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8월 15일이 돌아왔다. 아침 6시, 주섬주섬 노트와 펜, 카메라를 챙긴다. 벌써 7년째다. 이날만 되면 습관적으로 새벽에 일어나 야스쿠니 신사로 향한다.
아침 7시, 도자이센 구단시타역 1번 출구 계단을 오르면 언제나처럼 일장기 깃발아래 "지나인(중국인), 꺼져버려!"를 외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중국이 티벳, 신장위구르, 내몽골등에서 벌이고 있는 타민족 동화정책, 혹은 '탄압'을 알리는 팜플렛을 행인들에게 나눠준다.
팜플렛에는 '재일조선인 참정권 반대', '중국 후진타오의 만행', '북한 핵위협', '개헌', '북방열도/독도(팜플렛에는 '다케시마'라고 씌여져 있음) 탈환' 등도 적혀있다. 올해는 "민주당에 정권을 맡겨선 안된다"는 팜플렛도 추가됐다.
▲ 2009년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 ©jpnews | |
구(旧)일본 육군을 창시한 오오무라 마스지로의 거대한 동상을 지나 매스컴의 접수를 받는 사무소로 갔다.
원래 야스쿠니 신사는 보도규제가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 아니 2006년까지 없었다. 물론 본전과 참집원, 그리고 정치가들이 들어오는 도착전 등은 허가를 받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었지만, 그외의 경내 및 기념관은 누구라도 자유롭게 촬영할 수 있었다.
이것이 2007년 4월 중국출신의 리인(李纓)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작품 "영화 야스쿠니" 때문에 엄격하게 변했다. "영화 야스쿠니"가 올해 8월 15일 광복절에 맞추어 한국에서도 개봉됐다고 하는데,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는 상당히 잘 만들어진 영화다.
'자극'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부족할지 모르겠지만, 많은 이들이 "영화 야스쿠니"를 꼭 봤으면 할 정도로, 이 영화는 야스쿠니 신사를 둘러싼 다양한 측면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는, 내가 지난 6년간 매년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찾았을 때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영화적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그 안에 등장하는 우익활동가들의 초상권 침해 및 인터뷰이들에 대한 무분별한 촬영, 또 그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일본도를 만드는 장인 카리야 씨를 속인 의혹, 그리고 작품의 배경이 된 야스쿠니 신사 경내의 촬영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것등 작품 외적인 부분에서 수많은 문제를 낳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야스쿠니 신사는 2007년 8월 15일부터 경내촬영 사전허가제를 시행했다. jpnews는 미리 취재신청을 해, 경내촬영 허가를 받았다.
아침 7시, 사무소 접수대의 50여명이 넘는 사전등록자 명부에는 내 이름도 적혀 있었다. 주욱 훑어보니, 외국인인 듯한 이름은 나정도 밖에 없었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오늘도 야스쿠니 신사에, 사전취재신청을 한 한국 매스컴은 없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 한국 매스컴의 야스쿠니에 대한 관심은, 사실 없다고 보는 게 맞다. 2006년 8월 15일 고이즈미 당시 총리가, 85년 나카소네 총리에 이어 21년만에 현역총리로 공식참배을 했을 때 그렇게 난리를 피웠던 한국 언론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만의 것이 아닌데도 그렇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물론 도쿄도겠지만, 야스쿠니 안에는 우리 선조들의 '일본식' 이름이 합사되어 있다. 여전히 태평양전쟁유가족협의회는 합사취소를 요구하며, 올해도 지난 8월 8일 야스쿠니 반대행동 집회를 가졌다.
야스쿠니에서 느끼는 감정은 각양각색일테다. 처음 이곳을 찾아왔던, 그러니까 2003년 8월 15일 나는 '흥분'을 느꼈다. 내가 2년간 살았던 일본사회와 8월 15일의 야스쿠니 신사는 전혀 달랐다. 그곳에는 '무언가'가 농축되어 있었고, 그 '무언가'는 한마디로 정리하기 힘들었다.
