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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친, 한국축구에 눈물 흘리다 (10부)
일본 여친에게 프로포즈 받다 (10부)
 
박철현 기자
(이 글은 연재물인 관계로 처음부터 읽지 않으시면 이해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점 양해바랍니다.)

오타쿠(1부)
헌책방(2부)
걱정(3부)
이별(4부)
한국남자(5부)
바둑(6부)

동거(7부)
관계(8부)

옛남자(9부)

 
"응. 지금 비자 나왔어"

6개월이 지난 3월의 어느 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다니던 일본어학교의 비자를 6개월 연장했고, 그 소식을 아내에게 가장 먼저 알렸다.

게임회사에서는 외국인을 고용해 본 적이 없다며, 아르바이트니까 일단 학교비자로 어떻게 안되겠냐고 말을 해 왔다. 게임제작 일에 서서히 적응해 갔던 나는, 이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는 적어도 일본에 있고 싶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일본에 있고 싶었던 이유에 '아내'는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결혼은 생각치도 않았다.

 
팔팔한 20대중반이었던 난, 결혼은 30세가 넘어서 해야하는 것이라는 근거없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고, 또 비자문제로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아내와는 충분히 원거리 연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3월의, 6개월 취학비자 연장은 전적으로 게임프로젝트를 끝까지 하고 싶다는 욕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나에게 화가 났다. 아니 불안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서 아내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었다.

"그때 사실은, 어이가 없었어. 결혼을 30대에 한다면 연애를 적어도 5년은 해야 한다는 말인데,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었거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오빠같은 사람을 5년, 아니 그 이상 잡아둘 수 있는 매력이 나에게는 없다고 봤거든. 뭐? 오빠하고의 원거리 연애? 풋. 그냥 웃고 말께."

그래서였던 걸까. 아내는 사귄지 4개월만에 처음으로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기울였다. 한국어 교재를 샀고, 한글의 원리를 깨우치고선 혀를 내둘렀다. 원래 중국문학을 전공했던 아내는 자주 한국어를 중국어에 비교했다.

"한국어는 발음원리도 그렇고, 글자를 쓰는 방식, 단어등이 아주 간결한 걸. 4성때문에 골치 썩힐 일도 없고, 모든 걸 외워야 할 필요도 없고. 정말 편한 문자야. 만든 사람 천재인 것 같아"

실제 아내는 2시간만에 한글읽는 법을 마스터했다. 그것도 m역 북쪽출구 쪽의 꽤나 고급스러운 야키니꾸점 k에서 갈비를 구워먹는 번잡스러운 분위기에서 이루어낸 쾌거다. 이때만 하더라도 아내가 머리가 좋은거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몇년후 한류붐이 불면서 한국어교실에 다녔던 일본인 직장동료 몇명이 비슷한 말을 했기 때문이다.

"박상, 요즘 한글 공부하는데, 이거 진짜 쉬워. 만/든/사/람  천/재/인/가/봐"

물론 아내와 동료들이 말하는 것은 한글의 읽는 방식에 한정된 이야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외국어 공부에서 반드시 찾아오는, 벽과 마주하게 됐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내는 그 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했다. 만난지 8년째에 결혼 7년차인 아내의 한국어 실력은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읽기만은 완벽에 가깝다.

언젠가 장난삼아 '꽥꾹쾅딱' 같은 발음하기 힘든 단어들만 모아서 종이에 쓴 적이 있었는데, 아내는 가볍게 읽어버리더니만 "너무 재미있는 발음이야!"라며 이렇게 물어 왔다.

"사전에 암만 입력해봐도 안나와. 이거 도대체 무슨 뜻이야?"

고개를 죽 빼고 상당히 진지하게 물어오는, 아내의 얼굴에다 대고 "아! 그거 장난친거야"라고 했다간 '손목후리기'가 들어 올지도 모르는 분위기였다. 어쩔 수 없어서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적당히 둘러댔다.

"계속 참다가 쾅하고 터져버린 것을 '꽥꾹쾅딱'이라 말해. 왜 웃음, 울음같은 것을 주욱 참다가 결국 못 참았을때 터져나오는 상황을 표현하는 단어야"
"아! 그렇구나! 너무 재밌는 말이다"


몹시 들뜬 아내는 즉시 조그마한 단어장에 이 표현을 써 넣었다.

그 후 민주당의 대통령후보선출 광주경선에서 고(故) 노무현 전대통령이 승리를 거두는 모습을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보고있던 내가 눈물을 떨구자, 아내는 조용히 위로해 줬다.

"오빠, 너무 '꽥꾹쾅딱'하지마"
"응?...아!...응...-_-"

 
물론 아내는 나중에 이 말이 없다는 걸 알았고, 나는 당연히(?) '손목후리기'를 당했다.

이 시리즈물 초기에 언급했듯이 아내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연애를 하면서도 '나'에게만 관심이 있었지, '국적'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런 아내가 서운하기도 했지만 또 이해할 수도 있었다. 왜냐면 그만큼 한국에 대한 일반의 인지도가 약했기 때문이다. 

 
▲ 아내를 사로잡았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   

철저하게 주관적인 내 느낌을 말하자면 한국은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일본사회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2004년 4월부터 8월까지 nhk에서 방송된 <겨울연가>를 통해 주류문화중 하나로 정착했다. (<겨울연가>는 원래 2003년 nhkbs2에서 방송되었지만, 2004년 nhk종합이 재방송을 하면서 한류붐을 불러일으켰다고 보는 게 맞다.) 

