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동 한 그릇’ 100원에 한 페이지
일본 사람들은 면을 매우 좋아하는 것 같다.특히 라면과 소바, 그리고 우동을 즐겨 먹는듯하다. 나 역시 일본에서 우동을 즐겨 먹고 있다. 우동을 먹을 때면 ‘우동 한 그릇’이라는 일본 이야기가 떠오른다.
홋카이도의 ‘북해정’이란 우동집에 어느 해 연말에 아주 가난해 보이는 엄마와 두 아들이 나타나서 우동 한 그릇을 주문한다는 이야기. 주인은 이들 모자가 눈치 채지 않도록 우동을 더 넣어 준다는 이야기다. 이들 모자는 해마다 연말에만 나타나 꼭 우동 한그릇을 주문한다.
그러다가 어느해 부터인가 나타나지 않게 되고 우동집 주인은 이들 모자를 기다리며 특별히 테이블 하나를 ‘예약석’으로 지정하고 기다린다. 그러나 이런 기다림에도 이들 가족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가 몇 년후 이들 가족이 나타난다. 10 년 만에 말이다. 두 아들 중 큰 아들은 의사가 되었고 작은 아들은 은행원이 되어 인생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계획을 한다. 그것은 어머니를 모시고 북해정에서 우동 세 그릇을 주문한다는 것.
나는 이 ‘우동 한 그릇’에 관하여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2002 년 월드컵 4강과 효순이 미선이의 죽음으로 전국이 뜨겁게 달아 올랐던 여름이었다고 기억된다.
rp(망막색소변성증)이란 병명으로 서서히 시력을 상실해 가고 있던 나는 그 무렵에는 활자를 전혀 읽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물론 인터넷도 컴퓨터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정보를 습득할 만한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내가 겨우 할 수 있는 일이란 라디오를 듣는 것과 텔레비전의 소리를 듣는 것뿐이었다.
그해 나는 개인적인 일로 친구네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어느 날 친구가 초등학교 2학년인 자기 아들이 너무 책을 싫어하니 나더러 책을 읽게 하란다. 그래서 친구 아들 녀석에게(이름이 ‘현’이다.) 책 한 권 가져 오라고 윽박질러 읽게 하였다.
현이가 가져온 책이 ‘우동 한 그릇’이었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너무나 유명한 그 이야기를 나는 그때까지 모르고 있었다. 친구 아들이 읽는 책에 내가 정신이 빠져 들었다. 연말에 우동가게에 나타난 초라해 보이는3 모자. 그런데 이야기는 그 3 모자가 다시 그 다음해에 우동가게에 들른 후에 그치고 말았다. 현이가 책장을 ‘탁’하고 덮었기 때문이다.
“삼촌, 나 이제 놀아도 되지요?”
“현아. 조금만 더 읽고 놀아.”
“재미없어요. “
그러면서 쪼르르 밖으로 달려 나간다.그냥 멍하니 친구 아들 녀석의 뒷모습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그렇다고 친구에게 아이들 동화책을 읽어 달라기도 뭣하고 해서 다음날을 기다렸다.
“현아. 책 읽을 시간이다. 어제 읽던 책 가지고 와.”
“삼촌, 그 책 재미 없어요. 나 다른책 읽을래.”
“삼촌이 100 원 줄께. 그 책읽어.”
이렇게 100 원으로 현이 녀석을 꼬시고 책을 가져오게 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현은 책을처음부터 읽어 나가는 것이 아닌가?
“현아. 어제 읽은 다음부터 읽어야지.”
“아니야. 책은 처음부터 읽는거야.”
“여기는 어제 읽었잖아. 어제 읽은 다음부터 읽는 거야.”
“싫어. 난 그냥 처음부터 읽을래.”
그리고는 다시 3 모자가 두 해에 걸러 우동 가게에 들어 온다.
