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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스포츠 한류의 원조, 배구감독 김세진
2013년 창단한 러시앤캐시 배구단의 김세진 감독 직격 인터뷰
 
김연수 기자
[제이피뉴스 = 김연수 기자] 지난 2013년, 신생 배구단이 탄생했다. 배구단의 이름은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러시앤캐시 배구단'. 그런데 그 배구단의 감독을 맡은 이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널리 알려진, 열성 일본팬들을 거느린 김세진 전 국가대표선수다.
 
어떻게 이제 걸음마를 막 뗀 신생팀 '러시앤캐시 배구단'을 맡게 되었을까. 열성 일본팬의 강력 요청으로 김감독을 만나 일본과 얽힌 그의 배구인생을 들어보았다.
 
▲ 러시앤캐시 배구단 김세진 감독 ©JPNews

 

"준비를 하고 조직한 구단이 아니어서 내가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지금 오너이신 구단주 회장님께서 워낙 스포츠를 좋아하시고 이해를 잘해주셔서 이 분이라면 내가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주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지도자 경험도 없지만 한번 해보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맡게 됐습니다."
 
이제 선수가 아닌 감독으로서의 덕목에 대해 물어 보았다.
 
"감독으로서 덕목이라면 선수들이나 팀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진실되게 대하는 것. 진심을 줘야 선수들도 믿고 따라오니까요. 보통 감독들이 성적이 좋지 않거나 그러면 옷을 벗어(사직)요. 바꾸어 말하면 소위 말하는 잘리는 거죠. 그 로테이션이 너무 빠르다 보니까 뭐 조그만 것이라도 책 잡힐 일을 안할려고 감독들이 눈치보고 그래요. 또 경우에 따라서는 현장보다 프론트의 힘이 강하기도 하고... 그런 문화가 있어요. 그런데 남자팀 중에서 그런 것이 전혀 없는 곳이 바로 삼성화재와 러시앤캐시예요. 오죽하면 팀의 프런트 직원까지 제가 뽑았을까요. 저희 팀 전체의 셋팅은 제가 다 했어요. 지금 코칭 스탭, 선수, 프런트 사무국장까지 다 제가 뽑았어요."
 
그에게 감독제의가 왔을 때, 그는 자신이 선수시절에 느낀 점을 바로 팀에 접목시켰다고 한다. 바로 선수들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 하지만 이는 말이 쉽지 오너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신의 스타일을 주입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김감독의 말에 의하면 러시앤캐시 배구단은 기존의 구단과는 전혀 달랐다고 한다.
 
"우리 오너가 마지막 미팅 때, '얼마만큼 믿음을 줄지 모르지만 김감독이 하고 싶은대로 한번 팀을 짜 보세요. 모두 지원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셔서 그래서 모든 셋팅을 제가 다 한 겁니다. 그래서 다른 팀과는 분위기가 좀 다르죠. 물론 그만큼 책임감이 더 따르겠지만 팀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팀에만 포커스를 맞출 수 있고 외부적인 영향을 전혀 안 받으니까 감독의 입장에서는 아주 큰 힘이 되죠. 그런 문화가 아니었으면 섯불리 감독하겠다고, 김세진이니까 감독하겠다 그럴거였으면 처음부터 감독 시작도 안했을 겁니다."
 
다행히 구단주는 김감독의 구단 구성에 대해 대체로 만족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아마도 그러기까지에는 서로의 신뢰관계가 밑바탕이 된 것 같다. 그럼 김감독은 언제부터 배구를 시작했을까?

"충북 옥천 초등학교 4학년 때 였어요. 육상 높이 뛰기 대표선수로 뽑혔다가 배구 감독님이 점프나 탄력이 좋다고 ‘너 배구 한번 해봐라’ 해서 좋게 얘기하면 스카웃 되어 간  거고요. 그래서 배구를 처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버님이 공무원이셨는데 옥천으로 전근 가셔서 거기서 학교를 다녔어요. 태어난 건 서울이지만 옥천이 거의 고향인 셈이죠. 초,중,고등학교를 다 거기서 다녔으니까."
 
초등학교 시절, 배구 감독님의 권유로 육상 트랙이 아닌, 코트에서 배구공을 잡았고 이때부터 김세진의 배구 인생이 시작됐다.
 
