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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불가사의했던 '천황'의 항복선언 (하)
일본제국 패배했던 그 날의 재구성 - 마스다 미야코 역사강의 (3)
 
박철현 기자
■ 일본제국이 패배하던 그 날의 재구성 (상)
■ 일본제국이 패배하던 그 날의 재구성 (중) 에서 이어짐
 
▲ '포츠담 선언' 일본어판     ©일본국회도서관
 
1945년 7월 26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선언을 받아내기 위한 포츠담 선언이 공포됐다.
 
그런데 이보다 하루 전날인 7월 25일 기도 고이치는 히로히토 덴노(天皇, 천황)와 '종전(終戦)'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그 당시 상황을 '기도일기'(木戸日記)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대본영(여기서는 덴노를 의미함)이 포로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는 차마 말씀드리지 못했다. 이쯤되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3종의 신기' 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것을 지키지 못한다면 황통 2천 6백년의 상징을 잃어버리는 것이 되며 결국 황실도 국체도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기도일기 중에서)
 
기도 고이치는 전후 마지막 궁내청 장관(당시에는 '내(内)대신으로 불렸음)으로 덴노를 지척에서 보필하고 있었다. 그 조차 히로히토 덴노가 전쟁포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을 정도로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언급한 '3종의 신기(神技)'라는 것이다.
 
이번 역사강의를 주재하고 있는 마스다 미야코 선생은 3종의 신기에 대해 "거울, 구슬, 칼을 의미한다"며 거울은 이세신궁(伊勢神宮), 칼은 아쓰타신궁(熱田神宮)에 각각 보관되어 있고, 구슬은 항상 덴노가 소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스다 씨는 "이 세 가지는 일본건국신화에 나오는 천상의 아마테라스 여신으로부터 물려받은 천황가의 상징"이라고 덧붙였다. 즉 기도 고이치는 덴노가 전쟁포로가 되고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이 세 신기만큼은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마스다 씨는 "사실 어이없는 일"이라며 "신화속에서나 등장하는, 있는지 없는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 진위도 명확하지 않은 것을 지켜내는 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중요했고 그 바람에 항복선언이 늦어졌다"고 주장한다. 마스다 씨는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투하 역시 천황가의 안위 때문에 죄없는 민중을 희생시킨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한편 26일 나온 포츠담 선언(potsdam declaration)은 제1조가 '일본국에 대해 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는 기회를 준다'라고 작성돼 있다. 즉 이 선언은, 일본이 스스로 항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13조로 구성된 포츠담 선언은 태평양전쟁의 종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선언이므로 전문을 게재한다.
 
<포츠담 선언> 1945년 7월 26일 공포
 
1. 우리들 미 합중국 대통령, 중화민국 정부주석 및 대영제국 수상은 우리들의 수억 국민을 대표해 협의한 결과, 일본국에 이번 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했다.
 
2. 미국, 영국, 중국의 압도적인 육해공군은, 여타 서방에서 수억의 지원증강을 받고 있으며 일본국에 대하여 최후의 타격을 가할 태세를 이미 갖춘 상태다. 이 군사력은 일본국이 저항을 그만둘 때까지 일본국에 대한 전쟁을 수행한다는 연합국의 결의로써 지지받고 있다.

3. 세계자유인민의 궐기한 힘에 대한 독일국의 무익하고 무의미한 저항 결과는, 일본국민들에게 매우 명백한 선례를 보여주었다. 현재 일본국에 대해 집결되고 있는 힘은, 일찌기 독일 인민의 토지, 산업, 생활양식을 황폐하게 만들었던 역량과 비교했을 때 더 한층 강력한 힘이 되어 있다. 우리들의 결의를 토대로 한 우리의 군사력을 최고도로 사용한다는 것은 즉 일본국 군대의 완전한 궤멸을 의미하는 것이며, 필연적으로 일본국 본토는 완전히 파괴될 것이다.

4. 무분별한 타산으로 일본제국을 멸망 직전으로 몰아넣은 방자한 군국주의적 조언자의 손에 일본국이 계속 통치될 것인지는 일본국이 결정해야 하며 그 시기가 왔다.

5. 우리들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우리들은 이 조건으로 협상하는 일이 없을 것이며 또한 이 조건에 대신할 다른 조건도 받아들이지 않겠다. 물론 지연도 인정할 수 없다.

