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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한 프로골퍼 구옥희, 그녀와의 10년 전 인터뷰
2003년 10월 26일, 구옥희 씨와 인터뷰하다
 
유재순
※ 한국 프로골프계의 선구자였던 구옥희 씨가 별세했습니다. 그녀의 별세 소식에 일본인들도 애도의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래의 글은 10년 전, 본지 유재순 대표가 구옥희 씨를 직접 만나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오래 전 인터뷰 내용이지만, 구옥희 씨가 생전에 어떤 인물이었는지 들여다 볼 수 있는 내용이라 다시 공개합니다.
 
참고로, 이 글은 2003년 10월 26일, 스포츠조선 '유재순의 일본리포트' 코너에 실린 바 있습니다.

 
◆ 한국 여성 골프사에 '주춧돌'

'여성프로골퍼 1호' '여성골퍼 해외진출 1호' 구옥희씨(48), 그녀에게 붙는 수식어는 수 없이 많다.

지난 78년 쇼트커트 머리에 화장끼 없는 해맑은 얼굴로 혜성처럼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당시 일반인들은 골프가 하나의 스포츠라는 인식보다는 특수 계층만이 즐기는 전유물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20대 초반의 한 여성이 불모지대나 다름 없는 한국여성 골프계의 프로선수가 되겠다고 그린필드에 나서자, 솔직히 많은 사람들이 반신반의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하나의 직업으로서 제대로 단련된 여성 프로골퍼가 전무했었기 때문. 그런 미개척지 여성골프계에 예쁘장하게 생긴 그녀가 나타나자, 그린필드의 신선함 만큼이나 구옥희씨의 등장은 골프를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까지 풋풋함이 전해져 왔다. 게다가 데뷔하자 마자 발군의 실력으로 두각을 나타내자, 한국의 매스컴은 그녀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25년이 흐른 지금, 한국여성 골프사(史)에 한 획을 긋고 주춧돌이 됐던 그녀는 현재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난 19일, 마침 일요일이어서 집에서 한가롭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어차피 저녁 6시에는 구옥희씨와 인터뷰 약속이 있었으므로 그 전까지 난 유유자적 시간을 보낼 요량이었다. 그런데 아는 분으로부터 오후 4시 30분쯤 전화가 걸려왔다. 텔레비전에서 골프 중계를 하는데 구옥희씨가 현재 2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즉시 채널을 돌렸다. 역시 그의 말대로 텔레비전에서 여성프로 골프대회를 중계하고 있었다.
 
얼마 후 1, 2위를 다투고 있는 프로골퍼들의 얼굴이 플레이 장면과 함께 클로즈업되었다.
 
"어? 누구야?"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온 말.
 
지금까지 봐왔던 구옥희씨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깜짝 놀라 자세하게 화면을 들여다보니 구옥희씨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런데도 나에게는 굉장히 낯설어 보였다. 왜냐하면 그날 구씨의 헤어스타일이 기존의 그녀에 대한 이미지를 송두리채 궤도수정하게 하는 파격적인 변신을 했기 때문이었다.
 
노랗게 물들인 머리에, 머리카락 한올한올이 쭈뼛쭈뼛 위로 치솟는 펑크 스타일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일본여성골퍼와 한창 1위 다툼을 하고 있었다.
 
"어, 그러면 오늘 인터뷰는 어떻게 되지? 취소가 되는 거 아냐?"
 
내심 그런 걱정을 하면서 오후 5시까지 중계된 방송을 보았다. 그날 구씨는 아쉽게도 우승을 하지 못하고 2위에 그쳤다.
 
그런데 중계가 끝나고 조금있다 전화가 걸려 왔다. 인터뷰 시간을 오후 7시로 한시간 미루자는 것이었다. 오후 3시에 경기가 끝났는데 차가 밀려 한 시간 정도 늦어질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좀전의 TV중계는 두, 세시간 전에 미리 녹화한 것을 방송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취소가 아닌 연기여서 오후 7시 5분전에 집을 나섰다. 왜냐하면 인터뷰 인연이 있으려고 그랬는지 인터뷰 약속을 하고 집 주소를 물으니, 웬걸 우리집 바로 건너편 맨션에 살고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난 지난해부터 그녀를 인터뷰하려고 이사람 저사람에게 부탁을 해놓고 있었다.
 
