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세 가전기업들이 삼성에 밀리면서 일본 언론이 한국 가전기업을 분석하는 기사를 내보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경제일간지 <니혼게이자이신문> 뿐만 아니라, 모든 경제 주간지들은 삼성과 소니, 파나소닉을 비교하면서 일본기업이 무엇이 부족한지, 삼성이 어떤 점이 강한지 계속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과의 차이를 쉽게 좁히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삼성의 대규모 투자를 통한 물량공세와 일본 가전기업의, 신흥국을 중심으로 한 중저가 시장 참여가 늦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본언론이 주가 총액과 세계시장 점유율을 바탕으로 자국기업의 느슨한 체질에 대해 맹공을 퍼붓는 일도 흔해졌다.
효과가 있었던 탓일까. 일본의 주요 가전기업이 국내시장을 탈피해, 공급물량을 중심으로 한 저가격 생산으로 방향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소니는 이미 수익개선을 위해 중국에 아웃소싱을 하고 있고, 샤프도 삼성과 액정 디스플레이 특허소송에 대해 전면화해한 후 반격채비를 갖추고 있다.
샤프는 특히 패널부터 생산, 브랜드 가치에서 일본내의 맹주로 불렸으나 세계시장에서 대대적인 대형투자를 해 온 한국 삼성전자에 밀린 탓에 외부 생산위탁을 전면적으로 실시, 글로벌 경쟁을 뚫고 나가기로 방침을 전환했다.
샤프가 생산위탁을 맡긴 곳은 대만의 tpv 테크놀러지다. 니혼게이자이신문(3월 6일자)에 따르면 이 회사는 "중국 복건성에 거대공장 종업원이 2만명을 두고 있는 곳으로 액정 tv 생산위탁 최대기업"이다.
현재 20개의 생산라인을 이용해 세계적인 브랜드의 액정 tv를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다. 연간 생산능력은 파나소닉용 액정 모니터를 포함해 연간 9000만대에 달한다. 부품의 압도적인 대량조달이 저비용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소개했다.
샤프가 tpv를 통해서 생산한 액정 tv의 대부분은, 최대시장인 북미에 투입될 전망이다. 현재 북미시장의 액정 tv 저가격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샤프의 점유율은 형편없기 때문이다.
사프의 가타야마 미키오(片山幹雄,52) 사장은 "(삼성에 대한) 반격에 모든 힘을 기울이겠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할 정도다.
일본기업은 그동안 1억이 넘는 안정적인 자국시장의 수익을 바탕으로 까다로운 소비자의 입맛에 맞춘 고품질 전자제품을 자랑으로 삼아 왔다. 이른바 '메이드 인 재팬' 신화다. 일본시장의 인정을 받으면 세계시장의 인정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그러나 2010년 현재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일본이 '갈라파고스'를 부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남아메리카로부터 1000킬로 떨어진, 16개의 외딴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갈라파고스는 독자적으로 진화한 고유종이 많아 ‘자연사의 보고’로 불리지만, 이곳에 외부 생물들이 들어오자 이들 고유종 가운데 다수는 멸종했다.
즉 지금 일본은 세계시장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빗대서 표현한 말이다. 일본 가전기업이 자국내 환경에 안주하고 있을 때, 한국 삼성과 lg는 해외의 새로운 시장(블루오션)을 개척・선점해 버렸다. 샤프의 저가격, 아웃소싱은 결국 일본기업의 방향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닛케이 역시 "외부 위탁이 고품질 이미지를 손상시킬 위험도 있지만, 규모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일본 국내의 성공모델을 고집할 여유가 없다"며 방향전환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북미에서 소니 이겨버린 후나이 전기, 삼성 이길 가능성 보인다?이런 가운데 이 신문은 "북미시장에서 이변이 일어났다"며 삼성을 따라잡을 수 있는 새로운 노선을 제시했다.
미 디스플레이 서치가 집계한 작년 출하대수 점유율에서 일본 국내에서는 '싼 메이커'로 취급받는 후나이전기(船井電機)가 소니를 제치고 일본 가전기업 톱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후나이전기의 점유율은 삼성과 비교했을 때도 0.6% 밖에 차이나지 않았다.