6. 우리들은 무책임한 군국주의가 전세계에서 사라질 때까지는 평화, 안전, 정의를 추구하는 새로운 질서가 생길 수 없다고 주장하므로, 일본국 국민을 기만하여 그들로 하여금 세계 정복을 위한 궐기를 일으키게 한 과오를 범하게 한 자의 권력과 세력은 영구히 제거되어야 한다.

7. 이와 같은 새로운 질서가 건설되고 일본국의 전쟁 수행 능력이 파괴되었다는 확인이 있기까지는 우리가 여기에서 지적하는 기본적 목적을 확실히 달성하기 위해 연합국이 지정한 일본국 영역 내의 모든 지역은 점령될 것이다.

8. 카이로 선언의 조항은 이행될 것이며 또 일본의 주권행사는 혼슈, 홋카이도, 규슈, 시코쿠를 비롯해 우리가 정하는 여러 섬에 국한될 것이다.

9. 일본국 군대는 완전히 무장이 해제된 뒤 각각 가정으로 돌아가 평화적이고 생산적인 생활을 영위할 기회를 얻게 한다.

10. 우리는 일본인을 민족으로서 노예화하려거나 국민으로서 멸망시키려는 의도는 갖지 않는다. 다만 우리 포로를 학대하는 자를 포함하는 일체 전쟁 범죄인(전범)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처벌할 것이다. 일본국 정부는 일본 국민들의 민주주의적 경향이 부활 강화되는데 장애가 되는 것을 일체 제거하여야만 한다. 언론, 종교, 사상의 자유 및 기본적 인권 존중은 확립되어야 한다.

11. 일본이 그 경제를 지탱하고 공정한 실물 배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산업은 유지하게 될 것이다. 다만 일본이 전쟁을 위한 재군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산업은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 목적을 위한 원료의 입수는 지배와는 별도로 허용될 것이다. 일본이 장차 세계 무역 관계에 참가하는 것은 허용된다.

12. 전항의 목적이 달성되고, 또 일본 국민이 자유로이 표현하는 의사에 따라 평화적 경향을 가지는 책임있는 정부가 수립되면 연합국 점령군은 즉시 일본으로부터 철수될 것이다.

13. 우리는 일본 정부가 일본 군대의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고 또 그 행동에 대한 일본정부의 성의에 적당하고도 충분한 보장이 있을 것이다. 이 이외의 것을 일본이 선택한다면 신속하고도 완전한 궤멸이 있을 뿐이다. 
 
포츠담 선언의 핵심은 13조에 있다. 
 
▲ 마스다 미야코  ©jpnews
마스다 씨는 13조에 언급된 '신속하고도 완전한 궤멸'이 원폭 투하를 의미하는 것(미국은 포츠담 선언 10일전인 7월 16일 이미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스즈키 간타로 내각은 이 선언을 묵살한다. 이유는 포츠담 선언에 국체를 보전해 주겠다는 명확한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3조에 적혀 있는 '일본 정부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다면 일본 정부의 성의에 적당하고 충분한 보장이 있을 것이다'라는 부분이 천황제 유지를 보장하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고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7월 31일 히로히토 덴노 역시 기도 고이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여러 번 생각했지만 이세와 아쓰다의 신기는 결국 내 몸 가까운 곳에 두어 지키는 것이 가장 좋다고 본다. 다만 이것의 이동시기 등은 인민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할 수 있으니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또 몇 번씩 옮기는 것도 모양이 좋지 않으니 신슈(信州, 지금의 나가노) 지역으로 옮기는 것이 좋다. 궁내대신은 다른 이들과도 협의하고 정부와도 교섭해 달라. 만일의 경우 내가 직접 가지고 있다가 운명을 같이 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기도일기 중에서)
 
이 말만 놓고 본다면 덴노도 이 상황에서는 항복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진다. 즉 포츠담 선언에 국체보전이라는 명확한 문구가 없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 후인 8월 6일 아침 8시 15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리틀보이'가 떨어졌다. 
 
또 이틀 후인 8월 8일에는 소련이 "9일부터 일본과 전투상태에 돌입한다"는 짤막한 선전포고가 있었고 소련은 9일 0시를 기해 만주지역에 진격했다. 독일함락이 5월 7일에 있었으니 얄타회담에서 약속한대로 정확히 3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9일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일본 수뇌부는 포츠담 회담 선언의 수락을 전제로 한 최고전쟁책임자회의를 개최한다. 
 