와세다 대학 근처에 있는 고층 맨션 18층. 일본의 맨션 대부분이 그렇지만 맨션 입구에서 인터폰으로 신원을 확인한 뒤, 안에서 문을 따주면 그 때서야 맨션 건물안에 들어갈 수 있다. 구씨의 집도 마찬가지.
 
"오늘 2위 하신거 축하합니다."
 
금방 돌아와 옷을 갈아 입은 듯, 트레이닝복 차림의 구씨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헌데 불과 두시간 전까지만 해도 TV에서 보던 얼굴을 직접 마주하니, 신기하다고 해야될까, 아님 재미있다고 해야될까, 아무튼 그 느낌이 참 이상했다.
 
"아직도 혼자 사세요?"
 
인터뷰는 그렇게 심플하게 정리된 거실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녀의 집은 산뜻하리 만큼 심플했다. 꼭 필요한 자리에만 물건이 위치해 있을 뿐, 군더더기 같은 물건이 전혀 없었다.
 
반 타원형의 거실에도 부엌으로 향하는 문턱에 아담한 식탁이 놓였을 뿐, 흔한 소파 하나 놓여 있지 않았다. 다만 운동선수임을 상징하듯 아령 두개가 구석에 덩그란히 놓여 있었다. 평소 과묵하기로 소문난 구옥희씨의 성격을 보는듯 했다.
 
먼저 그녀는 늦은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3시에 경기가 끝났는데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차가 많이 밀렸어요."
 
"그래도 우승했으면 좋았을 텐데 유감이네요."
 
내가 한 마디하자 그녀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래도 공이 잘 맞았어요. 컨디션도 좋았고."
 
우승하지 못하고 2위에 머문 아쉬움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단 훨씬 덜 한 것 같았다. 경기를 마친 지 몇 시간이 채 안됐는데도 구씨의 표정은 상당히 밝았고, 생각보단 덜 피곤해 보였다.
 
"헤어스타일은 언제 바꾼거예요?"
 
텔레비전에서 보고 놀랐던 생각이 떠올라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왜요, 이상한가요? 모두들 귀엽다고 하던데. 동료 골퍼들도 이 헤어스타일이 멋있다고 어디서 한 거냐고 물어요"라며 자신의 머리를 만졌다.
 
이어서 미국 프로골프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태극녀들의 활동과 미국의 매스컴들이 지적한 부모들의 지나친 과보호와 간섭에 대해서 물었다.
 
"그 얘기 많이 들었지요. 어떤 때는 내가 다 창피할 때가 있어요. 물론 자식을 위해 훌률하게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게임 도중에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딸에게 일일이 참견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지요. 그런데 우리 한국 부모들은 그런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니 당연히 주위 골퍼들로부터 지적을 받을 수 밖에 없죠. 우선 차별한다고 원망하기 전에, 차별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해요. 아무리 딸이라고 해도 필드에서조차 선수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참견하는 부모들은 세계에서 우리나라 선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보고 들어도 너무나 창피합니다. 필드에서의 룰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켜야 해요."
 
이 부분만큼은 대선배로서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국제 골프무대에서 활동하는 한국낭자 부모님들의 행태를 일일이 열거하면서, 이제는 프로선수이니 `프로'로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게 끔 부모가 그 끈을 놓아 줘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번에는 분위기를 바꿔 미국 골프투어에 대해서 물었다. 왜냐하면 10여년 전 미국에 집을 사고 본격적으로 미국 원정 플레이에 나섰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벌써 접었어요. 집도 이미 팔았구요. 지금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일본 경기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구씨는 지난 5월 18일 후쿠오카에서 열린 버날레이디 골프오픈 대회에서, 84년 일본에 처음 진출한 이 후 22번째의 우승을 안았다. 당시 그녀가 우승했을 때 한일 국적을 불문하고 그녀를 기억하고 또 좋아하는 팬들은 적잖이 놀랐다. 왜냐하면 `노장은 아직도 살아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두고두고 화제가 됐었다.
 
지난주 일요일에는 준우승. 한국에서의 통산 성적이 20승이니까 그녀의 말대로 일본에서의 활동기간이 더 많은 셈이다.
 
그렇지만 구씨가 맨처음 일본 프로골프계에 첫 발을 내디딜 때만 해도, 한국여성 프로골퍼는 거의 전무했다. 그런 만큼 일본 진출 또한 쉽지 않았다. 외국인에게 배타적이기로 유명한 일본에서 프로 활동을 한다는 것이 어려웠다.
 
