
 
-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예가 들겠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아프리카 대통령을 초대한 적이 있다. 아프리카 대통령이라고 해도 토인의 추장 같은 사람이었다. 그를 초대한 만찬에는 손을 씻기 위해 물을 담가놓은 그릇, 워터볼이 있었는데 아프리카 대통령이 그걸 마셨다. 그 모습을 본 영국의 외무대신, 상원의원들이 '저런 야만적인...'이런 표정으로 인상을 찌뿌리자, 엘리자베스 여왕이 보란듯이 그 워터볼의 물을 들이마셨다. 왕실의 역할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런 인품이 사람들을 따르게 한다. 서민은 일상생활이 바쁘니까 그런 것을 못하지만, 왕실은 품격 있는 것을 해야한다."

 
▲ 우다 노부오     ©jpnews

- 일본의 근대화를 가져온 메이지유신도 존왕양이(尊王攘夷)라는 이념이 중심이었는데?
"존왕양이라고 해봤자 야마구치현의 무사들이 막부타도를 위해 내세울 명분을  없다보니 황실을 가져온 것 뿐이다. 그래도 메이지유신 후 그대로 천황을 교토로 놔두었어야 했는데 도쿄로 가져왔다. 이것이 문제였다. 본질적으로 일본군국주의의 핵심이었던 '대일본제국'에 대해 실은 제국이 아니었다는 거다."
 
- '대일본제국'이 '제국'이 아니었다?
"제국이란, 자유(리버럴)을 핵심적인 운영 원칙으로 삼는다. 역사적으로 제국을 찾아보면 엄청나게 자유롭다. 제국이란 제국의 밖에 있는 백성들은 엄청 심하게 다루지만 제국 안에 있는 다민족 백성들에게는 종교의 자유 등 여러 자유를 준다. 이렇게 많은 자유를 주지 않으면 제국은 성립되기 힘들다. 제국 내 여러민족이 스스로 제국을 떠받들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하지 않으면 망한다. 즉, 대일본제국은 대일본왕국이었을 뿐이었다.
 
일례로 대일본제국은 일본민족만을 위한 것으로 조선에서 온 대신은 아무도 없지 않는가. 정말로 일본이 제국이 되고 싶었다면, 조선일본 연합 제국,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처럼 했어야 했다.  게다가 황태자는 일본에 살면 안되고 서울에 살아야했다. 웨일즈의 황태자처럼. 웨일즈는 아무것도 내세울 수 없지만 황태자가 있음으로써 영국을 위해서 열심히 하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일제시대 이루어진 '창씨개명'도 말도 안되는 소리다. 제국이란 다민족의 문화를 지키지 않으면 안되니까. 제국이란 엄청나게 리버럴한 지배를 하고, 그 리버럴한 지배를 통해 얻는 에너지로 밖을 정복하는 시스템이다.
 
몽골도 제국 밖에서는 심한 일을 했지만, 내부에서는 완전한 종교의 자유를 주었고, 로마제국도 이스라엘인이라도 로마시민권을 부여했다. 로마가 기독교를 탄압한 이유는 기독교가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국의 방침이었던 자유 이념에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 한국어 공부는?
"한국어는 와세다대학에서 공부하긴 했지만 못한다."
 
- 소니를 다니면서 와세다 문학부를 정식으로 졸업했는데?
"2003년 입학해서 2007년 졸업했다. 낮에 소니에서 5-6시 일을 끝내면 학교로 가서 6-9시까지 4년간 공부했다. 다들 6년 걸리기도 하는데 나는 열심히 해서 4년만에 졸업했다. 정식 학사다."

- 이미 '백제화원'이라는 책을 냈는데 굳이 문학부에 들어가려고 했던 이유는?
"원래 대학 문학부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고교 때 '문학부 따위 먹고 살기 힘들다'라며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아버지도 기술자였고, 그래서 그냥 공대를 갔다. 그후 소니에 들어갔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 인생인데!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때마침 소니 본사가 가나가와현의 아쓰기에서 도쿄의 시나가와로 옮겨왔다. 와세다까지 다닐 수 있는 거리가 됐다."
 
