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연재글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읽지 않으면 무슨 내용인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읽어보실 독자님들은 '일본 여친에게 프로포즈 받다'(전12화)를 먼저 읽으신 후 제2부 '일본 아내, 한국 며느리로 인정받다'를 읽으면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이 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일본 여친 프로포즈 시리즈
혼인신고 (1부)
삼겹살(2부)
아버지가 눈치챈 동거(3부)번데기(4부) 저번에도 어디선가 말했지만, 이 시리즈는 아내의 동의하에 쓰고 있다. 또 아내도 번역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매번 즐겁게 읽고 있다.
첫 한국여행(4부)를 쓴 후 나는 걱정이 됐다. 왜냐면 시기적으로나 구성상 '준야'의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간혹 이 시리즈에 사진으로 등장하는 큰 딸 '미우'가 아니다. 미우는 2003년보다 훨씬 뒤인 2006년 1월에 태어났다.
지난 주 일요일 오후 막 올라온 따끈따끈한 4부를 읽고 있는 아내의 눈치를 내내 살폈다. 번데기 여고생과 총알택시의 에피소드에 "맞아! 그랬었어" 라며 즐거워 하던 아내는 마지막에 이르러 표정이 굳어졌다.
"오빠, '준야' 이야기 쓰려고?"
"어? 어. 근데, 미와코가 싫다면 바꿀께"
아내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 5초정도 지났을까? 아내의 얼굴이 웃는 낯으로 돌아온다.
"생각해보려 했는데 이젠 떠오르지도 않네. 기억해 내서 마음이 울렁거리면 쓰지 말라고 말할까 했는데 하나도 안 떠올라. 다 나았나 보다. 써. 나도 읽어보고 싶어"
이쯤되면 다들 짐작할 것이다. 그렇다. 아내는 첫 애 '준야'를 만나지 못했다. 만나기는커녕 둘이 함께 공유했던 시간은 두 달이 채 안됐다. 하지만 그 후유증은 상당히 오래 갔다. 아내는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며 한동안 우울증을 앓았다. 초점잃은 눈으로 멍하니 먼 곳을 쳐다보다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아내로부터 "생리가 없어" 라는 메일이 왔던 날 기쁨과 흥분, 그리고 걱정과 두려움의 복잡미묘한 감정이 교차됐다.
기쁜 마음이야 당연하다. 자기 분신이 나온다는 말에 흥분하지 않을 아버지는 없을 테다. "천하에 떠돌이로 살 팔자네. 결혼은 무슨... 혼자 살다 뒈져버리는 운명이야"라며 초면에 재수없는 말만 늘어놓던 미아리 점쟁이. 에잇! 엿이나 먹어라!
하지만 이내 걱정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아직 아내를 부모님께 소개시키지도 않았었고, 무엇보다 아이를 만나려는 마음의 준비가 덜 돼 있었던 것 같다. 많은 경험을 했었지만 아이만큼은, 그야말로 '미지와의 조우'였다.
퇴근하는 길에 약국에 들렀다. 임신했는지 안 했는지 그 여부를 확인하는 리트머스 킷를 사기 위해서였다. 설명서가 너무나 간단하고 리얼해 오히려 무서웠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가혹하다. 1, 2분안에 천국행, 지옥행을 결정해 버리니까.
설명서에는 "킷에 소변을 조금 적신 후 1, 2분 정도 놔 둬라. 임신이라면 파란 선이 나오고, 아니라면 아무 변화가 없다. 단 100% 정확하지는 않다. 파란 선이 나오면 병원을 찾아가 봐라" 등의 문구가 건조하게 나열돼 있었다.
아내는 이미 안절부절 상태였다. 대화상대를 찾고 싶었던 걸까? 현관문을 들어서는 나를 보자마자 흥분한 폭포수처럼 떠벌이기 시작한다.
"오빠도 알다시피 나 생리 규칙적인 걸로 유명하잖아? 그런데 세상에! 일주일이나 지난거야. 일주일이 지나도 생리가 없는 거야. 이거 말이 안 되잖아. 내일 당장 병원에 가는 게 좋을까? 앞으로 먹는 건 어떻게 해야 하지? 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리트머스 킷을 꺼내면서 말했다.
"그래, 그래 잘 알겠으니까 우선 진정하고 이걸로 임신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자"
"이게 뭔데? 아! 리트머스. 임신했는지 알아보는 거다"
"응.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까 이걸로 우선 확인해 보라고 해서" 아내는 리트머스 킷을 손에 올리도 마치 기도라도 하는 듯 두 손을 모았다. 즐거운 표정으로 흥분하던 아내가 본심을 털어 놓는다.
