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약 5개월간 연재된 1부 '일본 여친에게 프로포즈 받다', 2부 '일본 아내, 한국 며느리로 인정받다'의 외전 격인 글입니다. 1, 2부 시리즈를 읽고 이 글을 읽으시는 게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일본 여친에게 프로포즈 받다 (총12화)일본 아내, 한국 며느리로 인정받다 (총9화)[외전] '알딸딸' 한국아빠의 '일본주부' 체험 (1부)[외전] '주부', 아! 그 위대한 이름이여! (2부) "아빠! 왜 안 들어가?"
미우가 병실 문 앞에 서서 머뭇거리고 있는 나를 향해 물어 온다. 유나도 내 손을 잡아 끈다. 나도 빨리 들어가고 싶다. 그런데 발이 안 움직인다. 게다가 가슴은 두근반 세근반이다. 지금에사 고백하지만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가 미우와 유나를 낳았을 때 나는 그 모습을 분만실에서 지켜봤다. 일본말로 '다치아이(立ち会い)'라고 한다. 직역하자면 '입회'가 된다. 딱딱한 용어지만 산모는 남편들의 '다치아이'를 일반적으로는 고마워 한다. 특히 아내는 평균보다 더 고마워하는 축에 속했다.
이번에도 당연히 곁에서 지켜보려 했다. 하지만 전편에서 언급했듯이 그럴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 그래서 였던 것 같다. 아기가 세상에 첫 모습을 선 보이는 장면을 지금까지 지켜봐 왔던 나로서는 이번처럼 며칠이나 지난 경우를 상정해 본 적이 없다. 첫 경험이다. 어떤 일이던 그렇겠지만 첫 경험은 떨리기 마련이다.
물론 '아들'이라는 것도 있다. 아버지가 장남, 나도 장남이다. 개인적으로는 전혀 그런 걸 안 따진다고 해도 '준'이 태어난 17일부터 병실을 찾은 20일까지 수십여통의 축하전화가 걸려왔다. 주위에서 워낙 축복을 해 주니 이거 세뇌된다. 한국, 그것도 시골에서는 아들의 위세가 여전히 대단하다.
심호흡을 했다. 쿵닥거리는 가슴을 억지로 진정시켰다. 자! 그럼 들어가 볼까?
순간 병실 미닫이 문이 드르륵 열린다.
"아! 아빠상, 어서오세요. 축하드려요." 아내의 마마토모(ママ友, 아이를 통해 친구가 된 엄마들) 아키코 씨다. 미닫이 문 너머로 마호 짱, 에비스 군, 리쿠 군의 엄마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들은 일제히 손을 흔들며 우리 부녀를 반겨준다.
"아빠상! 준 너무 이뻐요. 아휴 좋으시겠다."
"애 이목구비가 어쩜 이렇게 또렷한지... 너무 잘 생겼어요."
"아빠상 닮아서 멋져요. 멋죠. 호호호." 쏟아지는 폭풍우성 인사에 황급히 모드를 전환했다.
"아! 안녕하세요. 이렇게 일부러 와 주시고. 너무 고맙습니다." 얼결에 인사부터 했는데 아이들이 병실쪽으로 달려가며 외친다.
"엄마!" 그제서야 아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내가 아이들을 맞으며 나를 향해 가볍게 미소짓는다. 핼쓱한 모습이지만 아름답다. 아내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여자는 아이를 낳고 난 직후가 가장 예쁘대. 오빠는 두번이나 그걸 경험했으니까 운이 좋은 셈이야."
그런데 사실 기억이 잘 안 난다. 미우 때는 너무나 할 일이 많았다. 사실 '입회' 이거 보통 일이 아니다. 아내 손을 꼭 부여잡고 아이나오는 것을 지켜보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아이 낳고나서 할 일이 더 많았다.
간호사가 진행하는 이런저런 체크작업도 옆에서 지켜봐야 한다. 아이가 장애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는 작업이다. 보통은 며칠 지난 후 엄마들과 함께 이런 체크를 하지만, 남편이 '입회'할 경우 빨리 안심시키기 위해 바로 실시한다. 사진도 찍어야 하고 비디오 카메라도 돌려야 한다. 지금 돌이켜봐도 참 바빴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미우 모습은 기억속에 선연하게 남아 있는데, 아내의 '가장 예쁜 순간'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미안. 미와코.
