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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친 "지금도 날 사랑해?" (11부)
일본 여친에게 프로포즈 받다 (11부)
 
박철현 기자
(이 글은 연재물인 관계로 처음부터 읽지 않으시면 이해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점 양해바랍니다.)

오타쿠(1부)
헌책방(2부)
걱정(3부)
이별(4부)
한국남자(5부)
바둑(6부)
동거(7부)
관계(8부)
옛남자(9부)
2002년 한일월드컵(10부)
 
사정을 말하자면, 월드컵이 끝나고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제의가 들어왔다. 관전기를 토대로 영화를 만들자거나 책을 기획해보자거나. 어떤 곳은 체류비 일체를 부담하면서 날 한국으로 불러주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과 이런 것들이 결합하니 일본에서의 생활이 점차 짜증스러워졌다.

물론 아내와의 생활은 여전히 즐거웠고, 자극적이었고, 또 행복했다. 일부러 한국 요리책을 구입해 부대찌개나 불낙전골을 만들기도 했다. 맛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다 먹었다.
 
왜냐면 당시만 하더라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던 김치나 고추장같은 음식재료를 사기위해 아내가 장장 1시간이나 전철을 타고 우에노 아메요코를 갔다왔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외의 일본생활은 힘들었다. 이를테면 이런거다.
 
m시의 맨션에서 아내와 동거를 시작한지 8개월이 지났지만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아직도 모른다.
 
아르바이트를 하고있던 게임회사는 4개월전 비자연장을 할 때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제작회사다 보니 처음에는 좀 도와주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경쟁자가 된다. 플래너라는 포스트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주로 플래그 성립후의 영상 콘티를 그렸던 나하고는 상관없을 줄 알았는데 그게 또 아니었다.
 
학교 결석도 늘어났다. 어차피 비자때문에 학교를 다닌 측면이 커 그렇게 신경쓸 부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결석은, 마음에 걸린다.

그러다 보니 아내외엔 마음을 털어놓고 대화할 상대가 없었다. 아내가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 6시이후는 괜찮았지만, 아침에 일어나 대문밖으로 한발짝만 나가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다시 정리한다면 이런 것일테다. 월드컵 후유증은 향수병을 불러왔고, 게다가 거창한 비젼따윈 없었지만 같이 일해보자는 연락도 종종 왔다. 이런 것들에 답답한 일본생활이, 아니 이런 것들이 일본생활을 답답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답답한 일본생활을 더이상 견디기 힘들어진 나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아내에게 단도직입적으로 털어 놓았다.

엄청나게 더웠던 여름날 저녁이었다. 날짜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상황은 지금이라도 당장 재현가능할 정도로 또렷히 기억난다. 앞의 10부에서도 말했지만, 아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나는 "게임회사를 관두고 싶다"고 했고 공교롭게도 그순간 아내는 선물받은 컵을 깨뜨렸다.

"앗! 컵 깨졌다. 아이씨, 이거 선물받은 건데. 아참, 근데 지금 뭐라 그랬어?"

이런. 듣질 못했다. 게임회사를 관두고 싶다고 했을 때 '왜', 혹은 '어떡하려고?' 라는 말을 건네오면 자연스럽게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화제를 꺼낼 생각이었는데, 아내가 듣지 못한 것이다.  

설거지가 끝난 후 아내는 회사에서 선물로 받았다는 지바산 메론을 잘라 내놓았다. 나는 멍하니 벽에 기대 '런던하츠'를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날짜는 몰라도, 화요일 9시부터 10시사이였던 건 확실하다. 아내는 반소매 차림의 헐렁한 일상복이었고, 나는 파자마 차림이었다.

"먹어봐. 이거 세상에 하나에 2천엔이나 하는 거래. 2천엔짜리 메론 먹어볼 찬스 그렇게 많이 없다니까."

