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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연예역사에 남을 재판 현장을 가다
[현장] 국민적 아이돌 사카이 노리코 재판, 7시간 20분의 악전고투.
 
박철현 기자
"한국에서도 사카이 노리코의 인기는 대단한가 봐요?"
"아뇨. 별로 인기 없는데요"

 
순간 '외국 미디어냐', '인터뷰 좀 해도 되겠느냐'며 웃는 낯으로 마이크를 들이댄 유명 민방 a사의 와이드쇼 디렉터는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당연히 그는 중국, 홍콩, 대만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사카이 노리코(酒井法子, 38)의 인기가 높은 줄 알았나 보다.
 
디렉터는 잠시 뜸을 들인 뒤 '일본의 재판제도를 어떻게 생각하냐' 등의 뜬금없는 질문을 해 왔다. 그런 디렉터를, 카메라맨과 붐 마이크맨은 짜증섞인 표정으로 곁눈질을 한다. 그들의 표정은 '어차피 안 쓸 건데 뭐하러 계속 찍고 있냐?'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어떻게 보면 기획의도에 따라 대본대로 찍어야 하는 민방 와이드쇼의 비극일 수 있다. 날씨나 화창하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26일은 체감온도 10도까지 내려가는 한파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쓰지 않을 인터뷰란 걸 알면서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농담을 주고 받아야 하는 이 비극적인 상황.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기획이든 뭐든 그림이 될만한 것들은 모조리 찍어놔야 한다. 기자 또한 그랬다. 사이타마, 오사카, 고베, 규슈에서 상경했다는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했고, 또 소니 pd-170 비디오 카메라의 고장을 각오하면서까지 그녀가 탄 차량이 재판소로 들어오는 그 순간을 촬영하기 위해 몇시간을 기다렸다. 
 
▲ 히비야 공원에서 열린 방청권 추첨. 종이를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손목에 차는 리스트밴드를 교부받았다 © jpnews

일본의 연예역사에 남을 재판, 폭우속에서 진행돼

이유가 있다. 오늘 재판은 일본 연예 역사에 남을 재판으로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20장밖에 없는 방청권을 획득하기 위해 6615명이 줄을 섰다. 일부 언론들은 지난 1995년 3월 20일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사건을 일으킨 옴진리교(현재 '알레프'로 개명)의 아사하라 쇼코 교주의 첫 공판(96년)에 몰린 12,292명을 넘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악천후 때문에 절반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본다면 이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6천명 이상이 몰렸다는 말이 된다. 모든 '영광'을 누렸던, 80년대를 풍미했던 톱 아이돌 가수의 극적인 '몰락'은 그만큼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26일 아침 6시 30분, 기자는 도쿄 가스미가세키 역 근처의 히비야 공원으로 향했다. 각성제법 위반 혐의(소지)로 체포된 사카이 노리코의 첫 공판이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날씨가 심상치 않다. 첫 아침부터 흩날리던 빗방울이 점점 거세지더니 8시 무렵에는 폭우로 변했다.
 
히비야 공원 가스미 입구쪽에선 교부 행렬을 알리는 경비원들이 줄을 서 있다. 그들은 확성기를 사용해 "왼쪽으로 가시면 방청권을 교부받을 수 있다"고 외치고 있다.
 
보통이라면 재판소 정문 안쪽의 방청권 교부장소에서 추첨을 하지만 이번 사카이 노리코 재판은 특별히 히비야 공원에서 방청권 추첨을 진행한다고 한다. 사람이 몰릴 것을 예상한 대처다. 히비야 공원에서의 방청권 추첨 역시 일본 재판 역사상 두번째다. (첫번째는 옴진리교의 아사하라 쇼코의 첫 공판)

12군데로 나뉘어진 방청권 교부장소에서는 재판소의 직원들이 종이가 아닌 리스트밴드 형식의 띠를 손목에 직접 채워주고 있었다. 아직 마감까지 2시간이나 남아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기자도 대열속에 들어갔다.
 
10분을 기다려 번호가 적혀진 리스트밴드가 내 손목에 채워졌다. 1806번. 내 앞에 이미 1805명이나 지나갔다는 말이 된다. 
 
"아침 8시부터 교부를 시작했는데, 그 때 이미 한 2, 3백명 정도는 줄을 서 있었다. 어제 밤 자정부터 기다린 사람도 있고..."(재판소 직원)
 
몰려드는 방청 희망객의 행렬만큼 매스컴의 수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생중계 방송 차량이 재판소 근처에 진을 쳤고 각 방송국의 리포터들은 쉴 새 없이 리포팅을 해 댔다. 역사적 재판의 '모든 장면'을 기록하고 싶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한편 사카이 노리코를 태운 자동차가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는 재판소 남쪽 입구에는 비옷 입은 보도진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아침부터 진을 쳤다. 피고 차량은 보통 재판시작 40분전에 재판소로 들어간다.
 
