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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요의 대가, 일본서 눈물 흘린 이유?
인간문화재 이춘희 선생, 이국땅에서 민요 부르는 아이들에 감동하다
 
신소라 기자
"이춘희 선생님께. 저의 노래를 봐주셔서 엄청 고맙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본 순간 엄청 기뻤습니다"
 
도쿄에서 우리 민요를 배우고 있는 초등학교 3학년 은찬이가 경기민요 예능보유자인 인간문화재 이춘희 선생님께 건네준 쪽지의 내용이다.
 
지난 25일 도쿄도 내에서 열린 '한국 국악 일본보급협회' 설립 기념 축하연에 참석하기 위해 도쿄를 방문한 인간문화재 이춘희 선생을 만난 곳은 오쿠보의 작은 민요연구원이었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한국 국악 일본보급협회' 설립 기념식을 마친 후 한국으로 돌아갔어야 할 이춘희 선생이, 일본에서 우리 민요를 배우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려고 일부러 일정을 미뤄 하루 더 머물기로 한 것이다. 

이춘희 선생의 제자이자, 이곳에서 아이들에게 직접 경기민요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인 김정희 원장의 경쾌한 장구 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노래가 시작됐다.
 
경기민요 중에서도 전문가들만이 부를 수 있다는 12잡가인 유산가, 선유가, 집장가... 이춘희 선생이 곡명을 대는 족족 그 작은 몸에서 우리 민요의 구수한 가락이 뽑혀 나온다. 하늘을 향해 올린 고사리손이 자연스레 장단을 탄다.  
 
그 모습에 이춘희 선생은 '어머나, 어머나'를 연발했다. 

▲ 우리 민요를 부르고 있는 아이들/김정희 민요연구원     © JPNews

 
윤세영, 최은찬, 최휘수, 박미나. 이들은 모두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로 저들끼리 있을 때는 일본어가 편한 재일교포 2~3세대 아이들이다.
 
이들은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민요연구원에 오거나, 동경한국학교의 '특기 적성' 시간에 김정희 원장의 민요 수업을 들으면서부터 민요와 만나게 됐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민요'를 만난 아이들은 처음에는 낯설어했지만, 점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해 이제는 아예 '민요'에 푹 빠지게 되었다. 짧게는 반년에서 길게는 2년 가까이 민요를 배운 아이들은 '가요'보다 '민요'가 좋다고 당당하게 고백했다.
 
구구단도 못 외던 은찬이는 민요연구원에 다녀올 때마다 어른들도 어려워하는 민요를 한 곡씩 척척 외워 부모님을 놀라게 했다. 또, 노래방에 가서도 '경복궁 타령'을 부를 정도로 우리 민요 사랑이 대단하다.
 
색연필로 곱게 색칠한 '민요 파일'이 눈에 띄던 세영이는 소리가 비교적 잘 울려 퍼지는 목욕탕에 들어가 몇 시간이고 민요를 부르느라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허리를 곧게 펴야 소리가 흐트러지지 않고 바로 나온다"는 소리에 허리 뒤에 책을 받치고 있다가 자세가 흐트러져 책이 넘어지면, 책을 바로 세우며 자세를 바로잡는 아이들의 모습은 김정희 원장을 감동하게 했다.
 
김정희 원장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춘희 선생은 "한국말도 서투른 아이들이 어떻게 민요를 부르는지 직접 보고 싶었고,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잠시나마 아이들에게 경기민요를 전수해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실제 아이들을 만난 이춘희 선생은 칭찬 일색이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
 

▲ 무형문화제 제 57호 경기민요 예능보유자 이춘희 선생님     © JPNews
 

이날 수업을 받으러 온 학생은 4명의 초등학생 외에도 한 명이 더 있었다. 조금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함께 노래하고 있던 23살의 아가씨, 카네바야시 유코다.
 
"이제 저 아이 좀 봐주세요"라는 김정희 원장의 말에 모든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 그녀의 '유산가'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차랑차랑한 소리와는 달리 콧소리가 두드러지게 나왔다. 순간 이춘희 선생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김정희 원장은 안쓰러운 듯 그녀를 향해 연실 "힘을 빼"라며 일본어로 주의를 줬다.
 
