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동원으로 일본 남단에 위치한 하시마 탄광에 끌려갔다가, 사망 혹은 병들어 돌아온 당시 조선인들에 대한 실상이 밝혀졌다.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하시마 탄광에 끌려갔다가 현지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조선인은, 현재 122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하시마(端島)는, 나가사키 항에서 18km 정도 떨어진, 남북 480m, 동서 160m, 면적 6.3ha(헥타르)이 아주 작은 섬이다. 바로 이 섬에, 태평양전쟁 당시 대표적 전범기업이었던 미츠비시가 1890년부터 탄광개발을 시작했다.
미츠비시는,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는 일본인 노동자를, 전쟁이후부터는 당시 일본식민지였던 조선인과 중국인을 강제로 동원해 탄광일을 시켰다. 하시마탄광에서 채굴된 석탄은, 접착력이 강한 양질로, 당시 일본최고의 탄광이었던 다카시마(高島)탄광과 함께 호경기를 누렸다. 최고의 전성기였던 1941년에는 41만톤의 석탄을 채굴하기도 했다. 때문에 식물이 거의 자라지 않는 조그만 하시마에, 일본 전국에서 사람들이 밀려들어, 한때는 세계인구 밀도 1위를 하기도 했다. 이처럼 하시마탄광은, 석유가 대체에너지로 바뀌기 전까지, 일본의 근대화를 이루는데 근간이 됐다. 문제는, 이같은 하시마탄광의 호경기가, 다름아닌 당시 조선인과 중국인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맨처음 탄광이 생겼을 때만 해도, 물이 없어 다른 큰섬에서 물을 공수해 마셔야 했고, 토질성분 때문에 그 흔한 풀도, 제대로 자라지 않았다. 그만큼 사람이 살기에는 환경조건이 최고로 열악한 곳이었다. 그런데도 양질의 석탄 때문에, 장사꾼들은 몰려들었고, 그러면 그럴수록 강제징용돼 끌려온 조선인 노동자들은, 더 깊은 막장속으로 석탄을 캐러 들어가야 했다. 심지어는 해저막장까지 들어가서 석탄을 캤다. 노동환경은 최악이었다. 사고사, 병사로 하루에도 몇명씩 죽어나갔다. 그래서 살고 싶어 바다로 뛰어들었지만, 하시마 탈출에 성공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왜냐하면 대부분 수영미숙으로 익사했거나, 감시원에 발각돼 고문을 받다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자살자도 적지 않았다. 어느 한 노동자는, "자신의 팔 다리 어느 한쪽을 잘라내서라도, 그 지옥섬을 탈출하고 싶었다. 그만큼 살고 싶었다"고 증언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감옥섬' 혹은 '지옥섬'이었다. 이 감옥섬 이름이 붙여진 곳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앞에서 말한, 일본 최고의 탄광촌 다카시마였다. 여기에도 조선인, 중국인 노동자가 강제로 끌려와 혹사를 당하고 있었다. 그 당시, 미츠비시탄광 측은, 조선인과 중국인들이 손을 잡고 저항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선인 노동자 숙소는 북쪽에, 중국인 숙소는 남쪽에 분리시켜 놓았다고 한다. 작업시간도 서로 엇갈리도록 배치했다는 것. 당시, 하시마탄광의 노동환경이 어느정도였느냐 하면, 하시마탄광에서 일하다, 미츠비시 계열의, 나가사키 본토 조선소로 이주한 조선인 노동자들은, 두 지역을 이렇게 표현했다. "하시마에 비하면 여기 나가사키 조선소는 천국이다. 그만큼 하시마는 인간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바로 생지옥이었다(아사히신문 오사카본사자료)." 실제로 이번에 한국정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하 1천미터 해저탄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바닷물이 수시로 갱내로 쏟아져, 피부가 늘 짓물러 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실내온도 45도가 넘는 갱안에 메탄가스가 가득차 있어, 언제 가스가 폭발할지 늘 극도의 불안감 속에서 일을 했다고 생존자들은 증언했다. 때문에 이처럼 위험한 곳에는, 일본인은 전혀 없고 강제로 징용돼 온 조선인이나 중국인 노동자가 반드시 투입되었다는 것. 위의 조사위원회는, 지난 5월부터 최근까지, 각종 기혹과 생존자들의 증언등을 채집,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1945년 사이에 800여 명에 이르는 조선인이 동원된 것으로 추산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조사위원회가, 당시 피해자로 공식 확인한 사람은 모두 134명. 그중 사망자가 122명이다. 이 외에도 1945년 8월, 미군에 의한 나가사키 원폭으로 나가사키 시내 복구작업에 투입됐다가, 잔류 방사능에 오염된 조선인 피해자도 상당수 있다. 