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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일본군화 되어가는 자위대
[단독] 육상자위대 연대장 공공연히 하토야마 비판.. 다모가미도 다시 부상
 
박철현 기자
"동맹은 외교적 미사여구, 이를테면 '신뢰해 달라'는 말만으로는 유지되지 않는다."
 
지난 2월 10일 열린 일본 육상자위대와 미 육군의 공동훈련 개회식에 참석한 육상자위대 제6사단 제44보통과 연대 나카자와 쓰요시(中沢剛) 연대장의 발언이 뒤늦게 물의를 빚고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나카자와 연대장의 '신뢰해 달라'(trust me)는 말은, 09년 12월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후텐마 기지(오키나와 현 기노완 시) 이전문제를 잘 해결하겠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5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 하토야마 총리는 뚜렷한 대책을 내 놓지 못하고 있다.
 
그는 올해 들어서서 현민의 의견을 적극반영하겠다, 미일동맹이 중요하다,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전 문제를 결정하겠다, 원점부터 다시 시작하겠다, 복안이 있다, 3월중까지 대강의 안을 내겠다, 아니다 5월까지 결론내리겠다 등 갈팡질팡 해 왔다.
 
급기야는 4월초 워싱턴에서 개최된 열린 제1차 핵안보 서밋에서 오바마 대통령과의 양국 정상회담이 10분만에 끝나버리는 상황도 발생했다.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는 말이다.
 
<워싱턴포스트지>는 하토야마 총리를 가리켜 "핵안보 서밋 최대의 패배자"라 보도했고, 미 고위관계자들은 "바보녀석이 전용기 타고 왔다며?"(주간문춘 4월 22일호)라고 비아냥거렸다. 신뢰를 잃어버린 것이다.
 
이런 미국의 대접에 충격을 받았던 것일까. 하토야마 총리는 15일 오전 수상관저 기자단에게 "5월말까지 반드시 결론을 내리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하토야마 총리의 대변인 히라노 히로후미 관방장관은 "결론의 의미는 여러가지가 있다"며 진화에 나섰다. 
 
실제 미국이 일본의 새로운 복안으로 급부상했던 가고시마 현 도쿠노시마(徳之島) 이전에 난색을 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후텐마 기지 이전문제는 시간적으로 5월말까지 결론내지 못 할 공산이 커졌다. 16일 <지지통신>과 <니혼tv> nnn은 하토야마 내각 지지율을 각각 24%, 27%에 그쳤다고 보도했다.
 
그렇다고 해도 하토야마 총리는 여전히 일본 25만여 자위대원들의 최고지휘통수권자다. 군부의 폭주로 전범국가가 돼 버린 일본에 있어 '문민통제(civilian control)'는 일본사회의 절대적 룰(rule)로 작용해 왔다. 
 
그런데 육상자위대의 현역 연대장이 부하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최고지휘통수권자의 발언과 그 태도를 비판했다. 
 
▲ 2010년 자위대 방위관계비 관련 개산요구안 문서   ©박철현/jpnews

 
독립부대 최고지휘관이 공공연히 총리를 비판했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기타자와 도시미(北沢俊美) 방위성 장관은 같은 달 13일 나가사키의 한 모임에서 "고급자위관이 최고지휘통수권자의 발언을 야유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나카자와 연대장에게 엄중주의 처분을 내렸다(이후 연대장 직에서 해임됨).

또한 일본언론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지만 이 나가사키의 모임에 참석한 한 인사는 <제이피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기타자와 장관은 연대장의 이 발언이 문민통제를 부정하는 행동, 즉 쿠데타로도 연결될 가능성이 있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며 격노했었다"고 모임 분위기를 전했다.
 
그런데 보다 큰 문제가 한 달 후 터져 나왔다. 3월초 나카자와 연대장이 해임처분을 받자 현역 중대장이 "나카자와 연대장 발언은 총리의 지휘통솔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항의 메일을 방위성 부장관 앞으로 보낸 것이다. 
 
또다른 중대장 한 명도 "총리는 엉망진창"이라고 비판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둘은 각각 구두(口頭)주의, 엄중주의 처분을 받았지만 일선 지휘관들이 한달새에 무려 셋이나 직속상관(총리)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간부 자위관의 망언이라면 08년 10월에 있었던 다모가미 도시오(田母神俊雄) 전 항공막료장(공군참모총장)의 고노 담화를 부정하는 논문이 유명하다.
 
