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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혼게이자이> DJ 평전"신념, 인내로 뭉친 세계적 지도자"
<니혼게이자이>가 본 DJ 평전. 햇볕정책은 찬반 엇갈려
 
편집부
경제일간지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8월 19일자 조간에 김대중 전대통령의 서거를 1면 톱기사(중앙2단)로 소개하면서 '평전'과 '사설'을 통해 김대중 전대통령의 일생을 집중조명했다.
 
<니혼게이자이>는 평전을 통해, 김대중 전대통령을 "세계적인 지도자, 정치가"로 떠받들면서 "민주개혁에 대한 신념과 기골, 인내를 통해 민주화를 실현시킨 그 공적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또 평전은 "한일우호에 힘쓴 김대중 전대통령 덕분에 새로운 한일시대를 맞이하게 됐다"며 "한류붐의 계기를 만든 것도 그였다"며 칭송했다.
 
<니혼게이자이>의 평전 전문(全文)은 다음과 같다.
 
민주화를 향한 신념과 인내
 - 대북 융화정책에 대해서는 찬반도...

한국정계, 아니 세계에서도 이 정도로 파란에 찬 인생을 보낸 정치가는 드물다. 일본에서 당한 납치사건이나 투옥, 사형판결. 수많은 사선을 넘어 4번째의 도전으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을 때 그는 이미 70세를 넘긴 노정객이었다.
민주개혁에의 신념과 기골, 인내 없이는 관철할 수 없었을 것이다. 노벨상 수상의 이유가 된 북한과의 융화정책에 찬반이 있지만, 한국의 민주화를 실현한 공적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1924년, 한국남부 전라남도에 있는 하의도에서 태어났다. 호적상 출생은 25년이지만, 구일본군의 징병을 피하기 위해 기재를 정정했다고 한다.

 
한국전쟁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된 것이 61년. 염원을 달성한 것은 눈깜짝할 새. 직후에 박정희 소장에 의한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군정하에서 거친 파도에 휩쓸리기 시작한다.
 
71년에는 대통령선거에 첫도전하여 박대통령에게 석패.73년에는 도쿄체재중 호텔에서 납치되어 암살의 공포를 맛보았다. 김대중사건이다. 지금은 한국중앙정보부의 관여가 거의 확정돼있지만, 뜻하지않게 '한국에 김대중이 있다'라고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국민의 정부

박해는 계속된다. 80년에 일어난  민주화 운동 '광주사건'에 관여했다고 해서 내란음모죄로 사형판결을 받는다. 결국은 형 집행정지, 미국망명으로 난을 피했으나, 불굴의 투사는 민주화에의 야망을 버리는 일이 없었다. 4번째 도전 97년말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을 이룬다. 자신의 정권을 '국민의 정부'라고 이름을 붙였다.

파란만장한 정치가 인생에서 정점을 달한 것은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일 것이다. 북한의 김정일 총서기와의 역사적인 악수로 세계가 놀랐다.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한 공헌이 평가되어, 같은해 12월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남북분단이라는 아시아에 남겨진 냉전구조를 자신들의 힘으로 타파하고 싶다. 스스로 진행시킨 '포용(햇볕) 정책'이라고 불리는 북한과의 융화정책은  계속된 노무현 정권에서도 이어졌으나 북한은 한국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핵,미사일 개발을 계속했다. 남북정상회담에 얽혀 한국에서 북한으로 5억달러가 부정하게 송금되었다는 의혹이 떠오르면서 융화정책에 대한 비판도 높아졌다.

 06년 10월에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했을 때 '포용정책이 왜 죄인가'라고 토로했다. 신념은 마지막까지 굽히지 않았으나 현실은 이룰수 없는 꿈이었다. 작년 2월에 발족한 이명박 정권이 융화정책을 포기하는 등 은퇴후 정치적 영향력은 급속하게 저하되었다.

한일 우호에 힘써

성격은 꼼꼼했고 완벽한 일본어가 가능했다. 회견에서 통역의 오역을 지적하는 일면도 있었다. 대일관계에서는 영화나 만화, 가요 등 일본의 대중문화의 단계적인 개방이나 02년 월드컵 한일 공동 개최의 실현으로 관계개선에 힘썼다. 한편 영화산업 등 한국문화의 발전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아, 후에 일본에서 '한류붐'을 가져오는 초석을 닦았다.

98년 10월, 대통령취임후예 처음으로 방일했을 때, 당시 오부치 게이조 수상과 21세기를 향한 신 파트너쉽의 구축을 선언한 것은 기억에 새롭다. 현실에는 역사문제를 둘러싼 한일간의 골을 메우지 못했으나 지금도 한일간 표어로 되어 있는 '미래지향'적 관계구축을 향한 계기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대통령 퇴임 후에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민족과 국민을 위해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노구를 이끌고 내외 강연을 계속하는 모습은 왕년의 투사를 방불케 했다. 군정으로부터 민주화까지 바뀌는 한국현대사 속에서 정말로 시대가 부른 풍운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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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8/19 [16:36]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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