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연재글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읽지 않으면 무슨 내용인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읽어보실 독자님들은 '일본 여친에게 프로포즈 받다'(전12화)를 먼저 읽으신 후 제2부 '일본 아내, 한국 며느리로 인정받다'를 읽으면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이 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일본 여친 프로포즈 시리즈혼인신고 (1부)삼겹살(2부)아버지가 눈치챈 동거(3) "2시간 밖에 안 걸린단 말야? 정말 가까웠네" 그 때까지 아내는 해외여행을 딱 한번 했었다. 2부 삼겹살 편에서 '청양고추' 때문에 고생했던 미사코와 함께 학창시절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를 9박 10일로 돌아본 게 전부였다.
그래서 아내는 외국여행에 대한 거리적 감각이 거의 없었다. 아내에게 있어 외국은 막연히 먼 곳이었다. 불과 2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웬만한 일본 국내 여행보다 모든 면에 있어서 가까웠고 또 저렴했던 한국 여행은 처음부터 신기함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골든위크(매년 4월말부터 5월초까지 쉬는 일본의 장기연휴) 기간중이라 공항 안은 꽤나 혼잡했다. 한 시간을 기다려 받아든 한국행 티켓을 행여나 잊어 버릴까 봐 핸드백 안에 고이 넣는 아내. 그런 아내만큼 나도 티켓을 소중하게 다뤘다. 1년 6개월만에 찾는 한국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동안 한국은 과연 얼마나 변했을까.
아내는 나리타 공항의 모든 것을 마치 어린애 마냥 신기해 했다. 맥도날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내지만 기념으로 감자튀김을 사 먹었고 또 사진까지 찍었다. 그래봐야 감자튀김과 아내의 얼굴이 나올 뿐이다. 나중에 인화된 사진을 보고 아내는 "이 사진은 전혀 공항에서 찍은 느낌이 안 드네"라고 투덜거렸다. 속으로 그랬다. '니가 찍으래매'.
아내는 자잘한 실수도 했다. 출입국 신고서를 작성할 때는 내가 쓰는 걸 보고 따라 쓰다가 자기 생일란에 내 생일을 적었다. 아내는 짧은 자책과 함께 머쓱한 웃음을 지으면서 새 신고서를 꺼내 다시 썼다. 그리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무슨 주문에 걸린 거 같어. 호호호" 아내는 웃었지만 뒤에서 '볼펜'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은 그렇게 좋지 않다. 골든위크 기간이라 평소보다 더 북적거렸다. 출입국 신고서 한 장 쓰는 데도 꽤나 시간이 걸린다.
2004년부턴가? 일본 법무성은 일본국적을 가진 사람들의 출입국 신고서 작성을 폐지시켰는데, 그 이유가 빠르고 원활한 출입국을 위해서 였다. 하긴 몇 개 되지도 않는 신고서 작성 테이블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달라 붙어 앞 사람의 볼펜을 기다리고 있는 광경도 웃기긴 웃기다.
그렇게 실수를 연발해 가며 우리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흥분되고 들뜬, 설렌 마음을 달래다 보니 어느새 인천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과 일본은 너무 가깝다. 이렇게 가까운데 왜 그리 가기가 힘든 걸까. 마음만 먹으면 금방 갈 수 있는데.
인천 공항에 내린 아내는 뭐가 그리 신기한지 계속 두리번 거린다. 그런데 아내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대부분이 사람들이다. 너무 쳐다 보길래 왜 사람들을 보냐고 물었다.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한국어를 쓰니까 신기하잖아. 내가 알아듣는 말도 있고 하니까"
그러고 보니 나도 그랬다. 처음 일본에 갔을 때 나리타 익스프레스 안에서 젊은 커플의 일본어 대화를 뚫어지게 '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이야 매년 200만명을 넘는 사람들이 일본을 찾고 있다. 도쿄 어딜 가더라도 쉽게 한국어를 들을 수 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다.
아내는 어느 정도 한국어를 알고 있다 보니 '보는 정도'가 더 심했다. 한국사람들의 대화 중에 자신이 알고 있는 단어가 들려오면 자연스럽게 그 쪽을 쳐다봤다.