이춘희 선생은 "저 아이는 힘을 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며 그녀에게 "엄마" 소리를 내어보라고 했다.
 
"엄마"
 
그녀가 작은 입술로 옹알거리듯 '엄마'라고 외치자, 이춘희 선생은 대번에 그녀의 소리를 따라한다. 문제는 입을 크게 벌리지 않은 것에서 발생한 것, 입을 크게 벌리지 않기에 그녀의 소리가 입 안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이에 이춘희 선생은 그녀에게 평소 입을 크게 벌리고 노래하는 습관을 들이라며, 어금니 사이에 젓가락을 끼고 연습할 것을 권해 주었다. 또, 혹여 여린 마음에 상처는 입지 않았을까 "목소리는 아주 좋은데, 그것만 주의하면 되겠네"라며 보듬어주었다.
  


▲ 우리 민요를 부르고 있는 카네바야시 유코(23)씨/김정희 민요연구원  © JPNews


일본인 어머니와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재일교포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카네바야시 유코(23)는 한국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그런 그녀가 민요를 배우게 된 것은 1년 전, 하네다 국제공항 신축 축하공연에서 김정희 원장의 민요를 들으면서부터다. 난생처음 들은 민요에 깊이 감동한 유코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김정희 원장을 찾아와 민요를 가르쳐달라 부탁했다.
 
당시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그녀를 위해 김정희 원장은 경기민요의 가사를 일일이 가타카나로 써줘가며, 그녀에게 민요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언어의 장벽으로 인한 숱한 갈등과 호된 꾸지람 속에도 민요를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유코다.
 
제일 맏언니인 유코의 실력까지 확인하고 난 후, 이들은 함께 몇 곡의 민요를 더 불렀다.  
 
"경기민요는 다른 소리에 비해 어려운 장르다. 소리를 다 퍼내 버리지 않고, 절제하면서 감정을 다 표현해야 한다. 담았다 내놓았다... 담았다 내놓았다 하는 호흡이 중요하다. 또한 소리가 우악스럽지 않고, 보드라워야 한다.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경기민요가 널리 퍼지지 못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이렇게 경기민요를 부르다니 놀랍고, 감격스럽다" 
 
 
▲ 아이들과 함께 경기민요를 부르는 인간문화재 이춘희 선생님 /김정희 민요연구원     © JPNews
 
한 차례 신명 나게 민요를 부른 이들은 함께 다과를 즐기며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인기스타를 만난 듯 사진을 찍기도 하고, 너도나도 사인을 받겠다며 줄을 서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이 사랑스러운 듯 이춘희 선생은 한 명 한 명에게 정성을 담은 사인과 메시지를 써줬다.
 
그런데 맏언니 유코가 보이지 않는다. 미처 사인 용지를 준비하지 못한 그녀는 또 멀찌감치 떨어져 쭈뼛거리고 있었다. 이에 이춘희 선생이 사인을 한 장 더 준비한다.  
 
"유코짱. 우리말로 소리하는 어려움 때문에 고생하지만, 훗날 좋은 날이 있을 거예요"
 
이춘희 선생의 메시지를 일본어로 설명해주자, 그 자리에서 와락 눈물을 쏟는 유코. 
그런데 그녀가 눈물을 쏟자, 이번에는 이춘희 선생도 눈물을 훔친다. 
 
"지금 저 아이가 얼마나 힘들까. 그러나 나 또한 '삶'과 '죽음'을 오갈 정도로, 절박한 갈등을 겪었었다. 귀로는 들리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머리 깎고 산에 들어가 중이 될까 생각한 적도 있다. '내가 민요를 해 온 시간 동안 다른 기술을 배웠다면'하고 후회한 적도 많다.
 
나는 결정적인 순간에 제대로 하지 못했다. 숨이 차고 떨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떨린다는 것은 자신이 부족한 게 많아서 오는 것이다."