그는 충북 옥천중학교~옥천공고~한양대를 거쳐 1995년 삼성화재 창단멤버로 입단한다. 한 박자 빠른 스파이크와 높은 타점으로 세계적인 라이트 공격수로 이름을 떨친 그는, 레프트 신진식, 센터 김상우, 세터 최태웅과 함께 삼성화재의 슈퍼리그 9연패 위업을 달성하기도 했다.
 
숱한 부상과 싸우면서도 번번이 오뚝이처럼 재기해 삼성화재의 전성시대를 이끈 그는, 지난 1997년과 2000년, 2001년 그리고 프로 원년이던 2004년까지 무려 4차례 챔피언 결정전 최우수선수(MVP)로 뽑히며 배구의 전설을 써내려갔다.
 
그의 진가는 국제대회에서도 빛을 발했다. 지난 92년 3월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두고 배구계는 떠들썩했다. 대선배 장윤창을 따돌리고 국가대표로 발탁된 뒤 2002 부산아시안게임 우승까지 무려 10년동안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기 때문이다.
 
◆ 일본에서도 열성팬을 거느린 김세진과 나카가이치 유이치

김세진은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부터 국가대표 주전 라이트로 뛰었다. 실력을 인정 받은 만큼 더 열심히 연습했고 그 결과는 경기성적으로 나타났다. 리시브와 토스, 스파이크의 완성도가 높았고 신진식, 김상우, 최태웅과 함께 톱니바퀴 같은 조직력을 갖춰 코트장을 펄펄 뛰었다. 모든 선수들이 공격과 수비를 함께 하는 전원 토털 배구를 '예술처럼' 펼쳤다.
 
그 무렵 일본 배구계에서는 김세진 못지않은 슈퍼스타급 선수가 있었다. 바로, 나카가이치, 오카다, 같은 기라성 같은 슈퍼급 선수들이 일본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남자배구의 인기 때문에 일본 여자배구는 항상 뒷전에 머물러 있었다.
 
특히 나카가이치 선수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6위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던 전설적인 인물. 언제나 체육관은 여성팬들로 넘쳐났다.
 
숙명의 라이벌인 한국과 일본의 경기가 펼쳐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김세진 선수의 인기는 자국 선수인 나카가이치 선수와 비교해도 조금도 뒤처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가 나타나는 경기장에는 일본팬들의 환호성이 넘쳐흘렀다. 또한 경기가 끝나면 셔틀버스 밖에서 김세진과 나카가이치에게 사인을 받으려는 일본여성 팬들 때문에 두사람은 모두 상당히 곤혹스러워했다. 그래도 행복한 '곤혹감'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일본 여성팬들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팬레터는 물론이고, 김선수가 경기하는 경기를 직접 보기 위해서 일부러 비행기를 타고 한국까지 원정오는 열성팬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가 등장하는 코트 관중석 한켠에는 일본어로 쓰여진 '김세진 간바레(열심히)!'라는 플래카드가 늘 걸려 있었다. 톱스타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였다.
 
이에 대해 배구 연맹의 한 관계자는, “일본 여성들의 한류 원조는 배용준, 이병헌이 아닌 강만수 선수에요. 80년대 당시 강만수 선수의 인기는 욘사마라고 불리우는 배용준에 버금갔어요. 일본의 유명 연예인이 강만수 선수 때문에 한국에 자주 오고 또 한국어를 배울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받은 선수가 지금은 고인이 된 강두태 후배였고, 그 다음이 바로 (김) 세진이가 그 인기를 물려받았어요. 한류스포츠가 만개를 한 셈이지요."
 
지금도 30대 이상의 일본여성이나 배구팬들에게 위의 세사람 이름을 대면, 얼굴 표정이 달라지며 금세 환호성을 지른다. 그만큼 이들의 활약이 일본팬들에게 선명하게 각인돼 있다.

◆ 숙명의 라이벌 일본

김세진 감독은 한일전을  '숙명의 대결'이라고 칭한다. 그래서인 한일전때마다 늘 비장한 각오로 코트에 섰다고 한다.
 
"우리의 민족성이랄까요. 일본에게는 절대로 지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인식이 있어서 다른 경기보다 더 치밀하게 준비하고 열심히 뛰었던 기억이 납니다. 코트에서 쓰러지더라도 죽을 각오를 하고 뛰었지요. 하지만 그것은 코트안에서만의 얘기에요. 코트 밖으로 나가면 라이벌인 나카가이치 선수나 다른 일본 선수들과도 비교적 가깝게 지냈어요."
 