몇 년전, 일본 골프계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구옥희씨의 구력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구씨가 치는 공이 매우 어지럽다는 것이었다. 그런만큼 성적도 들쭉날쭉 전성기 때와는 비교가 안될만큼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구씨는 바로 그때를 "참 힘들었던 기간"이라는 한마디로 압축해 표현했다. 아마도 이때부터 그녀는 참선을 한 것 같았다. 지금도 경기를 하러 지방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집에서 정좌를 한 채 참선을 한다는데 벌써 12년째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참선은 특별한 징후나 드러난 효과는 없지만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데는 그만이에요. 한동안 기(氣)도 없고 또 정신적으로 지쳤을 때 참선으로 마음을 가다듬었어요. 그래서 정진해서 다시 재기할 수도 있었구요."
 
골프 이외의 취미를 물으니 구씨가 손사래를 쳤다.
 
"1 년 중 집에 있는 날은 몇 개월 안 돼요. 일주일 중 월, 화요일에만 집에 있고 나머지는 경기 때문에 대부분 지방에 있어요. 그러니 특별히 취미생활을 할 수가 없지요.골프는 정신 집중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 정신을 분산하면 안돼요."
 
78년 데뷔 당시, 여성 골퍼로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 골프계에 어떤 비전으로 프로골퍼의 길을 선택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가족 얘기부터 꺼냈다.
 
"당시 프로 데뷔를 위해 골프연습을 할 때 오빠를 비롯한 주변에서 왜 구태여 사서 고생이냐고 만류했어요.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골퍼가 천직이라고 생각했어요. 프로에 데뷔하기 전에도 골프 잡지를 보거나 신문에 골프 기사가 나면 제일 먼저 챙겨 볼만큼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면서 내가 직접 골프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어떤 느낌이 내게 전해져 왔어요. 또 내가 골프를 좋아하는 것만큼 골프도 나에게 맞는 것 같아 천상 운명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젊은 시절, 그 미모로 '여자의 길'도 선택했을 법한데 굳이 골프라는 '일'만을 고집한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녀는 너털 웃음을 터트리며 "나 독신주의자 아니에요.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하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구씨는 지금이라도 자신의 혼을 쏘옥 빼놓을 남자가 나타나면 결혼을 할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점쟁이가 50세에 그런 남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얘기해 주었다면서 다시 한번 깔깔댔다. 50세면 2년 후다. 1년의 대부분을 골프 투어에 다니는 동안 시합이 끝나고 나면 무슨 생각을 할까.
 
"그냥 다음 시합만을 생각해요. 골프는 꼭 인생의 리듬 같아요. 플레이가 잘 풀릴 것 같은데도 뜻대로 안되고, 또 어떤 때는 지치고 힘들어서 반은 포기하고 있으면 우연히 공이 잘 맞아 좋은 성적을 내게 되고, 굴곡이 심한 것이 우리네 인생의 리듬과 똑같아요. 사람들은 마음을 비워야 공이 잘 맞는다고 하는데 어디 인간의 마음이 그렇게 쉽게 되나요. 하지만 역시 마음의 욕심을 버리고 나니 진짜로 찬스가 내게 오더라구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물었다.
 
"일본인들은 날 보고 신기하게 생각해요. 이 나이에 아직도 현역으로 뛰고 있다고. 하지만 체력관리만 잘하면 50대, 60대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올해 경기는 앞으로 4개가 남았는데 모두 출전할 생각이에요. 컨디션도 공이 잘 맞는 등 아주 좋구요. 또 기회가 된다면 자서전이 아닌 골프에 대한 책도 쓸 생각도 있고, 지금은 그냥 머리 속에서 구상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골프스쿨 같은 것도 노년에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저녁 7시에 만나 저녁11시가 넘어서 그녀의 집을 나왔다. 그 사이 그녀는 그날 2위한 축하전화를 틈틈이 받으면서 피로를 풀기 위한 마사지를 전문가로부터 받았다.
 
까맣게 그을린 피부, 손마디 곳곳에 굳은살이 박혀 거친 농부의 손을 연상케하는 자그마한 두 손. 그렇지만 지난 25년간을 프로 골퍼로서 헤쳐온 세월만큼이나 그녀의 얼굴에서도 깊은 연륜이 물씬 풍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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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7/12 [09:03]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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