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선수 훌륭하고 완벽합니다. 첫 시리즈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성형에 가까운 연기입니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 스케이트 금메달 리스트 아라카와 시즈카(荒川静香, 28)가 김연아 선수의 연기를 극찬했다.
일본에서는 <tv 아사히>가 17일(이하 한국시간) 새벽 1시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09-2010 isu 피겨 시니어 그랑프라 개막전의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sp)를 녹화중계했다.
일본의 피겨 스케이트 방송중계는 개최지에 따라 생방송 여부를 결정한다. 이번처럼 새벽에 경기가 진행될 경우 기본적으로 녹화중계로 편성된다. 하지만 한국과 같이 시차가 거의 없는 곳에서 열릴 때는 생방송으로 편성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피겨 스케이트 중계권이 주로 '시청률'에 좌우되는 민방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심야 새벽시간, 혹은 낮시간에 방송될 경우 시청률이 나오지 않아 광고주가 난색을 표하기 때문에 녹화중계를 하더라도 다음날 골든타임대(오후 7시부터 10시사이)에 편성하는 것이 관례처럼 돼 있다.
이번 개막전도 이러한 연유로 인해 18시간 늦은 17일 오후 7시에 비로소 방송됐다.
▲ 이번 그랑프리 개막전은 tv 아사히가 중계를 담당했다. 테마는 "누가 여왕인가?" 다 © tv 아사히 | |
<tv 아사히>의 개막전 중계 테마는 '후 이즈 퀸'(who is queen?, 누가 여왕인가)이었다. 떠오르는 태양을 배경으로 붉은 색 자막 '여왕(女王)'이 화면에 박히면서 흐르는 장엄한 내레이션.
"한 시대에 두명의 여왕은 존재할 수 없다. 지금에서야 말로 숙명의 라이벌이 여왕의 자리를 놓고 격돌한다!" 물론 <tv 아사히>가 언급하는 두명의 여왕은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였다. <tv 아사히>는 19살 동갑내기, 5번의 우승 등 둘의 공통점을 나열하면서 뱅쿠버 올림픽 시즌에 돌입하는 중요한 승부처에서 과연 여왕의 자리는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라고 긴장감을 불어 넣었다.
생방송이라면 누구나가 가슴설레는 수려한 영상편집이었지만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인지라 왠지 김빠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른 김빠지는 느낌을 상쇄한 것이 토리노의 여왕 '쿨 뷰티'로 불린 아라카와 시즈카였다. 아라카와의 해설은 흥분과 열정으로 시종일관 시청자를 몰입시키는 '수다쟁이' 이토 미도리와 달리 냉정하고 객관적인 조용한 해설로 유명하다.
현역시절 그녀의 별명이기도 했던 '쿨 뷰티'의 모습을 재현하는 '쿨한 해설'로 피겨팬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아라카와도 오늘만큼은 김연아의 연기에 몰입해 평소와는 달리 수많은 감상을 쏟아냈다.
▲ tv 아사히의 영상편집으로 인해 김연아 선수와 아사다 마오 선수는 "숙명의 라이벌"로 묘사되었다. 자막은, 김연아 선수의 발언 "(아사다 마오 선수의 존재로 인해) 나도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tv 아사히 | |
▲ 아사다 마오 선수 "(김연아 선수를) 라이벌이라고 생각합니다" © tv 아사히 | |
아라카와는 먼저 김연아 선수가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를 성공시키자 "아, 여유롭게 성공시키는 군요"라고 말문을 연다.
이어 김연아 선수가 트리플 플립을 안정적으로 소화해 내자 그녀는 "이 점프도 상당히 좋은 흐름으로 가져갑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점프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네요"라고 덧붙인다.
아라카와가 특히 흥분했던 것은 김연아 선수가 '본드걸'로서의 진면목을 확연히 보여준 스텝에서였다. 아라카와는 다른 선수들의 스텝, 스파이럴등에서 한두마디 했던 것과는 달리 김연아 선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풀어냈다.
"김연아 선수, 표정이 또 독특합니다. 하나의 곡안에서 이렇게 다양한 표정을 낼 수 있다는 것도 김연아 선수만의 특징이라고 봐야죠. 안정감이 넘치네요. 완벽합니다. 훌륭해요. 다양한 스텝을 아주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라카와는 2분 55초간 진행된 김연아 선수의 연기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자신의 선수경험을 살려 이렇게 덧붙였다.
"김연아 선수의 오늘 연기는 거의 완성형에 가깝군요. 미스라곤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랑프리 시즌 개막전에서 연습할 때는 그렇다 하더라도 정식 시합에서 변함없이 그 모습을 재현해 낼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힘들거든요. 완벽에 가깝습니다" 그녀는 또 슬로우로 재생되는 김연아 선수의 연기를 보면서 다시금 극찬을 쏟아냈다. 먼저 트리플 플립 점프가 나오자 아라카와는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주춤거리기도 하고 실수도 했었는데, 오늘은 완벽합니다.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는지 알 것 같네요"라고 말했다.
이어 트리플 러츠 - 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 점프가 나오자 아라카와는 "여유가 넘칩니다. 흐름도 좋고 높이도 탁월해요. 개막전 쇼트 프로그램을 이렇게 침착하게 풀어낼 수 있다는 거 정말 어려운데 김연아 선수는 이렇게 여유롭게 해치워 버리네요. 이럴 수도 있군요"라고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전광판에 찍힌 76.08이라는 숫자. 순간 아라카와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그리고 짧게 내뱉은 세마디.
"훌륭합니다. 엄청난 점수네요. 대단합니다" 김연아 선수는 3분이 채 안되는 짧은 시간을 통해 일본 언론의 찬사와 네티즌의 질투를 동시에 이끌어 냈고, 토리노의 여왕마저 매료시켜 버렸다.
신문들도 17일자 석간을 통해 "아사다 마오의 역전은 거의 불가능" 으로 제호를 박았고 일부는 아예 그랑프리 개막전을 단신규모로 취급했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본드걸' 김연아는 이렇게 모든 이들을 제압했다. '본드걸'이 개막전 '여왕'이 되기까지 이제 3시간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