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태산이다. 지난 12월 14일 ‘윤석열 탄핵 촉구 도쿄집회’가 개최된 지 거의 열흘이 다 되어 가는데도 그 날 탄핵안이 가결되었다는 사실 외에는 대한민국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탄핵소추안 가결로 12.3 내란범 윤석열 대통령은 직무 정지가 됐지만 그러나 그는 여전히 내란 혐의를 부인하며 공수처의 소환통지조차 거부한 채 석동현 같은 주변인을 내세워 여론전을 펼치는 등 호시탐탐 복귀를 노리는 뻔뻔함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한 입으로는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선포가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온몸으로 탄핵 반대를 외치며 윤석열을 비호하는 권성동, 나경원, 이철규, 권영세, 윤상현 같은 국민의 힘 중진의원들 때문에 국민들의 분노 게이지 수는 점점 높아져 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목사라는 종교적 직함으로 일명 태극기 부대를 이끄는 극우 중의 극우 인사 전광훈의 움직임도 심상치가 않다. 일명 태극기 부대를 이끌며 공개적 으로 비상계엄선포를 찬성하고 지지할 뿐만 아니라, 제2의 비상계엄을 선포해야 한다는 선동마저 서슴치 않고 있다.
전광훈이 선두에 선 태극기 부대는 윤석열 응원 화환 보내기, 극우인사 유튜브 시청하기, 광화문 집회 참석 독려 등으로 극우세력들을 결집하고 심지어는 헌법 재판소를 탄핵소추안을 기각시켜야 한다고 연일 협박 시위까지 감행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같은 극우 세력을 등에 업은 윤석열은 얼마나 의기양양한 지 이제는 국민들과의 전면전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혹여 보수 성향의 헌재 재판관들이 이들의 영향으로 탄핵소추가 인용되지 않고 기각되면 어쩌나 하는 일말의 불안감으로, 아직까지도 국민들은 살을 에이는 추운 겨울 밤거리에서 촛불 행진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뉴스를 통해 본국의 소식을 접하면서 도쿄에서도 또다시 촛불집회를 열어 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얼마 전부터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수십, 수 백만 명의 집회에 비하면 4,5백 명의 숫자가 비록 초라해 보일지 모르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절심함과 그 외침의 농도는 여의도 군중과 별반 다르지 않을 터. 조금이라도 본국의 민주화 외침에 힘을 실어 주었다는 자부심과 자긍심은 아직도 유학생들과 재일 한국인 마음 속에 그 여운이 남아 있는 상태다.
그럼 지난 12월 14일 신주쿠역 앞 집회에 이어 제2의 도쿄 집회가 개최될 수 있을 것인가. 사실 14일 신주쿠역 앞 첫 집회의 시작은 몇 몇 재일 한국인과 유학생들의 개인적인 의견에서부터 시작됐다.
◼︎ 첫 집회의 시작은 한통의 전화로부터
“우리도 가만 있을 순 없지 않습니까?”
한일 부동산 김상열 대표의 전화 속 너머 이 한 마디.
이 한 마디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우에노 한국 식당 아랫목 김달범 사장, 커뮤니티 사이트 동유모 고경훈 대표, 김용덕 호남 향우회 회장 등 삽시간에 의견 개진으로 이어졌다.
지난 12월 3일 이 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엄동설한 추위 속 시민들이 ‘윤석열 탄핵’을 외치며 고생하고 있음에 도쿄의 한인들도 이에 동참하기로 마음이 모아진 것이다. 이런 경로로‘윤석열 탄핵촉구 도쿄집회’개최가 결정됐다.
그 후부터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12월 9일 오후 6시 반, 준비를 위해 12월의 망년회 특수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15명 가량의 크고 작은 사업을 하는 재일 뉴커머들이 도쿄 코리아 타운‘민속촌’으로 한걸음에 달려 왔다. 그 자리에서 임시 준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집회 날짜는 탄핵 가결 투표가 이뤄지는 14일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장소는 신주쿠 신오오쿠보 역에서 10분 거리인 도야마 공원으로 정했다. 주최 단체의 이름도 임시로 ‘재외국민동경유권자연대’로 했다. 포스터 제작은 유경험자 김애경 대표가 ‘윤석열탄핵 구속촉구집회’란 타이틀로 순식간에 만들어냈다.
▲ 1214 윤석열 탄핵 촉구 도쿄집회 © J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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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4 윤석열 탄핵 촉구 도쿄집회 © J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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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 또한 전광석화처럼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여기저기 여러 단체의 단톡방을 통해 포스터를 공유하기도 했지만, 개인적인 SNS를 통해서도 하루 사이에 무려 200여명이 참석 의사를 밝혀왔다. 어떤 유학생들은 단체로 아르바이트를 취소하고 집회에 참석할 것이라는 전언도 있었다.
12월 10일 오후, 도야마 공원 현장 답사를 위해 만난 고경훈, 최종태 대표가 이 이야기를 듣고 9일 만났던 임시 모임 대표들과 의논하여 1인당 1만엔씩을 갹출 하기로 했다. 아르바이트까지 포기하고 집회에 참석하는 것인만큼, 김밥과 따뜻한 커피를 끓여 유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기로 한 것이다.
김밥은 13일 금요일에 미리 시장을 보고, 토요일 오전에 봉사 단체인‘사랑의 나눔회’회원 몇 명이 2-300명 분의 김밥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요일 별로 담당자도 정해졌다. 그렇게 집회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다.
