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일본 영화 박스오피스 1위는 <20세기 소년 최종장:우리들의 깃발>이다. 그런데 <20세기 소년 최종장:우리들의 깃발>에게는 첫 1위가 아니다.
지난 8월 28일 개봉한 <20세기 소년 최종장:우리들의 깃발>은 이미 3주 동안 흥행 1위를 기록하다가 지지난 주에 2위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다시 1주만에 1위에 복귀한 것이다.
3부작의 마지막인 <20세기 소년 최종장:우리들의 깃발>은 개봉 37일에 310만의 관객이 관람했고, 흥행수익은 38억엔을 기록했다. 전작을 뛰어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일본 만화계의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대작 <20세기 소년>이 3부작 영화로 제작되고, 드라마 <케이조쿠>와 <트릭>, 영화 <붕대클럽> <내일의 기억> 등을 만든 츠츠미 유키히코가 연출한다고 했을 때 누구나 성공은 당연할 것으로 예상했다. <데쓰 노트> 등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성공하는 것은 일본에서 비일비재한 일이다. 다만 <20세기 소년>의 성공에는 몇 가지 인상적인 점이 있다.
어린 시절의 공상이 그대로 현실이 되어 돌아오는 악몽을 그린 <20세기 소년>은 방대하면서도 치밀한 설정으로 찬탄을 자아냈던 만화다. 한때 록밴드를 했던 켄지는 모든 '꿈'을 포기하고, 사라져버린 누나의 아이 칸나를 키우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사건이 시작된다. 어린 시절의 친구이며 고등학교 교사인 동키가 자살을 한 것이다. 동키는 죽기 전에 켄지에게 편지를 보냈다. 거기에는 이상한 마크가 그려져 있다. 눈 위에 하늘을 가리키는 손이 들어 있고, 다시 그 안에 눈이 그려져 있는 마크. 그 마크는 계속해서 켄지의 앞에 나타난다. 일가족 전체가 사라진 집의 벽에 그려져 있고, '친구'라는 이상한 종교집단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
기억을 되살려가던 켄지는 마침내, 그 마크가 켄지와 친구들이 어린 시절 '우리는 친구'라는 표시로 만든 것임을 알아낸다. 그 마크를 상징으로 사용하던 집단은 마침내 세균병기를 이용하여 샌프란시스코, 런던, 오사카를 공격하고 세계의 종말을 준비한다. 그런데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20세기 소년>은 사건을 순서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1973년, 1997년 그리고 21세기까지 자유롭게 오가며 거대한 미스터리를 만들어낸다. 만화를 보다 보면 끊임없이 과거를 떠올리며, 사건을 꿰맞춰야 한다.
<마스터 키튼>과 <몬스터>이 그랬듯이,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는 현실적이다. 전 세계를 무대로 한 <마스터 키튼>의 그림은 사진을 보는 것 이상으로 사실적이었고, <몬스터> 역시 희대의 살인마를 등장시키면서도 냉전시대의 씁쓸한 과거와 추악한 사건을 이야기 속에 충분히 용해시켜 놓았다. 이야기의 흥미진진함은 물론이고, 상황과 사건의 디테일에서 우라사와 나오키는 지독하게 현실적이었다. <20세기 소년> 역시 그렇다. '친구'에 대한 묘사를 보다 보면 옴 진리교 생각이 난다.
'지구의 종말'을 목표로 세균무기를 만들어 테러를 일으켰던 사이비 종교집단. 만화적인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던 옴진리교를 모델로 우리사와 나오키는 리얼한 악몽을 그려낸다. 만약 그들이 진짜로 '힘'을 가지고 있었고, 치밀하게 준비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세기말을 앞둔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고, 그들이 의지할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친구'가 그들 모두를 구원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이 말하는 모든 상황은 아이들이 공상하는 '거짓부렁'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속아 넘어가고, 세상이 그렇게 흘러간다. 다르게 말한다면, 그 '공상'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게 허황된 것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우리들을 옥죄는 이 세상. <20세기 소년>이 그리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우스운 현실인 것이다.
<20세기 소년>이 일본의 관객을 사로잡은 것은 그 현실적인 악몽이었다. 비록 원작의 복잡한 설정과 구조에 짓눌려 각색된 영화는 좀 지지부진했지만, 그래도 걸작 만화를 영상으로 보는 즐거움은 느낀 것이다. 3부작으로 만들어진 <20세기 소년>은 우라사와 나오키가 직접 시나리오를 썼고, 영화 제작 전반에 관여했다.
즉 원작자의 입김 정도가 아니라 원작자의 감독 아래에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감독의 자유로운 해석이나 재구성은 거의 허용되지 않은 것이다. 츠츠미 유키히코는 나름 재능 있는 감독이지만, 제작사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개성을 버리고 성실한 연출에만 전념한다. <20세기 소년>은 우라사와 나오키의 집요한 각색과 츠츠미 유키히코의 정석 연출로 만들어진 범작이었다. 크게 튀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처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단지 그 정도라고 해도, 일본의 단카이 세대에게 <20세기 소년>이라는 작품은 큰 의미가 있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20세기 소년>이 단카이 세대의 꿈을 되살리기 위한 작품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단카이 세대는 전후에 태어나, 60년대 말과 70년대 초에 학생운동을 경험하고, 70년대 회사에 들어가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을 이끌어낸 세대다. 그리고 회사형 인간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자신과 가정이 아니라 회사와 집단을 위해 스스로를 마모시킨 세대이기도 하다. 또한 단카이 세대는 문화적으로 영화와 재즈서구 문화에 경도되었고, 만화에도 열광했던 세대다. 가장 문화적으로 풍성한 세대라고도 할 수 있다.
2002년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로 일본영화가 부활하기 전, 일본영화의 주관객도 바로 단카이 세대였다. <20세기 소년>이 대성공을 거둔 이유는, 젊은 관객과 함께 단카이 세대까지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3번가의 석양>이 그랬듯이, <20세기 소년>은 단카이 세대의 추억을 되살리는 영화다. 게다가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가지고 싸우다가 기존 체제에 투항을 하며 자신을 잃어버린 단카이 세대에게, 지난날의 꿈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권하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영화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