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굳은 표정으로 민주당 개표센터에 입장하는 간 나오토 총리 ©jpnews/야마모토히로키 | |
민주당으로선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선거였다.
아마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이 가장 억울할 것이다. 6월 2일, 당시 내각총리대신이었던 하토야마 유키오 씨는 오자와 간사장과 동반사퇴했다. 많은 사람들이 하토야마 씨를 칭찬했지만, 사실 이 '동반사퇴극'은 오자와 씨의 시나리오였다.
5월 30일 오자와는 자신의 심복 고시이시 아즈마 간사장 대행과 함께 국회의사당에서 하토야마 총리와 3자 회담을 가졌다. 오자와 씨는 이 자리에서 "간사장 직을 사임할테니 하토야마 총리도 총리직을 사임하는 게 어떻겠나?"라고 진언했다.
하토야마 씨는, 이 회담에서는 총리직을 계속 수행하겠다고 밝혔지만 31일과 1일 오자와 씨의 거듭된 설득으로 동반사퇴를 결심했다. 그 형태만 하토야마 씨의 '총리퇴임연설'이었을 뿐이다. 모든 것은 오자와 씨가 기획했다.
그런데 왜 오자와 씨는 스스로가 간사장 직에서 물러나면서까지 동반사퇴를 결정했을까. 여기에는 원칙적인 이유와 이에 결부된 현실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원칙은 그의 평생 정치이념인 '국가개조론'이다.
오자와는 전통적인 국가주의자다. 이 말은 곧 국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정치연합, 정치형태도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일본언론들은 흔히 그의 수단과 방법을 거론하면서 음흉하다니, 낡은 정치니하며 비판한다. 그래서 오자와는 일본언론을 싫어한다. 그것도 극도로.
그가 '탈관료'를 주장하는 이유는 관료주의가 국익을 좀 먹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자와 씨는 영국의 정치시스템을 일본정치에 도입하려 했다. 그는 영국에 처음 찾아갔을 때 정치인과 관료들의 역할이 철저히 구분되어 있는 것을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작년 9월 민주당 내각이 출범하면서 각 부처에 적어도 3명 이상의 정치인들(장관, 부장관, 정무관)이 투입된 것은 전적으로 오자와의 생각에서 비롯됐다. 민주당 매니페스토에는 이런 오자와의 생각이 반영되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오자와가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150명이나 되는 '오자와 칠드런'을 거느리면서도 민주당을 떠나지 않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자신의 정치이념을 실현하는데 가장 근접한 정치단체가 민주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간사장 직을 관뒀다. 아니 내 놓았다.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하토야마-오자와' 체제로 가다간 참의원 선거에서 필패한다는 것을 깨달은 오자와는, 가장 극적인 방법으로 동반사퇴극을 연출했다.
지극히 현실적인 또 하나의 이유, '참의원 선거 단독 과반수 확보'를 위해서다.
하토야마의 마지막 명연설은 전국에 생방송됐다. 그 명연설의 대미는 "오자와 간사장도 같이 물러나자"라는 대목이었고, 연설을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온 하토야마에게 오자와는 귓속말로 "그동안 열심히 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차기 총리로 선출된 간 나오토 씨는 지지율 59%(아사히신문, 6월7일)가 나왔다. 아무리 허니문 지지율이라 해도 19% 지지율을 받던 전 내각에 비해 무려 3배 이상 높은 지지율이다.
여기에는 간 나오토의 인간적 매력도 있었겠지만, 오자와가 연출한 '동반사퇴극'와 이 드라마의 주연을 맡아 본 하토야마의 '퇴임연설'이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과 무당파 층을 흡수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타이밍도 기가 막혔다. 선거 한 달 앞두고 60% 지지율이라면 웬만해선 지지 않는다. 단독과반수인 60석까지는 안 가더라도 50석대는 유지했을 것이다.
오자와가 지금까지 보여준 정치력은 철저한 '수(数)의 추구'에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의 신 오자와는 자신의 정치이념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최선의 묘수와 최대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타이밍을 계산했고 또 연출했다.
그리고 자신은 전공인 '도부자카 선거(ドブ坂選挙)'로 돌아갔다. 도부자카 선거는 후보자가 가정, 가게를 방문해 유권자와 악수하면서 자신을 알리는 선거운동 방식을 의미한다. 오자와는 도부자카 선거의 절대적 신봉자다. 그의 유명한 말이 있다.
"선거에 입후보하는 사람은 무조건 만 명과 악수하고 만 명을 직접 만나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라. 그냥 악수만 해선 안된다. 그 진심이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질 때까지 악수를 해야 한다." 퇴임했지만 대중과의 직접 접촉에서는 여전히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하토야마와 오자와가 지역표를 다지고, 간 나오토가 중앙을 정비한다면 민주당은 적어도 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간 나오토는 '선거를 앞둔 정당의 대표'라면 절대 해서는 안되는 짓을 하고 말았다. 소비세 증세가 바로 그것이다.
간 총리가 참의원 선거의 쟁점으로 언급한 '소비세 증세', 그것도 자민당의 10% 수준에 맞추겠다는 발언은 제 아무리 대의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선거전에서 해선 안되는 말이었다. 오자와가 불같이 화를 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년 중의원 선거를 떠올려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민주당 정권교체의 일등공신은 어린이수당과 기초생활연금, 그리고 가솔린제 폐지, 고속도로 무료화 같은 공약들이다. 이 공약들은 전부 서민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것이다.
