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진보계 일간지인 '아사히 신문'이 9일자 사설에서, 군함도를 둘러싼 일본 정부의 대응을 비판했다.
일본 정부는 '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에 기억유산으로 등재하면서 한국과 세계에 "군함도의 탄광에서 강제노역을 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전시물을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군함도 관련 전시관에는, 조선인 강제노역 사실이나 이들에 대한 학대, 차별 사실을 다룬 전시물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당시 주민들에 의한 "조선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나 학대는 없었다"는 증언 영상물이 전시됐다.
이 때문에 한일 양국은 이달 3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유엔 교육문화과학기구) 집행위원회에서 충돌을 빚기도 했다. 회의에서 한국 측은 '약속을 지켜야한다'면서 일본을 비판했지만 일본 측은 '세계유산위원회의 관련 결의나 권고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 관계국(한국)이 제대로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반박했다.
군함도를 둘러싼 이같은 한일갈등에 대해 아사히 신문은 "(일본 정부가)약속의 취지를 제대로 지켰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국가의 대외적 약속은 성실히 지킨다. 일본이 추구해온 이 원칙을 스스로 어긴다면 신뢰를 쌓을 수 없다"며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전문은 아래와 같다.
세계유산 대립, 어두운 역사도 직시해야
국가의 대외적 약속은 성실히 지킨다. 일본이 추구해온 이 원칙을 스스로 어긴다면 신뢰를 쌓을 수 없다.
5년 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메이지일본의 산업혁명유산'에 관한 전시를 둘러싸고 일본과 한국 사이에 마찰이 일고 있다. 전시 중인 징용공의 설명에 대해 일본 측이 충분한 대응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등록 당시 일본정부 대표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억지로 끌려와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한 많은 한반도 출신자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더불어 시설 설치 등 "희생자를 기억에 남기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올해 도쿄도내의 국유지에 개관한 '산업유산정보센터'가 여기에 해당되지만 전시 내용 일부에 한국 측이 반발하고 있다.
등록시에 일본대표의 발언이나 징용에 이르는 제도적인 경위 등은 전시판을 통해 소개돼 있지만, 문제시되는 부분은 당시에 대한 증언을 소개하는 코너다.
군함도로 불리는 나가사키 현 하시마에 있던 탄광의 원주민들이 한반도 출신자에 대한 차별은 없었다고 말하는 인터뷰 내용이 소개되고 있었다.
센터에 따르면, 증언 수를 앞으로 늘릴 방침이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면담한 당시 주민들로부터는 차별이나 학대 사실을 인정하는 증언은 없었다.
당시를 아는 사람들의 증언이 귀중한 가치를 가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개개인의 체험에 대한 증언을 다루는 것만으로 역사의 전체상은 파악할 수 없다.
한반도 출신자의 노무동원에 폭력을 동반한 케이스가 있었다는 점이나 가혹한 노동을 강요받은 점은 당시 정부의 공문서 등으로 판명되었고, 일본 법정에서도 피해사실을 인정받았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도 충분히 설명하여 당시 국책의 전체상을 서술하는 것이 바람직한 전시의 모습일 것이다. 센터는 전문가와의 회의를 거쳐 전시를 결정했다고 하지만, 현재로서는 약속한 취지를 실현했다고 보기 어렵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유산의 인정에 정치적 의도가 관여되는 케이스가 두드러진다. 이 때문에 '세계의 기억(기억유산)'은 당사간에 의견이 정리될 때까지 심사를 보류하는 제도로 개정됐다.
유산의 가치를 세계에서 인정받았다고 해서 역사를 가릴 수는 없다. 어느 나라의 행보에도 빛과 그림자가 있고, 이웃나라와의 관계도 복잡하다. 일본도 한국도, 명암을 가리지 않고 역사적 사실과 겸허하게 마주한 채 미래를 생각할 책임이 있다.
메이지 이후의 일본은 많은 노력과 희생 속에서 눈부신 공업화를 이뤄냈다. 부정적인 측면을 직시하지 못한다면 유산의 눈부심은 퇴색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