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여행 경험담 중에 꼭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시골길을 걸어 가다가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청도까지 가려면 얼마나 가면 되요?” “응 조금만 가면 돼”해서 갔더니 '한 시간을 갔다더라' 심지어는 '해 떨어질 때까지 갔다더라'며 할머니의 시간 개념 혹은 거리 개념을 웃음거리로 삼은 적 있다. 그렇다면 할머니는 우리를 일부러 속인 것일까? 아니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젊은이들이 청도가는 길을 물어본 바로 그 날 저녁, 할머니는 노인회관에 둘러앉아서 "오늘 젊은 애들이 청도가는 길이 얼마나 남았냐길래 '저 모퉁이만 돌아가면 나온다고 했지롱!'" 하면서 즐거워 하지는 않았을꺼다. 게다가 청도는 할머니가 평생 낳고 자란 곳이라 손바닥 손금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을 터이다. 그런데 왜 할머니는 조금만 가면 된다고 했을까? 첫 번째 드는 생각은 할머니도 청도는 멀고 시간이 꽤 걸린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청도까지는 할머니 젊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삼십분 거리. 근데 지금은 나이도 들고 힘도 젊은 때 같지 않아서 한 시간 쯤 걸리는거다. 그러니 젊은 애들이 물어보면 “내가 비록 지금은 한 시간이나 걸리지만, 지금 길 물어보는 젊은 사람들처럼 젊었을 때는 삼십분 뿐이 안 걸렸으니 당연히 조금만 가면 된다"고 말씀하셨을꺼라는 추정이 가능해진다. 또한, 할머니 연세는 지금 60이 넘었으니 할머니 살아오신 햇수로 치면 삼십분도 잠깐이요, 한 시간도 잠깐이고, 십 년전도 바로 조금 전의 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두 번째 생각은 할머니가 생각해도 청도는 멀다. 멀지만 어느 해인가 서울에서 추석 때 자가용을 몰고 내려온 아들 내외가 차를 태워주는데 할머니 혼자 걸어서 반 나절 걸리던 거리를 십 분만에 쌩하고 달리니 금방인거다. 할머니 생각에 '걸어서는 반 나절이지만 차 타고 가니까 금방 가더라. 이 곳 사람이 아닌 타지 사람이 물어보니 금방'이라는 생각이 할머니 이미지로 떠오른신건 아닐지? 등산을 가면 먼저 올라갔다 내려오는 사람들이 지금 땀을 삘삘 흘리면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며 “얼마 안 남았어요”하는것과 마찬가지로 “청도까지 가는데 얼마나 걸려요?” 묻는데 “여기서 한참 걸려! 왜? 걸어가려구!” 하시면 우리의 갈 길이 배나 힘들지 않을까? 여기서 우리는 길을 걷는 젊은이들에게 조금만 가면 된다고 말씀해주는 할머니의 지혜를 함부로 웃음거리로 삼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초등학교 5학년 내 생일날 친구들을 초대했는데 할머니가 나를 부엌으로 불러 “조기 세 번째 미역국이 네 꺼야” 하시던 할머니 생각 문득난다. 세 번째 미역국 속에 쇠고기가 많이 들어있다고 몰래 말씀해주시던 우리 할머니. 세 번째 미역국이 내 꺼란 소리에 얼굴 붉어져 두 번째 미역국 퍼 먹던 쑥스러웠던 초등학교 5학년 내 생일. “등신같이... 말해줬는데도 쯧쯧!” 안타까워 하시던 할머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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