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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내, 한국 며느리로 인정받다 (1부)
결혼은 했지만 가족들에겐 말 못했던 사연
 
박철현 기자
"네. 이걸로 두분은 결혼하신 겁니다."
 
2002년 8월 22일 오전이었다. 무사시노시 시청 직원은 아내와 나에게 혼인신고서가 수리됐음을 알려줬다. 결혼 수속은 허탈할 정도로 간단했다. 
 
제라드 드 빠르디유가 주연했던 영화 '그린카드'에 등장하는 무지막지한 법무부 직원의 '인터뷰'나 위장결혼 여부에 관한 조사는 단지 영화속 이야기, 혹은 미국의 사례에 불과했다. 일본의 경우도 '도시전설'은 많았다. 결혼식 사진이 필요하니 어쩌니 따로따로 면접을 보니 마니 등등.
 
그만큼 우리의 법적 결혼은 금세 끝났다. 달랑 한장짜리 혼인신고서에 각자의 이름과 출신지, 당시 살고 있었던 무사시노 맨션의 주소를 넣었다. 둘이서 데이트했던 사진도 한두장 첨부했다. 내가 독신임을 증명하는 한국 호적등본의 일본어 번역본도 같이 제출했다. 딱 그 정도였던 것 같다.  
 
▲  일본의 혼인신고서. a3 용지 크기다. 가운데는 접을 수 있다.  이미지 사진
 
우리 경우엔 혼인신고서 안에 있는 '증인(証人)' 부분을 채우기가 가장 힘들었다. 
 
보통이라면 아내의 부모 혹은 가족이 증인이 돼 줄 법도 한데 '일본여친에게 프로포즈 받다' 시리즈에서 말했듯이 장인어른은, 그때는 물론 결혼한지 7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결혼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 스탠스를 줄곧 유지해 오고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섭섭했다. 내가 사위로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내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a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당신의 가족들이 증인을 서 주지 않겠다라고 하자 "예상했었어"라고 웃었다. 하지만 a가 "난 못하겠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책임질 수 없을 것 같아"라고 우리 결혼의 증인이 되기를 거부했을 때는 꽤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결국 아내의 나이어린 친구이자 나를 '형'이라 부르며 따르던, 간혹 내 기사에도 종종 등장하는 <아사히신문>의 k와 우리 사이를 잘 알고 있던 일본어학교 선생님이 증인을 맡아줬다(아내의 가족과는 달리 k는 '영광'이라는 단어까지 쓰면서 진심으로 기뻐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내가 다니던 게임회사의 동료들은 농담조이긴 했지만 노골적으로 말했다. "위장결혼 잘 해치웠다며? 아무튼 박상은 능력도 좋아"라고 말이다. 겉으론 웃고 말았지만 마음은 쓰렸다.
 
아내와 나는 사랑해서 결혼했고, 게다가 우리의 경우 아내가 먼저 프로포즈를 해 왔다. 하지만 바깥에서는 이상한 외국인이 선량하고 착한 전형적인 일본여성을 유혹해 어떻게 하면 일본에 좀더 체류할 수 있을까를 획책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적어도 아내의 가족이나 몇몇 친구들, 그리고 내 일본인 동료들은 그랬다.
 
하긴 나도 할 말은 없었다. 아내의 이름을 한국의 내 호적에 올린 것이 2005년 3월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적 상황에서 보자면 02년 8월부터 05년 3월까지 2년 7개월간 나는 총각이었다. 변명같지만 여기엔 이유가 있다. 한국의 가족들, 특히 부모님께서 우리 결혼을 강하게 반대하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내가 국제전화로 일본인 여자친구를 사귄다는 말을 하자 "니가 공부하러 갔지 연애하러 갔나?"라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었다. 그 이후로도 어머니는 내가 아내의 화제를 꺼내려고만 하면 전화를 끊거나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좋은 한국여자들 놔두고 넌 어떻게 일본여자하고 결혼할 생각을 하니? 나는 일본 며느리 볼 생각 없다."
 
어머니는 단호했다. 여기에도 이유가 있었는데, 어머니가 생각하는 일본여자들은 어떤 고정된 이미지가 있었다. 어머니는 나중에 아내를 직접 만나보고 깜짝 놀랬다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맨날 tv에서 이상한 아이들만 보여주니까, 난 다 그런 줄 알았지."  
 
