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8월 15일을 기점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자의든 타의든 이 날이 우리국민 모두에게 크기와 색깔과 모양은 달라도 여러가지 의미를 주고 있다. 올해 8월 15일, 이 날 나는 새로운 경험을 더했기에 또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지난 8월 13일 도쿄 YMCA 호텔에서 [2016년 평화의 등불을 야스쿠니의 어둠으로]란 행사가 열렸다. 일본의 전쟁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과 동남아 국가의 시민단체들이 매년 8월 15일을 기념하여 개최되는 행사다.
올해도 예전과 같이 역사를 통해 전쟁을 경험한 세대들과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역사를 통해 배운 간접 경험으로 전쟁의 비극을 아는 세대들이 함께 참가했다.
일본의 패전과 조선의 해방된지 7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일본을 둘러싼 동아시아 국가들의 역사는 아직도 올바르게 청산되지 못했다는 인식이다.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문제 등 과거 역사에 대한 한일간의 인식은 국가간, 국민들간의 갈등을 빚고 있다.
이날 행사는 일본에서 전쟁으로 인한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평화를 사랑하는 일본 전국의 여러 단체들이 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올해의 슬로건은 `전쟁 반대` `야스쿠니 반대` `아베 반대`로 평화를 위한 세미나를 비롯, 콘서트가 진행되었고 마지막에는 호텔을 출발해서 야스쿠니 신사까지 도보로 하는 촛불행진으로 끝났다.
얼마 전 나는 8월 13일에 도쿄 YMCA 호텔에서 일본시민 단체의 광복절 행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참석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 날 나는 아무런 사전 지식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행사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쿄 한국YMCA호텔은 수이도바시 역에서 도보로 6분 정도 거리에 있는데 본부가 한국 YMCA, 즉 도쿄 이 호텔은 한국YMCA 도쿄 지부인 셈이다.
도쿄 돔이 있는 수이도바시 역에서 호텔로 향하는 길에는 경찰차 버스가 군데군데 정차해 있었고, 정사복을 입은 경찰들이 많이 서 있었다. 호텔로 들어가는 입구마다 낮은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었고 자동차 통행은 금지되어 사람들만 통행할 수 있었다.
그런 살풍경한 분위기에서 뭔가 심상치 않다는 공기가 감돌았다. 호텔 앞에는 더 많은 경찰 버스와 경찰들이 깔려 있었다. 호텔 정문에서는 대여섯 명이 의자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호텔 프론트에 가서 오늘 행사에 대해 물어보니 호텔 지하로 내려가 보란다. 호텔 지하에는 일본의 여러 시만 단체들이 모여 [2016년 평화의 등불을 ! 야스쿠니 신사의 어둠을 향한 초불 행동]이란 타이틀로 강연을 하고 있었다. 이번 행사를 위해 서울에서 온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의 이희자 대표를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호텔에서의 마지막 행사인 콘서트가 끝나면 도쿄 YMCA 호텔을 출발해서 야스쿠니 신사까지 촛불행진을 하고 야스쿠니에서 해산으로 오늘 행사 일정이 전부 끝난다. 콘서트가 끝나고 진행측으로부터 촛불행진에 대해 행진 경로와 주의사항 등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이때 주의사항 중에 촛불행진하는 동안 우익으로부터 시비와 욕설이 있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해 절대 대응하지 말고 오늘의 목적을 위해 의연하게 대처할 것에 대한 당부가 있었다.
7시부터 촛불행진이 시작되었고, 경찰들과 경찰 버스들은 데모대의 좌우에서 데모 참가자들을 우익으로부터 보호에 들어갔다. 선두에서 스피커로 `전쟁 반대` `야스쿠니 반대` `아베 반대`란 구호를 외치면 시민단체들은 이를 따라 복창하면서 전쟁 반대란 노란 깃발을 들고 행진을 이어갔다.
호텔쪽으로부터 골목길을 벗어 나와 큰 길로 나오자 우익단체에서 나온 우익들의 욕설과 과격한 행동들이 시작되었다. 경찰들은 데모대가 다치지 않도록 우익들을 막으면서 데모 행열에서 처지거나 흩어지지 않도록 "앞줄에 붙어서 걸으세요" "옆으로 삐져 나오지 마세요" "우익들의 말에 대응하지 마세요"등의 주의사항을 외치면서 데모대를 엄호했다.
보기에도 위압감을 주는 검정색 차량과 스피커에서 "희들은 일본에서 살지 말아라" "너의 나라로 돌아가라"등의 험한 말을 쏟아내는 우익들의 행동은 시민단체들을 겁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촛불행진에 참가한 시위 단체의 멤버들은 오히려 의연했다. 묵묵히 선도대의 선창에 따라 "야스쿠니 반대"라는 구호를 외쳤다.
전쟁을 반대하는 시민 단체들의 역사적인 사실과 정치인의 잘못을 바로잡고자 하는 작은 행동에 유난히 과민하게 반응하는 일본우익 단체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똑똑히 목격할 수 있었다. 촛불행진만 진행되었다면 조용히 끝날 수 있는 행사가 우익들의 반대 행동으로 더 크고 더 살벌하고 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된다는 것은 아니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일본우익 단체들의 과격한 행동으로 평화를 위한 촛불행진은 오히려 매스컴에서 더 크게 다루어 질 것이다.
이윽고 약 40여 분 동안 걸어 당도한 야스쿠니 신사. 그 앞에서 해산식이 있었다. 일본시민 단체 집행부들은 해산식에서, 시대에 맞춰 바뀐 펜라이트를 혹여 우익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가방에 잘 넣고 신속하게 해산하라는 염려섞인 당부를 했다. 혹시라도 우익들이 촛불행진에 참가했다는 사실을 알고 위해를 가할까봐 조심하라는 말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전쟁 반대` `야스쿠니 반대` `아베 반대`란 구호를 외치고 이 날 행사는 모두 끝이 났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같이 행사에 참가했던 어떤 분에게 어떻게 오셨냐고 물었다. 그분은 한국말로 하라면서 자기는 재일동포이고 20년 전에 한국말을 배우면서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작년부터 이 행사에 참가하고 있는데 일본이 역사를 부정하고 있는 게 참으로 안타깝다고 에둘러 일본의 위정자들을 비판했다.
그는 일본이란 국가가 일본국민에게 너무 역사를 가르치지 않아 자신이라도 자기 주변의 일본인에게 역사를 가르키고 싶어 실제로 역사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