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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대만 원주민, 독일인이 말한다
[현장] "동아시아에서 바라본 야스쿠니", 무엇이 문제인가
 
김현근 기자
아소 총리가 오는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기로 했다.
 
아소 총리는 수상관저에서 참배여부를 묻는 기자단의 질문에 "국가를 위해서 고귀한 생명을 바친 사람들을 정쟁(
政爭)의 도구나 신문 보도의 재료로 삼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정치나 매스컴의 소란으로부터 멀리 거리를 두는 것이 마땅하다. 야스쿠니는 가장 조용하게 추도를 하는 장소다"라고 답했다.

총무상으로 재직중이던 지난 2005년 4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적이 있었던 아소총리의 이런 의사표명은 다가올 8월 30일 총선거를 앞두고, 신사참배가 외교적 마찰 등 선거에 그다지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는  고이즈미 전 수상때도 그렇듯이 정부 각료인 총리의 공식참배여부에 따라 일본 국내 뿐 아니라 한국,대만,중국을 뒤흔드는 문제로 급부상할만큼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지난 8월 7일 일본 변호사회관에서 '야스쿠니 신사 합사'에 관한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번 심포지엄의 의의는 '그 동안 논의되어온 일본 내 문제( a급 전범 합사 및 대체 추도시설 건립)을 되풀이하기 보다는 한국, 대만인 입장 또한 독일인의 입장에서 '야스쿠니 신사의 본질'을 논했다는 데 있다.

▲ 심포지엄     ©jpnews

특히 대만원주민 출신인  치와스아리 씨의 강연은 대만사람들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환영했다는 통념을 깨는 강연이어서 주목을 모았고, 도쿄대 박사과정중인 독일인 스테판 제이벨 씨는 '전사자 추도를 독일은 어떻게 하는지'를 발표함으로써 일본과 독일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jpnews는 이번 심포지엄을 취재,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우선 대만의 사례를 보자.

 ■ 대만인은 일본 식민 지배를 환영했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압도적인 화력으로 승리를 거두자 청나라는 대만을 95년 일본으로 할양한다. 이때부터 5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대만은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았다. 흔히 대만인들은 일본의 식민통치를 환영했으며 지금도 일본에 대한 호감이 남다르다고 알려져 있으나 대만 원주민의 입장은 그렇지 않다.

대만 총독부 통계에 의하면 1896년부터 1920년 사이 원주민을 토벌하기 위한 전투는 138회에 달하며 그 와중에 7080명이 살해당했으며, 4123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1920년 통계로 추측해보면 원주민 인구는 총 13만명으로 사상자 수는 총인구의 1/12 정도에 달한다.

대만 원주민 "야스쿠니 원주민 합사는 죽어서도 영혼을 가두는 꼴"  


▲ 치와스아리 씨     ©jpnews
이날 대만 원주민 후예로 강연에 나선 치와스아리 씨(대만 입법원 의원)는 일본군이 대만 원주민의 목을 베는 사진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 대만 원주민이 어떻게 일본군에 편입되었으며 어떤 식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일본의 대만 원주민 정책은 무력에 의한 점령, 강제 이주가 그 신호탄이었다. "근대화된 항공기,대포 등을 이용해 부락을 공격해 저항하는 부락을 모두 태웠으며, 생존자는 강제 이주를 시켜 한곳에 모이게 했고,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으로 에워싸 엄밀한 감시에 두었다"고 그녀는 설명했다. 이후 일본의 대만 식민지화 최대 성과는 천황지배에 충성을 다하는 '황민'을 대량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치와스아리씨는 이야기했다.

그녀는 "태평양전쟁 종결 직전 원주민 아동의 의무교육 보급률이 86.4%에 달하고 있다고 하고 있으나 그 진상은 아이들 교육의 교사가 일본인 경찰관이었다는 것과 수업이 주로 일본어 공부였는데 그 이유가 일본의 명령을 잘 알아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며 일본측 선전논리의 허구성을 걷어냈다.