아내는 내 마음을 전혀 모르는 듯 했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아내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색을 안했다고 한다. 나중에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월드컵이 끝난 다음 오빠가 꺼내는 말들은 전부 한국에 관한 것들이었으니까 모른다는게 이상하지. 오빠는 홍캡틴이나 몇몇 선수들이 어떻게 되거나, 축구가 아니더라도 대통령 선거가 어떻게 돼 간다던가...그런 말들만 했으니까. 일본에 관한 화제는 그 시기에 한번도 안했던 것 같아. 듣고 있는 나로선 무슨 말인지 몰라 답답했지"

일본인은 이럴 때 좋다. '일본인'이라는 단어하나로 전체를 한데 싸잡아 규정할 수는 없겠지만, 평균적인 일본인들이 대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참을성'과 '다테마에(建前, 겉마음)성 대꾸'는 상황을 극단으로 몰고 가지 않는다. 한국을 알기 시작한 아내는 그런 의미에서 평균적인 일본인들 보다 훨씬 이해의 폭이 넓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 이때 내가 들뜬 채로, 혹은 향수병에 젖어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고 있을 때, 참다못한 아내가 지겹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래서 어쩌라구? 나랑 상관없잖아. 여긴 일본이란 말야!"라고 쏘아 붙이기라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분명히 큰 싸움이 터졌을테고 극단적인 상상을 하자면, 이것을 계기로 헤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테다.

그런데 아내는 그 수많은, 내 입에서 나오는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월드컵이 끝난후 1개월여간 끊임없이 들어주었다. 그것도 건성으로 들은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들었다. "오! 그래서?", "해외에 그렇게 많이 나가다니 정말 대단한데!", "대통령제는 의원내각제와 많이 다르네?"등등.

하지만 1개월여동안, 그것도 둘이 있는 시간이 한정적인 상황에서 대화내용이 거의 100% 상대나라의 화제라고 상상해보자.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충분히 상상이 갈테다. 만약 아내가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2군 선수가 어떻고 저떻고 시시콜콜하게, 그것도 매일 1개월여간 말해왔다면 난 아마도 폭발했을것 같다. 그런데 사실 아내도 나중에 내가 꺼내는 화제들이 고역이었다고 털어 놓았다.

"음, 솔직히 짜증났었지. 송종국, 김남일이 어쩌고 하는데, 오빠도 알다시피 난 축구를 전혀 모르잖아. 오빠와 같이 본게 거의 처음 축구를 본 거였어. 일본축구에도 관심이 없는데, 아는 사람이라곤 카즈(미우라 카즈요시)나 히데(나카타 히데토시) 정도밖에 없는 사람한테 한국 선수 이름을 대면서 이 선수 애인이 어쩌고 해봤자 의미가 없잖아? 그것도 장장 몇시간이나. 참느라 혼났어. 쩝"

그런데 상황은 좀더 복잡했다. 왜냐면 한국으로 가고싶니 마니하는, 그러니까 '마음'같은 추상적 요소가 아니라 한국을 돌아갈 수 밖에 없는 '법적, 제도적' 상황에 걸리고 만 것이다.

02년 8월 10일, 집으로 외국인등록증의 갱신을 알리는 통지문이 날아왔다. 그때만 하더라도 외국인등록증은 비자종류에 상관없이 처음 일본에 와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은 사람이라면 1년에 한번씩 갱신해야만 했다. (2009년부터는 5년으로 늘었고 발급처도 해당 지자체가 아니라 법무성 입국관리국으로 변경됐다)

당시 나는 6개월짜리 비자를 한번 받고 이후 다시 6개월짜리로 연장한 상태였다. 비자종류는 6개월이상의 장기체류자들 중 가장 낮은 스테이스의 '취학비자'. 한번더 연장할 수는 있었지만 그래봤자 다시 6개월 연장이 될 뿐이었고, 학교출석율이 좋지 않아 비자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비자와 외국인등록증은 엄밀히 말해 다른 부류에 해당했지만, 통지문을 받은 아내는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왜냐면 그 통지문에는 내가 일본에 있을 수 있는 타임리미트가 9월 11일로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통지문을 받은 날이 13일이었으니, 한달도 채 남지 않았다. 아내의 마음이나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이대로 가다간 9월 11일 우리는 물리적으로 떨어져야만 했다.

한가지 재미있었던 건 '외국인'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을 사귀고 있던 아내는, 비자나 외국인등록증 같은 것을, 바보스럽게도 단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내 잘못도 있었지만, 아내는 외국인인 내가 비자기한이 끊어지면 언젠가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아내는 외국인등록증 갱신을 알리는 통지문을 내밀면서 심각하게 물어왔다.

"오빠. 이런게 왔는데..."
"어. 외국인등록증 갱신하라는 거야."

