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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전형필' 몇 번이고 소름이 돋았다
[서평] 근대의 대수장가 간송의 삶을 재구성한 걸작
 
박철현 기자
▲ 간송 전형필     ©김영사
오래간만에 책을 하나 읽었다.
 
제이피뉴스에도 칼럼을 기고하는 이충렬 씨의 '간송 전형필'이다. 저자는 1여년간 '간송'의 삶을 글로 묶어 내기 위해 소소한 외출마저 삼갔다. 도중에 심장질환으로 쓰러져 위험한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간송'이 대체 뭐길래 저 정도까지 무리를 할까. 그도 그럴 것이 기자는 이충렬 씨의 개인블로그 '내가 만난 그림, 내가 만난 세상'을 통해 간송을 처음 접했다.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간송 전형필이나 위창 오세창의 에피소드를 들어도 알 리가 없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간송 전형필'의 출간에 임박해 지인 몇몇에게 이 책을 소개했다. 하지만 그들은 간송이 누구냐고 되물어왔고, 누군가는 일제시대의 대수장가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당시 문화재들을 어떻게 왜 수집했는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어떤 이는 "일제시대에 그런 호사를 누렸으면 친일파 아냐?"라는 말까지 했다.
 
하지만 도쿄다마(多摩)미술대학에 교원으로 근무하는 미야나마 씨는 달랐다. 그와 우연찮게 만난 자리에서 간송의 이야기를 했더니만 그의 눈빛이 빛나며 "조선의 대수장가로 일본 근대 골동품 학계에서도 매우 유명하신 분"이라고 말한다.
 
보통의 한국인들이 잘 모르고 일본인(물론 미술대학 교원이라는 것도 있겠지만)이 극찬을 하는 상황이 왠지 아이러니했다.
 
'간송 전형필'은 실존했던 인물의 삶을 다룬 평전이다. 물론 후손들도 살아있다. 전성우 보성중고등학교 이사장이 간송의 아들이다. 그렇기에 당연히 허구가 있어선 안된다. 저자인 이충렬 씨도 원고를 다 쓴 다음 유족들에게 보냈고 출판허가를 기다리는 동안 피를 마를 정도로 긴장했다고 털어 놓았다.
 
하지만 이 책을 딱딱한 역사책이라 생각하면 그것 또한 오산이다.
 
'간송 전형필'은 매우 소설적인 구성을 따르고 있어 아주 쉽게 읽힌다. 또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 훈민정음 해례본을, 간송이 소장하게 된 과정을 묘사하는 장면은 마치 스릴러를 방불케 한다. 자연스럽게 '간송! 꼭 입수해 주세요'라는 심정이 된다.
 
간송은 수집한 민족문화유산은 수천점이 넘는다.
 
광복 후 그 가운데 12점이 국보로, 10점이 보물, 그리고 4점이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됐다. 그 12점 안에는 위에서 언급한 두 국보 외에 청자 원숭이형 연적(국보 제270호), 청자 기린형 향로(국보 제65호), 청자 오리형 연적(국보 제74호) 등도 들어가 있다.
 
이 고려청자들은 1937년 '개스비'라는 영국변호사에게서 일괄적으로 구입한 것이다. '간송 전형필'은 이 과정을 '기와집 400채의 승부'로 묘사하고 있다. 기와집 400채, 요즘 시세로 치면 1200억원이다. 간송은 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공주 논 1만지기를 처분했다.
 
1937년이면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기 직전이다. 간송은 이대로 이 청자들이 영국에 돌아가거나 아니면 다른 일본인 수장가가 구입해 버린다면 영원히 우리 민족의 손에 못 들어올 것으로 보고 무리한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한꺼번에 사 들였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런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억만장자였던 간송은 호의호식하며 편하게 살려면 누구보다도 잘 살 수 있었지만 유산을 팔아치우면서까지 우리의 문화유산을 사 들였다. 
 
간송의 이런 문화유산 수집배경에는 그의 평생스승 위창 오세창(1864~1953)이 큰 영향을 미쳤다.
 
오세창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의 제자였던 역매 오경석의 아들로 만세보, 대한민보의 사장을 역임한 언론인이면서 3.1 만세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으로 활동한 분이다. 그는 육당 최남선이 한문으로 초고를 쓴 '독립선언서'를 읽고 "요즘 아이들은 한문을 몰라서 큰일이야"라고 말했을 정도로 한문에 능통했다.
 
그는 또한 서화 대수장가였던 부친으로부터 수많은 서화를 물려 받았다.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겸재 정선 등 역대 서화가들의 기록을 총정리한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도 그가 출판한 것이다. 
 