"오빠... 무서워"
"괜찮아" 말은 저렇게 했지만 무섭긴 나도 마찬가지다. 역시 나도 기뻤다기 보다 무서웠던 것 같다. 뭐가 기뻤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미아리 점쟁이한테 엿 먹인 것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 걸 보니 말이다. 결국 아내도 나도 두려워했던 것이다.
아내는 조심스럽게 화장실로 들어갔다. 5분쯤 지났다. 화장실에서 나온 아내는 아무런 말없이 리트머스 킷을 보여줬다.
선명한 '파란 선'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란 참 웃기다. 아내가 화장실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무서웠던 마음이 그 파란 선을 보는 순간 봄눈 녹듯 사라졌다. 리트머스 킷을 던져 버리고 아내를 꼭 껴안았다.
"축하해. 진심으로" 아내의 두 손도 내 등을 감쌌다. 아무 말없이, 우리 둘은 꽤나 오랫동안 그렇게 서로를 껴안았었던 것 같다.
'준야'(準也)라는 이름도 필로우 토크에서 정했다. 왠지 남자아이일 것 같았다. 아내가 물어온다.
"여자애면 어떡하지?"
"그건 그 때가서 생각하면 되지 뭐"
"준야라는 이름 마음에 들어?"
"어. 괜찮은 것 같은데"
"한국식으론 어떻게 불러?"
"똑같아. 준야" 아내가 갑자기 흥분한다.
"오! 그래? 그거 너무 좋네. 그럼 앞으로 전부 다 그렇게 지어야 겠다. 한국어 발음과 일본어 발음이 같게 말야"
"어. 그래. 근데... 또 낳을려고?"
"아참, 그렇지. 둘을 어떻게 키울려고. 하하하" 아내는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남자가 느낄 수 없는, 여자들의 모성본능은 아마도 이런 것에서 나오지 않을까? 10개월동안 아이와 동고동락한 엄마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
이튿날 아내는 혼자서 병원에 갔다. 나도 같이 가고 싶었지만 도저히 취소할 수 없는 취재가 잡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아내가 당시 일하고 있던 부동산 회사 바로 옆에 산부인과가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 집에서도 가까웠다. 자전거로 5분 정도?
그 날은 하루종일 일이 손에 안 잡혔다. 취재현장에서도 계속 핸드폰에 신경이 쓰인다. 시간이 무정하게 흐른다. 오후 1시, 2시, 3시... 하지만 아내한테서의 연락은 없었다. 일이 바빠 못 갔나 보다라고, 거의 포기하고 있을 때 메시지 착신음이 울렸다.
'디리링 디리링'
오후 7시. 회사를 마치고 간 모양이다. 엄청난 스피드로 플립을 열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임신 맞대. 7주째라고 하네. 사진도 보여줬어. 시커먼 게 배 안에 있어. 신기해. 아참, 당분간 무조건 안정하라니까 당분간 세탁 및 청소, 설거지는 전부 오빠가 할 것. 호호호'
답장을 보냈다.
'축하해. 가사일은 당연히 내가 다 하지(오늘은 힘들고 내일부터...죄송). 미와코는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아이한테만 신경쓰세요. ^ - ^' 그 날 퇴근하는 길에 아내가 좋아하는 딸기쇼트케익을 사 들고 갔다. 아내는 '준야' 사진이라며 흑백으로 된 초음파 촬영 사진을 보여줬다. 어딜봐도 사람이 아니라 그냥 시커먼 점이다. 하지만 아내는 쇼트케익을 먹어가며 침이 튀게 설명한다.
"여기가 눈, 코, 입, 여기가 다리, 손. 오빠 눈엔 안 보이나 보네. 애정차이야, 애정차이"
"......-_-"
"농담이야, 농담. 그럼 힘내서 설거지 하세염. 하하하" 아내는 그 때 모든 것이 좋았다. 임신하고나서는 일도 잘 풀려나갔다. '엄마'라고 각성하는 순간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원래부터 성실했던 아내는 그렇게 회사에서도 인정받아가며 순조로운 나날들을 보냈다.
하지만 불행은 언제나 행복의 최정점에서 갑자기 찾아온다. 우리, 아니 아내도 그랬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을 파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아내가 현관까지 나오지 않았다. 현관까지는 안 나오더라도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오카에리(어서 와)'라며 반겨줄텐데 아무런 말조차 없었다. 처음엔 없나 했는데, 신발을 보니까 집에는 있다.