그리고 어김없이 책장을 ‘탁’덮고 나가는 현이.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100 원에서 시작된 돈은 500 원도 더 넘게 뺏겼지만 ‘우동 한 그릇’은 매번 두번째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그렇게 나는 ‘우동 한 그릇’을 포기해야만 했다.
내가 ‘우동 한 그릇’의 3 모자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한 그릇이 아닌 세 그릇을 먹기 위해 다시 그 집에 나타났다는 이야기의 결말을 알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였다.
▲ 우동 한 그릇 / 일본어 원제는 いっぱいのかけそば 로 일본인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한그릇의 '가케소바'다. | |
■ 시각장애인들의 문자들
시각장애로 인해 제일 불편한 것이 ‘이동’과 ‘정보 습득’이다. 이 두 가지는 사람이 생활을 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이기도 하다. 정보 습득에서 문자의 해석이 중요한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겠다. 그럼 시각장애인들은 어떻게 문자에 접근하고 책을 읽을까?
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하는 문자에 대한 접근 방식은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점자(braille)’이다. 그러나 실제로 시각장애인들 중에 점자를 이용하는 비율은 높지 않다. 대략 1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나 같이 중도에 실명을 한 사람이나 시력이 남아 있는 사람은 점자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잔존시력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책을 확대하여 보거나(확대 도서) 확대경이나 확대독서기 등을 이용한다. 최근에는 바탕 화면을 거꾸로 하거나 명도를 바꾸는 등의 다양한 기능을 가진 확대독서기도 많이 있어 편리해졌다.
그러나 잔존시력이 있어도 글씨를 읽는 것에는 불가능한 사람이나 나 같은 중도 실명의 경우에는 책을 카셋트나 mp3 파일로 만든 녹음도서를 많이 이용한다. 최근에는 데이지(daisy)라고 하는 표준화된 녹음 도서도 만들어졌다. 데이지 포맷의 녹음도서는 기존의 녹음도서에서 가장 불편했던 이동을 자유롭게 만든 포맷으로 세계 표준화가 되어있다.
이 도서는 페이지나 섹션, 목록 등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컴퓨터의 화면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스크린리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텍스트 파일이나 워드 파일의 도서를 읽는 방법도 활용된다.
이밖에도 책의 모서리에 1츠 * 1츠의 크기의 사각형의 바코드(2차원 바코드)에 책의 내용을 집어넣고 이를 읽는 기기를 이용하여 읽는 방법도 있고 책을 스캐너로 스캐닝하여 음성으로 출력해주는 기기나 소프트웨어도 계발되어 있다. 나의 경우에는 한국의 도서의 경우에는 주로 컴퓨터를 이용해서 읽고, 일본 도서의 경우에는 데이지 도서나 점자 파일을 읽는 기기를 이용해서 책을 읽고 있다.
내가 독서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컴퓨터 화면을 읽어주는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우연히 서울의 한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프로그램을 배운 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처음 읽은 책이 조정래 작가의 ‘한강’이었다. 실명 전에 읽었던 태백산맥과 아리랑 이후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읽을 수가 없어서 너무 안타까웠던 ‘한강’을 프로그램을 배운 뒤 바로 구해 그날부터 3일만에 10 권 전부를 읽어 버렸다.
그러나 위와 같이 시각장애인들이 독서를 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각장애인들은 아직도 정보 접근에 대하여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우선은 거의 모든 형태의 비문자 도서가 출간 즉시 만들어지지 못하고 일정 기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과 일본 모두 마찬가지이다. 이미 출간된 책들중에 시각장애인이 원하거나 시각장애인용 도서로 바꾸는 기관(주로 점자 도서관이나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이를 점자 또는 녹음도서 등으로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는 저작권법 등에 의해서 제약을 받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시각장애인들이 제일 편하게 책을 읽고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텍스트 파일인데 이는 현행 저작권법에 의하면 모두 불법이 된다.
그래서 많은 한국의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는 불법인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거나 출판사의 암묵적 묵인하에 시각장애인들을 위하여 텍스트 파일을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이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여러가지 독서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를 이용하거나 정보에 접근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