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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월드컵 예선이 맺어준 인연, 한국"
평범한 일본인을 통해 본 일본사회 (1) - 축구팬 사하라 신 씨
 
김현근 기자
제이피뉴스는 앞서 연재한 '일본 대학생을 통해 일본사회를 보다' 시리즈'에 이어, '평범한 일본인을 통해 본 일본사회'를 연재합니다. 이 시리즈 대상은 그야말로 샐러리맨, 주부, 제과점 주인 등 일본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통해 사건, 사고나 유명인이 전해주지 못하는 일본인들의 속내를 들여다볼 예정입니다.

바야흐로, 월드컵 시즌. 

평범한 일본인 시리즈 첫번째로 소개할 사람은 평범한 회사원이면서 30년 이상 아마추어 축구팀 선수로 뛰고 있는 '사하라 신(58)'씨. j리그가 출범하기 전부터 축구에 관심을 갖고 있던 그에게 '일본 대표팀과 축구, 일본 사회, 샐러리맨 인생'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를 하러 자택에 찾아가자, 그는 축구 유니폼을 입고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얼마 전에 열린 한일전이었다.
 
"현재 일본 대표팀은 그 전 감독인 오심, 지코, 트루시에가 남긴 것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엉망진창이에요. 선수들이 뛰면서도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더군요."
 
한때 초등학교 축구 코치를 한 적도 있다는 그는 "한일전에서 25년전 초등학생에게 가르친 수비의 기본원칙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가 말한 수비의 기본 원칙이란 이렇다.
 
"수비수는 골대로부터 최단거리를 막아야 합니다. 선수가 삼각형으로 진을 짜고 막으면 대부분 막을 수 있죠. 갑자기 박지성 선수가 치고 나온 것도 있지만, 보란치 선수가 커버를 해줘야하는데 못했습니다. 뭐, 박지성의 골은 프리미어리그와 j리그의 차이이기도 하지만요."
 
사하라 씨는 현 일본대표팀의 주장 문제도 거론됐다. 
 
"한 번도 본선시합에 출장할 수 없는 사람인 가와구치(gk)가 주장으로 선임되는 것도 이상해요.  오카다 감독의 선수 선발도 문제고, 무엇보다 감독이 선수들에게 요구한 것이 아직 완전히 흡수되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일본 축구팬 및 주요 스포츠지도 오카다 감독에 대해서 그리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는 상태. 그는 오카다 감독이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사하라 신     ©jpnews

 
"가와부치 전 축구 협회 회장의 후배이니까요. 와세다대학, 후루카와 전공으로 이어지는 후배니까. 솔직히 오카다 감독은 j리그 감독 중에서 중간 레벨이에요. j리그에서도 더 잘하는 감독이 많거든요. 센다이 감독이라든가, 작년 니이가타 감독, fc 도쿄 등.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월드컵이라는 1개월 이상 팀을 이끌어본 그런 경험을 가진 감독이 일본에는 없습니다".
 
사하라 씨는 당장의 월드컵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일본인 감독을 키울 생각이라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나, 오카다 감독에 대해서는 의문부호를 표시했다.
 
그는 월드컵 때마다 개최지까지 가서 봐왔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2주간 현지에 머물렀고,  2002년 한일 월드컵때도 한국에 와서 수원,대전,울산을 돌면서 월드컵을 관전했다. 일본 내 관전까지 포함하면 120만엔이 들었다고 한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도 2주간 체류했다.
 
그러나, 이번 남아공 월드컵은 가는 것을 포기했다. 일본에서 출발하면 비행기를 두 번이나 갈아타지 않으면 안되고 비용도 예전 보다 많이 들기 때문이다.
 
■ 한국에 조기축구회가 있다면 일본에는 사회인 리그가 있다?
 
월드컵도 현지까지 가서 볼 만큼 축구팬인인 그는 고교 1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반 대항전이었는데 사하라 씨가 속한 반이 우승을 해버린 것이다. 그의 나이 15세.  그일을 계기로 그는 대학에 진학해서도 축구부 2군 선수로 뛰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아마추어 축구팀인 fc sunday에 들어갔다. fc sunday는 도쿄 사회인 리그(1부부터 4부까지 있음)에 소속되어 있으며 그는 사이드 백, 센터 백, 미드필더, 리베로,보란치 등 다양한 포지션을 거쳤다. 
 
