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월간조선'(2월호)를 보면, 대한항공(kal)기 폭파사건의 실행범 김현희 전 북한 공작원이 작년 봄, 일본정부의 수사팀과 면담에 응했을 때
"요코다 메구미 씨와 만났다."라고 말했다 한다.
김 전 공작원이 한국 부산에서, 북한에서의 공작원 교육 시절에 일본어를 배우고 있던 '이은혜' 즉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씨의 가족과 대면했던 것이 작년 3월. 이 만남이 일본 매스컴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것은 지금도 기억에 새롭다.
김현희와 일본정부 수사팀간의 면담은 그 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월간조선에 따르면 '한일관계자 사이에서 면담 내용은 비밀로 되어있다."라고 쓰여있었다. 정말로 비밀 취급이 된 것일까.
그러고 보면, 산케이 신문이 이미 작년 4월 30일자로
"김현희 전 북한 공작원이 '요코다 메구미 씨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라고 증언한 것이 30일, 알려졌다고 정부 관계자가 밝혔다."라고 보도한 것이 떠올랐다.
'산케이'에 따르면 외무성 당국자들이 서울시내에서 김 전 공작원과 극비리에 면회한 것은 4월 28일로 김 전 공작원은
"공작원 교육을 받은 1980년대 처음 평양의 초대소에서 메구미 씨로부터 일본어를 배운 동료의 소개로 메구미 씨와 몇번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산케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극비 처리는 커녕, 다음날에는 정보가 새어나왔다는 말이 된다. 정확하게 말하면 흘린 셈이니까 애당초 비밀이라고 말할 필요조차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해가 안가는 것은 일본정부 수사팀과 만나기 전까지 김현희는 월간조선(작년 2월호)과의 인터뷰에서 요코다 메구미 씨에 대해
"(메구미씨가 찍인)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만난 적은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느 쪽 증언이 진짜란 말인가.
만났음에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왜였을까? 지금까지 다구치 야에코씨에 대해서는 증언을 하면서, 같은 납치 피해자인 요코다 메구미 씨에 대해서는 왜 20년 이상이나 감춰온 것일까?
혹시 실제로 만나지 않았음에도 '만났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왜일까? 무엇이 목적이고 노림수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석연치 않다.
만약 거짓이라고 한다면 거짓을 말할 필요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거짓을 말해서 얻는 메리트는 무엇인가? 혹시 일본에 가고 싶어서? 혹은 일본정부로부터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고 싶어서 그런 말을 한 것일까. 그런 것 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그런 것까지 생각하게 된다.
서울에서는
'돈에 쪼들리고 있으니까, 일본가서 한 몫 잡으려고 하는 게 아닐까?'라는 험담도 들리지만, 과연 그런 것일까. 김현희의 발언 내용을 여러가지로 검증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산케이'에 따르면, 김 전 공작원은 다구치 씨의 가족과 면회했을 때는, 메구미 씨에 대해서 동료인 '김숙희'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국인과 결혼해서 딸을 낳았다고 들었다. 마음의 병으로 얼마간 입원한 적도 있으나,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다."라고 증언했다고 한다.
요코다 메구미 씨가 한국인과 결혼했다는 것도 딸이 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로, 새로운 증언도 아무것도 아니다. 또 새롭게 일본으로 초청해서 들을만한 정도의 내용도 아니다. 오히려 일본정부로서 신경 쓰이는 것은
"마음의 병을 앓고 얼마간 입원한 적도 있다."라는 '증언'일지도 모른다. 이것이라면 비밀에 부치는 것이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한국의 kal사건 조사 보고서나 그녀의 한국에서의 증언이나 수기를 근거로 검증해보면, 다음과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김현희 전 공작원이 김숙희와 같이 광저우에서 중국어 유학을 위해 평양을 출발한 것이 1986년 7월, 귀국한 것이 1987년 1월 20일. 둘다 같은 용성(43호) 초대소에 입소했다.
메구미 씨가 한국인 납치 피해자인 김영남 씨와 결혼한 날짜는 김숙희가 어학연수를 위해 김 전 공작원과 해외여행중인 1986년 8월 13일(북 발표). 따라서, 김 전 공작원도 김숙희도 귀국한 뒤에 메구미씨가 결혼한 것을 직접 들었거나, 통보받았을 것이다.
또, 혜경(메구미 씨의 딸)이가 태어난 것이 1987년 9월 13일(북 발표)이라면, 김 전 공작원이 대한항공기 폭파의 임무를 띠고 평양을 출발한 것이 그 2개월후인 87년 11월 20일이므로 그녀가 출산에 대해 알고 있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일본에 귀국한 납치 피해자 중 한사람, 지무라 후키에 씨가 정부관계자에게 한 증언에서는 메구미 씨는 94년 6월, 지무라 부부가 살고 있는 초대소 옆에
''혼자 이사와서 몇개월 그곳에서 살았다."라고 하나, 당시 메구미 씨의 상황에 대해서
"꽤 우울한 상태가 심했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다. 북한의 대외정보 조사부 간부가 간병하고 있었다."라고 한다. 김 전 공작원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메구미 씨는 1987년 11월에 그 정도와 상관없이 이미 정신적으로 병을 앓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남편 김영남 씨가 말한
"메구미는 몇번이고 입원했다. 우리 부문의 병원에는 결혼전부터 몇번인가 입원했다고 들었다."라는 내용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하는 말이 된다.
김 전 공작원은 일단
"그렇게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다."라고도 말했으나, 87년 11월 20일 이후는 북한에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된 셈이니까 메구미씨의 병 상태를 포함해 그 후에 어떻게 됐는지는 알 여지가 없다.
김 전 공작원과의 면담, 면회는 한국정부의 허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무슨 한국정부의 의도라도 있는 것일까?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모를 일이다.
■ 변진일(辺真一) 프로필
1947년 도쿄에서 태어남. 메이지가쿠인대학 영문과 졸업후 신문기자(10년)를 거쳐 이후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1980년 북한 취재 방문.
1982년 한반도 문제 전문지 '코리아 리포트' 창간. 현재 편집장.
1985년 '고베 유니버시아드'에서 남북공동응원단 결성, 통일응원기 제작.
1992년 한국 취재 개시 (이후 20회에 걸쳐 한국방문).
1998년 단파 라디오 "아시아 뉴스" 퍼스낼리티.
1999년 참의원 조선문제 조사회 참고인.
2003년 해상보안청 정책 어드바이서.
2003년 오키나와 대학 객원교수.
현재 "코리아 리포트" 편집장, 일본 펜클럽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