말인즉슨 어머니는 당시 일본에서 한참 유행하고 있었던 '강구로(ガングロ)' 계통의 여자들이 한국방송을 몇번 탔는데 그걸 보고 기겁을 했던 것이다. 강구로는 1990년대부터 유행한 갸루계의 독특한 화장을 하고 다니는 젊은 여자들을 지칭하는 단어다. 이들은 얼굴 전체를 꺼멓게 칠하고 눈과 입 주위만 은빛 색깔의 화장을 한다. 어머니는 아내를 직접 만나기전까지 일본 여자들은 다 그렇다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2002년엔 호적에 올릴 수 없었다. 당장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호통이 떨어질 수 있다. 아니 심할 경우엔 어머니가 쓰러지실 수도 있다. 보수적인 집안이다. 게다가 나는 장손이었다. 장손이 집에 말도 하지 않고 혼자 멋대로 외국인과 결혼했다는 사실은 '졸도'의 요소를 두루 갖췄다. 아내는 그 때 이렇게 말했다.
 
"그럼 아직 한국 호적에는 안 올리면 되잖아. 일본에 있을땐 아저씨하고 한국가면 총각하면 되지 뭐. 그나저나 우리 결혼은 진짜 아무한테도 환영 못 받네."
 
정말 그랬다. 그날 저녁 아내와 나는 케익을 먹었다. 우리 결혼을 축하하는 둘만의 파티였다. 원래는 몇 명 부르려고 했다. 아내는 8월 20일과 21일 열심히 친구들에게 모바일 메일을 쏴댔다. 멀리 사는 친구들에겐 보내지도 않았다고 한다.
 
갑자기 연락하는 것. 일본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제대로 된 결혼피로연도 아니다. 아내는 평소에 자주 연락을 주고 받는 친구들, 나도 만나본 적 있는 이들에게만 메일을 보냈다. 그 대여섯명의 친구들은 아무도 오지 못한 채 '오메데또'(축하한다)라는 메시지만 보내왔다. 
 
그래서 둘만의 파티가 됐다. 우리는 촛불 하나를 꽂았다. 결혼생활 1년째에 들어간다는 뜻에서다. 올해 8월 22일에는 촛불 8개를 꽂았으니 우리도 어느새 결혼 8년차가 됐다.
 
지난 7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 왼쪽이 작은 딸 유나, 오른쪽이 큰 딸 미우  ©박철현/jpnews
우선 식구가 늘었다. 큰 딸 미우가 4살, 작은 딸 유나가 2살이다. 내년 1월에는 또 한명의 새 식구 '준(准)'이 태어난다. 
 
혼인신고를 올릴 당시 주변 사람들이 농반진반으로 말했던 위장결혼 의혹은 사실이 아니었다는  증명된 셈이다.  
 
하지만 장인어른은 7년전과 똑같은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지금도 결혼에 대해선 찬성도 반대도 안하고 있다. 그 한결같음은 본받고 싶을 정도다.
 
다만 장인어른은 손녀들을 만나면 좋아 죽는다. 그 손녀는 당신의 딸이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예 태어나지도 않았을 건데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고 말이다. 
 
반면 우리 가족들은 변했다. 아버지야 원래부터 아내를 좋아했기 때문에 상관없다. 하지만 왜 일본여자하고 사귀냐는 호통을 치셨던 어머니는 7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당신의 유일한 며느리를 누구보다도 걱정하고 배려해 주신다.
 
아내가 지금 임신중이라는 것, 뱃속의 셋째가 '아들'이라는 사실도 그 '걱정과 배려'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도 있지만 역시 예전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이번 시리즈는, 시간적으로 보자면 일본에 혼인신고서를 냈던 2002년 8월 22일부터,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던 2005년 3월 6일까지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일본인 아내가 아마도 보수적으로 치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마산시골 촌구석의 며느리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아내가 한국땅에서 느꼈던 놀라움과 감탄, 경악도 함께 소개할 생각이다. 
 
■ 2부 - 일본 아내, '삼겹살'에 반해 버리다.

■ 글쓴이 주
이 시리즈는 매주 일요일 아침에 게재됩니다. 그리고 처음 읽으시는 분들은 "일본 여친에게 프로포즈 받다"(12부작) 시리즈를 먼저 읽으셔야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무단전재는 금합니다. 링크를 이용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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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1/22 [05:03]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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