"오빠 한국어랑 많이 다르잖아. 이게 진짜배기 표준어였어"
"......-_-" 공항밖에서 아내는 자동차 경적 소리에 다시 반응했다. 아내는 지금도 한국을 연상하면 경적 소리를 떠올린다. 도쿄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풍경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아내는 34년간 도쿄에서만 살아온 도쿄 토박이다. 어떻게 보면 시끄럽지만 또 활기참의 상징일 수도 있다.
쥐 죽은 듯 고요한 거리와 시끄럽지만 활기찬 거리. 보통이라면 찬반양론이 나뉘겠지만 그걸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선택할 여유가 없다. 그냥 놀라워 할 뿐이다.
"완전 오사카 같은 분위기네" 아내는 그나마 수학여행때 한번 가 봤던 오사카를 예로 들었다. 그러고 보니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도 그랬다. 아내는 습관적으로 왼쪽 편에 섰다가 뒷 사람과 부딪히고선 당황해 하며 오른쪽으로 옮겼다. 도쿄에서는 그냥 선 채로 올라가고 싶은 사람이 왼쪽에 선다. 하지만 오사카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오른쪽이 그렇다.
아내는 한국여행 내내 오사카같다는 말을 많이 했다. 뭐, 그래봤자 십여년 전에 딱 한번 가 본 것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마중나오기로 한, 인터넷 카페에서 알게된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은 나도 카페에서는 친하게 지냈지만 실제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전화를 끊자 아내가 물어 온다.
"누구야?"
"응. 그때 말한 그 누나. 차 가지고 나오기로 했거든"
"인터넷?"
"어. 인터넷 커뮤니티"
"그게 정말이었어?"
"응. 그럼 거짓말을 왜 하니?" 아내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초지종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나는 당시 축구관련 인터넷 카페의 대장(마스터)을 맡고 있었다. 지금은 유령카페로 전락해 버렸지만 그 때는 대단히 활동적이었다. 카페 멤버들은 거의 매일 오프모임을 가졌고, 또 매일같이 후기가 올라올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내가 아내와 함께 한국에 간다는 글을 올리자 순식간에 수많은 댓글이 달렸고, 그 중 '우디'라는 아이디를 쓰는 누나가 "그날 공항으로 마중 나갈께" 라며 전화번호 등을 알려 줬다.
처음 이 얘기를 하자 아내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를 못하는 표정이었다. 물론 일본도 지금은 믹시같은 sns나 커뮤니티 사이트가 많아 오프라인 모임도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특히 인터넷을 별로 하지 않았던 아내는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람을 실제 오프에서 만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대강 말했던 내 잘못도 있다. 아내가 설거지나 혹은 청소를 하고 있었을 때 "어떤 누나가 공항에 마중 나올꺼야"라고 말했고, 아내는 이런 내 말을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렸다.
그런데 실제로 한국까지 와서 전화하는 내 모습과 그로부터 5분후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선글라스를 쓴 늘씬한 미인이 에쿠스에서 내려 큰 소리로 "테츠! 안녕" 이라며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고, 아내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뭐, 당황하기로 치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그 누나는 미인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친화력은 이국 땅에서도 발휘됐다.
"안녕하세요!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호호호" 이런... 저 말도 안되는 천연덕스러움이라니. 물론 나는 이 카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아내는 언제나 "하이, 하이(그래, 그래)"라고 건성으로 들었고, 그 때마다 나는 적어도 아내 입장에서는 '2채널러'(일본 최대의 익명 게시판 2채널의 헤비유저를 일컫는 말)로 받아 들여졌던 것이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더니. 아내의 살랑거림에 그 누나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질주했다. 120, 130, 140... 올라가는 스피드에 놀랬나 보다. 안전벨트를 매고 뒷좌석 손잡이를 움켜 쥐면서 조용하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속도가 좀..." 아내는 240km까지 표시돼 있는 속도계기판에 혀를 내 둘렀다. 일본차는 맥스 180km이다. 아내는 이때 처음으로 자동차가 200킬로 이상을 내도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건 서막에 불과했다. 아내는 이틀 후 동대문에서 엄청난 양의 새벽 쇼핑을 끝내고 '총알택시'를 탔을 때는 두 손으로 뒷좌석 손잡이를 움켜 쥐면서 옷 보따리를 마치 에어백 대용으로 쓰려는 듯 무릎위에 올렸었다.
