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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신사 르포 ‘사건 현장을 가다’ 2
'외로운 늑대'의 싸움
 
김명갑 기자
▲  배전   ©JPNews

 

2013 9 22 21. 사방이 어두운 가운데 남문 화장실 뒤 덤불 속에 한 남자가 숨어 있었다. 순찰을 돌던 위사 두 명이 그를 발견하고 달려오자, 남자는 그 둘을 거칠게 제치고 달려 나갔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문 밖으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쪽인 야 스쿠니 신사의 중심부를 향해 뛰었다. 뛰면서 그는 배전을 향해 냅다 톨루엔(시너의 원료)을 집어 던졌다. 그 순간 달려온 두 명의 위사들이 그를 덮쳤다. 다행히 톨루엔에 불은 붙지 않고 바로 꺼졌다.

 

공안부에 넘겨진 그 사람은 한국인 강모(23). 그는 "일본이 자꾸만 역사를 왜곡하고 있기 때문에 화가 나 방화하려 했다"고 자백했다. 지난 5년 간 세 차례나 방화위험이 있었던 야스쿠니 신사.

 

 

▲ 저스틴 비버 야스쿠니 참배     ©JPNews

   

2014 4 23일에는 팝스타 저스틴 비버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 하는 모습을 올렸다가 한중 네티즌들의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해당 사진을 삭제한 후 사과 글을 게재한 일도 있었다. 

 

당시 트위터를 갱신한 그는 "일본에 있었을 때, 운전기사에게 아름다운 신사에 가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 신사를 단지 기도하는 곳이라고 오해했다"고 말한 뒤 "감정 상한 모든 사람에게 깊이 사과한다"고 밝혔다.

 

그렇다. 일반적인 일본인이나 외국 관광객에게 있어 야스쿠니 신사는 그저 풍경이 그럴 듯하고 한 해를 기원하고 마츠리를 여는 그런 신사일 뿐이다. 자신들이 찾는 신사가 어떻게 세워졌고,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희생돼 이곳에 합사 됐는지 알지 못하고 관심 또한 없다. 그러니까 저스틴 비버 같은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일본 유족들    1955년 4월  

 

야스쿠니 신사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 연합군총사령부의 명령 하에 국가 기관 으로부터 분리되어 더 이상 육해군, 황실 주도의 합사는 사라지고 독립적인 종교시설로 바뀌었다. 하지만, 일부 합사 권한을 이양 받은 후생성과 야스쿠니 신사가 자체적으로 유족들의 동의 없이 200 여만 명이 넘는 전몰자들을 합사 시켜 새로운 문제로 대두됐다.

 

그 중에는 2만 천 여명에 달하는 조선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강제 징집 당해 전쟁 중 사망 한 조선인들은 당시 조선이 일본의 속국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일본군 전몰자들과 함께 합사 된 것이다. 때문에 한국의 유족들은 그 동안 수 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상대로 합사자 명단 에서 빼줄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 신사 측에서는 "이미 일본의 신이 되었기 때문에 합사자 제외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2만 천 여명의 조선인 영혼들은 조국이 해방된 지 70여 년이 됐는데도 아직까지 실질적인 독립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1978년 이후에는 도죠 히데키를 비롯한 A급 전범이 야스쿠니 신사에 함께 합사 되면서, 일본과 한국의 전몰자들은 자신들을 죽음으로 밀어 넣은 장본인과 함께 신사에 모셔지는 이중 수모를 겪게 되었다.