자민당 아소 내각은 고노 담화를 충실히 계승한다고 했는데, 군령상 내각총리대신과 방위성 장관을 보필해야 할 임무를 지니는 항공자위대 최고 책임자가 내각 방침을 전면 무시한 채 태평양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 논문이 발표되자 마자 모든 매스컴은 다모가미 씨의 발언을 비판했고, 결국 다모가미 씨는 옷을 벗어야만 했다. 이 때와 비교한다면 이번 나카자와 연대장의 발언 및 일선 중대장들의 총리비판은 아무런 관심조차 끌지 못했다. 
 
공장(空将, 중장 이상)과 일등육좌(一等陸佐, 대령)라는 계급차이 때문일까? 
 
하지만 역사연구가 호사카 마사야스(保阪正康) 씨는 연대장의 발언이 더욱 위험하다는 인식을 내 비쳤다. 호사카 씨는 <주간문춘>(4월 15일호) 칼럼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다모가미 씨가 논문소동으로 해임됐을 때는 전 매스컴이 들고 일어나 그 찬반양론을 폈지만 이번 연대장 발언은 거의 소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 자위관들 입장에서 보자면 '구름 위의 존재'(막료장)보다 연대장이라는 '현장 보스(top)'의 발언이 중대하게 다가온다."
 
호사카 씨는 연대장의 발언이 막료장보다 더 영향력이 큰 이유에 대해 이렇게 덧붙인다.
 
"연대장은 실력부대의 정점에 서 있는 존재다. 육상자위대 부대는 대개 연대별로 주둔지를 형성하고 독립적인 단위를 구성한다. 연대장 보다 윗 계급, 이를테면 여단장, 사단장들은 사령부 막료들하고만 접촉하지만 연대장은 직접 부하들과 땀을 흘린다. 부하들의 사기, 정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호사카 씨는 "이런 위치에 있는 연대장이 부하들을 앞에 두고 행한 훈시에서 최고지휘관인 내각총리대신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는 건 언어도단"이라고 단언한다.
 
과거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연대장이 독단적으로 행한 사건이 문제가 된 경우가 허다하다.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의 도화선이 된 루거우차오(盧溝橋)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은 '연대장' 때문에 일어났다?!
 
이 사건은 중국 29군과 다시로 간이치로(田代皖一郎) 중장이 통솔하는 구 일본군 중국주둔군과의 대결로 알려져 있지만 사건의 원인제공을 한 이는 무타구치 렌야(牟田口廉也) 제1연대장이었다. 무타구치는 1944년 3월 임팔작전을 앞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내가 루거우차오 사건의 계기를 제공했다. 이 사건이 커져 중일전쟁이 됐고, 결국 지금의 태평양전쟁까지 확대되고 말았다. 혹시라도 내 힘으로 인도로 진공해 태평양전쟁 수행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만 있다면 태평양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나로서는 국가에 대한 죄책감을 다소 줄일 수 있을 것이다."('일본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 중에서)
 
연대장 한 명의 잘못된 판단이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낳았다. 하지만 이것은 거꾸로 생각해 보면 그만큼 연대장이 일선 하급 지휘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 된다.
 
▲ 다모가미 도시오 전 항공막료장 (09년 8월 히로시마에서) ©야마모토 히로키/jpnews
다모가미 씨의 '침략전쟁 정당화' 발언에는 공개적으로 나서지 못했던 일선 지휘관들이 나카자와 연대장의, 어떻게 보면 해프닝으로도 치부할 수 있는 '야유' 발언에 반응한 것도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중대장들 입장에서는 생사를 같이 해 온 부대 최고 지휘관이 '오락가락' 총리를 비판했다고 해서 그게 무슨 잘못이냐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 사건은 일본언론의 불감증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계기가 됐다.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 니혼게이자이, 산케이 등 일본을 대표하는 5대 일간지 가운데 <마이니치신문>이 사설을 통해 "이번 사건은 자위대 최고지휘관인 수상에 대한 비판이라는 규율상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민통제의 관점에서도 문제있는 행위"라고 비판했을 뿐이다.
 