그런데 내각 수상, 외무상, 해군상, 육군상, 참모총장, 군령부 총장 등 6명이 참가한 이 회의는 '덴노 지위를 보장해 주는 조건으로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자'는, 이른바 온건파와 '전범처벌과 무장해제는 일본측이 하고 본토점령도 될 수 있는 한 적게 하자'는 조건을 내 건 강경파로 갈린다.
 
전자(온건파)는 수상, 외무상, 해군상이었고 후자(강경파)는 육군상, 참모총장, 군령부 총장이었다. 3대 3으로 팽팽히 맞섰기 때문에 결론이 잘 나지 않았다. 전쟁최고지도자들이 도쿄에서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던 9일 11시 2분,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 '팻트맨'이 투하됐다.
 
두번째 원폭이 떨어졌어도 전쟁최고지도자들의 논의는 끝나지 않았다. 이날 밤 11시 50분부터 새벽 2시 30분까지 열린 어전회의에서도 이 안건은 계속 논의됐고, 새롭게 히라누마 추밀원 의장이 온건파에 가세했다. 그리고 이들은 덴노에게 '성단(聖断)'을 내려달라고 말한다.
 
다음은 '쇼와천황독백록(昭和天皇独白録, 문예춘추사. 1946년 히로히토 덴노의 최측근 인사 5명이 4일동안 5번에 걸쳐 장작림 사건부터 종전까지의 경위를 덴노로부터 직접 들은 말을 바탕으로 기록한 작품. '월간 문예춘추'가 1990년 12월호에 발굴・게재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으며 1급 역사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에 기술돼 있는 덴노의 '성단'이다.
 
▲ 1급 역사자료로 평가받고 있는 '쇼와천황독백록'     ©문예춘추사
 
"나는 외무대신의 안(案)에 찬성하는 것으로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겠다.(중략) 어쨌든 이 회의는 내가 포츠담 선언 수락을 결정해 스위스와 스웨덴을 통해 수락한다는 전보를 보냈다. 당시 나의 결심은 먼저 이대로 간다면 일본민족은 멸망할 것이며 나는 자손을 보호하지도 못한다.
 
두번째는 기도 궁내대신도 같은 의견이었지만 적이 이세만(伊勢湾) 근처에 상륙한다면 이세・아쓰타 신궁은 즉시 적의 손에 넘어가 신기의 이동도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확보 전망도 생기지 않는다. 이래서는 국체보전이 어렵다. 그래서 이 때 나는 내 몸을 희생해서라도 강화(講和)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만 하루가 지난 11일, 연합국은 다음과 같은 회답을 보내온다.
 
"항복과 동시에 덴노와 일본 정부의 권한은 연합국 최고 사령관의 제한 아래 놓인다. 최종적인 일본의 정부 형태는 일본 국민의 자유로운 의견표명에 따라 정해질 것이다."
 
그런데 마스다 씨는 이 영문회답이 당시 외무성 관료들에 의해 교묘하게 바뀌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여기 보면 '제한 아래 놓인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영어 원문에는 'shall be subject to'라고 돼 있다"며 "이 말은 본래대로라면 '예속된다'로 번역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속'과 '제한'은 확실히 다른 뉘앙스다. 마스다 씨는 왜 외무성이 그런 번역을 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덴노는 이 안에 국체(천황제)의 보전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참모총장과 군령부 총장은 이것만으로는 불안하니까 다시 한번 더 교섭을 하자는 입장을 폈다.
 
그들은 연합국이 이 교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계속 전쟁을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면서 13일까지 내부 의견대립이 계속됐다. 이것은 일본수뇌부가 국체보전이 다른 그 어떤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속을 제한으로 번역한 것도 국체보전의 관점에서 본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예속'으로 직역해 버릴 경우 국체보전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제한'으로 번역하게끔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 히로히토 덴노도 국체보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포츠담 선언을 거부하겠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천황독백록'에 기술된 표현이다.
 
"아사카노미야(朝香宮, 천황가 귀족)가 국체보전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포츠담 선언을 거부할 것인가라고 물어왔다. 나는 '물론'이라고 대답했다."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유추해 본다면, 덴노가 13일까지 완전한 항복선언을 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덴노는 포츠담 선언 안에 3종의 신기와 천황가의 보전이 포함돼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자신의 생각일뿐 실제 포츠담 선언에는 그런 문구도 없었으니 망설인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고민하던 덴노를 움직인 결정적 계기는 14일 아침, 기도 고이치가 덴노에게 보여준 삐라였다. 이 삐라는 미군 b29가 관동지역에 뿌린 것이다. 다음은 당시의 상황을 묘사한 글이다.
 