"제가 지금 속한 곳은 사회인리그 3부입니다. 축구시합은 연간 30회 이상 참여하는 것 같습니다. 보통 연습 없이 경기만 합니다. 사회인이라 다들 바쁘거든요. 그래도 월 2-3회 정도는 꼭 경기를 해요."
 
지금 소속된 팀만 해도 세군데. fc sunday 2군, 코가네이 시니어팀, 코다이라 카스카스다. 아마추의 축구팀은 연간 1만엔의 회비가 드는데, 리그에서 우승해도 상금은 없다. 우승컵을 받는 정도다.
 
이런 사회인 리그 아마축구 선수들은 대체 어디서 경기를 하는 것일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라운드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하면서도 제대로 된 크기의 경기장을 빌려 시합을 한다고 한다.
 
즉, 경기장이 빈 곳이 있으면 그곳에 모여 시합을 갖는다. 그래서 시합이 있는 일요일이면 도쿄 뿐 아니라 인근 현인 이바라키 경기장에도 가곤 한다. 다만 집에서 가까운 코가네이시 리그 경기를 할 때는 공원 내 경기장을 빌려서 한다고 한다. 

그가 58세가 되도록 축구를 계속 하는 이유는 뭘까. 

"일단, 자기만족이죠. 제가 축구나 바둑을 좋아합니다만, 축구의 매력이라면 다른 스포츠와 달리 같은 패턴이 별로 없어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때, 그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죠. 제 나이가 되면 체력적으로 힘들긴 하지만요" 

한국이 조기축구회처럼 보통 축구회에서 만나면 같이 뛰는 사람과 교류를 하느냐는 질문에 교류보다는 만나서 시합만 한다며 여기에는 일본사회의 문제도 있다고 한다.

"사실 초등학생 코치할 때도 보면, 아빠들이 안 모입니다. 다들 도쿄 외곽에서 도심으로 멀리 출근하니까 일요일 아침에는 축구할 기력이 없어요. 일본 지역에는 아빠가 없고 엄마와 아이들만 있습니다."

동네주민들간의 친목도모를 위해 만들어진 한국식 조기축구회가 일본에서 뿌리내리기 어려운 이유다.
 

▲ 사하라 씨가 가지고 있는 유니폼, fc 도쿄, 한국의 붉은 악마, 중국팀 티셔츠, 일본팀 유니폼을 보여주었다     ©jpnews

■ 엔지니어 외길 30년 "사장이 되면 좋아하는 일을 못해요"

이쯤 되면 사하라 씨가 축구만 좋아하는 사람으로 비치기 쉽지만, 30년 이상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한길을 걸어온 인물이다.
 
사하라 씨는 1975년 응용수리학과를 졸업하고 컴퓨터 분야 투신, 30년 이상 관련 분야에서 일을 해왔다. 그는 처음에 증권, 금융 쪽을 일을 시작으로 다양한 소프트웨어 툴을 만들기도 했고, 소프트웨어 공학적으로 디지탈 카메라, 가구공장, 원자력 발전, 휴대전화 펌 웨어 등 여러 분야의 컨설팅을 해왔다.
 
필요에 따라서는 해외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해서 해외 동향을 파악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저는 프로그램 사양이나, 어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공학을 방법론적으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개발 현장에서 필요한 것을 간접적으로 도와주고 있죠. 그래서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해 먼저 무엇을 해야하나 고민합니다."

한국에서 나이 들면 프로그래밍이나 엔지니어로 살아 가기가 쉽지 않다. 일본은 어떨까.

"일본도 마찬가지에요. 다소 그런 곳이 있기는 있지만, 제도상 잘 하는 회사는 별로 없어요. 일본도 30-35세부터 관리직으로 들어가거든요. 지금 개발자는 거의 20대죠. 지금도 개발자로 일하는 사람은 제가 알고 있는 이 중에  딱 하나 있습니다. 그 친구는 57세에요."