태평양전쟁시 일본은 원주민을 중심으로 다카사고 의용대(高砂儀勇隊)를 조직했는데 이 의용대는 일본병사의 잡일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전쟁이 극에 달할 무렵 제1선의 전투에 투입시켰다. 1942년부터 1945년 사이에 출정당한 의용대는 약 1만명에 이르고 그 중 반 이상이 사망했으며 생존자는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대만총독부는 또 항공정대(航空挺隊)라는 이름으로 원주민을 가미가제 특공대와 같은 임무로 조직한 뒤 1944년 10월, 11월 500명을 차례로 필리핀에 투입시켰다.

1944년 10월은 미군이 필리핀을 탈환하고자 레이터섬을 중심으로 일본군과 일전을 벌인 '레이터 해전'으로 유명한 시기다. 일본은 불리한 전황을 어떻게든 만회하고자 쉽게 동원할 수 있는 인적자원에 손길을 뻗친다. 일본군령부는 생존확률이  0%인 가미가제 특공대를 필리핀 전선에 처음으로 내보내기 시작한다. 가미가제 특공대로 불린 이들은 일본인으로 편입된 모든 식민지청년에게도 적용되었다.

결국 항공정대를 통해 필리핀으로 떠난 대만 원주민 중 살아돌아온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대만 원주민들의 부락토벌때 전사한 일본군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강제로 일본군에 편입된 원주민 전사자가 1960년 합사되게 된다.
 
즉, 가해자와 피해자의 영혼이 일본군 전사자라는 이름으로 함께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하게 된 것이다.  

▲ 심포지엄에 참가한 대만 원주민 후예들, 현수막에는 "다카사고 의용대 야스쿠니 신사 합사를 그만두라"고 적혀있다.     ©jpnews

치와스아리 씨는 "생전에는 식민지배를 당하고, 노예노동을 강요당한 끝에 죽어서까지 그 영혼이 야스쿠니 신사 안에 가두어졌다"고 하면서, "그동안 한국, 오키나와, 대만이 같이 싸워왔다. 앞으로도 단결해서 침략에 반대해서 같이 싸우자"고 힘주어 말했다.

그렇다면, 일본과 같이 제2차세계대전 동맹국이었던 독일은 전사자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 것일까
 

■ 독일: 전몰자와 세계 폭력지배의 희생자를 모두 애도

▲ 독일 스테판 씨     ©jpnews
이날 발표에 나선 독일인 연구자 스테판 제이벨 (도쿄대 종합문화연구과 박사과정) 씨는 "전후 독일에서 전사자는 '영웅'이 아닌 '전쟁과 폭력지배의 피해자'로서 추도된다"고 발표했다.

 "독일에서 전사자를 추도하는 곳 중 '신위병소(neue wache)'라고 하는 곳이 있는데, 추도명문에는 홀로코스트 등의 희생자가 열거되며 독일의 가해책임을 명확히 한 뒤, 독일의 전쟁희생자(군인과 문민)에 대해서 언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독일인 전원이 '희생자'였는지, 누가 가해자이며, 누가 희생된 것인지 이 명문은 분명하지 않으며, 이 애매함 때문에 '신위병소에서 전쟁범죄자와 홀로크스트 등의 희생자가 동등하게 취급되고 있다'는 비판이 강하다고 한다.
 
▲ 스테판씨가 자료화면으로 제공한 독일 전몰자 추도장소인 신위병소     ©jpnews

독일에서는 전몰자에 대한 참배를 어떻게 하는가

독일은 1993년 이후 매년 11월 제 3일요일을 국민애도의 날(volkstrauertag)을 두고 국가차원이나 각 지방에서 전몰자에 대한 추도가 행해진다. 이날은 독일인 전사자 뿐만 아니라, 적대국의 전사자, 나치 박해에 의한 피해자도 추도 대상이 된다.
 
