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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정상회담] 다음은 남북정상회담?
북러정상회담 다음은, 북미정상회담인가, 남북정상회담인가?
 
변진일 (코리아리포트
김정일 총서기의 러시아 방문 일정이 마무리됐다. 9년만이자, 3번째 러시아 방문이었다.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결정된 합의 사항 중 세간에 발표된 것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부설 건뿐이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한반도 횡단철도(TKR) 연결문제, 북한이 힘을 쏟아온 나선 경제특구에 대한 러시아의 협력 문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또한, 파이프라인 부설에 협력하는 대신 북한이 러시아에 무엇을 요구했는지도 상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 밖에, 11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대러 채무문제나, 북한이 원하고 있는 요격미사일 및 수호이 전투기 등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지원 이야기도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 또한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서의 또 한가지 초점은 북핵 문제였다. 김 총서기가 6개국 협의에 조건을 붙이지 않고 복귀하고, 국제사회가 우려하고 있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실험 등 대량살상무기 실험을 잠정중단(모라토리엄)한다고 표명한 것만이 각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김 총서기의 발언에 대한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반응이나, 핵문제에서 러시아 측이 어떤 제안을 했는지 일절 언급이 없었다.
 
김 총서기는, 예정됐던 7월 방러를 연기하고 다시 방러를 추진해 열차로 4일에 걸쳐 회담장소인 울란우데로 향했고, 2시간에 걸쳐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회담했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가스 운송 사업 합의만으로는 성과가 너무 미약하다. 더구나, 6자회담으로의 무조건 복귀는 북한이 지금껏 공언해왔던 내용이다. 미국 등 관계국에게 있어서도 그리 매력적인 제안이 아니다.
 
'대량살상무기 실험의 잠정중단'도 마찬가지다. 지난 7월 보스워스 북한 정책특별대표와 김계관 외무제1차관과의 회담에서 이미 미국 측에 전달된 것을 재차 반복해 말한 것에 불과하다. 그것도 식량지원과 유엔 제재 완화 등이 조건으로 달려있었다. 한일 양국이 "새로운 것이 없다"며 냉랭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문제는, 북러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대응이다.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둘러싸고, 북미 양국은 2005년 7월, 2006년 12월, 2007년 2월, 그리고 2008년 12월 각각 6자회담을 실시했지만, 냉각탑의 폭파라는 약간의 성과가 있었을 뿐, 부시 대통령은 중요한 북한의 비핵화를 실현시키지 못한 채 임기를 마쳤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대량살상무기 실험의 잠정 중단을 약속했다.

 
지금까지 대포동 미사일 발사실험과 핵실험은 세트로 거의 동시에 시행돼 왔다. 2006년 7월에 대포동 발사가 있었고, 그 해 10월에 핵실험이 있었다. 그리고 2009년 4월 대포동 발사가 있었고, 그해 5월에 핵실험이 있었다. 지난해부터는 3번째 실험에 대비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 위치한 핵실험장에서 새로운 굴삭 작업이 시작됐다. 또한, 동창리 대형미사일 발사대도 건설이 진행되고 있어, 언제든지 실험할 수 있는 상태라고 한다.

'핵병기 없는 세계'를 공언한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북한에게 더 이상 대량살상무기 실험을 지속하게 할 수는 없다. 현재 상태를 이대로 방치하면, 멀지 않은 미래에 북한이 우라늄형 핵폭탄과 수소폭탄, 그리고 미국 본토를 표적으로한 대륙탄도탄 미사일(ICBM)을 손에 넣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미국에게 있어서 심각한 위협이다.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북한의 핵폭탄과 그 제조기술이 외국으로 반출된 사례는 없다. 몇 년 전에 시리아로의 반출 의혹이 있었지만, 의혹을 받던 시리아 핵시설은 이스라엘의 공폭으로 파괴돼 아무
일 없이 끝났다. 지금은 미얀마와의 협력 의혹이 부상하고 있지만, 미국이 진정으로 우려하고 있는 것은, 북핵이 미국을 노리고 있는 알카에다를 시작으로하는 반미테러집단의 손에 들어가는 일이다.
 
