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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 관련한 日주부의 촌철살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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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강제동원 증거無? 강간범 입증에 문서 필요치 않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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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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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대표적인 일간지들을 꼽자면, 아사히, 마이니치, 요미우리, 산케이, 니혼케이자이 신문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아사히 신문이 가장 진보적인 성향을 띠는 매체로 평가받는다.
비록 최근에는, 보수적인 논조의 기사와 사설도 심심치 않게 보이고 있어 "더 이상 진보 신문이 아니다"라는 평도 듣지만, 어찌 됐든 일본 대표 일간지 가운데 가장 왼편에 있는 건 사실이다.
진보적이라 일컬어지는 신문이다 보니, 독자들도 진보성향이거나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독자란에는 매우 진보적이거나 보수화된 일본 사회에서 나오기 쉽지 않은 발언들이 종종 보인다.
지난 5일, 아사히 신문 독자란에는 가와사키 시에 사는 한 30대 주부가 투고한 '위안부 문제에 여성의 시선을'이라는 글이 실렸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위안부문제에 여성의 시선을 -
"종군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한일 정치가가 도발적인 언사를 주고 받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강제연행의 사실을 문서로 확인할 수 없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평범한 주부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범죄 행위의 입증에 문서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나는 여성을 강간했습니다"라고 쓴 문서가 없어도, 피해자의 증언과 상황증거로 충분하다. 1993년에는 당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위안부 모집이 '감언이설'이나 '강압' 등에 의해 이뤄졌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전 위안부의 증언에 기초한 것이다.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정치가들은 일본의 전통적인 여성멸시적 사고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듯하다. 내가 결혼 뒤에 "꼭 남자아이를 낳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경험을 토대로,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이 문제에 무관심할 수 없다. 영토문제와 뒤섞지 말고 세계 속에서 가슴 펼 수 있는 해결책을 보여주길 바란다."
▲ 아사히 신문 독자 투고란 9월 5일 자 - 위안부 문제에 여성의 시선을- ©JPNews | | 언론, 정계 할 것없이 내셔널리즘의 강풍이 몰아치는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룬 한 주부의 짧은 독자의견은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상륙과 다소 도발적인 '천황 발언' 이후, 최근 일본 내에서는 내셔널리즘의 바람이 거세다. 우익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일본인이 한국을 비판하고, 한국에 대한 강경대응을 원한다. 일본인들의 심리를 들춰보면, 한국에 '뒷통수 맞았다. 배신감 느꼈다'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 한류 등 문화교류를 통해 자신들이 호의를 보였건만, 돌아온 게 이거냐는 것. 여기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천황, 한국 오고 싶으면 먼저 사과해' 식의 다소 감정적인 발언도 한 몫했다. 일본의 이 같은 국수주의적 분위기는 영토문제뿐만 아니라 위안부 문제로까지도 번지고 있다. 특히, 정치인들의 발언이 가관이다. 지난달 27일, 노다 총리는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은 명확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마쓰바라 진 국가공안위원장은 1993년 발표된, 위안부가 일본군에 의해 강제동원됐다는 내용이 담긴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의 담화를 수정해야 한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고노 담화는 보수정당인 자민당도 집권당시 계승한다고 밝힌 사안이다. 이를 수정해야한다는 말이 현직 각료의 입에서, 그것도 민주당에서 나왔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하고, 고노 담화를 수정하려는 일본의 정치가들의 역사 인식은 참으로 문제가 있다. 역사를 잘 모르는 일본인들 또한 이 같은 정치가들의 언사를 곧이곧대로 믿을 것이다. 그런데 위 주부의 짧은 글은, 일본 정치가들의 위안부 발언에 담긴 문제점을 비교적 명확히 짚어내고 있다. 특히, 강간범죄의 예를 든 것은 참으로 촌철살인이다. '일본 특유의 여성 경시적 풍조'가 정치인들의 인식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해석도 재미있다. 그리고 12일 자 아사히 신문에는, 그녀의 의견에 동조하는 또 다른 글이 독자란에 게시됐다. 이번에는 시즈오카 현에 사는 43세 주부의 의견이다. - 쌀쌀맞은 '위안부' 부정발언 - "위안부 문제에 여성의 시선을'(5일)이란 글에 동감한다. 1993년, 당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사과와 반성"을 표명했고, 95년에는 (일본) 정부 주도로 아시아 여성기금이 설립됐다. 그런데도 다시 강제성은 없었다, 문서로 확인할 수 없다 등의 발언을 하는 정치가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강간죄로 체포된 자가 "동의하에 (성관계)했다"고 변명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그들의 말에는 피해여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국민에게 있어서 위안부 문제도 독도 문제도 일본의 점령정책을 상기시키는 어두운 역사를 상징하는 것으로, 두 문제를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일본 정부의 사죄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일본은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다는 인식이 한국 국민 사이에서 계속되고 있다. 전 위안부의 마음을 계속 상처주면서 "우리는 냉정히 대처한다"고 말하는 노다 요시히코 수상의 발언이 나는 너무 쌀쌀맞게 느껴진다."