재판 예정 시각은 1시 30분이기 때문에 12시 50분에 사카이 노리코의 차량이 통과된다는 말이 된다. 
 
"8시부터 기다리는 중이야. (촬영용) 사다리를 미리 설치해 두긴 했지만 경찰이 아까 철거하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그냥 기다리려고. 화장실 갈 땐 옆 사람한테 조금 봐달라고 하고. 그나저나 비가 가장 싫어. 나같은 노약자한텐 고역이야. 고역."
 
일련의 연예인 약물재판 현장에서 알게 된 60세 현역 카메라맨 미야자키는 쏟아지는 폭우에 대한 원망을 사카이 노리코에 돌렸다.
 
"감기 걸리거나 카메라라도 부서지면 사카이한테 손해배상 청구할 생각이야. 하하하"
 
▲ 아침부터 흩날리던 빗방울은 폭우로 변해갔다. (10시 20분경 재판소 남쪽입구 상황)   ©jpnews
 
정문앞에서는 각 민방의 현장 생중계 준비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폭우 때문일까? 평소 현장에서 보기 힘든 짜증내는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일본의 민방들은 tv도쿄를 제외하고 모두 사카이 노리코 재판에 대비한 특별편성 프로그램 태세를 갖추었다. 각 방송국마다 사법담당 기자를 3, 4명식 배치해 재판이 시작되는 오후 1시 30분부터 법정내의 증언 및 분위기를 완벽하게 릴레이 보도하려는 계획을 짰다. 
 
민방의 보도 경쟁... "사카이는 숫자를 따 내니까"

tv아사히는 정보프로그램 '와이드! 스크램블'의 종료시간을 2시간 가까이, tbs도 '히루오비'를 1시간 연장했다. 니혼tv의 '오모잇키리 돈'과 '미야네야'를 동시에 연결해 보도하는 등 총력보도 태세를 갖추었다. 주인공은 물론 사카이 노리코였다.
 
이들 방송은 사카이 노리코가 데뷔했던 시절의 영상부터 시작해 어떻게 그녀가 몰락했는가를 다큐멘터리 터치로 보도하는 한편, 그 사이사이마다 적절한 현장 리포팅을 동원해 사실감을 높였다. 극장식 보도의 진수다. 와이드쇼의 본령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미야자키와 마찬가지로 이번 연예인 약물사건의 현장에서 알게된 와이드쇼의 모 디렉터는 이런 '극장식 보도'에 대해 지론을 편다.
 
"사카이 노리코는 숫자(시청률)를 따 내거든. 어디든 다 그렇겠지만 특히 와이드쇼는 시청률이 생명이야. 매일같이 몇 시간씩 방송하는데 시청률이 안 나오면 꼴이 말이 아니니까. 그런 면에서 볼 때 '노리피'(사카이 노리코의 애칭)는 효녀야. 효녀" 

한편 이런 류의 '극장식 보도'에 양념처럼 들어가는 것이, 이른바 '외국미디어'의 반응이다. 사카이 노리코의 이번 사건이 일본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관심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중화권의 매체가 보이기도 했다. 그들이 나타나면 일본 매스컴의 기자들은 무리를 지어 '중국(혹은 대만, 홍콩)에서는 이 사건을 어떻게 보도하고 있나?', '사카이 노리코의 인기는 어떤가' 등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사카이 노리코는 2000년대부터 중국에 진출해 지금도 톱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당연히 중화권의 매체는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외국 미디어입니까? 취재 좀 해도 될까요?"
 
다짜고짜 기자에게 말을 걸어오는 일본 매스컴의 디렉터. 완장에 한글로 적힌 '제이피뉴스'라는 문구를 보고 위의 도식에 따라 '한국에서도 이번 사건에 관심이 있고 사카이 노리코의 인기는 높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갑자기 물어왔길래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이니 바로 질문이 터져 나온다.
 
"한국에서도 사카이 노리코의 인기가 있나 보죠?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현장에 직접 나온 걸 보니..."
 
바로 즉답했다.
 
"아뇨. 인기 없어요. 그냥 일본 연예인이 연루된 마약 사건이란 걸로 알려져 있죠."

순간 당황하는 디렉터.  
 
대충 '쓰이지도 않을 인터뷰'를 마감한 뒤 다시 히비야 공원으로 향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방청권 추첨에서 멋지게 떨어졌다. 기념으로 리스트밴드는 가져왔지만, 역시 한국적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소동이다. 재판 방청을 위해, 평일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6천명 이상이 줄을 섰다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하다.
 