북한은 이전 북미교섭에서, 미국이 적대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북한을 핵공격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은 채 국제적 압력과 제재로 김정일 체제를 질식, 와해시키려 한다면, 대항수단으로 미국에 적대하는 세력에 대한 무기 반출도 마다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만큼 핵 유출방지를 미국은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미국의 도시를 타깃으로 한 핵테러가 일어난다면, '9.11' 정도의 피해로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북핵이 외국에 유출되는 것을 어떻게든 저지해야 한다. 북핵 제어작전은 한반도 유사시 혹은 북한 내부 붕괴를 상정한 시물레이션 중에 포함됐고, 군사 실전훈련에도 적용됐다. 이번달 16일부터 10일간 실시된 한미 합동군사연습 '을지 프리덤 가디언'(UFG)은 마치 이를 위한 훈련이었다. 

 
또한, 오바마 정권 내에서는 북한 핵문제 대응으로 'ONE YES, THREE NO' 정책이 검토되고 있다.
 
북한이 플루토늄형 핵폭탄을 이미 손에 쥐고 있는 이상, 핵보유국이라는 점을 묵인해주고(ONE YES), 북한과 교섭을 진행해 이 이상 늘리지 않을 것(우라늄 핵개발은 하지 않는다), 이 이상 개량하지 않을 것(핵실험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절대로 외부로 반출하지 않을 것 등 3가지 'NO'를 도모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ONE YES, THREE NO' 이후 최종단계에서는 북한에 '우크라이나 방식'을 적용해 플루토늄형 핵폭탄을 포기시키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구소련 시절, 우크라이나에는 NATO를 표적으로한 핵탄두 1,800발과 미사일 17기가 배치돼 있었다. 그런데 1991년, 우크라이나가 구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고, 우크라이나는 자동적으로 세계 제3위의 핵대국이 됐다. 당초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핵을 포기하려하지 않았지만,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가 공동으로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과 경제지원을 약속했고, 우크라이나는 결국 1994년에 핵병기와 미사일을 포기했다.
 
오바마 정권은 이 '우크라이나 방식'의 북한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미, 중, 일, 러 4개국이 북한의 안전보장과 경제지원을 약속하고, 최종적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평화협정, 관계정상화, 경제지원의 3종 세트를 준비해놓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9월 5일, 미국 방송국 NBC TV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들은 북한에게 관계개선의 길이 열려 있다고 말해왔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핵무기 개발 중단과 도발행위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언급했었다. 또한, 2009년 11월 14일 일본에서 있었던 아시아 외교연설에서 "미국은 북한에 (고립과는) 다른 장래를 제시할 의사가 있다. 북한은 빈곤한 그대로가 아닌, 무역과 투자, 관광이 북한 국민에게 더 좋은 기회를 부여하는, 경제적 기회가 있는 미래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하며 북한을 간접적으로 설득했다.


오바마 정권이 보스워스 전 주한 미국대사를 북한정책특별대표로 임명하고, 대통령 특사로서 2009년 12월 8일 평양에 파견한 것도 이를 위해서였다. 또한, 지난달(7월) 뉴욕에서 보스워스 특별대표와 김계관 외무 제1차관의 제2라운드 회담에 응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보스워스 특별대표는 방북 후 기자회견에서 어느 기자로부터 "휴전협정과 국교정상화에 대해 미국은 어떻게 답했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이 같이 답했다.

 
"우리는 2005년 9월 (6자회담) 공동성명의 모든 요소에 대해 논의했다. 나는 북한과 공동성명 내 모든 요소의 완전이행에 대해 확인했고, 그 의지도 확인했다. 모든 요소라는 것은, 한반도 비핵화뿐만 아니라, 평화체제와 6개국 당사국간 관계정상화, 그리고 경제지원도 포함돼 있다. 6자 회담이 열리기만 한다면, 또한 비핵화 논의가 추진된다면,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할 준비는 되어 있다"고 답했다.
 
또한, 보스워스 씨는 방북을 앞둔 2009년 9월 30일, "오바마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한다면, 북핵 문제 진전의 중대한 신호가 될 것"이라며 북미 정상회담까지 시야에 넣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미국을 방문해 보스워스 특별대표와의 회담에 나선 김계관 제1차관이 "교섭을 단순화하고,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도 최고위급 당국자 회담을 하자"며 오바마- 김정일에 의한 북미 정상회담을 역제안했다.

그는 미국이 1994년 제네바 합의에서 약속한 경수로 공급을 재개한다면, 우라늄 농축 그 자체를 포기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이 중단을 요구하는 우라늄 농축은 북미 교섭의 최대 난관이다. 그런데 이를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낸 것. 덧붙여 그는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기도 하다"며 북한의 핵포기 의사를 명확히 전했다.
 