이처럼, 조선인과 중국인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단물'을 다 빨아먹은 태평양전쟁의 대표적 전범기업 미츠비시 탄광은, 70년대부터 본격적인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1890년부터 하시마탄광을 소유해 한때 호경기를 누릴 때도 있었지만, 석탄대신 석유가 대체에너지로 혁신을 일으키는 바람에 사양길을 걷게 된 것이다. 1960년대 일본경제는 초고속성장을 하게 된다. 1950년 한반도에 6.25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은 하루에 3교대를 풀가동할만큼,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에 군수물자 조달하면서 호경기를 맞게 된다. 이때, 혁명처럼 나타난 것이 바로 '석유'다. 부피와 운반, 사용방법 등, 석유에 비해 훨씬 비효율적인 석탄은, 그래서 기피에너지로 취급을 받게 된다. 급기야는 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대형탄광기업이 무너져가고, 일본 전국에서 하나둘씩 차례로 탄광 폐쇄를 선언한다. 미치비시 그룹 또한 군함을 닮았다 하여, '군함도'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하시마탄광을 1974년 폐쇄하게 된다. 그리고 2001년에 지난 110년간 소유했던 하시마탄광 전체를, 하시마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양도한다. 한편, 하시마에 살던 주민들도, 1974년 1월 15일, 생활근거지가 됐던, 미츠비시 탄광이 폐쇄되자, 당연히 하시마를 떠났다. 그해 4월 20일, 마지막 주민이 떠남으로써 하시마는, 완벽한 무인도가 됐다. 하지만 일본자료에 의하면, 같은 업종인 다카시마광업소의 마지막 해체작업 때문에, 74년 연말까지 일부 작업원들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무인도로 남아 있다.
이번 조사에 참가한, 위 조사위원회의 윤지현 조사관은, 일본정부와 당시 하시마탄광을 운영했던, 미츠비시 그룹을 향해 다음과 같이 촉구했다. "조사 결과, 하시마에서 조선인이 사망한 1차 원인은 강제동원이며, 2차 원인은 열악한 노동환경이었음이 확인됐다. 문제는, 일본 정부가 하시마를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이같은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쓰비시가 하시마탄광을 폐쇄하면서, 사망자 납골시설을 파괴하고 유골을 무작위로 처리해, 유족 확인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그룹은 진상을 규명하고, 유골봉환 등 그 책임을 다 해야 할 것이다." 현재 일본정부는 하시마탄광을 포함, 자국의 근대산업시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윤조사관이 바로 이점을 꼬집은 것. 실제로 일본정부와 나가사키현은, 이들 근대산업시설을 '보존'이라는 의미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려고 추진하고 있지만, 윤조사관의 말처럼, 한창 전성기였을 때 강제로 끌려와 억울하게 희생된 조선인에 대한 것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정부 주도의 실태 조사는, 새로운 내용이 전혀 없어, 한국정부로서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생존자의 증언은 이미 많이 나와 있고, 발표한 통계자료 또한, 컴퓨터 마우스 몇 번 두드리면 한일 인터넷상에서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아니, 정부 주도로 발표된 자료보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자료가 더 구체적이고, 알찬 내용이 많다. 몇개월에 걸쳐서, 어디서 누구를 만나고, 또 어떤 자료를 찾아냈는지, 육하원칙에 의한 '실사내용'이 너무도 없다. 조사원들이 직접 나가사키현 하시마에 가서 현지답사한 흔적조차 없다(현재 하시마는 나가사키현 담당부서에 견학신청을 한 다음, 날짜가 정해지면,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단체 견학이 허용된다). 조사위원회가 발표한 내용도, 모두 일본에서 이미 오래전에 발표된 내용에서, 한걸음도 진전된 내용이 없었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대단한 조사라도 한것처럼, 국무총리 소속이라는 레테르를 붙이면서까지 거창하게 발표를 했다. 하지만, 발표된 내용은 일본언론에 나와 있는 내용의 3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엉성한 내용에 불과했다. 기존의 일본언론에 나와 있거나 관련르포, 전문 도서만 대충 훑었더라도 이렇게 부실한 발표내용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컨닝을 하더라도 좀 제대로 하지, 언제까지 우리는 책상위에서, 탁상행정으로 역사문제를 다룰려고 하는가.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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