▲ 아사히 신문 독자 투고란 위안부 관련 2012년 9월 13일 자 - 쌀쌀맞은 위안부 부정발언- ©JPNews | | 위안부 문제가 여성인권의 문제와 결부되기 때문일까? 3,40대 여성들이 여성의 관점에서 쓴 위안부 관련 글이 아사히 신문 독자란에 2주 연속으로 게재됐다. 두 글에는 적어도 위안부 피해자,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또한, 이는 위안부 문제를 넘어서 여성의 문제일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익세력이 극성을 부리고, 일본 언론이 독도, 위안부 문제를 역사적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을 볼 때마다, 그리고 한일 양국관계가 극단으로 치달을 때마다 느꼈던 답답함이 위 글을 통해 조금은 풀린다. 위와 같은 분들이 너무 적다는 게 일본의 현실이지만, 점점 저런 분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뜬금없지만, 그런 점에서 일본과 한국이 척을 지고 사는 것보다는, 서로 대화하고 교류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한다. 서로 가까워지면,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을까. 앞으로 안 볼 사이도 아닌데다, 서로를 모르면 모를수록 오해는 깊어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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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9/13 [13:51] 최종편집: ⓒ jpnews_co_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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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잘봤습니다. |
학생 |
12/09/13 [1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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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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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벽은 마땅히 이렇게 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멍멍~~ |
12/09/13 [2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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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안 되는 기사이다. 진보와 보수를 어떻게 구분한단 말인가? 인권에 신경을 쓰면 진보이고, 탄압하면 보수인가? 내 재산이 100조 원이라 가정부를 한 명 두었는데, 고작 쏘나타를 타고 다녀 접촉사고를 당해 다쳤다. 불쌍한 마음에 에쿠스를 한 대 뽑아줬지. 이 때 나는 진보인가? 반대로 식구들만 바글바글한 촌동네에 걸인이 한 명 들어왔다. 입 늘었다고 내치지 않고 개 한 마리를 잡아 몸보신을 시켜주었지. 랍스터를 먹였어야 하는데 개를 먹였으니 인권의 가치를 한참 낮춘 셈이다. 이 때 나는 보수인가?