▲  식민지시대 대수장가로 이름을 떨친 간송 전형필 ©김영사
와세다대학 법과대학 3학년에 다니고 있을 무렵 간송은 잠시 서울에 들러 휘문고보 시절 미술교사를 했었던 스승 춘곡 고희동으로부터 "나는 네가 이 시대를 지키는 선비의 삶을 살아가길 기대한다"라는 말을 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일제시대에 선비의 삶을 구현한다는 건 상당한 난제였다. 고희동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간송에게 "글을 읽으면서 학문을 닦는 선비가 아니라 조선의 문화를 지키는 선비가 되라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고희동이 간송에게 조선문화를 지켜야 한다는 화두를 던져줬다면 오세창은 그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쳤다. 하지만 오세창도 간송을 시험했다.
 
오세창은 간송에게 "너는 왜 서화 전적과 골동품을 수집하려 하는가?"라고 물었다.
 
그 때 간송은 이렇게 답했다.
 
"서화 전적과 골동은 조선의 자존심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간송의 이 말 한마디가 조선문화를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의 주위에는 고희동이나 오세창과 같은 조력자, 혹은 스승이 있었다. 만약 간송이 편한 삶을 살고자 했다면 우리는 훈민정음 해례본과 수많은 고려청자들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읽다보면 몇 번이고 소름이 돋는다. 이 소름은 실존했던 삶을 그대로 묘사한 것(물론 저자 서문에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한 대목이 있다고 기술돼 있지만)이 이렇게 드라마틱 할 수 있는가라는 감탄이며 어떻게 보면 간송에 대한 존경심의 발현일지도 모르겠다.
 
한편 간송의 수집품이 보관돼 있는 간송미술관은 1971년부터 매년 두 번씩 5월과 10월 소장품 전시회를 연다. 또 이 전시회에 맞춰 도록도 발간된다. '간송 전형필'에도 도록에 수장된 몇몇 작품들의 사진이 수록돼 있다. 사진이지만 가슴이 뭉클해져 온다. 이 사진 속에 담긴 우리 문화유산을 어떻게 얻었는지 그 과정을 알게 돼서 그럴지도 모른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만 이 책은 지금까지 왜 이런 삶을 몰랐던 걸까라는 자책감과 그나마 지금이라도 알게 돼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동시에 선사해주는 양서(良書)다.
 
'간송 전형필'은 출간과 동시에 청소년권장도서로 또 삼성경제연구소의 'ceo가 휴가 때 읽을 책'으로 선정됐다. 보통 후자에 선정되면 속된 말로 '대박을 쳤다'고 말한다. 웬만한 기업은 물론 관공서들도 일괄적으로 구입하기 때문이다. 
 
간송 전형필의 삶을 통해 과연 어떤 삶을 영위해야 하는지 제이피뉴스 독자 여러분들도, 기자가 몇 번이고 느꼈던 '기분좋은 소름'을 만끽해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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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7/01 [15:17]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위창 오세창 선생님이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제자라고? 말이되나... 10/07/01 [16:31]
말이되는가... 윗 글과 관련없어도 역사니깐 제대로 짚고 넘어갑시다. 수정 삭제
수정했습니다. 박철현 10/07/01 [16:34]
오세창의 아버님인 오경석이 추사 김정희의 제자였는데 잠시 착각했습니다. 수정했습니다. 지적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수정 삭제
대단한분 맞습니다. 사파이어 10/07/01 [17:39]
읽어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있습니다.
그런 문화재들이 세계 곳곳에 흩어졌을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쓰렸을겁니다.
더 대단한게 그걸 박물관에 잘 수장하고 계신게 더욱더 앞날을 내다보는 지혜였던거 같습니다.
저도 책 잘 보았습니다. 수정 삭제
소개 고맙습니다~~ 이충렬 10/07/01 [18:26]
너무 과분하게 써주셔서 감사~~~ 수정 삭제
간송미술관 간송미술관 10/07/02 [17:14]
간송에 의해서 많은 문화재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죠. 간송미술관에는 국보급 회화도 있습니다. 수정 삭제
훈민정음 혜례본도 간송 선생님덕분이였죠. 단세포 10/07/03 [13:23]
간송 선생님께서 혜례본을 지켜내지 않았다면 지금 국어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니 소름이 돋는군요. 여태껏 본 책 소개 글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정 삭제
호위호식 빨간펜 10/07/05 [22:30]
ㅡ>호의호식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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