둘째 유나는 마산에서 아주 유명한 조산소에서 낳았다. 합성동에 있는 '평화열린조산소'라는 곳인데 여기 정말 괜찮다. 시즌 3가 되면 구체적으로 쓰겠지만 변변한 초음파 기계조차 없는, 그냥 허름한 맨션에서 운영되는 이곳을 아내는 처음에 두려워했고, 나 역시 별로 신용이 가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곳의 철학을 나중에 전해듣고 아내는 무척 감동했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산부인과가 아내를 우선한다면 여기는 철저하게 아이 입장에 선다는 것. 그 때문에 출산할 때는 전부 불을 끈다. 아이가 나온 후 울지 않아도 절대 엉덩이를 때리거나 그러지 않는다. 핏덩이 채로 나온 아이를 바로 엄마 품에 안겨서 10분 정도 같이 있게 한다. 씻거나 검사하거나 그런 건 전부 나중에 한다. 일본의 산부인과와는, 아니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되지만, 180도 다른 시스템이다.
나중에 원장선생님께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뱃속과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니까요.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갑작스레 환경이 다르면 아이들이 놀라지 않겠어요? 엉덩이 때리는 건 절대 하면 안됩니다. 모든 것이 첫 경험인데 그렇게 심한 자극을 주는 건 절대 아이에게 좋지 않습니다. 요즘엔 아빠들이 플래쉬 터뜨려가며 사진 같은 걸 찍기도 하는데 그것도 안 좋아요." 이런... 미우 낳을 때 플래쉬 엄청 터뜨렸는데. 흑.
지금 생각해 보니 맞는 말씀인 것 같다. 특히 아내는 어마어마한 컬쳐쇼크를 받았다. 미지의 세계를 알았다는 점에서 아내에게도 '첫 경험'이었던 셈이다.
"아! 그랬구나. 선생님 말씀 정말 맞는 것 같아. 그 때 사실 갑자기 아이를 안겨주길래 많이 놀라기도 했지만 정말 기뻤어. 출산의 고통이 정말 모두 사라지는 그런 기분이었다니까. 눈물도 막 나오더라." 아내가 좋았다니 만사오케이다. 하지만 이 때도 어두컴컴한 조명탓에 아내의 '가장 예쁜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준'이 태어날 때는 꼭! 이라고 별렀건만 결국 이번에도 허사가 됐다.
하지만 2010년 1월 20일 오후 2시 10분, 나를 향해 미소를 짓던 아내는 정말 예뻤다. 며칠이나 떨어져 있어서 그랬던 것일까. 처음 고쿠분지의 그 일본어 교실에서 아내를 처음으로 만났을 때와 비슷한 감정을 떠올릴 정도로, 아내는 수수한 매력을 한껏 뿜어내고 있었다.
"어서와. 애들 키우느라 고생이 많았지? 호호호."웃으며 건네는 말조차 그 때와 비슷하다. 8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느낌이다. 누가 이런 미래를 예상했을까? 둘이 만나 다섯이 되다니...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고 하니까 앞으로 여섯이 될지, 일곱이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주위, 특히 어머니는 '이제 그만!'을 외치고 계시지만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우와! 귀엽다. 이쁘다! 아빠, 준 너무 예뻐!"
▲ 미우와 준...그리고 개구리 인형? ©박철현/jpnews | |
나보다 먼저 준을 본 미우가 흥분해서 떠든다. 환자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원기왕성한 목소리다. 아내가 앉아 있는 침대 옆에 조그만한 아기바구니가 놓여져 있었다. 준은 그 안에 있었다. 눈을 감고 새근새근 자고 있다.
한 눈에 아내와 나의 아들임을 알 수 있었다. 얼굴형은 아내를, 코와 입술은 나를, 턱선은 아내를 닮았다. 눈은, 이때는 자고 있어서 몰랐지만 나중에 보니 나를 닮은 것 같았다.