15-16년전  개발팀 부장을 한 적이 있던 그는 33명의 부하를 두고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엔지니어 분야의 일을 전문적으로 하면서 관리까지 하며, 한 달에 천페이지가 넘는 리포트를 내야했다. 그는 일의 부하가 너무 많이 걸리자 관리직을 그만 뒀다. 그럼에도 그는 엔지니어로서 적잖은 보수를 받아왔다. 그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 받았기 때문. 

엔지니어 생활 35년에 대해서 물어보니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싶었고, 하고 싶은 일을 해왔기 때문에 좋았다"고 답한다.
 
it 업계가 3d 업종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나오는데, 그는 프로그램 때문에 야근하거나 휴일에도 나와서 일한 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저는 프로젝트가 위기적인 상황이 떨어지지 않도록 미리 준비합니다. 그래서 갑자기 일이 늦어지거나 해서 철야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 계획되지 않은 휴일 근무는 없었습니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회사를 차릴 수도 있지 않았느냐고 묻자 "아니오. 회사 만들면 귀찮죠."라고 딱 잘라 말한다.

"회사를 만들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다른 것에 시간을 빼앗기니까요. 제 친구 중에 회사를 차린 사람도 있는데 경리 장부, 전표 등 정작 본인이 하고 싶은 일 이외의 여러가지 일을 하더군요. 돈을 많이 벌고 싶다 그런 의지는 별로 없었어요. 엔지니어로서 하는 일을 저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정년이 되는 나이인 60을 앞두고, 은퇴 후 새로운 인생에 대한 생각은 있을까.

"지금까지 하고 싶은 것을 해왔기 때문에 특별히 정년을 의식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젊었을때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죠. '주간 금요일'에 기사를 쓴 적도 있구요."
 
아마추어 축구 선수와 엔지니어, 양립하기 쉽지 않은 일을 30년 이상 해온 그에게 인생의 다른 코스에 대한 미련은 없는 듯 했다.
 

▲ 사하라 씨 서재에 있는 소프트웨어 공학 관련 책  ©jpnews

■ 일본 사회는 파시즘 직전?

그는 요즘 일본사회에 대해서 '파시즘 직전'이라고 말한다. 매스컴이 몰아가는 바람이 무섭다는 것이다. 
 
"일본에 인터넷우익이 많지만, 실제로 진짜 일본의 역사, 동아시아 역사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설령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소수이기 때문에 무시하면 되는데 그것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언론이 있어요. 문예춘추, 사피오 이런 잡지 말입니다. 웃기는 것은 그렇게 하는 언론이 실제로 그런 내용을 믿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특히 집권 민주당이 동아시아 전체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일본만을 위한  것을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구 일본군의 잔재가 일본사회에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학교에 여전히 구 일본군이 한 것이 지금도 남아있어요. 학교 행진 등은 군국주의 상징입니다. 히노마루, 기미가요는 거의 강제가 아니지만 강제가 되어가고 있죠. 회사 문화나 사회에도 남아 있죠. 그거 아세요? 급여 원천징수도 일본 군국주의가 쉽게 세금을 걷기 위해 시작한 것입니다. 미국 등은 자유신고제입니다." 
 
구 일본군에 관해서 공부를 많이 했다는 그는 관동군이 했던 수법이 여전히 현대 일본사회에서 통한다고 강조했다.
 
"보통 일본에서 상사는 부하와 싸우지 않는 것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하가 협박 비슷하게 이야기하면 원하는 대로 기획이 통과됩니다. 구 일본군의 폭주하던 것과 비슷해요. 구 일본군도 청일 전쟁, 러일 전쟁을 이겼다고 착각하면서 폭주가 시작된 거거든죠."

그는 청일전쟁, 메이지 시대만 하더라도 질 것 같으면 도망가는 것도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는데, 러일전쟁 이후부터는 그런 능력이 없어졌다고 강조한다.
 