 

▲ 펄 판사 현청비     

 

아주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니다. 야스쿠니 신사는 2005년 경내에 한 인도인 판사를 위한 현청비를 세웠다. 대상은 극동국제군사재판의 판사로 인도의 법학자 라다 비 노드·펄이란 사람이었다. 야스쿠니에서 A급 전범들이 합사 된 후 무려 30년 가까이 흐른 뒤에야 (그의 사후로부터는 오히려 40여년 이 흐른 뒤) 현청비가 세워진 것은, 단순히 기념비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펄 판사는 전후 일본인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외국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46 5, ‘극동군사재판회담’이 도쿄에서 열렸다. 도죠 히데키를 비롯한 A급 전범 14명이 포함된 재판이었다. 펄 판사는 인도 대표로 이 재판에 참가했다. 그는 이 재판이 승전국 출신의 판사들로만 구성된 것은 정당하지 못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이미 판결의 방향까지 정해져 있는 군사 재판으로 일종의 희극과 같다고 느껴졌다.

 

결국 그는 일본이 저지른 전쟁 범죄는 인정하지만 죄형 법정주의의 입장에서 피고인(A급 전범)을 유죄로 하는 근거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밝히며 피고 전원에 대해 무죄를 주장 했다. 그는 난징 대학살에 참여한 일본군에 대해서도 무죄를 주장하는 한편, 원폭 투하에 대해서는 “홀로코스트에 비견할만한 민간인 대학살”이라 말했다. 철저하게 일본 입장에 선 주장이었다.

 

다행히도 다른 판사들은 전범들에게 사형을 선고, 전후 처리는 승전국의 주도아래 일사 처리로 진행됐다. 당시 일본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보도의 주인공은 당연히 전범에 대한 사형 판결이 아니라 인도 법학자 펄 판사였다.  

 

펄 판사는 승전국의 입장에서 패전국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국제 재판의 방식을 문제 삼아 일본의 무죄를 주장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이것이 궁지에 몰린 일본에게 활로를 내어준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한 법의학자의 의견이었던 일본 무죄론은 일본 군국주의 부활에 단초를 제공한 셈이다.

 

이후 일본정부는 형장에서 사망한 A급 전범들 14명을 ‘쇼와순난자’라는 이름으로 야스 쿠니 신사에 합사했다. 수백 만 명의 젊은이들을 희생시킨 전범이 아닌‘대의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자’라는 의미의 쇼와순난자, 즉 순국자로 승화시킨 것이다. 한국과 중국이 일본 각료의 야스쿠니 참배를 놓고, A급 전범이 합사된 신사에 어떻게 일본의 대표가 참배를 할 수 있느냐?”고 묻지만, 일본의 입장에서는 A급이건, F급이건 전범은 없고 순난자만 있으니 소통이 될 리 없다.       

 

야스쿠니 신사 내에는 왜 이 신사가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고 일본 시민단체에서도 위험천만 한 장소로 지목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소가 있다. 바로 유슈칸.

 

 

▲   유슈칸. '고결한 인물을 본받는다.’는 유슈(遊就,유취)의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의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JPNews

 

 

야스쿠니 신사 한 가운데 우측에 자리잡고 있는 유슈칸의 1층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일본이 왜 군국주의 시대 과거로 회귀하고 싶어하는지 그 이유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 제로센 전투기     ©JPNews
▲ 2차 세계 대전 당시 사용되었던 각종 병기들 뒤로, 어린 아이들이 그린 자폭 폭격기 '제로센'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JPNews
▲ C56 형 증기기 관차 31호기 ©JPNews

 

우선 1층에는 영화 제로선에 나오는 프로펠라 비행기를 비롯, 전리품들을 진열해 놓았다. 소장품은 약 10 만여 점. 5,000 명의 영정도 있다. 주요 소장품 보병 제 321 연대의 군기(욱일승천), 96 150mm 곡사포, 식중 전차, 제로센 함상 전투기 다섯 두 형, 인간 어뢰 "회천", C56 형 증기 기관차 31 호기 등.