"알고 있었어?"
"아니, 근데 1년정도 지났으니 오겠구나 했지"

"한달밖에 안남았대"
"......응"

"어떡하려고?"
"가야지 뭐. 불법체류자가 될 순 없잖아"

내 말을 듣는 순간 아내는 내 뺨을 때렸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내 가슴팍을 붙잡으면서 울부짖었다.

"왜! 왜 말을 안했어. 왜 말을 안했냐고! 어쩌면 사람이 그럴 수가 있어!!!"

일부러 말은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아내와 사귀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고, 그때는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는 나와의 원거리 연애는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 하긴 어떻게 보면 당연할지 모르겠다. 난 원거리 연애가 불가능하다는 걸, 아내 앞에서 이미 스스로 증명한 바가 있으니까.
 
▲ 아내와 내가 갔던 군마현 구사츠 온천. 원래는 이별여행이 될 예정이었던 것이...    ©jpnews

아내와 나는 며칠간 말을 안했다. 물론 일상적인 대화는 했다. 밥먹어, 먼저 씻을래, 잘자 등의 대화는 했다. 하지만 둘다 비자나 귀국에 대해선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나도 짐정리는커녕 여전히 일상적으로 게임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귀국일을 불과 한달도 채 남기지 않은 사람이라곤 생각하기 힘든 평온한 일상이었다.

8월 15일 저녁. 벽에 나란히 기댄채 텔레비젼을 보고 있었을 때 아내는 문득 이렇게 말해 왔다.

"...미안해"

한동안 있다가 나도 말했다.

"아니, 내가 미안해"

내 말을 들은 후 아내는 한참을 있다가, 정말로 한참이었던 것 같은데, 아내는 무언가를 억누르는 듯한 어투로, 간신히 말을 이어 나갔다.

"잘 가고... 가면 꼭 연락해."
"...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우습게도 텔레비젼에선 아카시야 산마나 세키네 쓰토무 등이 대폭소를 연발하고 있었다.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고 있던 우리 둘은, 같이 울었지만, 또 따로 울었고, 나는 그 분위기를 참지 못해 베란다로 나가 줄담배를 피워댔다.

다음날 아침 아내는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흔들어 깨웠다. 게슴츠레 눈을 뜨는 나에게 아내는 그때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던 환한 미소를 띠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빠! 나 사실 말 안했는데 오늘부터 휴가야. 우리 생각해보니까 여행다운 여행 한번도 못했잖아. 2박 3일 정도로 어디 가자!"
"어? 어. 알았어"


영문을 모른채 일단 고개는 끄덕거렸지만, 회사일이 마음에 걸린다. 그러자 아내는 "그 따위 괜찮아"라면서 전화기를 들더니만 내가 다니던 게임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이 나오자, 아내는 갑자기 슬픈 목소리를 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박상과 같이 살고 다카하시라고 합니다. 지금 박상이 어젯밤부터 온몸에서 열이 나서요. 40도가 넘는데, 한 며칠 쉬어야 할 것 같아서요. 네. 네. 죄송합니다. 그럼 한 3일정도 상황보다가 연락드릴께요"

능숙했다. 너무나. 거짓말을 가장 싫어하는 아내다. 아내는 태어나서 이때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고, 이후 단 한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우리는 그날 아침 군마현에 있는 구사츠 온천으로 2박 3일 온천여행을 떠났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된 온천거리다.
 
서로 유카타를 차려입고, 하루에도 몇번씩 온천에 몸을 담갔고, 온천물로 익힌 반숙달걀을 먹거나 유리공예도 직접 체험해 보는 등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비자따윈 잊고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내입장에서는 구사츠 온천여행을 '이별여행'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3일째 되던 날 도쿄로 돌아오는 전철안에서 아내는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대면서 조용하게, 마치 속삭이듯 말을 꺼냈다.

"오빠, 지금도 날 사랑해?"
"...응"


아내는 한템포 쉬고, 혼잣말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다시 말했다.

"...그래, 알았어"

그때 눈을 스르륵 감은 아내의 표정은 한없이 맑아 보였다. 모든 근심과 걱정이 날라간, 마치 초월한 듯한 그 표정. 새근새근 잠에 빠진 아내의 얼굴, 그리고 입가엔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다음날, 그러니까 8월 20일이다.

나는 아내로부터 프로포즈를 받았다.


■ 최종회 "일본 여친에게 프로포즈 받다 (마지막회)"


■ 기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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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8/23 [07:45]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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