- 지금 연구하는 테마가 있는가.
"발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당시 발해에서 일본으로 십 몇차례 사절단이 왔다. 발해는 고구려 유민이 세운 나라다. 발해와 일본의 동북지방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또 나라가 힘들 때 원조를 구하러 오기도 했다. 즉, 당시 일본과 발해가 친하지 않았다면 원조요청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발해의 건국에 일본도 관계한 게 아닐까."
 
-오는 9월 대백제전에 간다고 하는데.
"가이드 역할로 일본인 관광객을 데리고 역사기행을 할 예정이다."

- 대백제전에 가면 무엇을 할 것인가.
"서울, 경주, 부여는 가봤지만, 공주는 처음이다. 사람들에게 여러 유적을 설명하고 백제의 역사, 삼천궁녀 등을 설명할 것이다. 이번에는 꼭 무령왕릉을 다녀올 것이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는 최근 첫 공주 방문을 앞두고 무령왕에 주목하고 있다. 우다 씨는 무령왕이 '아시아의 투탄카멘'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무령왕에 대한 관심은 최근 한일문화경제신문에 기고한 글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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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8/10 [11:26]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일본 왕족 언어가. fda 10/08/10 [11:54]
워메~ 미쳐븐거잉.. 했다는 말인가. ㄷㄷㄷ 수정 삭제
매우 흥미로운 기사군요 쵸파 10/08/10 [12:26]
하지만 역시 사회적 터부는 쉽게 극복하기 어렵겠지요
작가의 앞으로 활동 기대하겠씁니다 수정 삭제
일본은 분명 아직까지 한국보다 힘센 나라지요 루돌뱅이콩 10/08/10 [12:38]
하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한국인처럼 일본인을 무시하거나
듣보잡 취급 하는 국민도 없지요
언론에서는 끊임없이 비판도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배울점이 많다라는 내용의 방송도 끊임없이 하는데도
저런 마음이 지속되는 이유는 사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풀이가 안되는 상황이죠
근데 그게 있지 않습니까
위 내용처럼 자세 하진 않지만
우리모두 알고 있는 내용은 일본은 우리 한국인 이 만들었다 라는 그 역사적 사실이
dna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 때문이겠죠.^^ 수정 삭제
선민의식을 경계해야 합니다. ㅁㄴㅇㄹ 10/08/10 [12:55]
일본 황족이 백제계라할지라도 그걸 가지고 우리가 이상한 선민의식을 가지고 깔보는 식으로는 이런 해석이 일본내에서 힘을 받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됩니다. DNA니 뭐니..
그저 어디까지나 사실관계로서의 학구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의견개진을 해야한다고 봅니다. 한국인일수록 더욱요. 마치 우리의 자랑인양, 무슨 초 대단한 업적인양 뻐기거나 혹은 상대를 깔보듯이 이런 해석을 한국인이 늘어놓으면 애써 더욱 무시되고 감춰질 것입니다. 수정 삭제
역사는 부가 되어야지 주가 되면 안되죠 123 10/08/10 [13:21]
역사로 배울것도 많지만 중요한건 현재. 더욱 중요한건 미래.
과거가 어땠는지를 생각하기보다 미래에 어때야겠다 라는 생각이 더욱 발전적이고
생산적인 생각입니다.