"일본민중을 향해 하늘에서 뿌려진 최신 삐라에는 국체보전을 유일한 조건으로 항복한다는 일본정부의 통고와 그것에 대한 반즈 회답의 전문이 실려져 있었다. 이 삐라가 확산되면 일본제국정부가 전쟁에 진다는 사실과 왜 항복이 늦어졌는지 그 이유를 국민들에게 감추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쇼와 천황과 기도는 황위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 패배주의가 대두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민중 스스로가 궐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발빠른 행동을 취해야만 했다. 이것을 계기로 두번째의 '성단'이 내려졌다."('쇼와 천황', 허버트 빅스, 고단샤학술문고)
 
여기에 등장한 두번째 '성단'이 바로 전면적 항복선언이다. 14일 밤 덴노는 '종전조서(終戦の詔書, 종전조칙이라고도 부른다)'에 서명했다.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정오 라디오에서는 덴노가 읽어내려간 종전조서가 흘러나온다. 이른바 '옥음방송'이다. 다음은 '종전조서' 전문이다.
 
▲ 히로히토 덴노의 '종전조서'     ©국립공문서관
 
<종전조서> 1945년 8월 14일 작성, 15일 정오 공포.
 
짐(히로히토 덴노)은 깊이 세계 대세와 제국 현실을 생각하여 비상조치로써 이 사태를 수습하고자 충성스럽고 선량한 너희 신민에게 고한다. 짐은 제국정부로 하여금 미영중소 4개국에 그들의 공동선언(포츠담 선언)을 수락하는 뜻을 널리 알린다.
 
무릇 제국신민들의 강녕을 꾀하고 여러 나라와 함께 공영해 나가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천황가 선조들께서 남긴 규범이다. 짐은 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고, 일전에 영국과 미국 두 나라에 선전포고한 이유도 사실은 제국의 자존과 동아시아의 안정을 이룩하기 위해 나온 것으로 타국의 주권을 배제하고 영토를 침범하는 것은 애초부터 짐의 뜻이 아니었다.
 
그런데 교전을 치른 지난 4년을 살펴보니 짐의 육해장병들이 펼친 용전, 짐의 관료들이 보여준 성실함과 백성들이 보여준 봉사 등 모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투상황은 결국 호전되지 않았다.
 
세계의 대세 또한 우리에게 이롭지 않고 게다가 적은 새롭게 잔학한 무기(원자폭탄)를 사용하여 빈번히 무고한 사람들을 살상하는 참해를 벌이는 등 진실로 측량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앞으로 교전을 계속한다면 종국에 우리 민족은 멸망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 인류의 문명을 파괴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짐이 어떻게 우리 어린 백성들을 보전하며 황가 선조들의 영혼에 사죄를 드릴 수 있겠는가.
 
짐은 제국정부로 하여금 공동선언에 응하게 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다.
 
짐은 제국과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동아시아를 해방하기 위해 협력한 여러 동맹국에 대하여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아니할 수 없다. 제국신민으로서 전투에서 죽고, 주어진 일을 하다가 순직하고 비명에 스러져 간 사람들 및 그 유족에 생각이 미치면 오장이 찢어지는 듯 하다.

 
또한 전투로 인해 상처를 입고, 재난과 화재를 당해 가업을 잃어버린 자들의 후생을 생각한다면 깊이 걱정된다. 무엇보다 오늘 이후 제국이 받을 고난은 진실로 심상치 않다. 너희 신민들의 충정은 짐 역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짐은 시운이 움직이는 대로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곤란을 감당해 내고, 참아야 할 곤란을 참음으로써 만대를 위한 태평을 열고자 한다.

짐은 이에 국체(천황제)를 지켜, 충성스럽고 선량한 너희 신민의 진실된 충성에 신뢰하고 의지, 언제나 너희 신민들과 같이 있을 것이다. 만약 감정이 격렬하게 넘쳐 사단을 키워나가 어떤 자가 동포를 배제하거나 시국을 어지럽혀 대도를 그르치는 것과 같이 신의를 잃어버리는 것을 짐은 매우 경계한다.
 
부디 국가를 한 가족으로 하여 자손에 잘 전하라. 굳게 신주(神州, 일본을 의미함)가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우리 임무가 매우 무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유념해 달라. 
 
모든 힘을 장래의 건설에 기울이고, 도의를 두텁게 하고 지조를 굳게 다져 국가 체제의 정화를 발양해 세계의 추세에 뒤지지 않도록 기해야 한다.
 