그나마 아내도 스피드를 즐기는 스타일이다. 운전대만 잡으면 사람이 변한다. 한국의 총알택시를 경험하는 외국인들은 보통 비난을 늘어 놓지만 아내는 관대했다. 오죽하면 한국에 간다는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까?
"한국가면 꼭 해야 할 세 가지. 광화문에서 한정식을 먹어 볼 것. 동대문 새벽시장에서 쇼핑을 할 것. 그리고 택시를 꼭 타. 스릴만점이거든. 앞으로 디즈니랜드 빅선더 마운틴 탈 필요 없을 거다. 아참, 안전벨트는 반드시 매고"
누나는 우리가 묵을 예정이었던 시청 앞 프라자 호텔까지 데려다 줬다. 자기도 바쁠텐데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면 굳이 밥을 사주겠다 한다. 근처 한정식 전문 식당을 가는데 아내는 가면서도 놀랬고, 가서도 경악했다.
"도로가 왜 이렇게 넓은거야? 또 보행자 신호는 왜 이리 빠른거야. 흑" 아내는 끝이 보이지 않는 8차선 도로가 시내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했다. 일본은 8차선 도로 자체가 별로 없다. 고속도로도 거의 대부분이 4차선이다. 도쿄 시내에 8차선 도로가 있는 곳은 미나토 항만 일부에 불과하다. 레인보우 브릿지도 4차선, 수도고속도로도 전부 4차선이다.
켜지자 마자 점멸하는 보행자 신호에 아내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넓디 넓은 8차선 대로를 처음으로 경험하는 사람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보행자 신호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 보행자 신호가 켜지자 마자 맹렬한 스피드로 깜박깜박거린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당황한 아내는 깜박거리는 보행자 신호를 보자마자 누가 뭐라 할 새도 없이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앞서 나간 아내에게 말했다.
"미와코! 그렇게 안 뛰어도 돼" 고개를 돌리는 아내. 표정이 울상이다. 아내는 신호등을 손짓한다. 깜박거리니까 뛰어야지 라는 나름의 의사표시다. 나중에 일본에 돌아와 아내와 함께 이 때의 경험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신호등이 갑자기 깜박거리길래 다 뛸 줄 알았지. 아! 한국사람들은 신호등 불 바뀌면 다 뛰는구나, 그런 문화구나 라고 생각했었거든. 가만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나 노인분들도 있으니까 말도 안되는 건데 그땐 너무 당황해서 무작정 뛰었던 것 같아. 근데 그건 왜 안 고치는 거야?"
"한국이 워낙 자동차 사회라서 그래. 자동차 우선주의 사회"
"하긴 그러고 보니 정지선도 잘 안 지키긴 했어. 길거리에 그냥 주차된 차들도 많고. 사람들이 뭐라고 안 그래? 불편하잖아"
"불편하긴 한데, 뭐, 그냥 하나의 문화니까"
"안 좋은 문화 같은데"
"안 좋지"
"그럼 고치면 되잖아"
"어? 어....(왜 차도 없는 내가...-_-)" 일본은 무단주차만 전문적으로 단속하는 이들이 있다. 원래 경찰업무지만 민간에 위탁하는 경우가 그렇다. 또 차를 구입하고 싶을 때는 차고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자기 주차장이 없으면 자동차 자체를 살 수 없는 시스템이다.
아내는 총알택시의 '스피드'는 좋아했지만 신호를 무시하거나 길거리에 늘어선 불법주차에는 진저리를 쳤다. 8차선 도로를 허겁지겁 건너면서 느낀 아내의 불만은, 하지만 한정식 식당에서 금세 풀어졌다.
"우와! 엄청나다. 이걸 언제 다 먹는대!" 얼추 서른가지가 넘는 반찬에, 아내는 감격했다. 김치, 감자전, 파무침, 오이무침, 나물, 조기구이, 콩나물국... 아내는 전부 맛보고 또 전부 비웠다. 한정식 식당에서 반찬 남기지 않고 다 먹는 사람 거의 없다고들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아내는 다 먹어 치운다.