즉, 전몰자와 세계 폭력 지배의 희생자를 애도하는 날인 것이다.  이러한 독일의 추도 방식은 "국가로서 그 전쟁책임을 인정하는 독일에게 자국의 전사자를 추도하면서 유럽제국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독일은 이렇게 전후 유럽제국과 화해를 실현한 뒤 국제사회나 동맹국과 협조하에 수행하는 전쟁의 전사자 추도의 방법에 대해서 외국으로부터 비판받는 일은 없는 상황이다.
 
그는 이러한 독일과 달리, 일본은 "야스쿠니 문제'에 따라 옛 적국이나 옛 식민지와 전사자 추도에 대해서 공통의 인식을 만들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자위대의 해외파견 후 발생한 새로운 전사자를 일본헌법의 상징인 '천황'을 위해 생명을 바친 것이 될 경우 아시아 여러나라와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독일이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과거 전쟁의전사자 추도에 대해 옛 적국의 이해를 얻어냈기 때문에 그 후 새로운 전쟁의 참가가 가능하게 되었고, 이는 "어떤 의미에서 독일은 과거 청산에 너무 성공을 한 까닭에 유럽 내부가 아닌 해외에 군대를 파견할 때 제어장치가 없다는 게 문제"라고 스테판 씨는 말했다.

▲ 심포지엄에 참석해 진지하게 강연을 듣는 한 참가자     ©jpnews

 ■ 한국 "창씨개명된 채 합사는 말도 안되는 일"

한국측 발표로 나선 남상구 연구원(동북아역사재단)은 야스쿠니 신사 합사문제에 대하여 이렇게 정리했다.

"한국인에게 야스쿠니 신사 문제의 본질은 합사되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합사된 점이다. 야스쿠니 신사 합사를 취소하라는 것은 죽은자의 인권을 되찾는 일이다.

특히 성과 이름은  한국인에게 대단히 중요한 것인데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사람들은 일제시대에 창씨개명을 강요당한 뒤 그 이름 그대로 합사가 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다.

더욱이 이들이 전쟁에 참여한 것이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강제연행이 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에 소속되어 싸웠다는 이유만으로 '일본을 위해서'라고 뒤바꾼뒤 야스쿠니 신사에 위패를 두는 것은 말도 안되는 논리다."

▲ 강연 중인 남상구 연구원     ©jpnews

그는 아울러 "이  문제를 해결해야하나, 죽은자가 할 수 없으니 살아있는 우리라도 하겠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발표를 끝냈다.

 ■ 일본 오키나와 "1살 먹은 아이까지 야스쿠니 신사 합사라니..."

한편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벌어진 오키나와 주민들 입장은 다음과 같다.

 
이번 발표에 원래 참석하기로 한 이시하라 마사이 씨(오키나와 국제대학 교수)가 태풍 때문에 불참하게 되어, 야노 서기장이 발표문을 대신 읽었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에서 최대의 지상전에 휘말린 일반주민이 전쟁터에 동원된 '특수상황'이라는 이유로 전투 참가자로 인정, '준 군속'으로 취급되어 '전상병자 전몰자 유족' 적용을 받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것이 문제다. 즉 오키나와 전에서 전몰한 1세 미만의 아기를 포함 유아부터  노인까지 '전투 참가자'로 야스쿠니 신사의 제신으로 합사되어 천황의 친배를 받게 되었다.

즉, 군사 기밀 유출 방지를 명목으로 한 군작전으로 친족, 친구, 지인끼리 서로 죽이고 죽은 행위가 군사행동으로 정의되었으며, 이런 끔찍한 죽음이 전투참가자로서의 명예로운 전사(戦死)로 호명, 유족 연금까지 받게 되었다. 이는 집단자결이라는 군대용어를 1세 미만 아기까지 포함한 주민에게 적용시킴으로써 일본군의 범죄에 면죄부를 주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다.

이에 2008년 3월 19일, 오키나와에서도 '야스쿠니 신사 합사 취소'을 요구하며 5명의 원고가 국가와 야스쿠니 신사를 상대로 제소한 상태다.

■ 동아시아 관점에서 야스쿠니 문제를 보니...