뉴욕에서 1년 7개월만에 열린 북미 협의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으나, 북미 쌍방 모두 "실무적이며, 건설적인 이야기가 오갔다"고 평했다. 또한, 앞으로도 협의를 해나가자는 데에도 의견을 같이했다.

북미 정상회담은, 클린턴 대통령 재임 당시 계획된 적이 있었다. 그의 임기 마지막 해인 2000년 1월에는 실현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또한, 정권 발족(2002년 1월) 직후부터 북한을 '악의 축'이라 비난하며, 김 총서기를 "언급할 가치도 없는 남자다. 식탁에서 예의없이 행동하는 꼬맹이 같다"며 혹평하고 2005년 4월에는 "김정일 같은 폭군에 의한 폭정을 종식시킨다"고 발언했던 부시 대통령조차도, 2006년 11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경우, 한반도 평화체제구축을 위해 김정일 총서기와 한반도전쟁 종결을 선언하는 문서를 작성, 공동서명할 의사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부시 정권 마지막 해인 2008년,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평양공연에 동행한 도널드 그레이그 전 주한미국대사가 평양에서 김계관 외무차관을 만나 "부시 정권의 임기가 끊기기 전에 핵문제를 해결하자"는 미국 정부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이는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 오바마 정권의 정상회담 가능성은?

 
미국 대통령 선거 운동이 한창이던 2008년 4월 25일, 표면화된 북한과 시리아와의 핵 협력의혹에 대해,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오바마는 "북한과 직접대화를 하지 않는 부시 정권 하에서 진행된 사태"라 말하며 부시 대통령의 실정을 비판, 정상간 대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론을 전개한 적이 있다. 그 후에도,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정상간 대화에도 적극적으로, 그리고 무조건으로 응한다"며 핵문제 조기해결을 위해 김 총서기와 회담할 의사가 있음을 명확히했다.

또한, 힐러리 국무장관도 이전에 의회에서 열린 장관 비준 청문회 자리에서 "평양 등을 방문해 북한 외무장관과 회담할 의사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내가 선택한 시기와 장소에서 어떠한 외국 지도자와도 만날 의사가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클린턴 장관은 2009년 7월 27일, 미국 방송국 ABC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김 총서기)을 가리키며 "(우리들) 관심을 끌려는 억지쓰는 아이같다. 우리들은 그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라고 딱잘라 말했지만, 4개월 후인 11월 19일, "북한이 검증가능한,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약속한다면, 큰 혜택이 있을 것"이라며,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이 수년에 걸쳐 제기해 온 문제, 즉 관계정상화, 정전협정을 대신하는 평화협정, 경제지원 등을 검토할 것이며, 모든 것에 대한 논의는 열려있다"고 밝혔다.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의한 고립' 혹은 '대량살상무기 폐기에 의한 번영',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수법은 무엇도 새롭지 않다. 핵 문제가 부상했을 당시인 아버지 부시 정권 때부터 계속되어 온 정책이다. 그 결과가, 2번의 핵실험, 그리고 3번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였다. 대화를 중단하고 압력, 제재를 가하면 가할수록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돼 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북한도 필시 오바마 대통령과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김 총서기는 2012년까지 '강성대국'에 진입한다고 자국 국민에게 공약했다. 고립과 제재의 악순환을 끊고, 경제부활을 약속한 것이다. 내년 '강성대국'의 해를 앞두고, 임기가 끝나는 오바마 대통령을 상대로 직접 담판 지어, 핵문제에 대한 전망을 세우고 외교고립과 경제난을 벗어나 아들인 김정은의 후계체제를 확립시키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2009년 2월 모턴 아브라모비치 전 국무차관보, 스티븐 보스워스 당시 주한미국대사 일행과 함께 방북한 레온 시글 미국 사회과학원 북동아시아 안보협력 프로그램 국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김 총서기와 정상회담을 할 의사가 있다고 북한 측에 전했다. 그런데 그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정상회담
에 앞서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대통령 특사로 파견하는 안을 검토했다고 한다. 키신저는 7월 미국을 방문한 김계관 외무 제1차관과 단시간이지만, 대화를 나눈 사실이 확인됐다.
 
돌이켜 보면, 6개국 가운데 정상회담이 없었던 것은 미국과 북한 뿐이다. 김 총서기는 2000년 이후 중국과 7번, 러시아와 2000년 푸틴 방북 때를 포함해 총 3번, 그리고 적대관계에 있는 한국과도 2번, 그리고 국교가 없는 일본과도 고이즈미 총리를 상대로 2번에 걸쳐 정상회담을 한 적이 있다.
 