▲ 태평양전쟁 당시의 일본군가를 몇시간 동안 부른 태평양전쟁 참전용사들 © 박철현 / jpnews | |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그때 신문(神門)으로 들어가는 입구 앞의 가이엔휴게소에서 말을 걸어왔던 80대의 태평양전쟁 참전용사는 내가 한국인임을 밝히자 "나와 정말 사이가 좋았던 전우중에 조선에서 징용되어 온 이가 있었다"며 눈물을 보였던 반면, 또다른 80대는 "한국은 도대체 왜 그러냐?"며 훈계를 했다. 또다른 30대 청년은 괜히 '미안'해 하면서 120엔짜리 캔커피를 뽑아 주었다.
내가 야스쿠니에서 느낀 '흥분'은 이들의 눈물, 훈계, 캔커피가 아니라 거침없는 '행동'에 대한 반응이었다. 8월 15일의 야스쿠니는 거짓이 없다. 우익들은 과감히 욱일승천기를 들고 활보하며, 전학련류의 좌익들은 과감히 정문으로 돌진한다. 참배객들은 눈치보는 일본의 정치인들을 비난하고, 한국과 중국의 반일감정을 못마땅해하면서 한국인인 나를 설교한다. 또 야스쿠니에는 있지만, 참배하지 않는 이들은 그들을 대신해 나에게 '사죄'한다.
야스쿠니는, 그래서 솔직하지만 복잡하다. 다양한 생각과 가치가 충돌하는 곳. 올해 2009년도 그랬다. 8시 29분과 40분 고이즈미, 아베 전(前)총리대신의 참배가 끝날 때쯤 신사 바깥에서 집회소리가 들려왔다. 좌파적 시민단체의 집회다. 소리만 듣고도 좌익과 우익의 집회를 분간할 수 있다. 단적으로 "그만두라"는 말을 할 때 좌익단체는 "야메로(やめろ)!"를 외치지만 우익단체는 "스루나(するな)!"를 외친다. "야메로"가 빈번하게 들리니 좌익들의 집회다.
좌익이 행진하면 필연적으로 우익과 충돌한다. 호세이대학 쪽에서 들려오니 언제나처럼 이이다바시(飯田橋) 스크램블 교차로 파출소앞에서 한바탕 싸움이 벌어질테다.
30분후, 정확히 그 장소에서 우익이 좌익을 덮친다. 경찰기동대는 필사적으로 이들을 막는다. 올해의 우익 파수꾼은 가두선전 행동우익의 중견 '일본국정당'. 기본적으로 아침 7시에 먼저 참배하는 이들이 '파수꾼(見回り, 미마와리)'역을 맡는 게 전통이다. 나중에 휴게소에서 만난 일본국정당의 젊은이는 "새벽 5시에 집결해서 7시 10분에 참배를 올리고 팀을 나누어서 주변을 감시하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 야스쿠니 신사를 반대하는 거리행진을 하는 좌익성향의 시민단체에 돌격하는 우익구성원을 기동대가 막고 있다. © 박철현 / jpnews | |
10시. 일본 최대의 우익집단 '일본회의'가 주최하는 제23회 전몰자추도중앙국민집회가 열린다. 집회의 마이크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하나둘씩 일반 참배객들이 본전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한여름의 찜통더위를 1시간여동안 참아가며 기어코 참배를 마친다.
내가 만난 참배객들은 거의 대부분이 민주당을 믿을 수 없다고, 자민당에 표를 넣을 것이라 한다. 야스쿠니만의 여론이다. 세간은 이미 민주당 정권 탄생을 확정적으로 보고 있다. 어떤 이는 참배를 하러온 고이즈미 준이치로에게 "총리 아리가또!"를 외쳤다. 하지만 지금 일본의 총리는 아소 다로씨다. 이런 괴리도, 야스쿠니 신사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2009년 8월 15일 야스쿠니의 여름은 여전했고, 내년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다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쨍쨍함을 자랑할 것이다.
그리고 2010년 8월 15일, 나역시 변함없이 카메라와 펜, 그리고 노트를 챙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