"미와코?" 안방문을 여니까 아내가 일하러 나가던 복장채로 누워 있다. 오른손을 눈 쪽에 댄 채.
"왜 그래? 아파? 몸이 안 좋아?" 가방을 적당히 던져놓고 아내 곁으로 다가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아내의 눈은 눈물로 뒤범벅돼 있었다. 나를 보자 더 북받쳐 올라왔던 모양이다. '엉엉' 소리내어 운다. 순간 직감했다. 유산했구나 라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 줬다. 계속 아내는 울었고 나는 계속 닦아줬다. 한동안 울던 아내는 벌떡 일어나 나에게 용서를 구한다.
"오빠. 미안해. 아이가... 우리 '준야'가..." 아이보다 아내의 모습에 가슴이 아프다. 같이 울었다. '괜찮아'를 반복했지만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몇 시간이고 계속 울었던 것 같다.
아내는 자책했다.
이날 빠듯한 스케쥴 때문에 도저히 자전거를 타지 않으면 안됐다고 한다. 두 시간 정도 동네를 돌아다니며 아내의 부동산이 관리하는 건물들을 봐야 했다. 그런데 도보로 이동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오늘 하루만 자전거를 타자고 했단다. 이때까지만 해도 별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화장실에 갔더니 피가 나왔다고 한다. 피만 나왔으면 또 모르겠는데 조그만 덩어리도 같이 나왔다. 병원은 안 갔지만 아내는 그 작은 핏덩어리가 준야였을 거라며 서러워했고, 또 미안해 했다.
다음날 아내와 나는 유급휴가를 얻어 산부인과로 갔다. 초음파 사진을 찍었다. 똑같은 사진이었지만 시커먼 덩어리는 사라져 있었다. 그걸 확인하고 아내는 또 눈물을 보였다. 아내는 "제가 자전거를 타서 그렇다"고 자책했다. 아내의 눈물과 자책을 보고 의사 선생님이 조용히 말했다.
"당신 잘못이 아니예요" 바닥을 쳐다보고 있던 아내가 고개를 들었다.
"아이가 약한 겁니다. 자전거 타는 것, 물론 좋지는 않아요. 하지만 심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그 정도 탔다고 유산한다는 것은 아이 쪽이 그만큼 약하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너무 자책하지 않아도 됩니다" 미와코는 유산수술을 받았다. 유산수술은 낙태가 아니다. 자연유산한 이들의 자궁을 깨끗하게 청소해 다음 임신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한 수술이다. 수술실 앞 복도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의사 선생님이 다가왔다.
"유산은 출산한 것과 똑같으니까 심리적 케어에 신경써야 할 겁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같이 있어 주는 것. 바깥에 나가 바람도 자주 쐬고, 당분간은 집에 혼자 두지 마세요. 첫 유산은 심리적 충격이 커서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으니까" 혼자 두지 말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나는 충실히 지켰다. 신문사에 말해 양해를 얻었다. 아내의 사이클에 맞췄다. 아침 8시에 나가 오후 5시 30분에 퇴근했다. 퇴근하면 아내가 일하는 부동산 회사 앞에서 서성거렸다. 창문너머로 보이는 아내의 일하는 모습을 엿보면서. 누가 봤다면 영락없는 스토커다.
저녁에는 이런저런 것들을 보러 다니고 또 먹었다. 우리 부부의 역사에 남은 '쥬오센(中央線) 여행'도 이 때부터 시작됐다. 아내도 치유되는 듯 보였다. 물론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아픔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다 잊어버렸다고 말하지만 '준야'의 초음파 사진 2장은 아이들 앨범의 제일 첫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게다가 내년 1월에 태어날 셋째아이의 이름도 '준(准)'이다.
하지만 옛날처럼 울거나 괴로워하진 않는다.
▲ 큰 딸 미우(오른쪽)과 둘째 유나 ©jpnews | |
아무튼 미우와 유나가 복받은 건 확실하다. 왜냐면 아내는 '준야'에게 못해줬던 것을 이 아이들에게 해 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알아야 할텐데 워낙 둘 다 천방지축이라...
아무튼 한달 정도 같이 있었던 덕택에 우리들의 사이는 더 좋아졌다. 특히 나는 '돈이 거의 들지 않는 쥬오센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다음 6부는 쉬어가는 코너로 당시 우리 부부가 매일같이 다녔던 '쥬오센 여행'의 명소를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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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아내와 함께 간 고려신사, 그리고 어머니의 독촉"■ 글쓴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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