이춘희 선생은, 이국땅에서 만난 어린 민요 후배들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해주었다. 
 
이선생은 그저 민요가 좋다는 이유 하나로 '민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소리는 기생이 하는 것이라고 여겨 아무런 비전도 기대할 수 없었다. 당연히 수입은 없는 반면, 레슨비는 기약 없이 들었다. '도대체 이 길을 끝까지 간다고 해도, 무엇이 있을까', '과연 내게 재능이 있기는 한 것일까' 암담하기만 한 나날들이었다.
 
그런 그녀가 '국악이 내 길이다'라고 결심을 굳힌 건, 그녀의 스승이었던 안비취 선생이 1975년에 인간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그녀를 제 1 수제자로 받아줬을 때였다.

그런데 인간문화재의 '전수생'으로서 인정을 받으려면 문화재청에서 실시하는 시험을 통과해야만 했다. 또다시 돌아온 찬스 앞에 덜덜덜 떨고 있던 그녀. 스승과 제자는 안타까운 현실 앞에 서로 부둥켜안고 울 수밖에 없었다.
 
이춘희 선생은 그로부터 10년 후인 1985년, 첫 발표회를 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치명적인 단점을 극복하게 된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사생결단의 발표회를 열기로 한 것. 그녀는 당시 '이 발표회 때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대로 죽든가, 아니면 영영 이 바닥을 떠나자'고 단호한 각오를 했었다고 고백했다.
 
"이수만 사장이 보아를 키울 때 러닝머신에서 노래를 시켰다면서? 그런데 그 방법은 사실 내가 먼저 썼다. 러닝머신이 없던 시절, 나는 뜀박질을 하면서, 또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노래를 했다"
 
하루 6시간씩 5개월간 훈련이 계속됐다. 처음에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숨이 차고 힘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훈련을 통해서 비로소 그녀는 떨지 않게 되었고, 처음으로 '명창'이라 인정 받게 됐다.
 
"그러나 대회에서 떨어져도 봐야 한다. 떨어진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 또한 중요하다"며 실패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소리의 길을 계속 갈지, 이를 바탕으로 또 다른 길을 갈지 아직은 알 수 없으나, 어떠한 길을 가든 소리를 한 것이 큰 도움이 되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만큼 우리의 소리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고.
 
그리고 약속했다.
 
"인간문화재로서 나의 사명은 국악인들을 더욱 많이 배출할 수 있도록 후배를 양성하는 일이다. 또, 그 지역에서 국악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국악을 배우기 위해 서울에 오지 않도록, 각 지역에서 지방색을 살린 국악이 발전할 수 있도록 힘쓰는 일이다.
 
이 아이들이 대학을 갈 때가 되면, 이곳에도 '국악과'가 생겼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한국 국악 일본보급협회'가 힘쓸 것이다"
 
▲  지난 25일 도쿄도내에서 열린 '한국국악일본보급협회' 설립 축하연   ©JPNews
 
 
▲  지난 25일 도쿄도내에서 열린 '한국국악일본보급협회' 설립 축하연      ©JPNews


'한국 국악 일본보급협회'는 일본 내 우리 국악을 더욱 쉽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설립된 단체로 나종일 전 주일한국대사를 주축으로 일본 내에서 활동 중인 국악인들과, 국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가 돼 지난 10월 1일 창단됐다.  
 
이들은 일본에서 국악을 즐길 다양한 기회를 마련하고,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국악인들을 지원하게 된다. 

이춘희 선생은 "일본에서 우리 문화를 알리고자 동분서주한 국악인들의 수고를 잊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 국악 일본보급협회'가 설립된) 이런 날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까.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이춘희 선생이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는 '한국 전통민요협회'의 일본지부장을 맡고 있는 김정희 원장은 "(이춘희) 선생님께서 이국땅에서 고생한다며 일본지부의 연회비도 받지 않으신다. 선생님께선 아무것도 해주신 게 없다고 하지만, 사실 이만큼 오기까지 선생님의 정신적, 물질적 도움이 무엇보다 컸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한국의 전통을 알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정희 원장은 "'한국 국악 일본보급협회'가 생기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건 인식의 문제였다"고 밝혔다.
 