이런 글 보고, 혹시나 우월감 느끼는분은 없으시길 바라며..
수정 삭제
황족이 아닌 왕족이지요. zixiace 10/08/10 [13:23]
말 표현을 제대로 하시구요
단지 일본왕족이 백제계다로만 끝나는 문제가 아니지요
윗글이나 혹은 한일 고대사의 연구 책을 보면
그 당시 3국의 광범위한 한반도 민족의 일본 이주가 있었지요
님 의 말은 이미 박경리 선생님의 일본론을 통해
님보다 10배는 더 이성적으로 체득 하고 있는 봐 구요
단지 현재의 사실을 말 한것 뿐인데
과민반응 이시구요
그리고
과거사의 장부청산은 반드시 돌려 주어야 지요
남북통일이 된다면 본격적으로 시작 될거라 생각합니다.
일본만큼 그동안 남북의 분단 상황을 타게 할 만한 주제나 대상도 없을 테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정 삭제
과연 칠지도는 백제가 칠지도 10/08/10 [14:33]
분국의 왜왕에게 하사한 것인가. 그렇다면 반도 남부에 존재하는 전방후원분이 설명이 안된다. 수정 삭제
핑거볼 물마신거는... 윙크 10/08/10 [15:38]
핑거볼(손씻는 물그릇)에 들어있는 물마신 이야기는 아프리카가 아니고 빅토리아 여왕때 간디이야기로 알고 있는데... 누가 확인 좀해주셔야 할듯하네요. 수정 삭제
한반도의 전방후원분 하늬사랑 10/08/10 [16:36]
전방후원분의 원류은 한반도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무덤인 일본의 전방후원분은 일본에서 거의 갑자기 나타나는데 반하여 한반도 남부에는 수많이 다양한 형태의 고분형태가 나타나며 전반후원분형태로 발전하는 형태도 나타납니다. 그리구 한반도의 일본형 전방후원분은 백제에 머물며 일본과의 연락관 역할을 한 일족의 무덤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관련내용은 KBS 역사스페셜에서 다뤄졌습니다. 수정 삭제
맞춤법 수정 부탁드립니다. 우리말사랑 10/08/12 [00:39]
"만세일계가 같는 긍정성이라는 게 있지 않는가" (X) -> '갖는' (O) 우리말에서 '같다', '갖다', '갔다'는 발음은 비슷해도 엄연히 다른 낱말인데도 요즘 혼동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아마 기자분도 다른 사람이 틀리게 쓴 글을 많이 보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따라하신 듯 한데, 맞춤법에 맞는 문장을 쓰는 것은 글쓰기의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엇그제 기사는 아예 제목까지 틀리신 기자분도 있던데 - '안'/'않'을 구분 못하는 - 아무리 일본에서 기사를 작성하신다고 해도 기본적인 맞춤법은 틀리지 않도록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명색이 언론인이고 기자라면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인데 맞춤법조차 모른다고 하면 창피한 일이 아닐까요? 수정 삭제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할 일본 혹은 일본인 migi214 10/09/08 [09:48]
솔직히 이런 소설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잘 모르겠네요. 한국인들의 가지는 선민사상? 혹은 천민사상(하늘나라사람)은 일제 식민지하에서 이미 많은 부분이 소멸되어버렸어요. 현대에서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런 것들은 역사적으로 고대의 산물이라는걸 알게 되었죠. 이것은 서양의 역할이 컸다고 봅니다...

문제는 일본인데요...
한국인으로서 일본을 믿지 못하는 것은 이런 소설을 바탕으로 다시 한반도로 진출하려는 욕심을 버리지 못했구나하는 의심입니다. 일본은 아직도 한국보다 경제적 뿐만 아니라 정치적,역사적,문화적으로도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그런 기본 의식을 저 일본 작가분에게서도 느끼겠네요. 또 일본의 대동아 전쟁에 실패한 대표적인 원인이 제국주의를 완성하지 못한 부분이라는게 드러나 보이는군요. 제국주의에 기인해서 좀더 반도나 대륙을 포용화했더라면 로마제국처럼 혹은 몽골제국처럼 완벽한 대일본제국을 이루지 않았을까하는 기본 생각이 읽혀지는데...저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요?? 제 생각엔 일본은 일제때와 다름없이 전혀 변한게 없습니다...극우 뿐만 아니라 일반인 그리고 저런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지식인조차도..
그래서 한국인인 저는 제국주의를 꿈꾸고 있는 저런 일본인을 보면서 항상 일본을 경계하고 의심할 수 밖에 없답니다. 수정 삭제
일본 왕족과 현 일본인이 한반도 도래인이라는것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던 kjw4170 10/09/10 [07:32]
kbs역사스페셜에서도 나왔듯이 일본 왕족의 시조는 고대 한반도의 삼한중에

변한 즉 고대국가가 세워지기전 신라지역의 수많은 세력중에 하나였고 신라라

는 나라가 세워지면서 밀려난 세력중에 하나였고 그 증거도 한국이 아닌 일

본 자료에서 나오는것을보고 객관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최초 일본왕조의 시작이고 그다음은 부여-고구려-백제-가야를 거처 이

동한 기마민족이 일본으로 진출해서 기존 변한계 왕조를 정벌하고 다시 왕조

를 세운것이 2차 일본왕조 그다음은 일본의 서기에도 나와있듯이 5명의 일본

왕조의 내용이 삭제되었을 당시 백제가 일본을 정벌하고 다시 3차 왕조를 세

운시기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왕이 바뀌고 왕의 성씨가 바껴도 나라

을 새로 건국하려고 하지않은한 왕조역사의 연속성을 지키려한다.