경기가 끝나면 함께 식사도 하면서 친목도모를 했다고 한다. 이같은 사실은 국내팬들에게도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다. 그동안 우리는 경기 때처럼 코트 밖에서도 서로 으르렁거리며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저만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일본에서 경기를 하면 가끔 술도 한잔씩 하고 친하게 지냈습니다. 이런 관계는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이번에도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갔더니 아오야마 씨가 찾아와서 함께 자리를 했습니다. 지금은 그분도 은퇴를 해서 대학팀의 감독으로 계시는데, 우리가 전지훈련을 왔다고 하니까 일부러 찾아오셔서 같이 서포트도 해주시고 저녁에는 술도 한잔 했지요. 경기장에서는 비록 라이벌 관계였지만 코트를 떠나면 이렇게 인간관계로 돌아가 가깝게 지냅니다.
 
NEC 감독을 하셨던 다카우치 선수나 몇몇은 아직도 연락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기억이 많아요. 제가 선수생활을 할 때는 나카가이치 선수가 나이가 많아 은퇴 직전의 상태였는데, 그래서인지 제가 뛸 때의 승률은 저희가 조금 더 높았던 것 같아요. (웃음) 그래서인지 한일전에서는 60%에서 70%정도 저희가 승률이 높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느팀을 만나도 그렇겠지만 일본팀을 만나면 지지말아야 겠다는 생각들이 있어서..(웃음)

▲ 러시앤캐시 배구단 김세진 감독 ©JPNews

 

그러면서도 일본의 배구계에 대한 안타까움도 전했다.
 
"지금의 일본 배구는 그 뜨겁던 과거와는 달리 인기가 많이 떨어졌어요. 나카가이치, 오카다, 다카우치, 아오야마 같은 스타선수들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있고요. 국가 경쟁력이랄까, 국제대회 같은데 나가서 발군의 성적을 이뤄낸다든가 하는 스타성이 강한 선수가 있어야 매스컴에서도 포커스를 맞출수가 있는데, 배구에 대한 관심이 엷어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일본 여자배구의 경우, 국제대회에 나가면 늘 4강권에는 들어가고, 그에 걸맞는 스타선수들까지 있어요. 또 해외 무대에서 뛰는 선수도 있고 하니까 관심도가 그쪽으로 몰릴 수 밖에 없는거죠. 그런 면에서 일본 남자배구도 이제 서둘러 스타를 발굴해야 합니다. 특히 일본 스포츠는 이미지 메이킹을 중시하는데 지금 일본 남자 배구에는 그런 인물이 없거든요. 일본 중계방송을 들어보면 일본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잘하는 선수를 뜻하는 ‘슈퍼 에이스’인데 지금 그 슈퍼에이스가 안 나와요. 그러다보니 국제대회에 나가서 성적도 안좋고 하니까 관심이 덜해지는 거지요."
 
"반면 한국 배구는 인기가 높은 농구와 비교했을 때, 현재 팀수로 비교해서 관중동원력이나 TV 시청률을 보면 2년전부터 우리 배구가 농구를 앞질렀어요."

김감독의 배구사랑과 자부심은 대단했다. 또한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감독이 된 현재의 위치에서 숙적이었던 일본 배구에 대해서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일본 배구 경기를 녹화한 중계방송을 보며 일본팀의 전력을 분석하고, 선수 한명한명에 대한  이력을 체크하는 등, 늘 한일전을 준비하는 감독의 모습이었다.
 
"감독이기 때문에 국내선수는 물론 해외 경기의 전력이나 일본 선수들에 대한 경기내용을 관심있게 지켜 봅니다. 물론 일본 팬분들에 대한 기억은 너무 좋구요. 일본과 얽힌 추억이 많습니다. 일본에서 공식적으로 경기를 한 게 딱 10년 전입니다. 2004년 올림픽 예선전을 일본에서 치뤘거든요. 그때 제가 국가대표 선수였고 그 후에 은퇴를 했으니 딱 10년이 되었네요."

그는 최근 일본에 갔을 때, 일본팬들이 아직까지도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내심 많이 놀랐다고 한다. 열렬한 박수에 은근히 감동을 받았다는 것.
 