호사카 씨는 "역사상식을 조금이라도 지니고 있다면 이번 문제가 얼마나 중대한 사건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쇼와(昭和)사 연구자인 그는 나카자와 연대장의 발언을 접한 순간 하시모토 긴고로(橋本欣五郎)를 떠올렸다고 한다.
 
하시모토 긴고로는 쇼와초기 시절 구 일본군 장교로 근무하면서 몇 번이고 쿠데타를 획책한 인물이다. 그는 일본 역사상 대표적인 쿠데타 모의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3월 사건', '10월 사건'의 주모자로 초기 제국육군의 군내 사조직 '사쿠라카이(桜会)'의 핵심인물이었다.
 
초국가주의 비밀결사를 지향한 '사쿠라카이'는 1931년 3월하순 1만명의 대중을 동원해 의회를 포위한 후 집권여당이었던 민정당(民政党) 본부와 수상관저를 습격할 계획을 세웠다. 이들의 기습으로 정권이 혼란에 빠지면 하시모토 등이 육군을 출동시켜 계엄령을 편다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3월 17일 발각되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들은 그 해 10월 다시 쿠데타를 시도해 파문을 일으켰다.
 
흥미로운 건 당시 하시모토가 비록 육군대학 교관으로 일선 지휘관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중좌(中佐, 중령) 계급을 달고 있었다는 점이다. 강력한 초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하시모토에게 교육받은 젊은 지휘관들은, 임관후 대거 사쿠라카이에 들어가 충성을 맹세했고 10월 사건에도 상당수 참여했다.(두번째 쿠데타 시도도 실패로 끝남)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의회를 포위하고 수상관저에 침투해 국가를 전복시키려는, 명백한 쿠데타였음에도 불구하고 하시모토는 불과 20일짜리 근신처분에 그쳤다. 아니 1934년엔 대좌로 승진해 포병연대 연대장을 맡았다.
 
호사카 씨는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던 자가 처벌은커녕 승진했고 일본을 대표하는 우익활동가가 됐다. 그 후 일본이 어떤 길을 걸어갔는가? 이러한 역사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퇴임후 승승장구하는 자위대 고급간부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80년전의 구 일본군과 지금 자위대의 모습은 놀랍도록 닮았다. 앞서 잠시 언급한 다모가미 전 항공막료장이 그렇다. 그는 08년 퇴임한 이후 여론의 비난을 받기는커녕 '힘내라 일본! 전국공동위원회'라는 우익단체를 결성해 회장직에 취임, 전국각지를 돌아다니며 우익세력 확장에 힘을 쓰고 있다.
 
이번에 물의를 일으킨 나카자와 연대장도 비록 연대장 직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상벌만 보자면 '엄중주의' 처분을 받았을 뿐이다. 기타자와 방위상이 "쿠데타에 필적하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격노했음에도 말이다. 또 다른 두 중대장도 가벼운 처벌로 끝났다. 언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단순한 해프닝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 자위대 내의 치부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는 수작 르포집  ©고분켄
하지만 최근 일본 자위대의 치부를 고발한 르포집 '밀실 자위대(自衛隊という密室)'를 상재한 저널리스트 미야케 가쓰히사 씨는 <제이피뉴스>의 취재에 "해프닝은 무슨 해프닝이냐. 자위대는 원래 그런 집단이다"라고 단언한다. 
 
그는 대표적인 예로 '수염대장'으로 유명한 사토 마사히사(佐藤正久) 자민당 참의원을 들었다. 육상자위관이었던 사토 씨는  04년부터 06년까지 이라크 파병 부흥지원단장을 맡으면서 유명세를 탔고, 07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비례대표로 나와 당선된 자위관 출신 정치인이다. 미야케 씨는 그의 당선에 대해 "완전한 대국민 사기극"이었다고 주장한다.
 
"사토 씨는 귀국 직후부터 참의원 선거에 비례대표로 출마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자민당 역시 공천낙점을 찍은 상태였다. 그의 이런 생각을 안 오리키 요이치 육상자위대 막료장은 그를 육상자위대 간부학교 주임교관으로 임명해 전국을 돌면서 강연하게 했다. 선거가 치뤄지기 전에 이미 그를 위한 선거운동을 방위예산을 써 가며 도와준 것이다."
 