원래는 '그 놈 참, 애비 닮아서 그런지 훤칠하게 잘 생겼다. 하하하'라고 호탕하게 웃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준의 얼굴을 보자마자 갑자기 눈 앞이 흐려져 왔다. 미우와 유나를 봤을 때는 이러지 않았다. 세상에 나오는 광경을 직접 두 눈으로 지켜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번처럼 '이산가족' 상태였다가 만났을 때, 그것도 지난 며칠간 전혀 보지 못했던 자신의 아이다. 어찌보면 이것도 '첫 경험'이다. 그렇다. 이 '첫 경험'은 꽤나 감동적이었다.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입 열면 울먹거릴 것 같아서 아무 말도 못한 채 계속 쳐다보기만 했다.
"어때? 기분이?" 이런... 눈치 없는 아내라니. 대답을 할 수 없다니까. 다른 '마마토모'들도 있는데 울먹거리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순 없잖아!
"으...응. 별로, 뭐."(うん、まあ、ね)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다 보니 지금 이 상황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도 안되는 일본어가 나와 버렸다. 아이가 태어나서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보는데 아비되는 사람이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말한 셈이다.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마마토모'들도 언다.
"아... 자, 그럼 우리는 슬슬 가 볼까?"
"그, 그래야지. 너무 오래 있었던 것 같아. 호..호호."
"그럼 몸조리 잘 하시고 다..다음에 또 올께요." 마호 짱 마마가 입을 떼자 다른 마마토모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내가 그들을 마중하는 그 와중에도 나는 줄곧 '준'만 쳐다보고 있었다. 흐림 강도가 더욱 세져 거의 알아볼 수 없었지만 말이다.
잠시후 그녀들을 보내고 병실로 돌아온 아내가 내 어깨에 살며시 손을 얹는다.
"다 갔어. 울어도 돼." 아내는 알고 있었다. 하긴 8년 3개월이나 같이 살아왔다. 내 감정의 기복따윈 금세 파악한다.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누가 보면 장례식이라도 온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많이 울었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났던 걸까? 가장 큰 이유가 있지만 이건 시즌 3를 위해 아껴두겠다. 이 에피소드는, 쓰다보니 길어졌을 뿐 어디까지나 '외전'이니까 말이다.
미우와 유나는 펑펑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마치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미우가 내 옷을 잡아끌며 물어온다.
"왜 울어? 아빠. 울지마." 아내가 미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괜찮아. 아빤 지금 울고 싶거든. 미우가 태어났을 때도 많이 울었으니까 괜찮아."
"왜? 아빠 어디 아파?"
"아니, 사람은 말이야. 기뻐서 울 때도 많아."
"기쁜데 왜 울어? 웃어야지. 이렇게." 미우가 활짝 웃는다. 다 컸다. 2006년 1월 7일생. 벌써 5살이다. 별다른 공부를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본어,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히라가나와 영어 알파벳도 전부 읽는다. 동생도 잘 챙긴다. 사리분별력도 있고 그 또래에 비해선 꽤 합리적이다.
이렇게 멋지게 자란 미우를 보니 또 눈물이 나온다. 미우를 왈칵 끌어안고 다시 엉엉 울었다. 미우는 영문도 모른채 "아퍼, 아퍼. 아빠! 수염 따가워!"만 반복한다.
아이들이 이렇게 잘 큰 건, 물론 전적으로 아내 덕분이다. 매일같이 야근했고, 집에도 못 들어간 나로선 아이들 교육에 이래라 저래라 참견할 권리가 없다.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이 직업을 선택했을 때 각오한 일이다. 기자는 '원래' 상당히 바쁜 직업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1월 21일 무사히 퇴원했다. 아내의 퇴원과 동시에 나의 본격적인 주부생활도 시작됐다.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미역국을 끓이고 식사준비를 했고, 세탁기를 돌린 후 미우를 유치원에 바래다 준 다음 세탁물을 널었다. 그리고 유나와 같이 회사로 출근했다. 유나와 함께하는 출근은 1월 22일부터 2월 13일까지 이어졌다.
외전 마지막 편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지낸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부쩍 성장해 버린 미우와 유나에 대해 전해드리도록 하겠다.
■ 외전 최종화 "한달간 아이와 함께 출근해 보니" ■ 기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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