 
심포지엄 회장에는 대만 원주민 후예들이 옷을 맞춰 입고 참가해 눈길을 끌었으나, 대다수는 일본인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 심포지엄에 참석한 일본인들     ©jpnews

이번 심포지엄의 핵심은 "원하지 않은 전쟁에 끌려가서 죽음을 당한 것도 억울한데, 일본군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패를 같이 두는 행위를 그만두라"는 것이다. 
 
내년에는 독일에서 열릴 예정인 '야스쿠니 국제 심포지엄'. 
야스쿠니 문제는 일본의 역사인식과 직결되는 문제로 하루이틀 해결될 일이 아니다. 


다음은 심포지엄이 끝날 무렵 사회자가 치와스아리씨에게 강연 후 소감을 묻자 밝은 목소리로 답한 내용이다. 이 코멘트가 향후 야스쿠니에 대해서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나가야하는지 그 해답을 알려주는 지도 모른다.
 
"저는 독일이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인정한 것에 감명을 받았으며, 용감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반대를 위해 7년간 싸워왔습니다. 물론 그 동안의 싸움, 항의가 그 나름의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싸움이 굉장히 긴 싸움이 될 것이며, 만약 일본정부가 인정하지 않는다하더라도 우리는 계속 싸울 것이며 우리세대에 해결이 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세대에서 해결이 안되면 우리 아이들이 계속 싸워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들이 자기자신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일본에 올때마다 보다 많은 원주민을 데리고 올 생각입니다.
 
특히 일본사람들이 야스쿠니 문제에 관해 관심을 갖고 싸워주는 것에 대해 존경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건강하세요.감사합니다."  

▲ 치와스아리 (대만 입법원 의원)     ©jpnews
 
<끝>
 
 
◆ 주최자 간이 인터뷰 
 
 <야스쿠니 공동행동> 일본측 대표 우치다 마사토시(内田 雅敏) 변호사   

▲ 우치다 변호사     ©jpnews
- 이번 야스쿠니 공동행동 심포지엄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야스쿠니 공동행동은 2006년부터 시작되어서, 2007년 한해는 쉬었고,2008년 이어 2009년 올해 세번째다.
 
- 이번 심포지엄의 의미는?
우선 야스쿠니 신사 문제는 일본 헌법이 규정하는 정교분리의 원칙에 위배된다.

이 문제는 고이즈미 전 수상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면서 '수상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해도 되는가'하는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그 이후부터는 일본인들도 야스쿠니 신사문제를 헌법만의 문제가 아닌 역사문제로 인식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한국과 대만의 경우 신사에 합사된 것에 대해 취소하라는 요구가 있고, 일본 내에서는 태평양전쟁시 유일하게 지상전이 벌어진 오키나와의 경우 '군,관,민'의 힘을 합쳐서 싸웠다고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내년은 한일 강제 병합 100주년이 되는 해이고 일본에서 65년전 야스쿠니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태. 일본 사회에서도 8-90년대는 전후보상 등을 이야기했으나 야스쿠니에 대해서는 별 이야기가 없었다. 이것이 겨우 64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야스쿠니는 역사문제라는 것을 총리의 참배 문제 후 일본인들이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흔히 1945년 8월 15일 전과 후가 분리되어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야스쿠니 문제를 놓고보면 아직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단순히 a급 전범을 분사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일본이 과거 역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이 인식의 문제라 할 수 있다.
 
- 즉 8월 30일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된다고 했을 때 a급 전범 등을 분사한 뒤 새로운 추도시설을 만든다고 하는데, 그래도 마찬가지라는 뜻인가
그렇다. 야스쿠니 문제는 이제 단순히 합사냐 분사냐 이런 문제가 아니라 역사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야스쿠니  공동행동 행사가 내년에 독일에서 열린다. 이런 행사를 하는 이유는 일본에도 야스쿠니 문제를 제대로 마주보고 싸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다. 아울러 식민지 문제 등 그동안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야스쿠니를 마주보고 어떻게 해결할 지 모색할 생각이다.
 