그래서 왕조의 연속성을 위해 왕조의 주인이 바뀌었어도 역사를 축소하거나

제대로 적지 않는다. 그래도 여러곳에서 그증거가 나오기에 그것을 유추할수

가 있는것이다. 왜 고대일본왕조가 고구려,백제와 교류하고 우호적이고 신라

와는 앙숙이였는지는 굳이 설명을하지않아도 짐작할수있는일이다. 그리고 신

라가 왜 주변국에 우방국을 못세우고 멀리 당나라와 연합을했는지도 미뤄 짐

작할수있다. 요즘 밝혀지는 얘기기는 하지만 신라왕족은 고대 선비족의 후예

라는것이 밝혀졌다. 부여,고구려,백제,가야,일본은 왕조가 같은 뿌리였기에

신라는 고립될수밖에 없었던것이고 일본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 할 수가

없었던것이다. 일본왕조 초기에 신라의 세력에서 밀려난 사람들도 일본왕조

에 정착하고있을테니 그것 자체도 신라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할수없었던 이유

중에 하나였을것이다. 그리고 왜 백제 성왕때 일본이 그많은 군사를 동원해

서 백제를 도왔다고 생각하는가? 우방국을 돕는 차원을 이미 넘어섰다는 역사

적 고증도 이미 나와있다. 백제와 일본이 한나라였기에 지도층도 같은 왕조였

기에 나라가 거덜날정도로 올인할수있는 지원을 할수있는것이다. 한마디로 그

당시에 일본은 백제의 식민지 쯤 됐을것이라고 생각된다. 믿을만한 왕족중

한 세력을 일본에 식민지총독부를 만들어 파견했을것이라는 말이다. 그러기

에 백제 멸망후 일본 본토에 일본왕이 백제를 새로 새우려한것이다.그리고

백제사을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대륙백제와 남백제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들

어나고있다.

남백제가 어디겠는가? 그리고 당나라가 고구려라면 모를까? 그먼 아

무상관도 없는 백제를 고구려로부터의 공격과 그외 몽골계 민족으로부터의 공

격을 무릅쓰고 백제를 먼저 쳐야만했겠는가? 그것은 중국 대륙깊숙히까지 백

제의 영토와 백제세력이 있었다는 반증이기도하다 어떻게보면 백제가 더 위험

하고 코앞에 국경을 맞다아있어서라고 밖에 설명할수가없다. 그리고 신라왕조

의 뿌리인 선비족도 크게보면 한민족이라고 말 할 수 가있다. 단지 괴리된지

가 오래되서 그당시에도 같은 뿌리라고 인식을 못했을뿐이다. 선비족이 누구

냐? 고조선과 부여시절 같은 나라에서 같이 생활하던 민족이 아니던가?

친일사관과 중국사대주의만 아니였어도 벌써 고증되고도 남았을 한민족

의 역사인것이다. 역사는 승리한자의 것이라는 말이 새삼 생각난다. 언젠가

는 우리도 국력이 세어지면 역사를 제대로 밝힐날이 올 것이다.

일본의 단일왕조와 단일지계에의한 왕조라고 말 하는 것은 그들이 생각하는것

과는 다르지만 어떤면에서는 맞다고도 할 수 있다 한반도 도래인들이 세운고

이어온 왕조라는 것은 틀림이 없으니 말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일본

과 한반도를 잊는 끈은 끊어졌고 일본은 그때부터 독자노선을 걷고 한

반도의 나라와는 앙숙의 관계가 이어져온것이라고 말할수있다.