김총서기에게 있어서 마지막 꿈은,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뿐이다. 역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클린턴 정권 때는 클린턴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에 있던 김대중 대통령을 통해, 또한, 부시 정권 때는 부시 대통령과 맹우관계였던 고이즈미 총리에게 중개를 의뢰했듯이, 이번 방러에서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에게 북미정상회담의 다리역할을 의뢰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 이명박 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은?
 

북미 정상회담 실현에는 몇 가지 난관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남북관계 악화다.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을 배제한 채 북미 정상회담을 할 수 없다. 적어도 북미정상회담 실현에는 한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가능하다면, 북미정상회담에 앞서 남북정상회담이 실현되는 것이 오바마 정권에게 있어서 가장 바람직하다.
 
미국이 북미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남북관계 개선과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원해도, 결국 문제는, 남북 양측 정상의 관계 회복 의사다.
 
이 대통령은 정권 발족 시 "일본 총리와도 만나는데,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지 않을 이유는 없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만날 것"이라고 언급했다. 지난해 1월 29일 BBC와의 인터뷰에서도 "언제나 김 위원장과 만날 준비가 돼 있다. 평화와 핵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상황이 된다면 연내에도 만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지난해 3월 천안함 침몰 사건이 발생하자, "임기 중에 한번도 만나지 않아도 좋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지켜왔다. 회담을 위한 회담, 정치적 의도가 있는 회담은 하지 않을 작정이다"라며 태도를 강경히 했다. 특히 지난해 11월 연평도 사건이 일어나자,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북한과의 절교를 선언했다.
 
그런데 올해가 되자 갑자기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은 부정하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한다"(2월 1일)고 밝혔고, 올해 3월 1일 독립기념일 때 "우리는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북한을 의식한 발언을 했다.
 
그러나, 북한으로부터 반응이 없자, 올해 4월 1일, "내년에 임기가 끝나기 때문에 올해 중으로 (남북정상회담을) 해야한다는 정치적인 계산은 없다. 정치적인 이유로 서둘러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것이 본심이 아니라는 것은, 같은 시간에 물밑에서 정상회담을 위한 남북비밀접촉을 도모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의 남북비밀접촉 도모는, 북한 국방위원회의 6월 1일 폭로에 의해 판명된 것이다. 한국은 이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한 바로 올해 4월,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비밀접촉을 북한 측에 요청했고, 그 결과, 5월 9일 베이징에서 남북간 비밀회담이 열렸다.
 
북한 측에 따르면, 한국측이 남북관계 악화로 이어진 천안함, 연평도, 이 두 개의 사건에 대해 "북측으로 보면 사죄가 아니지만, 우리측에서 보면 사죄로 받아들일 만한 절충안을 만들자"고 타진했다고 한다. 또한, 두 개의 사건이 해결됐을 때는 "5월 말 정상회담을 위한 장관(각료급) 회담을 열고, 6월 말 판문점에서 제1차 정상회담을, 그리고 2개월 후 평양에서 제2차 정상회담을, 그리고 내년 3월 서울에서 열릴 핵안보정상회담 기간에 제3차 정상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측의 폭로에 한국정부는 비밀접촉 사실을 인정했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북한의 일방적인 발표에 불과하다"고 부인했다.

 
이대통령에게는 실질적으로 임기가 종료되는 내년 12월 대통령 선거까지 1년 4개월 밖에 남아있지 않다. 내년 4월에는 총선거도 있어, 대통령 후보도 결정된다. 여야당 대통령 후보가 결정된 순간에 레임덕은 단번에 가속화된다. 그대로 임기가 끝나면, "정상회담을 못한 대통령"이라는 딱지가 붙게된다. 또한, 남북관계를  복원할 수 없다면, 야당진영으로부터 '잃어버린 5년'이라는 비판을 들을 수 밖에 없다.
 
지도자라면, 레임덕을 막기 위해서도, 또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도 성과를 올리고 싶다, 업적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이 대통령에게 있어서 최후에 남겨진 카드가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7월) 2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지난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사태 등으로 불행한 정세가 조성됐지만, 거기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고 언급하며, "지구상에서 유일한 남북분단의 비극을 청산하고, 반목과 비방과 도발의 역사를 수습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밝혔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진정성과 책임을 가지고 대화와 협력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이번달(8월) 15일 광복절 연설에서 "과거 60년간 남북은 대결의 시대를 살아왔다. 우리는, 이 시대를 뛰어넘어 평화와 협력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책임있는 행동과 진정한 자세로 상호신뢰를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남북은 신뢰를 기반으로 평화를 구축해 서로 협력하며, 평화의 길을 함께 걷지 않으면 안된다"고 밝혔다.
5월 비밀접촉은 불발로 끝났으나, 여전히 남북정상회담을 단념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김 총서기의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의사는?
 