 방일단 <한국 측 대표> 서우영 민족문제 연구소 기획실장


▲ 서우영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jpnews
- 한국에서 이번 행사 참여를 위해 얼마나 왔나

 한국에서는 정신대 연구소 이성순 소장님과  한국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이희자(66) 대표님 및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및 야스쿠니 풍자단, 연합동아리 대학희망 등 한 50명 정도 참석했다.
 
- 야스쿠니 신사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a급 전범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사에 한국인이 무단합사되어 있는 것 자체가 문제고, 일본 내에서도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되는 문제다.
 
이에 2006년도 합사 취소 소송을 벌이는 등 여러가지 활동을 해오고 있는데, 야스쿠니에는 일본의 천황제 문제, 왜곡된 역사 인식 등 일본사회의 본질적인 문제가 들어가 있다.
 
- 한국에서 야스쿠니 촛불 공동행동에 참가하는 의의는 무엇인가
야스쿠니 문제는 일본사회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 내부의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보편적 상식에 호소해야하며 국제연대의 힘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본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힘을 합치기 위해 일본에 온 것이다.

- 한국내에서의 야스쿠니에 대한 생각은 어떻다고 생각하는지
한겨레 신문이나 한겨레21과 매주 기사나 캠페인 등을 하면서 알리고 있으나 '한국인이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어 있는 사실 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한국사회에도 많이 알려내야 한다.
 

그 외 심포지엄 이모저모
 
▲ 사회는 우치다 변호사가 맡았다     ©jpnews
▲ 강연중인 스테판   ©jpnews
▲ 심포지엄     ©jpnews
▲ 심포지엄     ©jpnews
▲ 심포지엄     ©jpnews
▲대만 원주민 후예 ©jpnews
▲ 옷을 맞춰입고 온 것이 눈에 띄었다     ©jpnews
▲ 심포지엄     ©jpnews
▲ 심포지엄 참석    ©jpnews
▲ 야스쿠니 풍자예술단, 한국     ©j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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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8/12 [11:27]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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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게스트 하우스에서 지내면서 여행한적이 있습니다 김삿갖 09/08/12 [17:39]
대만 젊은이들과 어린애들도 많더군요, 하나같이 일본을 숭배하다시피합니다. 비판의식이 없는 대만젊은이들을 보면서 한심하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수정 삭제
대만은 정체성의 혼란이 많은나라.. 몽상가 09/08/12 [19:50]
당연한거아님? 어짜피 대만은 정체성없는 대륙의 국가.. ㅉㅉ 수정 삭제
대만 원주민도 일부만 일본을 싫어합니다. 시민 09/08/12 [19:57]
대만 원주민중에서 일본에 초청해 공부도 시켜주고 여러모로 호의를
보이지만 대만에 돌아간 후에 오히려 원주민들을 선동해 일본인마을을
공격합니다. 이때 부녀자 아이 할것 없이 살해합니다,그후 일본군은
대대적인 토벌을 하죠, 때문에 이 토벌을 당했던 일부 원주민만 일본에
악감정이 강합니다. 반일 활동에 참가하는 대만인은 대부분 이 부족 출신이
많더군요, 그외의 대만인은 대부분 일본에 호의적이라고 보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수정 삭제
불가사의 09/08/12 [20:12]
그러나 일본은 세계에서 존경받고 있다.이해할 수 없다. 수정 삭제
원주민 토벌에 대해 검색해 보았습니다. 시민 09/08/12 [20:49]
http://blog.daum.net/msh6883/7258845 수정 삭제
미국이 일본을 원자폭탄으로 완전 초토화 했었어야 했다. 일본패망 12/02/07 [13:03]
미국이 일본 본토 대부분을 원자폭탄으로 초토화 해서 핵의 무서움과 전쟁의 공포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줬어야 됐는데, 고작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너무 아깝다.
핵폭탄으로 도쿄 초토화 했고 천황도 죽여버렸으면 지금의 일본이 저렇게 나오지는 않았을거다.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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