"각 방송국들이 3천정도는 동원했을 거야. 그래도 대단한 관심이지. 일반 방청객이 3천이나 몰려왔다는 말이 되니까. 일본 연예역사에 남을 재판을 우리들은 목도하고 있는 셈이지"
 
환갑을 훨씬 지난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력적으로 현장을 찾아다니는 예능 리포터 나시모토 마사루(梨元勝, 65)가 기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그렇게 말한다.
 
12시부터 기자도 사카이 노리코가 아마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재판소 남문 입구에서 카메라를 들고 기다렸다. 군대경험이 이럴 땐 도움이 된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한자리에서 서너시간 정도는 가볍게 버틸 수 있으니까. 
 
7시간 20분의 악전고투 끝에 간신히 건진...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카이 노리코가 탄 차량이 나타나지 않는다. 방송국 헬리콥터라도 떴다면 상황파악을 할 수 있을텐데 이날은 폭우때문에 못 떴다. 빗속인지라 휴대폰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기도 힘들다. 마냥 기다릴 수 밖에 없다. 
 
1시가 지났다. 저쪽에서 비옷을 입은 카메라맨이 나가오더니 기자 앞의 닛칸스포츠 소속 카메라맨에게 낮게 속삭인다.
 
"철수하자. 들어갔대. 서쪽 입구로"
 
재판소의 동서남북 출입구 중에 가장 취재진이 적은 서쪽 출입구로 사카이 노리코와 관계자가 탄 것으로 보이는 차량 두대가 12시 53분경 통과했다는 것이다. 남쪽 입구에서 진을 치고 있던 보도진들 사이에서는 탄성과 한숨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21일 다카소 유이치, 23일 오시오 마나부는 모두 남쪽 입구로 들어왔고 또 서쪽 입구는 원래 출구전용으로 쓰인다. 출구 전용으로 쓰이는 곳을 12시부터 커버할 이유가 별로 없다. 나중에 알고보니 재판소가 혼잡 및 사고를 우려해 특별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기자 역시 힘이 빠졌다. 들어가는 그림만 찍었다면 1시에 철수해서 기사를 작성하려고 했었는데 이래가지곤 재판이 끝나는 3시이후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사람은 못 찍더라도 자동차 그림은 찍어야 하니까. 그렇게 폭우와 한파에 맞서가며 다시 2시간을 기다려 겨우 '도요타 알파드'를 포착할 수 있었다.
 
▲  사카이 노리코가 탄 도요타 알파드. 초점, 노출이 엉망이다   ©jpnews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20분이다. 아침 8시부터 무려 7시간 20분동안 폭우와 싸워가며 마지막까지 현장을 지켰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물론 그 뿌듯함의 대가로 찾아온 몸살은 감수해야 했지만 말이다.
 
26일 첫 공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받은 사카이 노리코의 결심공판은 11월 9일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열린다. 이 날 다시 재판결과와 함께 그녀의 인생과 패밀리 스토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혀드리도록 하겠다. 
 
▲  기자도 정리권 리스트밴드를 받았다. 리스트밴드에는 "(밴드가) 떨어진 상태에서는 당첨번호라 하더라도 무효가 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j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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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0/27 [11:15]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아이고 고생하셨습니다. 보라색구름 09/10/27 [11:24]
비도오고 장난 아니셨을텐데 ㅎㅎㅎ 수정 삭제
수고하셨어요.. 부산댁 09/10/27 [21:55]
와이드쇼 디렉터의 표정이 떠오르네요 ㅎㅎ 수정 삭제
박기자님 말마따나 흑철의성 09/10/28 [19:49]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는 건 고사하고 관심도 없는 이 일을 왜 그렇게 열심히 좇아 다니시는거죠? 우리와 다른 일본의 보도행태를 취재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JP뉴스도 일본매체처럼 일본에서 화제니 우리도 취재해야한다는 군중심리? 몸을 혹사한 대가치곤 상대적으로 한국독자에겐 의미가 떨어지는 기사가 아닌가 싶네요. 그래도, 수고하셨습니다. 수정 삭제
흑칠의성님 판톤 09/10/29 [18:09]
이 사이트는 일본의 뉴스를 전해주는 사이트잖아요.
그러니까 고된 일이고 비교적 가치가 낮은 일이라 하더라도 사이트의 본분에 맞게 일본의 뉴스를 취재를 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리고 한국독자에겐 의미가 떨어지는 일이다라고 말씀 하시는데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에게는 흑칠의성님 말씀처럼 의미 없는 기사가 아닙니다.
일본의 매스컴에서는 매일 몇시간씩 특보로 내보내는 사건을 한국기자가 한국의 시선에서 디테일하게 한국인의 수준에 맞는 기사를 쓰는 곳은 이곳뿐이 없습니다. 저는 이러한 기사를 보기위해 이 사이트에 오는거구요.
자신의 기준에 맞춘의견을 한국독자의 의견인양 이야기 하는 것이 보기 좋지 않아서 한마디 납깁니다.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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