"한국사람 하면 고기 먹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전혀 아니었어. 뚱뚱한 사람이 왜 없는지 알겠더라고. 고기도 상추에 싸 먹잖아. 마늘도 넣고, 김치도 넣고. 날씬한 이유가 있었던 거지. 정식이라길래 일본처럼 쟁반에 밥, 메인메뉴, 반찬조금에 국물만 나올 줄 알았는데 정말 기분 좋더라. 기억에 남는 식사였어" 일이 있다는 카페 누나를 떠나 보낸 후 아내와 단 둘이 손을 꼭 잡고, 광화문 근처를 돌아 다녔다. 아내는 역사 매니아다. 하지만 역시 용어구사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고 누구냐고 묻길래 이순신 장군이라고 말하자 단번에 누군지 안다며 이렇게 말한다.
"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출병했을 때 조선을 구한 분이라고 들었어""맞어. 근데, 조선출병이 아니고 조선침략이겠지""일본에선 조선출병이라고 해""그건 일본입장이고 당한 사람 입장에선 침략이 되는 거니까""그렇네. 앞으론 그런 것도 조심해야 겠다""응. 한국사람들은 그런 거에 민감하거든" 아내는 종로바닥에 늘어선 길거리 포장마차도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시뻘건 떡볶이들을 보면서 "정말 맵겠다"며 절대 안먹을 것처럼 말하더니만 한 점 집어먹고선 "맛있다!"를 연발한다. 하지만 떡볶이 옆의 번데기를 발견하고선 기겁을 한다.
"저, 저건 뭐야?""어. 번데기. 음, 유충?""유..유충...?""어. 유충. 맛있어. 먹어 볼래""아니, 아니, 아니, 아니! 죽어도 못 먹어! 저걸 어떻게 먹어!" 아내가 기겁을 하고 있었던 마침 그때 여고생 두서넛이 아내 옆 쪽으로 와선 포장마차 아주머니에게 생기발랄하게 말한다.
"아줌마! 번데기 두 컵만 주세요!" 국자로 번데기를 한웅큼 집어서 능숙하게 종이컵에 담는 아줌마, 그걸 깔깔거리며 건네받는 여학생들, 그리고 그 입으로 들어가는 유충, 아니 번데기들.
스톱 모션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아내의 얼굴표정은 '설마'에서 '서...설마?'로 바뀌었다가 최종적으로는 '으아아아악!!'으로 돌변했다. 차마 소릴 지르진 않았지만 도무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른다는 안절부절하던 아내의 얼굴 표정은 잿빛으로 변해 갔다.
"개고기 먹고 그런 거 다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하는데 벌레는 정말 생리적으로 거부반응이 일더라. 지금도 번데기 주문하던 그 여고생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어. 어찌 그리 발랄하게들 먹던지..." 이런저런 색다른 첫 경험을 한 아내는 내내 흥분상태였다. 그 흥분은 빈도도 종류도 전부 달랐다. 하지만 아내가 가장 흥분한 소재는 '시청광장'이었다. 그날 밤 아내는 줄곧 시청광장을 내려다 봤다.
아내는 프러포즈 시리즈 10부 "일본 여친, 한국축구에 눈물 흘리다" 에서도 언급했지만, 신주쿠 오쿠보 도오리에서 수많은 한국인들과 함께 월드컵 축구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었다. 축구 때문이 아니다. 공간과 그 공간에 모여든 에너지가 선사하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흥분이 눈물을 쏟아내게 했던 것이다. 그 중심에 시청광장의 붉은 악마들이 있었다.
"꼭 내 눈으로 보고 싶었거든. 그들이 모였던 여기를 말야" 조용하게 속삭이는 아내를 뒤에서 살며시 끌어 안았다. 어찌보면 7개월 늦은 신혼여행이었다. 4박 5일은 눈 깜박할 새 지나갔고,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일본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후로도 아내와 나는 종종 한국을 찾게 된다. 첫 경험이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제대로 겪으면 다음부터는 별로 어렵지 않다.
그리고, 아마 일본으로 돌아온지 한달 반쯤 지났던 것 같다. 아내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오빠, 생리가 없어" ■ 5부 "이젠 기억도 안나. 괜히 미안하네" ■ 글쓴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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