 

그밖에, 진주만 공격 성공의 전문" 토라, 토라, 토라"와 전승(戰勝) 기원의 피로 물든 일장기, 종전시의 육군 대신 아나미 고레치카(阿南惟幾)의 피로 물든 유서 등이 진열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우익 역사 교과서도 이곳에 전시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전리품들 앞에서 무슨 개선장군을 기념하는 것처럼 V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는 등 과거 전쟁 역사에 대한 아픔 같은 것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그런 분위기와 맞물려 유슈칸 전시관을 모두 돌아 본 후의 느낌은, 일본이 언젠가는 또다시 전쟁을 일으킬 지도 모른다는 위화감이 기어코 온몸의 전율을 느끼게 했다. 자국민은 물론 아시아 전역의 수 백만 명의 인명을 앗아간 참혹한 전쟁에 대해서 이토록 미화시킨 나라가 일본 외에 또 어디에 있을까? 문득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유슈칸에서 나와 예전 장교들에게 칼을 만들어 주었다는 코운테이(행운정,行雲亭)에 갔다. 지금은 때때로 다도교실로 이용되고 있지만, 예전에는 이곳에서 장교들에게 지급되는 칼이 나 병기를 직접 제작해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그 과정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코스인 이번 취재의 최종 목적지인 북문 화장실. 배전을 지나 북문의 화장 실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 그나마 느린 걸음으로 걸린 시간이었다.

 

2013년 가을 밤스물 세 살의 강모씨가 이곳을 전속력으로 뛰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짓누르듯 무겁게 내려 앉았다그리고 전 모씨는 정말 이곳에 폭발물을 설치했을까?

 

만약 설치했다면 어떤 마음과 의도목적으로 그랬을까하지만 아직 그는 용의자 신분으로  100% 범인은 아니다.

 

▲   굳게 닫힌 북문  ©JPNews

 

▲     ©JPNews
▲   방수포가 씌워진 사건 현장  ©JPNews

 

 

 

북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현장은 폴리스 라인이 쳐 있어 들어 갈 수 없었고, 폭발음이 들렸던 화장실도 푸른 방수포가 꼼꼼하게 씌워져 있었다. 그 앞에서도 역시 한 일본 중년 남성이 야스쿠니 신사의 가장 후미진 이곳까지 찾아와 핸드폰으로 방수포가 씌워진 화장실 전경을 담고 있었다.

 

그저 평범하기만한 화장실. 이젠 한일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중년남성도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기자는 복잡한 심경으로 현장을 떠나 2013년 톨루엔이 투척되었던 배전 앞을 지나, 2011년 불길에 휩싸였던 미카도의 기둥을 스쳐 야스쿠니 신사 경내를 빠져 나왔다

 

언제까지 우리는 혈기 뜨거운 젊은이들의 이 외로운 늑대’의 싸움을 지켜 봐야만 할까? 양국의 외교력이 더욱 절실해지는 그런 사건 현장, 야스쿠니 신사의 현재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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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12/28 [21:03]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잘 읽어보았습니다. 학생 15/12/30 [12:57]
더이상 서로 등돌리고 있을 수 만은 없는 관계인 이상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어떤 식으로 마음가짐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 봅니다. 수정 삭제
무식 이 용감 하다. 열사 좋아하는 좌익 15/12/31 [11:44]
로마에 가면 로마법 을 따르자" 수정 삭제
홍위병 들은 오늘도 혁명을 꿈꾼다. 반공 방첩 15/12/31 [11:51]
그사람, 반일,. 중국 북한이 보면, 좋아할짓 했는데, 북한 에 보내주세요, 북한인민공화국 에서, 영웅대접 받도록. 해주세요, 수정 삭제
테러리스트도 쉴드치는 조선 ㅋㅋㅋ 16/01/01 [21:26]
이해할수가없다 야스쿠니 신사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괴의한 모습이 일본 우익의 모습과 같다 수정 삭제
엉성하기는~ 기막혀 16/01/04 [04:30]
두놈다 아예 날잡아가시요.하며 시작했다. 진짜 의심스러운 건 현장에서 발견된(일부러 내가 누구요~한) 휴대금지품인 건전지(한국산)을 어떻게 기내에 반입했는지도 궁금하다.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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