너희 신민은 능히 짐의 뜻을 몸에 익혀야 할 것이다.


마스다 씨는 이 종전조서를 참으로 불가사의한 항복선언이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몇 번이고 읽어봤지만 패전, 패배, 항복이라는 단어가 단 한군데도 들어가 있지 않다"고 부연설명했다. 항복선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일본정부는 지금도 패전이라는 말을 공식문서에 쓰고 있지 않다. 이 시리즈 기사 역시 원문을 충실하게 따라 '종전'(終戦), 즉 전쟁이 끝났다라고만 표현했다. 일본제국이 침략전쟁을 일으켰고 그에 따라 패배한 것은 명백한 사실인데 덴노의 종전조서만 읽으면 마치 연합국이 잔인하게 일본을 유린한 것처럼 받아 들여지는 대목도 많다.
 
마스다 씨는 "이 옥음방송은 딱 한번 나왔고 또 당시 라디오 음질이 별로 안 좋아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며 "종전조서 이후에 나온, 몇 번이고 되풀이 된 라디오 아나운서에 의한 종전조서 해설이 '쇼와 덴노의 전후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라디오 아나운서가 당시 말했다는 종전조서에 관한 해설이다.
 
"님(히로히토 덴노)께 목숨을 바치지 못한, 님 스스로가 물러설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만들어낸 민초들을 꾸짖지 아니하신 채 오히려 '짐의 일신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더 이상 국민이 전화(戦火)에 휩쓸리는 것을 피하고 싶다'는 말씀으로 국민에 대한 큰 자애와 사랑을 보여주신 그 분께 누가 자신은 불충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마스다 씨는 "이 해설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일본국민들은 히로히토 덴노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도조 히데키 등 몇몇 군국주의자들의 책동에 덴노가 잘못 말려들었다고 생각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마스다 씨 뿐만이 아니다.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로벨 길란은 1979년 아사히신문사에서 출간된 자신의 저서 '일본인과 전쟁'을 통해 종전조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종전조서란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이었다.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정신은 참으로 일본적이었다. (중략) 이 조칙 안에는 패전이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물론 항복이라는 단어도 사용되지 않았다. 잔인한 원자폭탄이 이 전쟁의 종결 이유로 제시됐다.
 
그리고 '일전에 영국과 미국 두 나라에 선전포고한 이유도 사실은 제국의 자존과 동아시아의 안정을 이룩하기 위해 나온 것으로...' 라는 것만이 전쟁의 목적이 됐다. 만약 구 일본군이 장래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역사를 기술할 기회를 얻게 된다면 그들은 아마 이 조칙의 텍스트를 기반으로 해 이런 식으로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전쟁을 그만둔 것은 적의 비인간적 행동에 의한 것이었다. 우리 천황은 폐하의 군대가 위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살육을 멈추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 왜냐면 천황은 일본국의 구세주인 것은 물론 그 어떤 잔학행위에도 반대하는 인간문명의 방위자이기 때문이다'
 
라고."

마스다 씨는 "로벨 길란의 예상은 20년후 현실이 됐다"고 단언한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만든 역사 및 공민 교과서가 이러한 관점에 서 있고 실제 기술 역시 여기에 준하는 내용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보다 큰 문제는 이런 '평화주의자 이미지화' 작업에 당사자인 히로히토 덴노 스스로도 참여했다는 점이다.
 
그는 1969년 9월 8일 궁내청 기자회견 자리에서 "개전했을 때부터 (전쟁을) 언제 그만 둘까, 언제 그만 둘까라고 그만 둘 시기를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또 1975년 9월 8일 미국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는 "(종전결단의 동기는) 국민이 전쟁때문에 식료품 부족을 비롯해 많은 손실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전쟁을 계속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보다 많은 고통을 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같은 해 10월 31일 일본기자클럽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히로히토 덴노는 "전쟁책임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런 말의 의미에 대해서는, 나는 그런 문학방면에는 깊은 연구를 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으니 답변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같은 해 히로시마 원폭투하에 대해서도 "그것은 전쟁중에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히로시마 시민들이 불쌍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히로히토 덴노는 전후 단 한번도 자신이 국체보전, 즉 천황가문을 지키기 위해 포츠담 선언을 미뤘고 결국 그것이 원인으로 작용해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았다.

