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한국에서 행방불명된 한류팬 다나하시 에리코(58) 씨의 수색 작업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녀가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이 제기돼 눈길을 끌고 있다.
<제이피뉴스>에 '일본 아줌마의 제멋대로 서울체험기'를 연재중인 논픽션 작가 간노 도모코 씨는 <주간아사히>(4월 23일호)에 기고한 르포 '한국에서의 수수께끼 행동'을 통해 다나하시 씨의 이동루트, 목격증언 등을 토대로 그녀가 굳이 사건에 휘말렸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미 본지가 보도한 대로 대다수 일본언론들은 "다나하시 씨의 연락이 끊긴 강릉은 1996년 북한의 무장공비가 침투한 지역", "한국 관광지에서의 피해 사례" 등을 언급하면서 그녀가 한국 현지에서 사건에 휘말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암시를 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또 이들 언론의 추측성 보도는 일본 최대의 익명 게시판 '2채널' 등에 소개돼 일본 네티즌들의 '혐한(嫌韓)' 소스로 작용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나온 간노 씨의 현지취재를 통한 '자살 가능성 보도'는 꽤나 설득력이 있다.
물론 간노 씨는 <제이피뉴스>의 취재에 "내 르포기사도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라며 "사실은 경찰관계자들도 공개하지 않았을 뿐이지 뭔가 알고 있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다. 주한일본대사관도 모든 것을 파악한 후 공개수사를 요청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공개수사 방침으로 변경된 지금도 새로운 팩트가 나왔다는 소식은 없다. 다나하시 씨의 자녀들이 직접 한국으로 가 전단지를 뿌리는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경찰수사는 여전히 오리무중 상태다.
그녀는 실종 당시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간노 씨의 심층르포를 통해 다시 한번 정리해 보도록 하자.
▲ 간노 기자가 기고한 주간 아사히(4월 23일호) ©주간 아사히 | |
새로운 목격 증언 등장, 하지만...경찰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다나하시 씨가 어떤 동선을 따라 움직였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당초 그녀는 저녁 7시경 '하얀 등대' 근처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고 보도됐지만 이미 그녀는 그 때 식당에서 나왔다는 새로운 팩트도 등장했다.
또한 2월초, 서울과 주문진 간 고속버스 운전기사가 "다나하시를 봤다"는 새로운 정보도 입수됐다. 이 운전기사는 "오후 8시 10분 서울행 버스에 '동서울?'이라고 물으며 탑승한 외국인이 있었다"면서 "경찰이 보여준 사진을 보고 다나하시 씨라는 것을 알았다"고 증언했다.
위 증언이 사실이라면 다나하시씨는 밤 11시경에 동서울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녀가 머문 호텔은 이 터미널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간노 씨는 "이 버스기사의 증언은 신빙성이 없다고 본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다나하시 씨가 있던 식당에서 주문진 고속버스 터미널까지는 걸어서 30분정도 걸린다. 그런데 그 날(1월 1일)는 이미 해가 저문 오후 7시였다. 외국인 여성이 인적 드문 밤길을 혼자서 걸어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힘들다. 또 경찰 조사에 의하면 택시에 탄 흔적도 없다고 한다."간노 씨는 "그녀는 식당에서 일본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늦어지면 묵고 갈 것'이라 말했다"고 덧붙인다.
실제 경찰이 운전기사의 진술을 토대로 주문진 근처 호텔의 기록과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 근처를 조사해 봤으나 성과는 없었다.
또한 경찰은 다나하시 씨가 휴대전화로 일본에 있는 친구에게 사진을 첨부한 메일을 몇 차례 보냈다는 사실을 토대로 위치추적도 시도해 봤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고 한다. 그녀가 소지했던 핸드폰이 일본에서 사용하던 기종에 로밍서비스를 받은 것이라 위치추적 자체가 안 됐기 때문이다.
다나하시 씨는 원래 1월 4일 일본으로 귀국할 예정이었다.
귀국예정일을 하루 넘긴 1월 5일, 일본언론은 "다나하시 씨의 친구가 그녀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봤더니 '아키야마'라는 남자가 전화를 받고 끊었다"는 사실이 보도됐다.하지만 한국 경찰은 "1월 5일의 통신기록을 조사해 봤지만 전화가 걸려온 기록은 없었다. 아마 그 친구가 전화번호를 잘못 누른 것 같다"고 말했다.
다나하시 씨의 수수께끼 행동다나하시 씨의 자녀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한류드라마와 그 안에 등장하는 한류스타들을 통해 사별의 슬픔을 극복해 나갔다"고 말한다. 다나하시 씨는 한류스타들 중에서도 류시원의 열렬한 팬이었다.
간노 씨는 "그랬던 그녀가 한국여행에서 보여준 모습은 이상한 구석이 많았다"면서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식사를 한 식당주인의 증언이다.
"그녀는 혼자 들어와 가게 구석에 앉았어요. 흔히 보기 힘든 독특한 옷차림이어서 눈에 띄었죠. 담배를 피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습니다. 한 두번 전화 통화를 했었는데,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가며 말을 하더군요. 매운탕을 시켰지만 거의 손 대지 않았고, 소주 두 세 병을 천천히 마셨어요. 이상하다고 느낀 건 그녀가 주문했던 매운탕에 불을 계속 켜놓고 있었다는 겁니다. 매운탕 국물이 다 쫄아들어 냄비가 탈 때까지 멍하니 앉아 있더군요. 이상했어요."간노 씨는 다나하시 씨가 머물렀던 호텔 방범 카메라에 남아있는 그녀의 모습도 어딘가 이상했다고 지적한다. 간노 씨가 조심스럽게 추측한다.
"다나하시 씨는 호텔 1층에 있는 카페에 앉아 2시간 동안 멍하니 창 밖 너머 흐르는 한강만을 바라 봤다. 호텔종업원에 의하면 그녀는 한국에 와서 이틀만 밖에 외출했고 식사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그녀의 통화기록을 살펴보면 한국 내의 가이드와 통화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보통 여행객의 모습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다나하시 씨의 행동을 보면 삶에 의욕이 없었다는 느낌도 든다. 자살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염두에 둬야 한다."하지만 간노 씨는 "자살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이다"라며 "평소 그녀의 성격을 보면 특별한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실제 그녀가 속해 있던 류시원 팬클럽의 친구들은 "다나하시 씨는 류시원 콘서트장에서 자주 볼 수 있을 정도로 광팬이었고, 매우 적극적인 성격이었다. 식당에서 처음 만난 한국인과 밤늦도록 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봤다"고 증언한다.
문제는 일본언론들의 행태다. 모든 정황 및 목격담을 종합해 볼 때, 그녀가 반드시 한국에서 사고를 당했다고 말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간지, 민방와이드쇼 등은 사고가능성을 높게 치면서 한국이 위험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또 이러한 인상은 앞서 말한 것처럼 네티즌들의 '혐한'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연간 500만명이 오고가는 한일관계를 고려해서라도 신중한 보도가 요구된다.
<제이피뉴스>는 하루라도 빨리 다나하시 씨가 무사히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