이글을보고 소설을 쓴다는 말을하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내글은 충분

이 가능성이있고 증명된 사실을 요약한것이다. 하지만 일본을 보라! 얼마나

역사를 왜곡하고 지워버리는가? 일본의 왜곡된 역사보다 내글이 백번 신빙성

이있다고본다. 수정 삭제
같은공학도 출신으로서 대단하신분이시군요.. 만슈타인 10/09/23 [18:03]
저두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 저분 대단합니다.. 다만 1.5천년 더된 시간은
일본과 우리가 서로 다른길과, 동질성이 사라지게 만들었기에,, 천황이 백제
계이든,,,일본지배층이 한반도인이든,, 역사적사실로만 의미있을뿐,, 우리
와 일본간의 감정,동질,동화,유대엔 큰 역활도 의미도 없다고 봅니다..
..
그런식이면, 3~4만년전 아프리카에서 발생된 최후의 현생인류를 조상으로
둔 현재 60억대부분의 인류도 그런식으로 의미를 강입시키는것두 시도되겠
죠..백제멸망후, 일본은 첨엔 신라를타겟으로한 적대,경쟁심이었지만.
그것이 점점 변질,확대되면서, 고려-조선-한국 까지 감정적으로 배척하구
전쟁,침략,노략질들 수많은 무력적도발을 하게되죠..
..
게다가 10c이후, 위에분 연구처럼 중국의 잦은변란,왕조교체로 중국계
난민들의 유입이 급속해지고, 그로인해 일본은 6~7c이후 제2의 인구급
증을 격게됩니다.. 이전엔 다수의 중하류 원주민과 소수의 한반도중
상류층의 유전자풀이 중국계가 귀족출신의 극소수만 상류에 진입하구
거의 대부분은 중하류에 들어오면서,, 당시 일본은 인구가 한반도보다
많은 천만을 넘게된다는 학설에 전 보다많은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즉 겨우 1c남짓의 9~10c에 중국에서 송,요,금이 멸망하구 , 한반도에서도
신라-고려 교체등. 한반도와 대륙의 수많은 정치난민들이 일본으로 대거유
입될수밖에 없었구 이때부터 일본은 더욱 한반도와 동질성 동화감이 멀어
질수밖에 없게되죠.. 수정 삭제
저자가 흥미롭군요 동탐 10/10/20 [11:58]
내용도 내용이지만, 자유롭게 탐구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요즘 인터넷 댓글에 워낙 무뇌아들이 많아서... 수정 삭제
잘 읽었습니다 미교포 11/04/05 [18:16]
위 댓글 중엔 이런 글로 인해 쓸데 없는 우월감이나 자만에 빠질 한국인에 대해 우려하는 글도 있었습니다만 그건 어린 독자들이나 범할 실수인 것 같군요. 반대로 저 같은 경우엔 일본이란 나라와 어떻게서든 연관 되는 자체가 달갑지 않군요. 일본 왕족이 백제의 백정이나 시정잡배의 자손이었다 하더라도 한가지 술자리 얘깃거리로 밖에 와닫지 않는군요. 한 개의 집단이 자신들의 태생을 신격화 시키고 그로인해 다른 모든 이들을 지배해야할 서민들로 인식하고 살인과 전쟁을 무릅쓰고라도 현실화 하는 족속이라면 더더욱이 관련 되고 싶지 않습니다. 수정 삭제
대단한데 13/01/14 [12:59]
몰랐던 사실들이군. 좋은 기사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지리적 위치가 이러한 역사를 만들었을뿐 유전자 따위가 기여한 일은 없다고 봐야한다. 그리고 일본 지배층이 한반도에 건너온것 만큼 한반도는 만주일대에서 오지 않았는가. 그보다 천황이 전라도 말을 한다면 재미있겠군. 일베놈들이 아주 좋아 하겠어. 전라도를 일본에 주겠지. 수정 삭제
정확히는 마재윤 13/07/04 [03:46]
관서지역에는 백제계가 주를 이룬 것이 맞습니다만('리틀 백제'라 불린 오사카 등), 관동지역은 고구려계와 연관이 큽니다. '속일본기' 같은 관찬 사료에도 나올 정도로 (1799인의 고구려인을 무사시노에 안착시키고 '고려군'을 설치) 오늘날 사이타마의 고려신사가 대표적입니다. 신라는 승전국인데다 멸망때에도 스스로 고려에 귀부하는 형식으로 우대받았기 때문에 일본으로 망명할 이유가 없음 수정 삭제
이런걸로 우월감을 느낀다면 중국은??? ㅇㅁ 13/11/18 [14:04]
그리고 이탈리아는??? 역사는 역사일뿐이니 이런사실로 일본을 깔보는태도는 없었으면 한다. 수정 삭제
응아니야 녹두 18/02/15 [01:46]
응아니야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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