"러일전쟁 때 포병을 포기하고 백뱅전으로 이겼다고 해서, 그 후부터는 정신력을 강조하고 돌격 중심의 전술을 계속 반복한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잠시 화제를 돌려, 일본에서 일상을 꾸려가는 그에게 피부로 실감하는 일본 경제에 대해서 물었다. 사하라 씨는 자신이 사는 지역도 빈부에 따른 과소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가까운 곳에 오래된 아파트가 있는데 낡고 싸서 그런지 노인이나 중국인들만 살고 있습니다. 그 곳은 2-300미터 근처에 쇼핑할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점포가 10개 중 하나나 둘 밖에 들어와 있지 않습니다. 제가 사는 무사시노시는 도쿄에서 그나마 풍요로운 곳인데 이미 과소화가 시작됐어요."

가까운 곳에 있는 대표적인 상점가에도 예전에 있었던 작은 라면집. 채소집, 생선집, 정육점 등이 없어지면서 생기를 잃었다고 한다.

그는 도쿄에서 평생을 살았다.  태어난 곳은 와세다대학이 있는 다카다노바바. 지금 사는 신주쿠에서 전철로 20분 거리인 무사시노시에는 24년전부터 살았다. 회사는 도쿄 중심가인 아오야마에 있어 매일 전철로 출근한다.
 
자녀에 대해서 묻자 일본의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의 차이를 알려주듯 이렇게 말한다.
 
"장녀는 31세인데 워킹 푸어에요. 빛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하다가 지금은 신주쿠 북퍼스트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어요."

워킹푸어란 아무리 일해도 빈곤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말한다. 때문에 사하라 씨의 장녀는 자신의 집에서 같이 살고 있다고 한다. 27세의 둘째딸은 중학교 교사로 할머니 집을 싸게 빌려 독립해서 살고 있다.

지금 집은 그와 아내, 그리고 아버지의 돈을 모아서 샀다. 처음 집을 살 때 빚이 1천만엔 정도 밖에 안되서 몇 년만에 전부 갚았다. 

일본은 집을 살 것이냐, 월세로 살 것이냐로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자가 중에서 단독주택의 경우, 어느 시점이 되면 대대적으로 수리를 해야하는데 이 수리비가 아주 많이  든다. 사하라 씨도 집을 산 지 20년째 되던 해 "지붕과 벽을 새로 하면서 100만엔 정도 들었다"고 밝혔다.

다행히 지금 집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이곳에 이사 오기 전에 살던 곳의 집갚이 올랐기 때문이었다. 당시 주택 버블이었고, 버블이 꺼지기 전에 그 집을 팔았다.

지금 동거하는 가족은 장녀, 아내, 아버지 등 3명이다. 어머니도 함께 살았으나, 2주전 노인 홈으로 옮겼다고 한다. 노인 홈은 월 20만엔 정도 드는데 사하라 씨의 아버지가 연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 사하라 씨 자택     ©jpnews

■ 월드컵이 맺어준 인연 '한국'

"유닉스 모임으로 한국에 처음 갔지만, 월드컵 예선때 한국 사람들에게 격려를 발으면서 관심이 부쩍 늘었죠."

아마축구선수이면서 엔지니어인 그는 축구를 통해 한국과 인연을 쌓았다.

 
그가 처음 한국땅을 밟은 것은 85년 9월 어느 주말이었다. 한일 유닉스 유저 모임이 있어서 운영자 보조역할로 서울에 따라간 것이 첫번째 한국행. 공교롭게도 86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 티켓을 건 한일전이 유닉스 모임 다음주에 서울에서 열렸다.
 
일본이 2골차 이상으로 이기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시합. 축구팬인 그는 다음 주말도 지체하지 않고 한국을 찾았다. 일본에서 온 응원진은 200명 정도. 아직 j리그도 출범하기 전이었다.
 
"경기을 관전하다보니, 일본이 2골차로 이상으로 이겨야 진출을 할 수 있는데 비기는 분위기로 싸우더군요. 결국 한국에 져서 일본의 첫 월드컵 진출이 좌절됐어요. 비록 졌지만, 한국 축구팬들이 많이 위로를 해줬어요.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그때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그날 고기를 먹으러 들른 가게에서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까지 만났다고 한다. 성이 박 씨라는 것 밖에 기억하지 못하지만 스위스 월드컵 관련 에피소드도 재미 있게 들었다는 사하라 씨. 
 