미야케 씨는 "정치헌금도 문제가 된다"고 말한다.
 
"07년 1월 사토 씨가 자위관을 관두고 본격적으로 선거활동을 시작하자 다모가미 도시오, 오리키 요이치 등 자위대의 현직 최고지휘관들이 그에게 정치헌금을 냈다. 자위대 규범에 자위관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히 그런 행위를 한 것이다."
 
물론 일본국 헌법은 정치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미야케 씨는 "하지만 자위대 같은 안전보장에 관련된 특수한 조직의 경우 패전이후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묵계가 성립돼 왔다"고 말한다.
 
"문제는 정치자금규정법에 2만엔 이상이 아닐 경우 익명 기부가 가능하도록 돼 있다는 점이다. 다모가미와 오리키는 10만엔씩 냈기 때문에 자금명부에 이름이 실렸다. 육상자위대와 항공자위대의 최고통수권자가 사토 씨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는 사실을 하급 지휘관들이 알았다. 그들의 표결행위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음은 물론 2만엔 이하 익명기부자도 상당히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미야케 씨는 언론문제도 함께 짚었다.
 
"사토는 현직에 있을때 전국에 퍼져있는 자위대원들 앞에서 자신을 어필할 수 있었고 후보자였을 땐 현직 자위관들의 조직적 지원을 받았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자위대가 정치에 관여했다는 엄청난 사건이다. 하지만 기존 언론들은 이 점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보이지 않았다. 자위대 자체가 하나의 터부가 돼 버린 것이다."
 
심지어 방위성은 사토 씨가 자위대를 관둔 후 출간한 '이라크 자위대 전투기'를 4480권이나 구입해 전국 각 부대에 배포했다. 국민들이 낸 공적 세금을 선거에 출마하는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기 위해 사용했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그 때(07년) 이런 행위가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다모가미 씨의 전쟁정당화 발언이 나오고 또 이번처럼 현직 자위관의 수상비판발언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것"이라며 "폭주하고 있는 자위대를 아무도 안 다루다간 정말 예전 구 일본군처럼 될지도 모른다"라고 경고한다.
 
가령 그의 책 '밀실 자위대'를 보면 "2007년도 1년간 해상막료장이 행한 20번에 걸친 훈시를 살펴보면 제국해군, 해군병학교 등 구 일본해군을 높이 평가하는 발언이 15회 이상 나온다. 해상자위대 내부에는 '제국해군'의 정신이 살아있다"는 구절도 등장한다.
 
또한 자위대는 다른 내각부처가 공개예산심의회의 등을 통해 예산삭감의 칼날을 맞을 때도 교묘하게 비켜갔다. 
 
▲ 자위대를 정상(?)적으로 관둔 후 우익단체의 회장으로 활동하는 다모가미 씨. 그는 올 여름에 있을 참의원 후보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박철현/jpnews

 
자위대 관련 예산 정권바뀌어도 아무런 변화없어...
 
<제이피뉴스>가 입수한 방위성 개산요구안 자료를 보면 2010년도 방위성 예산액은 4조 6826억엔으로 09년도의 4조 7028억엔에 비해 불과 0.4%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특별행동위원회=saco 관계비용을 포함시키면 09년도의 4조 7741억엔보다 오히려 0.3% 늘어난 4조 7903억엔이 됨).
 
신규사업 연도부담액은 09년도 1조 6990억엔보다 2.2% 줄어든 1조 6623억엔으로 책정됐다. 하지만 이 역시 09년도의 08년대비 감소폭 5.5%에 턱없이 미치지 못했다. 
 
반면 인건비는 늘어났다. 4조 6826억엔 가운데 자위관 급여 등 인건비에 지출되는 돈은 2조 850억엔(44.5%)에 달한다. 09년도 인건비 2조 773억엔보다 78억엔이 늘어났다. 전체 예산이 전년도에 비해 삭감됐음에도 인건비만 상승한 것이다. 미야케 씨가 한숨을 쉰다.
 
"정권이 바뀌고 국토교통성, 후생노동성은 다들 엄청나게 예산이 깍였는데 방위성 예산은 전혀 변함이 없다. 다른 데서는 공무원 개혁, 슬림화니 어쩌니 해서 인원도 줄이고 급여도 내리고 그러는데 자위대는 요지부동이다. 그러면 고맙다고 생각해서 더 열심히 해야 할 건데 고작 한다는 게 특정 정치인 지지에 총리비판, 제국해군이다. 기존 언론이 다루지 않는 크고작은 사고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도무지 나아질 수 없는 병든 집단이 자위대다."
 