진보와 보수란 상황에 처해있는 나로부터 구분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눈으로 판별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절대적인 기준이라도 있는 양 진보와 보수를 쉽게 구분하지 않았는가? 신대륙에서 황금이 쏟아져 들어오는 동안엔 이러한 작업도 재미있었을 것이다. 왕만 권좌에서 내쫓으면 독점하던 특권도 대신 차지할 수 있을 테니까. 잘만 하면 권력을 분배해 귀족의 자리에 오를지도 모른다. 이 경우 진보는 왕을 감옥에 가둘 것을 주장하고, 보수는 단두대에 올릴 것을 주장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빨리 내쫓아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경제에 충격파가 몰아닥치고 있는 2012년 한국이라면 어떨까? 누가 어떤 식으로 희생을 감수하면 좋은 거지? 귀족인 나한테 묻지 말아라. 나는 왕이 아니니까. 대신 진보가 한 마디 하면 시민들과 힘을 합쳐 진보를 죽일 것이요, 보수가 뭐라고 하면 귀족들이 똘똘 뭉쳐 보수를 죽일 것이다. 그래서 진보고 보수고 이득만 말해야 하는 것이다. 이득이 없으면 사람들도 움직이지 않으니까. 어쨌든 누가 움직여야 사고가 생기고, 귀족인 나를 위해서... 가 아니라, 시민들을 위해 진보와 보수로 가르는 싸움질을 시킬 수 있는 것 아닌가? 그 과정에서 이득과 손해가 발생하고, 사람을 구분짓는 위계질서가 생겨나며, 나를 떠받들어 주는 체제는 더욱 공고해진다. 이명박만 찍으면 천국 간다고 뻥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물론 이명박이 대통령인 이상, 그리고 곧 권좌에서 물러날 사람인 이상, 이렇게 구축된 체제가 향후 대한민국 전체를 위해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같은 논리가 국가 사이에 적용되면 어떻게 될까? 어렸을 적 읽었던 일본의 동화 가운데 재미있는 것이 있다. 미야자와 켄지의 '요구가 많은 음식점'이란 책이었는데, 여기에 나오는 두 신사는 산 속에서 길을 잃고 어떤 음식점 앞에 서게 되지. 그런데 문이 참 많더라고. 가도, 가도 끝이 없어! 게다가 새로운 문을 열 때마다 요구하는 내용도 점점 괴상해지거든? 쇠붙이를 떼어내라, 온몸에 크림을 발라라, 식초를 구석구석 뿌려둬라. 마지막의 머리에 소금을 뿌리는 과정에서 누가 요리의 대상이 되는지를 알아채지. 이 이야기의 교훈은 뭐냐? 최초 사냥꾼들은 앞세우던 개를 너무 혹사시키는 바람에 산 속에서 죽여버렸다. 산새를 사가도 되는데, 직접 사냥해야 한다는 욕심이 지나쳐 돌아갈 실마리를 잃어버린 거야.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이상한 요리점과 만났고, 나중에는 죽인 개의 혼령한테 잡아먹히는 꿈까지 꾸지. 지금 우리가 서있는 지점과 무엇이 다른가?
좌와 우가 구분되는 동안에는 역사도 한 길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길은 오직 누군가의 이득을 도모하는 데 사용되어지는 것이다. 새로운 문이 열릴 때마다 언뜻 기회도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요리가 되는 입장에서는 후퇴하는 것이 이익이요, 반대로 접시 앞에 앉아있는 입장에서는 받아들이는 쪽이 이익이기 때문에, 이익을 도모하려면 어느 쪽으로든 문을 열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누가 당신한테 먼저 가서 식탁에 앉아있어도 좋다고 허락했단 말인가? 궁금한 건 이거다. 왜 아직까지도 요리점에서 나올 생각을 못 하는 거지? 이 요리점은 적어도 잡아먹히는 자의 입장에서는 잘못된 설계방식에 의해 고안된 허상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인식이 현상을 왜곡해서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 하면, 끝끝내 자신이 잃어버린 개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본 주부의 발언에 공감한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일본의 국가이익에 손해가 되는 발언이지만, 애시당초 구하려던 이익이 그곳에 없었기 때문에 관여할 바가 아니다. 관심을 갖는 부분은 빨리 산에서 내려가는 방법이다. 집에 가서 밥을 지어 먹어도 되는데 왜 요리점에 들러서 돈을 써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이렇게 써버린 돈은 새로운 요리점을 짓는 데 투자될 것이다. 다들 식탁 앞에 앉아 '요구가 많은 음식점'을 차리고 손님을 기다리겠지. 이것이 여지껏 우리가 믿고 있었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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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면 삼키고, 쓰면 뱉고.. |
너구리 |
12/09/13 [2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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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식의 우리나라 정부, 공무원들의 구렁이 담넘어 가는 듯한 만행?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될 듯 하면 피하고, 조금이라도 이득이 생길 것 같으면 무슨짓이라도 불사하는 우리도 문제가 많죠.
이번에 우리도 일본에 강경대응과 위안부, 독도 문제에 확실한 사과와 재발방지 등의 공식 문서를 받아야 할듯 하군요.
해 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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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정상적인 사고방식이 |
man |
12/09/21 [2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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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까지 이슈가 되어야 하는 상황.. 이게 바로 심각한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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