"실제 재일교포 1세대들은 돈 버는 데만 급급해, '한국의 전통'은 소외되기 일쑤였다. 즐기는 것은 좋아하지만, 이것을 이어나가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몇 년 전만 해도 이곳에서의 국악은 '잔치 때 노래 한마디 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일본 내에서 잊고 지냈던 우리 전통이 제자리 매김하기 시작한 것은 한류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대중문화로부터 시작된 한류 붐은 서서히 한국의 역사와 전통까지 그 관심 영역을 넓혔고, 이에 잊혔던 한국의 전통 요리, 전통 의상, 전통문화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에 일본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판소리, 무용, 기악, 민요 등 모든 국악계 인사들을 비롯한 국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국악 알리기에 나선 것이 바로 '한국 국악 일본보급협회'의 시초다. 
 
구구단도 못 외던 은찬이가 척척 외워 부르던 '12잡가', 한국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모르던 유코가 가타가나 독음까지 달아가며 부르던 '유산가'... 이들처럼 일본 내 더 많은 사람이 우리 민요와 가슴 벅찬 만남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본국악보급협회를 세운 것이다.
 
한편, 경기민요를 더욱 널리, 더욱 재밌게 전할 방법이 무얼까 고민하던 이춘희 선생은 한국 최초로 소리극을 만들어, 소리극 예술감독으로도 활약 중이다.
 
마지막으로 이춘희 선생은 순수한 한국의 소리로 만든 뮤지컬인 '소리극'을 일본의 무대에 올리고자 하는 바람을 전했다. 
 
"그간 우리 전통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뮤지컬은 많았지만, 그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서양의 오페라'로 전하고 있다. 어째 우리 전통의 이야기를 '서양의 오페라'로 노래하는가"

그녀가 국립국악원 예술감독으로 활약하며 만들어낸 '언문 외전-한글을 만나다'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 얽힌 이야기를 우리 민요로 엮어낸 소리극이다.

지난 10월 한국공연을 마친 '언문 외전-한글을 만나다'는 세종대왕이 민요를 듣다가 우리 소리의 이치(아음, 설음, 순음, 치음, 후음)를 깨달아 한글을 창제했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50여 명이 선보이는 민요, 판소리, 가야금 병창 등 우리 전통의 소리가 어우러져 오감을 만족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춘희 선생의 바람대로 이같이 다채로운 모습의 국악을 하루빨리 일본에서 만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 그리고 그것이 또 다른 한류에의 물꼬를 터주길 간절히 바라본다. 

▲ 우리 민요를 부르고 있는 아이들/김정희 민요연구원     © JPNews
 
 
▲ 유코 씨의 유산가 악보 /김정희 민요연구원     © JPNews


▲ 이춘희 선생님의 조언에 눈물을 글썽이는 유코 씨/김정희 민요연구원     © JPNews

 
 
▲ 이춘희 선생님의 사인을 자랑중인 최은찬 군/김정희 민요연구원     © JPNews

 
▲ 아이들에게 인기만점인 이춘희 선생님/김정희 민요연구원     © JPNews
 
 
▲ 김정희 민요연구원 원장님과 이춘희 선생님     ©JPNews

 
▲ 인간문화재 이춘희 선생님과 김정희 민요연구원의 학생들     © J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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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11/28 [11:55]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고마워요 ! ... 이웃 동네 11/12/01 [16:33]
민요에 관해서 아는거라곤
아리랑 한 소절 뿐이지만 ,
이국 땅에서 우리 민요를 보존 하고. 이어나가 고자
분투 하시는 분이 계시다는게
생소 하면서도 감동 이네요 ... ..

지금 처럼 물질만이 가치 기준이 되는 세상에서
외국에서 우리 근본을 알리고 보존 한다는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움이 많을지 ...

정부 에서 신경쓰고 배려 했으면 하네요 ! ... 수정 삭제
다들 예쁩니다 예쁘다 11/12/01 [23:42]
유코씨도 화이팅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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