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월 "도리님"(お酉さま: 에도시대부터 계승되어 오는 축제)가 끝날 무렵이면 연말이 가까워진 거리는 어딘지 모르게 어수선해진다.
연말 연시의 휴일을 맞이해 사회 기능이 정체되기 전에 미리 여러 가지 해야 할 일을 처리하려는 사람들로 거리가 점점 혼잡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귀가하여 우편함을 열 때마다 "상중 엽서 (喪中葉書,상중 결례엽서라고도 함)"를 한, 두 장 발견하게 된다.
올 한해 집안에 불행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는 이 엽서를 손에 들 때마다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싫으면서도 실감하게 된다.
"상중 엽서"란 "집안에 불행이 있었기 때문에 새해 인사 (즉 연하장)을 삼가는 것"을 알리는 뜻과 "상대 쪽에게서도 연하장을 보내주시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것을 알리는 엽서이다.
이 엽서는 상대가 연하장을 준비하기 전에 앞서 보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11월이라는 소리를 들을 무렵에는 "喪"을 상징하는 회색의 국화와 연꽃이 디자인된 엽서가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한다.
최근에는 슈퍼마켓에서도 상중 엽서와 연하 엽서 인쇄를 할 수 있는 곳이 있어, 10 월경부터 "상중 엽서 접수합니다" 라는 광고 카피가 슈퍼마켓에 내걸리면 "연말 준비"가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젊었을 때는 그다지 많지 않았으나, 나이가 들면서 이 엽서가 많이 날아들게 되었다.
처음에는 친구로부터 조부모 상을 당했다는 내용을 알려오다가, 부모 상을 , 그리고 이제는 자식의 이름으로 보내진 엽서에 친한 친구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나 자신도 "그런 나이가 됐구나"라고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해가 짧아진 어느 저녁, 귀가하여 우편함에서 두세 장의 "상중 엽서"를 꺼낼 때, 연말의 외로움과 인생의 황혼이라는 외로움을 함께 느낀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결혼식과 같은 경사는 결혼식 초대장을 본인들이 직접 보내지만, 장례식과 같은 슬픈 소식은 당사자와 가까운 사람들이 각자의 인맥을 통해 주위에 알리는 것이 풍습화 되어 있다. 슬픔에 젖은 당사자 가족에게 신경을 쓰게 하지 않도록, 주위에 있는 사람이 당사자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하는 배려인 것이다.
예전에는 상을 당하게 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는지 알려주는 화환수나, 얼마나 "성대한 장례식"이었지는지 여부가 고인의 인덕과 권위를 상징했다. 실제로 업무상 관계자가 사망한 경우, 평소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을 수는 없다.
부고라는 것은 갑자기 오는 것이기 때문에, 검정 상복과 넥타이는 항상 개인 로커에 준비되어 있다는 기업인도 적지 않다. 편의점에서조차도 파는 "장례용 리본 끈이 있는 부조금 봉투"에 부조금을 넣고서 다급히 장례식에 향한다.
직장인에게 장례식을 참석하는 것은 일종의 "업무상의 교제"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문화인 등 저명한 인사가 "가족끼리만 모여서 조용히 장례를 치르"는 경우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쓸데없이 사람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고 진심으로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가족만이 모인 자리에서 "조용히 떠나기를 원한다" 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생전에 자신의 장례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평소부터 가족과 이야기해 두는 습관이 조금씩 정착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인이 좋아하던 바다에 유골을 뿌리는 "해양 산골", 비석 대신에 꽃과 나무를 묘비로 하는 "수목 장례" 등, 장례식 형식도 다양화되고 있다.
형식에 묶이지않고, 마음을 담은 장례식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죽음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에 항상 죽음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예전에는 "인생 50 년"이라고 회자되었다. 또한 공자는 "50으로 천명을 안다"고 하여, "하늘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자각하고 분투하는" 세대라고도 말한다.