 
또 자신이 대원수가 돼 전쟁을 지휘한다는 본토결전안 재가에 대해서도, 심지어는 '종전선언 역시 전쟁을 늦춘 사실이 드러날까봐 어쩔 수 없이 했다'는 '팩트'조차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은 채, 1989년 1월 7일 전 일본국민의 애도속에서 사망했다.
 
(끝)
 
■ 마스다 미야코 선생의 현대사강좌 기획취지 및 일정표 (일본어)
 
<企画趣旨>
 
本年2010年は「韓国強制併合」から100年であり、日本国家は「侵略と植民地支配」の負の遺産を、真に清算することが求められている。しかし、中学・高校の大部分の学校では自国の近現代史の真実がきちんと教えられていないばかりか、むしろ「つくる会」系の扶桑社教科書や自由社教科書により、「日本の戦争は自衛の戦争・アジア解放の戦争だった」という「歴史偽造」が教えられてきている。
 
そして、この事実を中学生に教えた社会科教員が分限免職されても、一般のメディアは何の報道もしない、つまり、一般の人々にとってはそれが問題だとは感じられない、という現状がある。本講座では、資料・史料に基づいて歴史の真実を見ていき、なぜ「歴史偽造」が行われるのか、それは何を意味しているのかを、参加者全員でディスカッションしながら考え合いたい。
 
● 毎月第2木曜日18時30分~20時30分[5月13日開講]
 
●講座内容
【2010年】---------------------------------------- 
第 1回 5月 13日 『坂の上の雲』の歴史偽造 
第 2回 6月 10日 アジア・太平洋戦争 
第 3回 7月 8日 大日本帝国の敗北 
第 4回 9月 9日 東京裁判と日本国憲法 
第 5回 10月 14日 戦争責任を考える 
第 6回 11月 11日 サンフランシスコ条約と安保条約 
第 7回 12月 9日 安保改定とベトナム戦争
【2011年】---------------------------------------- 
第 8回 1月 13日 高度経済成長と世界 
第 9回 2月 10日 冷戦後の世界と日本 
第10回 3月 10日 昭和天皇の『全責任』発言の歴史偽造
-------------------------------------------------- 
●参加申し込み方法 予約の必要はありません。開始時間までに会場においでください。
 
●支払方法 受講料一括支払いは8000円。または毎回受講時に1000円ずつ支払い。 たいていの人は毎回来るたびに1000円ずつ支払っています。最初に郵便振替で8000円一括支払いはキツイという方は、こちらで、どうぞ!
 
●場所 協働センター・アソシエ 地図は http://homepage3.nifty.com/associe-for-change/map.html
東京都中野区中野2-23-1 ニューグリ-ンビル309号(中野駅南改札口1分 1階がドトールコーヒー) 電話 03-5342-1395 / FAX 03-6382-6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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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7/17 [15:45]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일왕이 사망한 년도는 불고기맨 10/07/17 [16:54]
1989년 입니다만.... 오타가 난것 같네요.
수정 삭제
허..... 이런 기사가.... 시드 10/07/17 [17:23]
쓰잘머리 없는 외신이나 허접스런 카피하기 바쁜 국내언론대상으로 jp에서 연수프로그램이라도 가동해야겠네요. 여튼 이런 기사야말로 포털 메인에서 자리잡고 있는 쓰레기 기사들 밀어내고 단독샷 받아야 하는데....-_-; 수정 삭제
잘 봤습니다. 수하네 10/07/17 [17:39]
정말 도쿄에 살고 있다면 꼭 참석해보고 싶은 강연이네요.
기사가 아니라 연수같다는 느낌도 드는게 공부 잘 했습니다.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수정 삭제
팥 심은데 팥나고 콩 심은데 콩난다고 장쾌 10/07/17 [18:08]
저런 역사인식이 지금까지 이어져와서 일본은 아시아의 지도국으로 인정받지 못하고있고 역사문제로 계속 발목잡히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계속 이랬으면 하네요 일본이 쇠퇴할때 이런 짐들은 칼이 되서 돌아올테니까요 수정 삭제
기사가 기네요. 얌냠 10/07/17 [21:05]
일단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그런데 요새 트랜드가 그런지 몰라도 오마이뉴스나 이쪽은 인터뷰, 기사를 거의 요약없이 다 적는 것 같네요. 13조로 구성된 포츠담 선언이 매우 중요하다고 해서 다 읽었는데 읽고 보니 핵심은 맨 마지막 13조라 되어 있네요. 종전에 아주 관심이 많은 사람은 물론 다 읽을 것이고, 하지만 대다수 약간의 관심을 가진 사람이 다 읽기는 힘드네요. 아 물론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아주 좋은 자료겠지만요. 수정 삭제
길고 자세한 기사는... 긴 기사 10/07/17 [22:14]
제이피뉴스의 특징이죠..... 그래서 가끔 읽다가 눈이 아플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윗분말처럼 일본에 진짜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상 봐도 잘 모르는 기사들도 많은 것 같구요... 조금 무게를 빼시는것도 좋을 듯한데.. 너무 주제 넘나..^^