그런데 이튿날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14일 오후 4시경 같은 시간 대에 윤석열 탄핵촉구 집회를 하는 또 다른 단체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서로 거리가 매우 가까운 같은 신주쿠 구역 내에서였다.
또 다른 집회를 준비하는 단체는 유학생 그룹이었다. 인터넷 상에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신주쿠 역 남쪽 출구 앞에서 대대적인 집회를 열기로 하고 이미 경찰 의 집회 허가도 받아 놓은 상태라고 했다.
문제는 같은 시간대(4시와 4시 반), 같은 지역구, 같은 한국인, 게다가 집회를 여는 목적도 같은, 모든 것이 겹쳤다. 재외국민동경유권자연대가 부르짖는 윤석열 탄핵촉구도 유학생들의 외침과 똑같았고, 또다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군화발에 짓밟히지 말아야 한다는 절박함 또한 같았다. 양측 모두 소망하는 목적과 갈구하는 열망이 똑같았던 것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제외국민동경유권자연대는 일본 거주가 비교적 긴 기성세대였고, 유학생들은 상아탑 아래서 한창 꿈을 펼칠 준비를 하는 젊은 청춘들이었다.
그래서 기성 세대들인 어른들은 생각했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꼬!
하지만 고민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9일 민속촌에 모였던 임시 대표들의 만장일치로 유학생들에게 힘을 실어 주기로 한 것이다. 말하자면 뜻도 같고 목적도 같은 유학생 주최의 집회에 어른들인 재외국민동경유권자연대가 참가하는 형태로 그들을 격려하고 응원해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마침 유학생 측에서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해온 터였다.
이 같은 결정이 난 후 재외국민동경유권자연대 팀은 즉각 움직였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지된 장소와 시간을 수정해 재통보해줘야 했기 때문이다. 각자 개개인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유학생 그룹과의 실질적인 실무 진행은 제이피뉴스 기자 출신인 발빠른 박철현 사무총장이 맡아서 조정했다.
또한 계획했던 김밥은 대신 현금으로 유학생 준비그룹인‘도쿄 윤석열 퇴진집회 추진연합회’에 기부하기로 했다.
이 같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맞이한 운명의 날 14일 오후 신주쿠 역 남쪽 출구 앞 광장. 2시부터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 사람들이 3시가 넘어서자 어느 덧 대군중으로 그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모인 사람들 중에는 유학생은 물론 가족 단위, 그리고 일본에서 직장을 다니는 직장인, 일본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교수, 자영업자 등 각계 각층의 한국인들이 모였다. 더러는 일본어로 한국 국민들을 응원한다는 플랜카드를 써 가지고 참가한 일본인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집회에서의 등장으로 세계적인 명물이 된 형형 색색의 아이돌 콘서트 응원봉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기존 언론들이 보도한 것처럼 도쿄 시위도 항의 집회라기보다는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콘서트에 가까웠다.
집회 열기는 대단히 뜨거웠다. 하지만 엄중하고도 날카로운 외침이자 함성이었다.
단상에 올라 온 여학생은 그 날따라 유난히 매서운 칼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윤석열을 탄핵하라!”“윤석열을 구속하라!”고 선창했고, 그 자리에 모인 군중들은 큰 목소리로 따라 외쳤다.
“뉴스를 통해 한국의 비상계엄선포 소식을 듣고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여기에 모였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반드시 윤석열에 대한 탄핵이 가결돼야 한다.”
집회에 모인 재일동포, 일본 시민단체 대표 등이 차례로 탄핵 가결을 외치는 발언을 이어갔다. 그리고는 다시 음악이 흘러 나오고 군중들은 노래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양희은의 상록수, 시위현장 테마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 질풍 가도, 광야에서, 신해철의 그대에게도 울려 퍼지고, 그 후에는 에스파의 넥스트 레벨 (Next Level)도 흘러 나오는 등 음악 레퍼토리도 다양했다. 5시경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김연자의 아무로파티가 흘러 나와 모두들 끌어 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
취재 열기 또한 뜨거웠다. 한국의 JTBC, 영국의 로이터 등 수십여 명의 기자들이 집회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로이터 통신은 이날 취재한 영상을 전 세계 언론사에 발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튼 도쿄 시내 한 가운데에서 이렇게 각계 각층의 재일 한국인들이 모여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2천년대에 들어와서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 동안 지역별 향우회라든가 식품협회, 보석협회, 2.8회 등 친목 도모나 이해 관련 단체들의 활동은 계속 있어왔지만, 이렇게 한 가지 목적,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집회 성격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80년대 전두환 군사 독재정권 이후 처음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날 김상열 대표의 전화 한통화로 시작된 도쿄 집회는 기성세대인 재일 한인들의 릴레이 의견 통일로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결집을 형성했고, 그 결집의 힘을 유학생들에게 실어 줌으로써 신주쿠역 앞의 대군중 집회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김밥과 따뜻한 커피를 끓여 유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갹출한 소정의 금액은 주최한 유학생들에게 기부함으로써 기성세대 재일한인들은 마지막까지 작은 감동을 안겨 주었다.
이렇듯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소소한 감동을 안겨 주었던 ‘윤석열 탄핵촉구 도쿄 집회’는 참석자들의 외침과는 달리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인 상태다.
결국 또다시 제2의 도쿄 집회를 열어야 되는 것은 아닌지, 윤석열 탄핵 시계추는 현재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불투명한 상태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