1954년 한국이 처음으로 출전한 스위스 월드컵은 경기 하루 전 간신히 스위스에 도착해, 당시 축구 강국으로 군림하던 헝가리와 1차전에서 0-9로 대패했다.

85년부터 아주 조금씩 한국어 공부 시작한 그는 97년에 '공동개최'라는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최근에는 어느 정도 회화를 할 수 있게 됐고, 그의 한국 관광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한일 프로리그 올스타전 관전차 한국에 오기도 하고 포항,경주,부천 등 지방 도시에도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일본 드라마 대신 한국 드라마를 보는 이유

한국에 대한 시작은 축구였지만, 영화 '쉬리'가 일본에서 인기를 끌면서 그도 한류팬 대열에 합류했다. '겨울연가'는 물론 '주유소습격사건', '모래시계', '고양이를 부탁해' 등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많다. 올해 초 후지tv에서 방영돼 인기를 끈 '
내 이름은 김삼순'도 그 중 하나.
 
최근엔 '선덕여왕'을 즐겨 보고 있는데, 10편 이후 아직 비디오 가게에 안나와서 못보고 있다고.
 
"한국 드라마는 처음에 방영권을 위성채널에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그곳 방영이 끝나야 비디오 가게로 나오거든요. 한국 드라마는 각본이 좋고, 배우들이 연기도 제대로 해서 재미있습니다."

 
그는 일본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이유는 배우 연기도 어설프고, 각본도 엉망이고, 그리고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국은 러브코미디라고 하더라도,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습니까. 일례로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면 해피엔드로 보이지만, 결국 문제(집안간의 결혼)가 해결된 것은 아니잖아요." 
 
한국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게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석탄공단에서 일하다가 고교를 마칠 때까지 대학교수를 지냈다. 부모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3학년때 자민당이 사기꾼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하는 그는 이따금 시민단체 일을 돕기도 한다.
 
"저는 학창시절 세계사를 좋아했지만 일본사를 싫어했습니다. 싫어했던 이유가 나중에 알고 보니 중학교, 고교에서 배운 역사가 전부 거짓말이었기 때문이었죠. 일본이 천황제의 나라라고 하지만, 1200년 중 800년은 사무라이의 시대입니다. 천황이 집권한 것은 3-400년 밖에 안됩니다."

일본 우익보다 천황제의 역사에 대해서 더 잘 안다는 그는 요즘 일본어가 고대 백제어에서 왔다는 책에 푹 빠져있다. 한국 사람 보다 한일간의 고대 역사에 대해 더 상세하게 아는 사하라씨. 아마축구 선수로 엔지니어로 바쁘지만 한국어도 느리지만 꾸준히 25년째 하고 있다.
 
마음에 드는 것 하나를 꾸준하게 아주 오래 즐길 줄 아는 그에게 나이는 그저 나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서재에서 백제어와 일본어의 관계를 밝힌 책 '일본어의  진상'을 들고    ©j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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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6/03 [10:30]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멋진 분이시네요 ^^ 10/06/03 [11:36]
이런 분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합니다 수정 삭제
어느 정도 진보적인 분이네요 진보 10/06/03 [12:07]
조선 지배는 정당했다... 같은 말 하는 사람이 나올 일은 없으니; 수정 삭제
정말로 개념잡힌 지식인. 지식인 10/06/03 [12:21]
한국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고 일본에 대해 비판하는 일본인치고
지식인 아닌사람 없더라. 수정 삭제
제정신 똑바로 곧은사람이네요 친구 10/06/03 [12:33]
이런 일본인 많아야 한일좋은 친구가 될텐데
역사도 모르는 태반인 일본인들
수정 삭제
정말 월광 10/06/03 [13:54]
늘 배우려는 자세를 가진 좋은 분이네요 즐거운 만남이었습니다. 수정 삭제
세계에서 한가닥 한다는 나라치고.. . 10/06/03 [14:08]
일본만큼 세계기록문화 유산이 한개도 없는 나라는 없지..