이는 언제 죽음이 찾아와도 되게끔 신변을 정돈해 두면서, 결연히 천명을 다하자는 의미인 것일까.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아지는 연말이다. (번역 스기모토 토모코)
年末雑感〜喪中葉書
11月の「お酉さま」が終わるころになると、街は次第に年末にむけ、どことなく慌ただしくなってくる。
年末年始の休日で社会機能が停滞する前に、前倒しでさまざまな仕事を片づけようと道路は次第に混み始める。
そして、家に帰ってポストを開けるたびに、「喪中葉書(喪中欠礼葉書ともいう)」を一枚、二枚と発見するようになるのだ。今年一年のうち身内に不幸があったことを知らせるこの葉書を手に取るたび、年の暮れが近づいてきたことを嫌がうえにも実感させられる。
「喪中葉書」とは「身内に不幸があったため、新年の挨拶(つまり年賀状)を遠慮する」ことをお知らせするとともに、「あなた様も送ってくださらなくて結構です」ということを伝える葉書のことだ。
この葉書は相手が年賀状を準備する前に先んじて送っておく必要があるので、11月の声を聞くと喪を現すグレーの濃淡で菊や蓮の花がデザインされた葉書がちらほらと届き始める。
最近ではスーパーマーケットなどでも喪中葉書や年賀葉書の印刷を請け負うところがあり、10月ごろから「喪中葉書承ります」の広告がスーパーの店内に掲げられ始めると「年末の支度」が近づいてきたのだと実感する。
若い頃はそれほどでもなかったが、年齢を重ねるに従って年々この葉書が沢山舞い込むようになる。はじめは友から祖父母に不幸があったことを知らせてくるのだが、そのうちに父母の訃報となり、この頃ではご子息のお名前で親交のあったご本人が亡くなったことを知り愕然とすることがある。自分自身も「そのような年になったのだな」と実感せずにはおれない。
日の短くなった夕方、帰宅してポストから二、三枚の「喪中葉書」を取り出すとき、年の暮れの寂しさと、人生の暮れ方の寂しさを相まって感じる。
ところで、日本では結婚式などの慶事は結婚式の招待状を本人たちが出すが、葬式などの不祝儀では本人に近い人達がそれぞれのネットワークで周囲に知らせるのが習わしになっている。
悲しみに暮れている当事者家族に気遣いをさせぬよう、周囲にいる者ができるだけ本人達の負担を軽くしようという配慮なのである。
以前はどなたかが亡くなれば、どれほど大勢の人が参列し、沢山の花輪が連なったか、「盛大なお葬式」であったかどうかが故人の人徳や権威を象徴した。実際に仕事上の関係者が亡くなった場合、日頃の義理からお通夜や葬儀には駆けつけないわけにはいかない。
訃報は突然にやってくるものだから、黒の喪服とネクタイは常にロッカーに入っているという企業人も少なくない。コンビニでも売っている「香典用の水引のついた祝儀袋」にお香典(お金)をつつみ、慌ただしく葬儀に向かう。
会社員にとって葬儀に参列することは一種の「仕事上の付き合い」でもあるのだ。
しかしこの頃では文化人など高名な方でも「家族だけで密葬を行う」場合が目立って多くなった。無為に人を煩わせず、まことに故人の死を悼む家族だけで「静かに逝きたい」と願う人が増えているのだ。
生前から自分の葬式をどのように執り行うかということを日頃から家族で話し合っておくという習慣が少しずつ定着してきたこともある。故人の好きであった海へ散骨する「海洋散骨」、墓石の替わりに花や木を墓標とする「樹木葬」など葬儀の形式も多様化している。
形骸にとらわれず、心のある葬儀を指向する人が増えているのだ。
仏教では死はいつ訪れるかわからないもの、常に死の準備をしておくものだと教えている。
昔は「人生50年」といったものだ。また孔子は「50にして天命を知る」と残し「天が自分に与えた使命を自覚して奮闘する」年代だともいう。
ということはいつ死が訪れても良いように身の回りを整えつつも、決然として天命に挑めよ、ということか。
いろいろと考える、年の暮れである・・・。