"전에 유니세프에서 쓰촨성 돕기 기금 마련 경기를 할 때, 제가 해설위원으로 중계방송팀과 함께 일본에 갔었어요. 그때 일본 연맹과  체육회 쪽에서 연락이 와, 일본팬들에게 인사를 한번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일본 경기가 있기 바로 직전에 약 2만명의 관중 앞에서 인사를 했지요. 관중석에서 제 이름을 외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정말 감사했지요. 덕분에 모금 활동도 잘 했습니다." 

"시간이 상당히 흘렀음에도 잊지 않고 응원해준다는 것, 바로 이런 팬심이 저에게 큰 힘이 되고 굉장한 삶의 활력소가 되는게 아닌가 싶어요. 언젠가 국가대표 감독이 되어 다시 일본에 가서 일본팬들에게 인사드릴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교류들이 정말 한일 양국 사이에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 인생에서 과거를 묻지 않듯이, 범실한 선수는 꾸짖지 않는다

평소 김감독은 화를 잘 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경기에서 선수가 범실을 했을 때 강하게 질책하는 모습을 김감독에서는 발견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가끔은 그런 그가 다고 밋밋해 보일 수도 있다. 특별히 이유가 있는지를 물어 봤다.
 
"저도 가끔은 화를 냅니다. 그런 지적은 저희 아버지님도 하세요. (웃음) 그런데 저는 그런 것을 지론으로 삼고 있어요. 훈련할 때 이미 화를 다 냈는데 경기 때 또 화를 낸다는게 저는 이해가 안돼요. 게다가 범실은 이미 한건데...경기장에 있는 팬들도 그 선수가 실수한 것을 다 알아요. 제가 감독이라고 권위 내세우며 실수한 선수를 불러다가 나무란다? 저는 그런거 안해요. 그 짧은 30초 안에 작전 지시하기도 바쁜데 선수들이 실수한 거 지적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또 그걸 뭐하러 지적합니까. 다음 준비 시켜야죠."
 
"물론 아쉽긴 하죠. 대신 선수 본인이 스스로 그걸 못느끼고 계속해서 똑같은 행동을 하면, 그 선수가 아무리 잘하더라도 다음 경기에 절대로 투입시키지 않습니다."
 
"얼마전, 용병 바로티가 세터에게 투덜거리길래 바로 빼버린 적이 있어요. 제가 현대하고 게임할 때 첫세트 우리가 이겨서 조금만 뒤집으면 우리가 이길 수 있었어요. 그런데 계속 세터가 힘이 빠지니까 바로티가 세터에게 투덜거리더라구요. 그래서 난 오늘 '경기 져도 돼. 너 나와'하고 바로 빼버렸어요. 그 정도로 경기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화를 내지 않고도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여유와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게 우리 구단의 장점이에요." 
 
◆ 모든 형성된 것은 무너지니, 끊임없이 정진하라

얼마전 김감독은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퇴원 후 코트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완쾌를 빌어준 팬심 때문에 아프면서도 행복했다면서, 그러나 병상에서도 내내 배구만 생각했다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우리 선수들을 보면 이뻐 죽겠어요. 열심히 하겠다고 눈빛 반짝이면서 자기들끼리 파이팅 하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제가 선수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생겨요. 그 맛에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김감독은 V-리그 등 전 경기를 꼼꼼히 챙겨 보고 각 팀의 장단점도 분석하며 팀의 전략을 짠다고 한다.
 
"제가 삼성화재 출신입니다. 선수시절 스승님인 신치용 감독님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러시앤캐시 감독으로서 신치용 감독님의 삼성화재를 한번 이겨보고 싶습니다. 모든 형성된 것은 무너지니 끊임없이 정진하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삼성화재라는 달도 이젠 기울 때가 되지 않았나 싶네요. (웃음)"

김세진 감독은 호탕한 웃음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그는 일본에서 자신을 찾아온 일본 여성 팬과 기념 사진를 찍으며 일본 배구 팬들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제, 선수로서 다시는 코트에서 그의 강 스파이크를 볼 수는 없지만, 언제든지 공이 올라오면 선수가 아닌 감독으로서의 새로운 강 스파이크를 날리며, 자신의 전설을 다시 써 내려 갈 것이다. 선수 시절 코트에서 포효했던 것처럼.

 
▲ 러시앤캐시 배구단 김세진 감독 ©J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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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1/28 [12:12]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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