참 이 기사가 나쁘다는건 아닙니다..^^ 잘 봤구요.. 근데 이런 기사들 조회수는 얼마나 나올지 궁금하네요. 제이피뉴스 기사들은 포털에서도 찾아볼수도 없고...... 솔직히 좀 걱정이.. 고생해서 쓰시는 기사 보다 많은 분들이 접하면 좋을텐데 흠.. 수정 삭제
일본이 보인다 샬라카둘라 10/07/18 [01:40]
정말 jp뉴스 타이틀에 걸맞는 기사네요
잘 봤습니다 수정 삭제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haha 10/07/18 [04:06]
이런 심도있는 기사들 때문에 제가 JP 뉴스를 애독합니다.... 수정 삭제
저도 좋아합니다. 박대근 10/07/18 [06:09]
요약은 자칫 기자 자신의 생각이 포함될 수 있어 원래의 의미를 외곡할 수 있으니까요. 요즘엔 대놓고 그러잖아요. 그런면에서 볼 때 jp는 안심(?)하고 읽을 수 있습니다. 수정 삭제
잘 모르고 월광 10/07/18 [06:59]
있었던 일본패전에 관한 천왕의 역활에 대해 알게 되었네요. 이런 좋은 강의 앞으로도 계속 되었으면 합니다. 마스다 미야코님 너무 감사드리고 앞으로 하시는 일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수정 삭제
항복한다면서 내용이 참 어이가 없네요 aaa 10/07/18 [10:47]
그런것도 국민성인가? 완전 발리게 생겨서 항복하는데도 이거 뭔소리하는건지?
3종신기인지 동방신기인지 하는 이상한 거 지키겠다고 저 짓 하는 건 코미디.
대동아공영권이란 허울좋은 명목하에 아시아를 유린한 놈들이 협력국
어쩌구저쩌구. 전쟁은 짐의 뜻이 아니었다.
저러니 욕 먹는게 당연한데 지들은 왜 욕 먹는지를 몰라요. 아니 모른척하는건가? 수정 삭제
그렇군요..일본분들중에서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는군요.. 으라차차 10/07/18 [15:48]
일본분들 중에서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깜작 놀랐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한국과 일본이 사이좋게 지냈으면 합니다. 수정 삭제
영국 BBC다큐에도 그랬죠! 일왕은 한번도 항복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고... 쩝... 10/07/18 [17:21]
일본놈들이 간사하단 게 저기서도 여실히 나타납니다! 절대로 자기들 잘못을 인정치 않는다는 것! 미국에.. 아니, 연합군에 항복한 게 아니라, 잠시 휴전을 맺은 것처럼 생각하는 쪽발이들! 그러니, 어느 때고 힘만 키워진다면 무슨 수를 쓰던 복수를 하겠단 생각인건데, 그런 것도 잘 모르면서 미국은... 일본을 진정한 우방이니 뭐니... 암튼, 저런 짓(!)을 일삼던 놈들이 지금... 한국서 엄청난 공작을 벌이고 있어요! 한국의 재식민지화를 위해서 사력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내 역사인식을 지들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고친 거 하며, 전작권을 회수치 못하게 한 거 하며... 요최근엔 한중간에 이간질까지 시킬려고 하는 모양이던데... 앞으로 걱정이 태산입니다, 정말! 국민들이 정신 차리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여기도 일본 정보국이 감시하고 있을텐데... 쩝~ 수정 삭제
오타 독자 10/07/18 [18:00]
shell be(X) -> shall be(O) 수정 삭제
삼종신기문제는... 구름마을 10/07/18 [21:13]
히로히토가 삼종신기 운운한 것은, 삼종신기를 들고 자신은 마츠시로로 튀겠다는 의향을 내비친 것입니다. 저때 일본 권부 일각에서는 천황제도 유지하면서 전쟁책임 문제도 해결하기 위해서는 히로히토가 퇴위하고 교토의 절로 출가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었거든요. 히로히토 동생들이 뒤를 잇는 방안도 나왔었지만, 다들 현역 육해군 고급장교 신분이었으므로 전쟁책임이 아예 없다고 할 수 없으므로 나가노에 소개되어 있는 아키히토를 후계자로 옹립하자는 논의가 꽤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히로히토가 삼종신기 이야기를 꺼낸 것은 퇴위할 생각이 전혀 없음을 내비친 것이죠.