▲ 그렇다고 자민당이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고도 볼 수 없다. ©jpnews/코우다 타쿠미 | |
어딜가나 마찬가지겠지만 정작 유권자들은 거대한 테마에는 별 관심이 없다.
후텐마 기지에서 뚜렷한 자기색깔을 보여준 사민당은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2석밖에 획득하지 못했고, 보수이념의 재결집을 선언한 '일어서라! 닛폰'은 불과 1석에 그쳤다. 자민당에 소속돼 있을 때만 하더라도 차기 총리감으로 가장 큰 국민적 인기를 끌었던 마스조에 요이치 역시 별 볼일 없이 끝난 사례(신당개혁 1석)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된다.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했던 민주당의 '생활공약'들의 근저에 '소비세를 올리지 않겠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것을. 이 공약은 민주당 정권공약의 1번지에 해당하는 기초공약이다.
당시 민주당은 소비세 증세없이 예산낭비 사업을 줄이거나 폐지하고 각 부처의 매장금(埋葬金)을 빼낸다면 충분히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8개월만에 무리라는 것이 드러났다.
간 총리 말마따나 재정건전화를 위해서는 소비세 증세를 비롯한 세제개혁을 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하토야마 내각 재무성 장관을 맡아보면서 g7 경제장관 회의를 통해 그리스 재정파탄이 얼마나 심각한지 직접 체험했다. 일국을 책임지는 총리입장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재정건전화 문제에 손을 대야 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소비세 증세를 위한 초당파적 협의였고 그 수치근거는 자민당이 제시한 10% 선이라는 발언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발언은 지금 당장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해야 하는 집권여당의 대표라는 입장을 생각한다면 어이없는 것이기도 하다. 오자와는 간 나오토가 "소비세 증세, 자민당 10%가 기준"이라고 말했을 때 말문을 잃었다고 한다.
"하필 이런 때에, 그 무슨 말도 안되는...." 오자와의 이 말은 타이밍이 최악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성급했다는 말이다. 소비세 논의는 선거가 끝난 후에 해도 된다. 당장 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면 참의원에서의 여소야대 국회가 성립돼 국정운영에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된다.
결국 간 나오토는 선거의 '무서움'과 집권여당 대표라는 직책의 '무거움'을 경시했다.
간 총리는 11일 심야 기자회견에서 "소비세 증세에 관한 내 설명이 불충분했다"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 발언 자체가 이미 그의 위기의식 결여를 반증한다. 그가 제 아무리 설명을 잘 해도 방송법 개정안 등으로 인해 민주당에 비판적인 일본언론들은 앞뒤 다 자르고 소비세 10%만 강조하게 돼 있다.
소비세 증세를 꺼내는 순간 수많은 무당파 층은 민주당에 고개를 돌렸다. 무당파 유권자들은 정치적 색깔이나 이념에 구애받지 않는, 지금 현재 자신의 생활이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다. 쟁점에 따라 갈대처럼 흔들리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소비세를 올리겠다'는 말은, 그만큼 자기 지갑이 얇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소비세 10%를 줄곧 주장해 온 자민당이라면 모를까, 민주당은 불과 10개월전까지만 하더라도 4년간 소비세를 올리지 않겠다고 공언한 정당이다.
당연히 지지율 59%는 허공으로 날라갔고 남은 것은 역사적 대패다.
간 총리는 패배의 책임을 통감한다며 "정책연립 등으로 국가를 위해 초당파적 협의를 해 나가겠다"라고 발언했지만 이 역시 정당정치의 기본을 무시한 처사다. 한국을 예로 들어도 쉽게 알 수 있다.
가령 한나라당 대표가 초당파적으로 정책별로 민주당과 연립하겠다고 해 보자. 우선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가만 있을리 없고 또 민주당이 그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거의 없다. 대개의 경우 이런 발언은 혼자만의 짝사랑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만 하더라도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의했다가 지지자들의 거센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정당정치는 다른 정당들이 서로 다른 이념과 정책을 구현해 가며 그 구현을 통해 지지자를 결집하고 유권자를 설득・동의시켜 나가면서 이뤄진다.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간 나오토는 나라의 재정건전화를 위한 자신의 열망을 유권자들이 알아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매우 낭만적인 발상이다.
물론 로맨티시즘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그러나 로맨티시즘은 어디까지나 현실에 기반해야 한다. 현실과 괴리된 로맨티시즘은 망상에 불과할 뿐이다.
저널리스트 우에스기 다카시는 오자와를 로맨티스트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로맨티스트 오자와가 정당을 그렇게나 만들고 파괴하면서도 몇 십년간 존재감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철저한 리얼리스트이기 때문"이라는 명언을 남긴 바 있다.
'재정파탄위기'라는 리얼리즘에 기반해, 내 마음을 다른 정당은 물론 유권자들도 알아줄 것이라 철썩같이 믿었던 간 나오토 총리는 이번 참의원 선거를 통해 아마도 많은 것을 깨닫지 않았을까?
집권 민주당은 9월 당 대표선거를 치룬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은 집권당 대표가 총리대신으로 임명된다. 남은 2개월간 간 총리가 참의원 선거 뒷수습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새로운 총리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과연 간 나오토가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간 나오토, 그의 정치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 ©jpnews/야마모토히로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