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부가 자국 인프라 사업 수출에 본격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일본은 사회기간산업이라 할 수 있는 원자력발전소, 고속철도, 수돗물 비즈니스 등에서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인프라 사업 수출 실적은 그렇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게이단렌(経団連, 한국 전경련에 해당)과 경제전문가들은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는 톱 세일즈(top sales)의 부재를 원인으로 꼽았다.
대표적인 것이 작년 12월에 있었던 아랍 에미리트 원자력 발전소 수주 건이다. 이 때 일본은 도시바와 미쓰비시, 히타치 등이 입찰에 참여했다. 도시바와 미쓰비시는 단독입찰이었고 히타치는 미국 ge와 컨소시엄을 구성했지만 전부 탈락, 복병으로 불리웠던 한국이 수주공사를 따냈다.
당시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언론들은 "한국이 아랍 에미리트 원전 수주를 성공시킨 결정적 원인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톱 세일즈가 큰 영향을 차지했다"고 분석하면서 "일본도 톱 세일즈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이들은 굳이 톱 세일즈가 아니더라도 정부가 직접 대(対)국가간 경제에 직접적으로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가령 도요타자동차의 리콜 건이다. 도요타자동차의 도요타 아키오 사장이 북미지역 리콜 문제로 하원 공청회에 참석했을 때 일본 정치권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산케이신문은 "일본경제를 이끄는 프론트리더가 뭇매를 맞고 있는데 이 나라 정치인들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하토야마 내각을 비난했다.
▲ 신간센은 일본이 자랑하는 고속철도 기술력의 결정판이다. ©jpnews/야마모토히로키 | |
경제산업성 '무역보험' 대상을 확충하기로 해이런 언론비판은 일리가 있다. 국내에서 발생한 경제관련 문제라면 이해관계 때문에 섣불리 끼어들기 힘들지만, 수출주도형 일본기업들의 해외 비즈니스 및 트러블 해결에 일본정부가 나서 협력자세를 취하는 것은 국가이익을 위해서라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권도 지난 4월부터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수상관저가 내 놓은 '인프라 관련산업의 해외전개를 위한 종합계획안 - 시스템으로 나선다'가 바로 그것이다.
제이피뉴스가 단독으로 입수한 이 계획안은, (1)인프라 관련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 (2)금융지원 강화, (3)해외 각국 계획책정 단계에서의 협력과 그에 따른 전략적 매칭, (4)지원의 패키지화・톱 세일즈 외교의 추진, (5)해외전개를 추진하기 위한 국제룰 대응, (6)올 재팬(all japan) 체제 구축 등 크게 여섯 가지 전략으로 구분돼 있다.
먼저 인프라 관련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일본정부는 관민일체의 체제구축에 힘을 쏟겠다고 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어떤 인프라 산업을 해외에 수주하거나 판매하는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후의 운영까지 책임진다. 또 이 운영에 있어 일본정부가 직접 보증을 서고, 운영자금도 지원해 가격경쟁력에서 개별 기업의 부담을 줄이겠다고 한다.
현지에서의 기술개발 및 실험등에 있어서도 정부산하의 독립행정법인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가 참여한다. nedo는 특히 미래산업이라 불리는 스마트글릿, 수상풍력발전, 물 비즈니스 분야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이라고 한다.
금융지원 강화는 지금까지는 일본이 해 왔던 정부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일본은 oda를 통해 개발도상국에 초장기 저리로 개발자금을 빌려주거나 혹은 무상원조를 해 왔다. 하지만 재정파탄 일보직전인 현 상황에서 기존 oda를 계속 실시할 수 없어 앞으로는 민간투자에 의한 인프라 사업을 일본정부가 측면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본정부는 연금기금 등을 활용한 인프라 펀드를 설립해 동남아시아 등 일본의 기술력을 원하는 지역을 대상으로 무역보험(nexi)를 확대적용시켜 일본기업들이 국가보증아래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무역보험'은 국가간 무역 및 해외 설비투자를 하려는 기업들이 예기치 못한 손실을 입었을때 이를 보전해주는 보험으로 독립행정법인 일본무역보험(nexi)이 주관하고 있다. 무역보험은 민간보험회사가 커버할 수 없는 전쟁, 테러 등으로 입은 손실액을 보전해 주는 시스템으로 보험액의 90%이상을 국가가 충당하기 때문에 사실상 국가보험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무역보험은 지금까지 일본국내기업의 직접 수출만을 대상으로 적용해 왔다. 하지만 인프라 산업의 경우 그 운영까지 일본기업이 담당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경제산업성은 무역보험의 적용범위를 확대시켜나갈 방침이라고 한다.