하지만 아내와 내가 만난 2001년이나, 아내가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2002년 3월만 하더라도 한국은 마이너 나라중 하나였다.

당연히 나때문에 접하게 되는, 한국에 관련한 것들은 아내에게 전부 첫경험이었다. 아내는 26년만에 처음으로 도쿄의 코리아타운 신오쿠보를 갔었고, 본격 한국김치는 물론 감자탕, 삼계탕, 설렁탕을 맛보고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러한 경험은 아내의 '신오쿠보는 웬지 무서운 곳'이라는 선입견이 사라지는 계기가 됐다.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오빠'다. 아내는 76년 2월 22일생인 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75년 8월 2일생이다. 아니라고 그렇게 말해도, 아내는 지금도 나를 '오빠'라고 부른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너, 일부러 오빠 소릴 듣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라고 물어오지만, 그게 아니다. 나도 몇번이고 아내에게 말했다. 난 너에게 오빠라 불릴만한 짬밥이 아니라고. 하지만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나에게 있어 '오빠'라는 말은 그 '오빠'라는 의미가 아니니까 내가 '오빠'를 '오빠'라고 불러도 아무 상관없어. 하하하"

그러니까 아내는 '오빠'라는 단어에 자신만의 독특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뭐, 나에게도 이런 단어가 있었다. 게임회사에서 상사에게 꾸중을 들을 때마다 '시바라쿠(당분간)'라는 단어을 외국인스럽게 강하고 허술한 엑센트를 동원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씨바라구, (사이) 어쩌고 저쩌고..."

아내는 7년동안 나와 같이 살았지만, 여전히 한국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며칠씩 철야를 하고 집에 돌아와 졸린 눈을 비비며 민주당 경선을 꼬박 지켜보던 나를, 아내는 신기해 했다. 

 
아내는, 또한 우에노의 한국식당에서 처음만난 옆테이블의 한국인들과 마치 서로 패기라도 할듯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 것을 두근거리며 지켜봤다고 나중에 털어 놓았다. 압권은 그렇게 싸워놓고 마지막엔 웃으면서 건배하는 장면이다. 

전형적인 일본인이었던 아내로선 이해불가능한 영역이었을지 모른다. 사실 이 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프로포즈 시리즈를 쓰겠다고 했을때 아내는 "풋, 그런 걸 누가 보니? 남의 연애사가 뭐가 재밌다고..."라고 비웃었다.

그랬던 아내지만 역시 내용이 궁금하다. 본인이 주인공인 셈이니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내는 구글 번역 서비스의 도움과, 벽앞에서 비록 주저앉았지만 벽까지 가기 위해 노력했던 한글 실력을 총동원해 매주 일요일 아침 이 프로포즈 시리즈를 완독하고 저녁때쯤 다시 독자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재클릭한다. 처음엔 '누가 보냐'고 핀잔을 놓던 이가, 결국 이런 말을 내뱉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멋진 연애를 할 걸 그랬어. 깔깔깔"

모든 게 행복했다. 6월이 다가오고 월드컵이 시작되면서 아내는 신오쿠보 쇼쿠안도오리를 가득 메운 수천명의 붉은 악마들에 흥분했다. 스포츠라곤 집안의 영향으로 인해 야쿠르트 스왈로즈에만 관심이 있었던 아내가, 처음으로 스포츠가 주는, 광장의 흥분과 환희, 그리고 열기를 느낀 것이다.

쇼쿠안도오리에서 "한국 vs 스페인"의 8강전을 본 아내는 마지막 승부차기 순간 손을 모아 기도했고, 홍명보 캡틴의 마지막 골은 너무나 떨린 나머지 보지도 못했다. 홍캡틴의 두팔 벌린 세레모니, 터지는 환호성에 아내는 눈물을 쏟고 말았다.

"심장이 두근거리다 못해 터지는 줄 알았어. 거기 모였던 사람들의 마음을 전부 느낄 수 있었거든. 마치 전염된 것처럼. 오빠가 그토록 사랑하는,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긴장이 풀리면서 눈물이 흘러 내린거야. 꽥꾹쾅딱한거지. 하하하"

당시 나는 dd일보에 월드컵 관전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때 쓴 수많은 관전기 및 예상기 중에 개인적으로 "한국 vs 스페인" 관전기를 가장 좋아한 이유는, 아내가 '대한민국'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었다는, 어떻게 보면 상당히 이기주의적인 이유도 조금은 들어가 있다.

문제는 내가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비자가 2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도 있었지만, 이쪽 텔레비젼을 통해 비추어진 시청앞 광장의 붉은 물결과 그 에너지가 내 귀향본능을 자극한 것이다.  

 
뚜렷한 비젼따윈 물론 없었다. 하지만, 이들과 부대끼며 '대한민국'에서 뭐라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내 생각을, 아내도 눈치를 챘다.
 
아내는 8월 어느날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게임회사를 관두려고 해"라는 내 말과 거의 동시에, 동거축하기념으로 받은 아내의 가장 친한 친구 a가 선물한 유리컵을 실수로 깨버리고 말았다.

내 이름과 아내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컵이었다. (11부로 계속)



■ 11부 일본 여친 "오빠, 지금도 날 사랑해?"



■기자주 (2009/8/16 07:42)

어제 야스쿠니 신사 취재로 인한 피로가 심하게 누적되어 오늘 분량이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이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야스쿠니 신사에 관한 기사도 한번 읽어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야스쿠니 신사, 변함없이 무더운 여름
[현장중계] 정오, 밀려드는 참배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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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8/16 [07:34]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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