일본의 모든 문화는 한반도에서 건너갔기 때문이야.. 수정 삭제
느리지만 꾸준히... soulhunter 10/06/04 [10:28]
일본인은 정말 꾸준히 파고 드는건 인정해야 합니다. 하루에 5분 10분이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걸 10년 20년씩하시는분들 많이 봐왔습니다. 우리도 배워야할 점입니다. 수정 삭제
고양이를 좋아해 ?? 베르투스 10/06/04 [16:12]
부탁해 아니던가요?? 왜 왜 이런 사소한것만 보이는지.. ㅠㅠ 수정 삭제
훌륭하시네요.. 오.. 10/06/05 [18:16]
배울 점이 많습니다. 수정 삭제
이런 사람들이.. 45436 10/06/06 [02:21]
일본의 진정한 저력이라고 할수있겠지.. 이런 사람들 얘기를 보고도 국수주의 냄새를 피우는 사람들은 뭔가? 수정 삭제
멋진 분이군요. 산골소년 10/06/06 [17:46]
사실 이런분들만 있다면 한일 과거사 문제 같은건 문제랄것도 없을텐데, 물론 우리의 자세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인이라해서 과거 군국주의찬양자들만 있는게 아니듯이 우리 또한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수정 삭제
한글 맞춤법 좀 ㅡ.ㅡ;; 누누 10/06/06 [20:14]
이거 번역한건가요? 일본식 번역은 지양합시다
중간에 과소화라는건 무슨뜻이죠? 과소비를 뜻하는건가요? 살짝.. 이상
요즘 국어공부하고 있어서 어법에 맞지 않는 글을 보면 옷을 뒤집어 입은것처럼 불편해요;; 수정 삭제
민간교류의 소중한 예일거 같네여... 바다사랑 10/07/06 [23:25]
일본사람의 1/3정도는 위 분처럼 상당히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주로 진보성향의 사람들이지요... 한일간의 문제는 항상 양쪽 다 극단에 서 있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이를 받아 그대로 써 내려가는 매스컴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과소화(過少化)-지나치게 감소하다라는 정도의 뜻 같네요... 수정 삭제
과소화란 .... BIeu 10/10/09 [14:02]
과소화란 과밀화의 반대라는 뜻입니다 (사실 문맥을 읽어봐도 알 수 있기는 하지요)

사실 딱히 대체할 말이 없어서 일본어 그대로 쓰인것같은데
주석을 달아 두었으면 좋지겟네요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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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인터뷰] "위안부들은 결국 속아서 온 거야" (1부) 박철현 기자 2010/04/22/
[일본인 인터뷰] "의사 아닌 간호사가 되고 싶어요" 김현근 기자 2010/04/09/
[일본인 인터뷰] 日 이공계 현실, 이렇게 생각한다 김현근 기자 2010/04/03/
[일본인 인터뷰] "망각의 섬, 일본을 흔들어 깨운다!" 김현근 기자 2010/02/18/
[일본인 인터뷰] "나는 미래의 점장! 동방신기도 좋아해!" 김현근 기자 2010/02/09/
[일본인 인터뷰] 손으로 말하는 긴자 No.1 호스티스 안민정 기자 2010/01/04/
[일본인 인터뷰] "안중근 의사는 진정한 평화주의자" 박철현 기자 2009/12/25/
[일본인 인터뷰] 윤동주 시집 CD 발매한 아마누마 리쓰코 씨 박철현 기자 2009/12/18/
[일본인 인터뷰] 도쿄에서 외국인이 좋은 집 구하는 법? 안민정 기자 2009/10/22/
[일본인 인터뷰] 日 손인형 장인, 30년만에 이룬 꿈! 김현근 기자 2009/10/19/
[일본인 인터뷰] 일본 미용실엔 뭔가 다른 것이 있다? 안민정 기자 2009/10/07/
[일본인 인터뷰] 홈리스 만화가 '브리트니'를 아시나요? 안민정 기자 2009/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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