이후로 그 이야기는 쏙 들어갑니다. "천황제도뿐만 아니라 나(히로히토)도 지켜내라"고 신하들에게 요구한 것이죠. 결과적으로 맞는 선택이었습니다. 자신의 백성들은 부지기수로 죽어나가고 잔학한 폭탄까지 받아내야 했지만, 결국 자기 자리와 목숨을 지켰으니... 퇴위했다면 사형이든 (타의에 의한)자살이든 목숨을 내놓아야 했을 겁니다.
사실 위의 자료들은 이런저런 단행본을 통해 한국어 번역본으로도 여러번 소개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책들에 포함되어 있죠. 우리 자신이 관심이 없기에 잘 모르는 것 뿐입니다. 일본 젊은이들에게도 교육되지 않으니 점점 묻히고 있죠. 한국과 일본이라는 국가를 떠나서, 균형적인 역사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마츠다 선생님의 긴 싸움이 외롭지 않길 응원하겠습니다. 수정 삭제
오타 수정 부탁드립니다. 우리말사랑 10/07/19 [00:53]
누가 자신은 불충을 저질러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X) -> 저지르지 않았다고 (O) 수정 삭제
데이터 Nicholas 10/07/19 [11:19]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수정 삭제
잘 봤습니다. 일반김 10/07/20 [11:18]
막연히 일왕은 처벌받지 않은 전범이라는 생각만 있었는데, 이 시리즈를 읽으니 그런 생각이 더욱 확실해집니다. 수정 삭제
정말 꼭 알아야 할 역사적 사실입니다 yunis81 10/07/20 [16:43]
이런 기사 너무~~좋아요 이런 심도있는 기사는 신문에서도 본적이 없어요
우리가 바로 이런 역사를 연구하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정 삭제
정말 많은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이것참 10/07/26 [22:46]
미영러중 4개 나라가 항복문서를 보내고,[천황은 재수없는말이니] 일황이란놈은 자기 재산을 잃을까봐 전전긍긍하다 결국엔 항복문서내 날짜기한이 지나고,
히로시마,가와사키에 핵폭탄을 차례데로 투하되고 나서,
계속된 어전회의속에 결국엔 결말이 나고,
전쟁에 졌다는 뜻에 말은 하지도 않은채 국민에게 얼버무리며 전했군요.
그후 일본의 제국주의 세력은 살아남아 지금의 자국방위대인 자위대를 만들어냈고,
역사왜곡과 젊으이들을 포섭하여 끌여들이며, 재단을 통해 제국주의 국제외교,
뒷돈까지 이리저리 찔러넣으며, 한국에 진출한 일본기업들은 일본내 제국주의 세력에 지원을 하고, 어느세 프랑스학회와 대만 고위층까지 포섭을 하고,
영화에서 나오는 어둠의세력의 대표적인 모습과 너무 흡사한것 같음. 수정 삭제
거기다가. 이것참 10/07/26 [22:49]
패전선언을 할때도 일본국민들에게는 얼버무리면 패전과 비슷한 말조차 하지않아.

일황을 잘못도 없고, 그 옆에 몇명의 사람만 잘못인척하고,

결국에는 일본은 피해자, 미영러중 연합은 핵폭탄 떨어뜨린 나쁜놈으로 미화가
되는군요. 수정 삭제
일본우익 신디케이트 Empire of Jap 10/07/27 [16:48]
일본회의에서 부터 후지산케이그룹 그리고 야스쿠니신사에 이르기까지 일본우익 신디케이트는 서구의 세계최대 비밀결사그룹인 빌더버그 클럽(Bilderberg Club)과 쌍벽을
이루는 거대 어둠의 세력이다.

일본우익 신디케이트의 얼마나 거대한 우익네트웍인지를 알게 된다면 숨이 막힐런지는
상상에 맡긴다. X-Files 저리가라야...
수정 삭제
고마워요 19/07/17 [01:09]
내용 공유하고 싶어 출처 밝히고 다른 카페에 퍼 갔습니다. 기사내용 너무 흥미롭네요.^^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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