미야케 씨는 자위대의 환골탈태 해법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며 냉소적인 어투로 이렇게 말한다.
 
"지금 일본정부가 재정파탄 위기를 맞고 있다. 자위대 문제만 놓고 생각한다면 그냥 재정파탄 터져서 망했으면 좋겠다. 디폴트 상태가 되면 돈 되는 거 다 팔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지스함도 팔고 f-15도 팔고... 팔 수 있는 건 다 팔아버리는 거다. 그러면 자위대도 자연스럽게 축소된다. 나라가 망했는데 자위대도 필요없잖아?"
 
한편 다모가미 전 항공막료장은 올 여름 열리는 참의원 선거에 자민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다모가미 씨는 막료장 퇴임후 우익진영의 논객으로 자주 매스컴에 등장해 인지도도 있다. 그가 당선될 경우 고급 자위관 출신 현역의원이 두 명으로 늘어난다. 물론 자위관이 퇴역한 후 정치인으로 변신해선 안된다는 규정은 없다.
 
하지만 자위대는 전국적인 조직으로 현역자원만 247,746명(2010년도 기준)이다. 그 가족, 친지들을 합하면 기십만표는 수월하게 나온다. 다모가미 씨가 이번 선거에서 당선되면 '자위관 퇴임→국회의원'의 관행이 굳어질지도 모른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그의 출마 및 당선여부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
 
재정파탄, 흔들리는 미일동맹, 사라진 리더쉽... 불안한 표어들이 난무하는 지금 국가의 안전과 국민을 보호해야 할 자위대가 스스로 '국가'가 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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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4/17 [10:50]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한 번 더........ 왜구 10/04/17 [12:08]
참세번이라고 했던가. 두발의 핵은 역시 부족했다는 느낌. 마지막 한 발은 도쿄로......... 수정 삭제
결국 2차대전의 마무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겁니다 장쾌 10/04/17 [14:20]
최고 책임자인 천황이 죽지 않았고 다른 군부세력들, 정치인들의 숙청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에 결국 역사문제부터 시작해서 극우세력의 약진까지 모든것이 뒤틀려 버렸습니다
전후 일본이 새 나라로 가는 첫단추부터 잘못 꿰매졌단 말이지요
겉은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을지는 몰라도 결국 일본은 본질적으로 별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자위대가 터부시 되고 있다는데 군부가 정치인들을 암살하고 군사정권을 세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2차대전ㅤㄸㅒㅤ의 일본제국과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과거의 향수에 젖어 사리분별 못하는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면 그건 일본 스스로의 목을 조르는 셈 밖에 더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이피에서 다뤄줬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다운폴 오퍼레이션인데요 2차대전에서 일본이 원폭 2발을 맞은 후에도 본토결사항전을 주장했을시 미국이 시행했을 작전입니다
그렇게 끝장을 봤어야 일본이 제대로 태어날 수 있었을지, 참으로 궁금해지는군요 수정 삭제
이야 우리 다죽었다 ㅡㅡ 10/04/17 [16:14]
일본이 또 전쟁일으키네 수정 삭제
이건 뭐.. 흠.. 10/04/17 [18:44]
팔 다리가 머리할려고 드는 기세네 수정 삭제
헐... 하필 6사단이라니... 시드 10/04/18 [15:37]
순간적으로 과거 제국육군시절의 6사단 망령이 스쳐가는...... -_-); 어쨌거나 대표적인 보병사단의 연대장 정도면 순수하게 독자적인 발언이라고 보긴 어렵고... 강성 영관급들의 기류를 대표하고 나선게 아닐까 싶은데... 이거 참 골 때리는군요. 수정 삭제
절대로 변하지 않을 집단.. 11 10/04/18 [17:34]
100년전 군국주의 사고방식 그대로인 집단이 일본이다..
그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수정 삭제
본격적인 테러국 선언이군요 han 10/04/20 [13:14]
적극 환영합니다. 독도 강탈을 시도해 주세요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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