후나이전기 제품은 다른 일본기업제보다 30% 싸다. 신문은 "중국에서 집중생산하는 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월 마트 등 불황에서도 발길이 끊이지 않는 디스카운트 스토어를 핵심 타켓으로 대규모 판매 구조를 만들어왔다"라며 선전한 이유를 설명했다.
올 봄, 월마트는 후나이전기 제품의 취급점포를 3,400곳으로 늘렸다. 이는 두 배나 늘어난 숫자로 조만간
'삼성을 뛰어넘는다'는 목표도 현실미를 띠기 시작했다고 신문은 소개했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보면 여전히 삼성천하다. 삼성이 09년 전세계에서 팔아치운 액정tv 대수는 3000만대에 달한다. 이에 비해 후나이의 올해 판매계획은 600만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닛케이는 "세계시장에서 삼성이 아직 저 멀리 앞서고 있지만 지역이나 판로를 좁히면 승산도 생긴다. 전략 초점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일본의 국내 대기업에 앞서, 후나이의 액정tv 사업은 이미 흑자로 돌아섰다"며 "후나이전기 사례를 다른 일본기업들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빠르게 규모 키웠다가 화를 입은 도요타그러나, 규모만으로 과연 삼성과의 승부에서 이길 수 있을까.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신문은 최근 집중타를 맞고 있는 도요타의 사례를 다시 점검한다.
"규모의 힘이 절대적인가. 세계최대의 제조업 메이커였던 도요타 자동차는 '너무 빨랐던 확대'의 역풍에 고전하고 있다. '연간 판매가 1000만대를 넘으면 어떻게 될까?'에 대해 10년전 도요타 사장이었던 조 후지오(73) 씨는 사내 태스크포스팀을 가동시켜 극비리에 조사한 적이 있다. 그 배경은 품질 및 인재육성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확대'의 고양감이 '불안'을 잠식해 버렸다. 2008년 약 900만대를 팔아, 미 제너럴 모터스(gm)을 꺽자마자 문제는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2월말, 대량 리콜 문제로 미 하원 공청회에 출석한 사장 도요다 아키오 사장(53)은 "사람이나 조직이 따라가지 못했다"라고 쓴 표정을 지었다.
신문은 "다만 아키오 사장의 말이 규모의 힘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선진 7개국(g7)이 주요시장이었던 1990년대 '400만대'가 글로벌 기업의 조건이라고 이야기됐으나 지금은 중국이나 인도가 주전쟁터가 되면서 g20(20개국, 지역)의 시대"가 됐다고 강조한다.
또한 한국의 현대자동차와의 격렬한 코스트 경쟁은 그야말로 혈투다. 지금까지의 경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허들이 순식간에 높아졌다.
노무라증권 금융공학연구소 센터에 따르면 세계시가총액 상위 500개사에 들어간 일본기업은 09년말에 40개사로 집계됐다. 15년만에 1/3로 준 수치다. 삼성은 49위로 모든 일본 가전기업을 뛰어 넘었다.
"질 뿐만 아니라 양도 늘려라" 동시 주문닛케이는 글로벌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움츠려든 일본기업에 대해 "질을 동반하지 않는 확대만큼이나 위험한 것은 없다"면서도 "확대를 두려워하면 기업의 존립기반이 흔들린다. 세계경쟁에서 이기려면 질과 양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닛케이가 예시한 후나이전기처럼 일본이 저가격 시장에서 수익을 회복, '갈라파고스'에서 탈피할 수 있을까.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닛케이는 동계올림픽에서조차 존재감을 드러낼 수 없었던 사례가 자국 내 기업들의 모습과 겹쳐진다며 이렇게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불과 절반으로 구성된 한국 선수단이 동계올림픽에서 딴 메달 수는 일본을 훨씬 뛰어넘는다. 이 '늠름함'은 일본인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토대를 가진 한국기업이 세계로 약진하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