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우리 딸 비가 열이 났다 또 남편과 작은 전쟁을 해야 했다.
“이번엔 당신도 약 좀 먹여요?”
“나는 약 먹이는건 잘 못한다니까?”
“그런게 어딨어? 아빠가 그런것도 못하면 무슨 아빠 자격이 있어.”
“못하는건 못하는거지. 거기에 왜 아빠 자격이 나와.”
우리 부부는 이렇게 아이에게 약을 먹일 때마다 옥신각신 한다.
남편은 그래도 약간의 잔존 시력이 남아 있고 나는 전혀 안보이는 상태다. 그러니 약을 먹이기도 나보다는 남편이 조금이라도 유리하면 유리했지 불리한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정말 한사코 비에게 약 먹이는 일은 안한다. 그렇다고 남편이 집안 일을 안하는 것도 아니다. 아니 거의 전적으로 남편이 집안일을 도맡다시피한다. 청소며 빨래, 요리도 모두 잘하는데 유독 비에게 약 먹이는 것만 싫어한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전에는 이유식도 나 혼자만 먹여야 했다. 숟가락을 딸 아이의 작은 입에 넣는 것이 무섭다며 한사코 먹이려 하지 않았다. 신비가 더욱 어렸을 때는 몸이 부서질까봐 목욕도 혼자 시키지 못했다. “역시 아빠들은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이제 조금 초보티를 벗어낫다고 어깨를 으쓱해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얼마전 막 아이가 태어난 분을 만나고와선 자기가 그 사람보다 훨씬 아빠 노릇 잘하고 있는 것같다며 자랑을 한참했다. 초보 아빠인 그 분이 아이의 목욕이나 기저귀등에 대한 정보도 제대로 모르고 있다며 말이다. 이렇게 초보 아빠들은 아니 솔직히 나 같은 엄마들도 모두 처음에는 아이를 키우면서 많은 시행착오도 겪고 이런저런 에피소드도 많다. 그래서 주위 어른들께 걱정도 듣고 “그래서 어떻게 아이 키울래?”하는 핀잔도 듣는다.
그런데 유독 장애인들은 그런 걱정과 핀잔을 더욱 많이 들어야만 하는 것같다.
임신을 하고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괜찮겠느냐? 시각장애가 있는데 육아가 가능하겠느냐?”였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인식은 그리 곱지 않다.
“장애인이 아이를 키울 수 있겠느냐?”
“아이도 장애인이 되면 어찌할 것이냐?”
“당신들만 생각하지 말고 아이를 생각해라. 아이가 불쌍하지 않느냐?”
“육아가 그리 간단한게 아니다. 아이가 위험할 때는 어떻게 할것이냐?”
정말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내 주위에 장애를 갖고 있는 많은 다른 분들도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실제 일본 시각장애 부모들의 모임인 ‘가루가모회’에서 펴낸 ‘안보이거나 보기 힘든 우리들의 아이 키우기’(2000년)란 책에서도 그런 사회적 인식에 대한 반응을 많은 지면에 걸쳐 소개 하고있다.
물론 장애인이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하는 일은 비장애인과 비교해 쉽지 만은 않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아니 불가능하고 가능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아빠가 되면 모든 일을 처리해야만 한다. 설사 그것이 불가능하더라도 가능하게 해야 한다.
우리 비가 지금보다 어려 이유식을 막 먹기 시작할 때였다. 주위의 사람들이 “어떻게 아이에게 먹이느냐?”는 질문을 많이 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먹이느냐?”가 아니고 “어떻게든 먹여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적인 문제의 어려움은 어떻게든 해결이 될 수 있다. 그것이 개인의 노력이던 주위의 도움이던 사회적 지원이던 해결책은 반드시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초보 엄마, 아빠들이 좌충우돌 하면서 아이를 키우며 조금씩 조금씩 아이키우기에 전문가가 되는 것처럼 장애인도 역시 그렇게 조금씩 배우고 지원을 받으며 아이를 키울 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도 엄마가 될 권리가 있다. 굳이 헌법에 명시된 ‘행복 추구권’을 논하지 않더라도 인간이 가지는 인간으로서의 소중한 권리를 모두 똑같이 가져야 한다. 엄마가 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빠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 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도 육아에 관한 문제는 가지고 있다. 다만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최근 일하는 여성, 아니 전체 여성, 아니 이제 육아 문제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사회 구성원의 문제로 대두되었고 그에 따른 사회적 노력과 지원체계도 많이 발전하고 있다.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장애인의 임신과 출산 역시 마찬가지다. 장애인으로서 가지는 한계 때문에 “장애인이 아이 낳고 키우는 것은 어려우니 아예 낳지 마라.”가 아닌 “내가 우리가 사회가 지원책을 마련하자.”라는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보건복지가족부의 2008 년 장애인 실태 조사에서 여성 시각장애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서비스를 물은 결과, 임신이나 출산관련 교육 및 정보제공에 18.2%, 출산비용 지원 37.2%, 여성장애인 임신출산 전문병원 4.1%, 산후조리서비스 9.0% 등으로 나타나 임신·출산 관련한 사항이 68.5%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 만큼 여성장애인에게는 임신과 출산에 관한 사항이 중요한 부분이며 이런 조사의 결과는 반대로 아직 우리 사회에서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제부터라도 보통의 육아문제에 관한 고민과 노력만큼 장애인의 육아 문제에 대한 노력과 고민이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