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1q84>를 드디어 읽었다. 한마디로 감상을 말하자면 '그럭저럭'이다. 좋았지만, 걸작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만이 쓸 수 있는 소설.
아오아메는 살인자다. 여성에게 극심한 폭력을 휘두르고, 앞으로도 개선의 여지가 없는 남자들만을 죽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하늘의 달이 두 개인 것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내가 있는 곳은 어디지? 덴고는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며 살아가는 작가 지망생이다. 어느 날 덴고는 여고생이 쓴 소설 <공기 번데기>를 개작하라는 의뢰를 받는다.
아이디어와 묘사가 뛰어나지만, 전혀 독자를 생각하지 않고 쓴 것 같은 소설을 문학상 수상이 가능하도록 고쳐달라는 것. 덴고가 개작을 승낙하고, <공기 번데기>가 세상에 나오면서 무엇인가가 방향을 틀어버렸다. 그들은 대체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일까?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하루키의 문장은 여전히 경쾌하고, 소설 속에 창조된 세계는 기이하면서도 여운을 남긴다. 1권을 보면서 역시 하루키는 탁월하다, 란 생각을 했다. 2권을 읽으면서는 좀 지루해졌다. 장광성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고, 게다가 익숙한 것들의 반복이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태엽감는 새>를 잘게 잘라내서, 그것을 원자재로 정교하게 짜 맞춘 태피스트리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결말마저 똑같이 가버리다니. 실망까지는 아니어도 좀 허탈했다. <1q84>는 1권 분량에서 100페이지만 더 가고 끝냈으면 딱 좋았을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라카미 하루키는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1권은 첫 장을 읽으면 그 다음이야기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을 정도다. 신세계를 마구 내달리며 아오마메와 덴고의 '리틀 피플'을 둘러싼 모험을 읽고 싶어진다. 그들의 상처, 그들의 작은 즐거움 같은 것들을 공유하며 그 세계의 진실이 알고 싶어진다. 혹은 그들의 진심을. 그런 점에서 하루키는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평행 우주인 것 같으면서도, 덴고와 아오마메의 세계는 사실 유일한 하나이다. 다른 우주가 또 있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들은, 자신들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세계에서 어쨌든 살아가야만 한다. 되돌리거나,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는 없다. 그런 부질없는 바램이나 후회야말로 그저 환상에 불과한 것이다. 하루키는 그들이 세계를 인식하고, 거기에 맞서 살아가기를 제안한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1q84>가 싫지 않다. 나는 <1q84>를 재미있게 읽었고, 충분히 만족했다. 아마도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란 이유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나는 하루키의 글을 읽으면서 실망하지 않는다.
다만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다 읽고 책을 덮으면서, 이제 막바지네, 라고 생각한 정도다. 정말 새로운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하루키의 소설은 끊임없이 42.195km만을 달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도쿄 기담집>이나 에세이 같은 것들은 볼 때마다 재미있었지만, 이후의 소설들은 사실 동어반복이었다. 조금씩은 나아갔지만,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나는 희열은 없었다.
엘튼 존의 노래처럼, 지금의 노래도 여전히 좋지만 그래도 과거가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다치 미츠루의 신작 <크로스 게임>을 봐도 여전히 가슴 찌릿하고 무언가 그리워지지만, 그 이상은 없는 것처럼.
무라카미 하루키를 위대한 작가라고 추켜세울 생각은 전혀 없다. 그의 글이 너무나 좋고, 가슴에 와 닿았던 것뿐이다. 그를 폄하하고 무시하는 이들을 보며 비웃었지만, 그렇다고 하루키가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가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질풍노도의 시대를 거쳐 온 이들에게 안겨주는 치열한 휴식의 장이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하루키를 우리 시대의 탁월한 작가로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유일한 바램은, 그래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다음번에는 좀 더 다른 이야기를 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물론, 다시 동일한 트랙을 뛰어도 그 역주를 지켜볼 것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