지난해 천안함 침몰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는, 북한 측이 오히려 남북정상회담 추진에 적극적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롤 접하고, 2009년 8월 김기남 조선노동당서기나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겸 아시아 태평양 평화위원장 등 북한 조문단이 방한했고, 이명박 대통령과 회담했다. 이때, 단장인 김기남 서기는 남북정상회담을 정식으로 제안했다.
 
또한, 2009년 10월에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 한국 임태희 노동부 장관 사이에서 비밀 접촉이 있었고, 지난해 2월에는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원동연 부부장이 한국 대통령 직속기관·사회통합위원회 고건 위원장과의 회합을 타진하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김 총서기 자신도 올해 4월 방북한 카터 전 대통령에게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또한, 최근에는 지난해 3월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계속됐던 이 대통령에 대한 비방과 중상을 멈추고, 8월 15일 해방기념일에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전해받은, 김 총서기 앞으로 온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축전에 있었던 한국의 정식명칭 '대한민국'이란 호칭을 그대로 보도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대통령은 "내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전보장회의에 김정일 위원장을 초대한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한편, 김 총서기는 2002년 4월 김대중 대통령의 특사로서 방북한 박동원 국가정보원장과 회담했을 때 서울 대신 러시아 이르크츠크에서 회담하고, 필요하다면, 러시아 대통령을 포함한 3개국 정상회담을 열어, 시베리아 철도와의 연결문제 협의하자고 제안했었다.
 
내년 3월 핵안전보장회의에 김 총서기가 참석할 리가 없다. 하지만 러시아에서의 한, 북, 러 3개국 정상회담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부설도,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한반도 횡단철도의 연결 문제도 남북관계개선 없이는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의 장소가, 서울이든, 혹은 금강산이나 개성이든, 또한 러시아든지 간에,  이 대통령과 김 총서기는 남북 정상회담을 원하고 있다.
 
북러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의 동향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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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8/26 [09:32]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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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는 죽여버려야지... 11 11/08/28 [23:10]
깡패는 협상대상이 아니다. 추방되어야할 악이지... 뭐 조폭들을 살려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얘기가 다르지만...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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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도쿄에서 태어남. 메이지가쿠인대학 영문과 졸업후 신문기자(10년)를 거쳐 이후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1980년 북한 취재 방문.
1982년 한반도 문제 전문지 '코리아 리포트' 창간. 현재 편집장.
1985년 '고베 유니버시아드'에서 남북공동응원단 결성, 통일응원기 제작.
1992년 한국 취재 개시 (이후 20회에 걸쳐 한국방문).
1997년 김영삼 대통령 인터뷰
1998년 단파 라디오 "아시아 뉴스" 퍼스낼리티.
1999년 참의원 조선문제 조사회 참고인.
2003년 해상보안청 정책 어드바이서.
2003년 오키나와 대학 객원교수.
2006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인터뷰

현재 "코리아 리포트" 편집장, 일본 펜클럽 회원.
니혼TV, 후지TV 등 북한전문평론가, 코멘테이터로 활약중.
장성택 실각 배경에 북한군 원로 그룹 있다
북한 핵실험 날짜의 비밀
물밑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6자회담국
北김정은 체제에 있어 가장 큰 위협은?
김정일은 어디서 죽었나?
中선원 해경살해, 일어날 일이었다
북한과 미국, 어느 쪽이 먼저 양보할까?
北이 던진 'NO', 美 어떻게 대응할까?
한일 FTA 진전되지 못하는 이유?
북핵문제, 새로운 움직임이!
냉랭한 북일관계, 변화의 조짐 보인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바마? 김정일?
한국 송환 탈북자 9명, 어떤과정 거치나
북중러의 나선 개발 현황은?
6자회담 재개, 관건은 '우라늄 농축' 문제
탈북자는 남북통일의 리트머스종이다
탈북자의 일본 망명, 이제 시작이다
미국의 '대기전술'을 역이용하는 북한
라이스 방북 계획은 역시 존재했다
[북러정상회담] 다음은 남북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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