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추진하는 대담한 금융완화·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가 글로벌 통화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과 함께 세계에 파문을 던지고 있다. 특히 각국의 중앙은행 당국으로부터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위협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지통신이 25일, 보도했다.
◆세계의 문제아 일본일본은행은 지난 22일, 아베 총리가 요구해왔던 소비자 물가 목표 도입과 금융완화책의 확대를 일본정부와의 공동성명을 통해 발표했다.
이보다 하루 전인 21일, 독일 연방은행(중앙은행)의 바이트만 총재는 "일본의 신정권은 중앙은행의 영역에 간섭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위협하고 있다. 이 정책은 환율시장의 정치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중앙은행 인사에 대한 과도한 개입 등이 문제시되고 있는 헝가리를 예로 들며 일본에 비판을 가한 점이 인상적이다.
헝가리는, 오르만 빅토르 총리가 사법 독립과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안을 강압적인 방법으로 제정한 뒤 유럽연합(EU)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시정을 요구받고 있다. 유럽의 '문제아'로 낙인 찍힌 헝가리와 일본을 동급으로 취급함으로써 일본의 금융·경제 정책에 통렬한 야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영국은행(BOE)의 머빈 킹 총재도 22일, "일부 국가가 환율의 인위적 하락을 위해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글로벌 통화전쟁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가 정확한 국가명은 밝히지 않았지만, 일본의 '아베노믹스'에 대한 우려 표명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또한, 미국의 제임스 블라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일본의 자세에 대해 "당혹스럽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리먼 쇼크 이후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유럽 채무위기로 각 중앙은행이 대담한 금융완화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유럽중앙은행(ECB)은 국채금리의 인하를 요구하는 남유럽 국가의 정치적 압력으로, 애초 소극적이었던 국채 매입에 억지로 나선 모양새다.
그러나 국채 매입을 위한 조건이나 규모 등에 대한 결정권은 ECB가 가지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최종적으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켰다는 체면은 차릴 수 있었다. 따라서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수치 목표까지 정부의 방침을 그대로 따르게 한 일본정부의 경우를 두고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고환율 유도, 일본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자국의 통화 가치를 떨어트리려고 하는 정부는 일본만이 아니다. 스위스 국립은행(중앙은행)은 2011년 9월 스위스프랑의 환율 하락을 막기 위해 환율 상한선을 설정했다. 또한, 그 상한선을 유지하키 위해 유로화 매입과 자국 통화 매각을 반복했다.
한국정부 역시도 수출 산업의 보호를 위해 달러 매입과 원화 매도 등 환율 시장에 항시 개입해 왔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왜 일본만이 세계의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일까?
장클로드 트리셰 ECB 전 총재는 2011년 9월, 당시 일본정부가 행하고 있던 엔 매도 개입을 비판하는 한편, 스위스정부의 시장 개입에는 이해를 나타냈다. 그 이유로 그는 "엔은 세계의 주요 통화 중 하나다. 반면, 스위스 경제는 규모가 작다. 비교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달러, 유로에 이어 세계 제3위의 통화 지위를 가지고 있는 엔인 만큼, 엔 환율 개입은 글로벌 환율 시장에 끼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 각국의 정부 수뇌와 산업계 리더들이 모이는 세계경제 포럼(WEF)의 연차총회(다보스포럼)가 23일,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개막했다. 2월 15일부터는 모스크바에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장 회의도 열릴 예정이다.
다보스 포럼에서는 24일(현지시간)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일본에 대해 "환율조작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를 시작으로, 향후 여러 국제회의에서 각국으로부터 일본에 대한 성토와 비판이 잇따를 전망이다.
세계로부터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아베 정권이 향후 어떻게 나올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