실제 스미토모 상사의 경우 7월 독일에 거점을 두고 있는 자사 계열사와 러시아 기업이 제휴해 진행하고 있는 통신위성 관련 기자재 취급에 대해 무역보험을 적용해 달라고 경제산업성에 신청했다. 경제산업성은 이 신청을 받아들일 것으로 보여, 앞으로도 이런 류의 무역보험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 '갈라파고스' 일본이 다시 세계무대에 등장할 수 있을까? ©jpnews | |
늘어가는 인프라 수요에 발빠르게 대처하는 일본정부와 기업
한편 일본정부는 2030년까지 전세계 인프라 사업 투자액이 41조달러(한화 약 4경 8천억원)에 이르며 그 중 일본이 중점적으로 공략할 것으로 보이는 아시아 시장은 8조달러(한화 8천 400조원)에 달할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연구소의 분석에 의하면 이 중 에너지가 4.1조달러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도로, 공항, 항만, 철도 등이 2.4조달러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 통신은 약 1조달러, 그리고 상하수도 관련 인프라 산업이 0.4조달러다.
지난 5월 마에하라 세이지 국토교통성 장관과 센고쿠 요시토 전 국가전략상(현 관방장관)은 지난 5월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해 하노이 역 일대를 시찰했고, 3일 저녁에는 즈운 베트남 교통운송장관과 신간센 고속철도와 원자력 발전 등을 주제로 회담을 가졌다.
이들은 다음 날 하이 부수상과도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는 등 최근 일본정가에서 보지 못했던 톱 세일즈의 면모를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이런 자세는 당내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당시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고 있었던 이시이 씨는 "내각 지지율이 엉망진창인데 주요 각료 두 명이 한가하게 외유나 하고 있다"며 이들의 톱 세일즈를 비난했을 정도다.
하지만 일본은 다나카 가쿠에이 시절만 하더라도 톱 세일즈를 통해 유무형의 부(富)를 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평론가 다와라 소이치로와 전 외교관 다나카 히토시의 대담집 '국가와 외교'(고단샤)를 보면 72년 총리대신으로 취임한 다나카 전 총리는 일본기업이 무차별적으로 진출해 일본의 경제적 침략이라며 반감을 샀던 74년 인도네시아와 타이, 필리핀, 싱가폴, 말레이시아를 방문해 양해를 구하고 동남아를 대상으로 한 oda에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그 후 일본은 미국 다음으로 가는 세계 최대의 oda 원조국으로 자리매김했고, 특히 1991년부터 2000년까지 10년간은 미국마저 제쳤다. 이것에 대한 찬반논의는 차치하고서라도 당시 다나카 전 총리가 보여준 톱 세일즈 외교는 반일감정으로 들끓던 동남아시아를 친일 분위기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국가 이미지 상승은 톱 세일즈에 필연적으로 수반된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셈이다.
한편 이번 인프라 종합전략안에는 분야별 전략으로 물, 석탄화력발전, 송배전, 원자력, 철도, 재활용 자원, 우주산업 등 미래산업이 망라돼 있다.
일본은 이들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이 기술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주춤거린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일본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하지만 소리소문없이 서서히 국가주도형 인프라 산업 수출에 나서고 있다.
최근 국가성장전략이 불투명하다는 비판을 들어왔던 일본이, 세계시장에 화려하게 재등장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