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에서 여행하던 어느날, 도카시키 섬(渡嘉敷島)에 갔다. 끝없이 투명하고 아름다운 바다에서 헤엄치며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돌아가는 배를 기다리는 동안, 도카시키 마을 역사민속자료관에 들렀다. 이 곳에는 자신이 묻힐 굴을 팠던 조선인 포로의 이야기나, 위안부 위령비에 대한 자료가 있다.
체류 중인 8월 말은 오키나와의 오본(お盆, 일본의 명절) 연휴 시기였다. 우리는 "뭔가,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서 온 것 같은 기분이야", "그러게 말야"라며 같은 재일동포 친구 한 명과 얼굴을 마주했다.
태평양 전쟁 말기, 본토 결전을 앞둔 가운데 전개된 오키나와 전(戰)에서, 이곳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이 희생됐다고 한다. 박수남 감독의 이번 영화에서는, 조선인 군속으로 목숨을 던지도록 강요받은 소년들과,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마음속에 그린 위안부 소녀들에 대한 27명의 귀중한 증언이 수록돼 있다.
이 영화에서는 때때로 아리랑이 흘러나온다. 도쿄 기치조지(吉祥寺)에서 상영됐을 때 영화를 보러 온 한 조선대학(일본) 학생은,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조선인 병사가 감금됐던 호 앞에서 그 유족들이 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을 꼽았다.
또한 이 영화에서는, 오키나와에 사는 한 일본인 할머니가 아리랑을 나직하게 부른다. 태평양 전쟁 당시, 위안부 소녀들과 매일 얼굴을 마주했다던 이 할머니는, "그녀들(위안부)이 항상 아리랑을 불렀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다"고 전했다.
내 마음속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의 하나는, 옥쇄(자살명령)가 내려진 장소를 찾아낸 뒤, 검증에 나선 전 조선인 군속들이, 속옷 차림이 되어 미군에 투항한 당시의 상황을 재현한 장면이다. 당시엔 죽음을 각오한 행동이었던 만큼, 썩 유쾌할 수 없는 현장 재현이다. 그러나 그들은 개의치않고 미소지었다.
또한, "평화에 필요한 것은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라는 영화 속 말과, 전쟁에서 살아남은 전 조선인 군속과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오키나와의 산 증인들이 돌계단을 내려가는 장면도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어느쪽도 박 감독이 아니면 찍을 수 없는 장면이리라.
위령비의 계단을 내려갈 때 조선인 전 일본 군속이 오키나와 전쟁 체험자에 손을 내밀었다. 그 장면에서 나는 견디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전시 중에 서로를 알지 못하고, 서로 도와주는 일조차 못하며 학대받았던 이들은 긴 세월이 흘러 겨우 연결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누치가후(命果報)'는, 오키나와 말로 '생명이 있기 때문에'라는 뜻이다. 생명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다시 만나, 서로 껴안고 웃고, 그리고 우는 일이 가능하다.
한일 정국이 변화하는 지금, 다시 과거를 되돌아보는 시기가 오고 있는 듯하다. 나는 지난해 여름, 아름다운 바다와 풍경을 보았다. 그리고 박수남 감독의 이번 영화는, 그 그늘에 있는 이름 모를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영화다.
일본에서는 최근 1월 5일부터 18일까지 고베 모토마치 영화관에서 상영된 바 있다. 한국에서는 올가을에 개봉할 예정이다.
※ 박수남 감독은 누구?
1935년 일본 미에 현 구와나 시 출생. 고마쓰가와 고등학교 여학생 살인사건(58년)의 피고와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이진우 서간집(李珍宇全書簡集)', 그리고 '죄와 벌과 사랑과(罪と死と愛と)'의 저자다. 1965년부터 히로시마를 방문해 피폭 피해 동포의 실태조사를 시작했고, 1973년 피폭동포의 증언집 '조선·히로시마·반(半) 일본인(朝鮮・ヒロシマ・半日本人)'을 간행했다.
이후, 영상이 가진 힘에 매혹돼 조선인·한국인 피폭자의 실태를 쫓은 영화 '또 하나의 히로시마'(1987년), 그리고 재일동포, 한국인, 일본인들의 증언을 통해 태평양 전쟁 당시 오키나와에 연행된 조선인들의 비극을 그린 영화 '아리랑의 노래·오키나와로부터의 증언'(1991년)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